[최경호 칼럼] 전세는 공급자(임대인)가 짊어져야 할 초기 자금 상환의 ‘막대한 리스크’를 수요자인 임차인이 보증금으로 대신 짊어지면서 소소한 재무적 이익을 얻는 제도입니다. 이제 수요자가 아니라 공급자가 그 리스크를 직접 감당하게 해야 합니다. (⌚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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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수요 측면에서만 전월세를 이야기하니,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전세는 주거 사다리다, 전세가 월세보다 이익이다, 하는 걱정 내지는 항변들을 하시는데요, 사실 제가 보기엔 그게 다 스톡홀름 신드롬입니다. 인질이 인질범의 안위를 걱정하는.
그래도 워낙 그간 전세가 주거 사다리라는 프레임에 익숙하시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다리를 올라간 몇몇 성공 사례가 과대 대표되기도 했고요. 그럼 이제 ‘수요자’ 말고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도록 합시다.

전세를 ‘공급 측면’에서 한번 보자
‘공급자’ 입장에서 전세는, 초기 공사비를 한 번에 당겨 받는 것입니다. 월세는 천천히(수십 년?) 나눠서 받는 것이고요.
현금 쌓아놓고 집 짓는 공급자(첫 개발업자 및 임대인)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공급자는 은행에서 초기 공사 비용 빌리는데, 건설사업이 워낙 이런저런 리스크가 많아서 이자율이 높습니다.
- 그러니, 공급자 입장에서는 최대한 빨리 다 갚아야 합니다.
- 그러니, 목돈이 필요합니다.
- 그러니, 목돈을 가져다주는 전세가 좋습니다. 그래야 금융 비용을 줄일 수 있지요.
- 그러니, 공사비를 빨리 못 갚게 되는 월세로는 돈을 좀 더 받아야 합니다. 즉 전월세전환율이 이자율보다 높아집니다.
- 그러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세보다 월세가 더 재무적으로 불리해지는 게 당연합니다. 시장에만 맡기면.
물건도 할부로 사게 되면, 더 비싸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카드사가 ‘개입’해서 몇 개월은 무이자 할부를 해주기도 합니다.

전세의 강제 저축 효과? 주거 사다리?
‘고양이 쥐 생각해 주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단군 이래, 세입자가 주거 사다리 오르라고 월세 대신 전세금 받는 임대인이 있던가요? 매달 조금 들어오는 돈보다 당장 목돈이 필요하니 (혹은 갭투자 해서 산 집이기에 돌려줄 돈이 없으니) 임대인은 전세로 임대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전세가 주거 사다리 기능 비슷하게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도시화가 한창이고, 인구는 늘어나고, 경제 성장이 계속되어 집값도 오를 때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는 1990년대 이후 끝났습니다. 그 이후의 전세는 ‘사다리’가 아니라 ‘미끄럼틀’이 되었습니다. 전세 사태 이후엔 ‘인간 방패’가 되었고요.
주거 사다리가 사라진다고 걱정하는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세입자를 앞세웠으되 결과적으로 임대인 걱정을 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내 전세보증금을 무사히 돌려받을 수 있으려면 집값이 계속 올라야 한다
그사이에 다른 저축을 더 할 만큼 소득수준이 되거나, 근처에 (신도시 등을 통해) 집이 계속 지어질 때는, 운 좋고 능력 되는 분들은 내 집 마련에 성공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1995-2020 사이 기준, (코호트별 엄밀한 추가 분석은 필요하고 총량으로만 볼 때 이야기지만) 전세가 14.6%쯤 줄어드는 사이, 자가율은 4.5% 늘었을 뿐이고, 월세가 10.1% 증가했습니다. 주거 ‘미끄럼틀’ 효과가 2배 이상이었다고나 할까요?
이게 저축을 열심히 안한 개인 탓일까요? 혹은 집을 얼른 안 사고 전세로 살았던, 투자 감각 없던 개인 탓일까요? 다들 집을 사겠다고 덤볐으면, 집값은 내렸을까요 더 올랐을까요? 아니, 애초에 도시화가 진행된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다들 집을 사겠다고 덤빌 수가 있나요?
원래도 그런데, 정책 금융이 가세해서면서는 전세가 더욱 유리해졌습니다. 월세 지원 사업보다 전세 대출 사업의 예산이 더 많거든요. 주택도시기금에서 전세 대출액이 7.7조원.. 시중 은행자금까지 하면.. 287조원이던가..?
가족 지원도 그렇습니다. 전세금에 보태라고 목돈 (빌려)주는 친척은 있어도 월세 (빌려)주는 친척은 거의 없지요. 당장의 세입자에게는 전세가 월세보다 유리하게 여러 시스템이 형성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배에서 난 자식들이다 – 랭보
그렇게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공급자의 ‘초기 비용 조기 회수’를 도와주고, ‘장기 상환의 리스크’를 덜어주었습니다. 그 대가로 우리는,
- 전월세 전환율과 이자율과의 차이 정도의 재무적 이익과
- 입주 시 편의(임대인이 월세 세입자보다 좀 덜 까다롭게 선별)를 조금 얻고,
-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를 대신 져 왔습니다. 대규모 전세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도,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때도, 보증금 미반환 사고나 의도적인 사기의 이야기는 이어져 왔습니다.
보증금을 못 돌려받을 리스크는 어떻게 해소해 왔을까요?
- 집값이 계속 오르고
- 목돈을 가져간 임대인이 투자할 곳이 있고 (신도시 개발 등)
- 임대인의 일탈행위나 불의의 사고가 없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악랄한 전세 사기꾼의 계획된 범죄가 아니었을 때부터, 전세는 ‘리스크 전가 장치’였습니다. 애초에 부동산 개발 금융이 공급자 사이에서 나눠져야 했던 건설산업의 자금조달 리스크를, 세입자가 대신 지는 것이 전세였던 것입니다. (아래 그림의 분홍색 화살표).

전세자금 대출? 서민의 주거 형태인 전세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그 돈은 임대인을 거쳐 다시 은행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돈에 대한 이자는 세입자가 내고, 공급자(임대인)가 못 갚게 되면, 세입자가 은행에 갚아야 합니다. 이렇게 세입자가 미반환 리스크를 대신 지는 조건으로, 약간의 보상을 (월세에 비해 재무적으로 조금 유리하게) 받고, 집값 상승 동맹에 동참해야 하는 게 전세입니다.
그런데 세입자마저도 못 갚으면 문제가 생기니, ‘보증 제도’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돈을 대신 갚습니다. 이 보증 제도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일까요? 보증 사고액은 2022년 1조 3,211억 원에서 2023년 4조 6,424억 원, 2024년 4조 8,454억 원으로 폭증했습니다.
이 돈 중에 주택보증공사가 먼저 은행에 갚고 나중에 채권을 처리해서 회수한 돈, 즉 ‘대위변제 후 임대인으로부터의 채권 회수율’은 2023년 14.3%, 2024년 29.7%에 불과합니다. 2025년에야 84.8%로 늘었다고 하는데, 그 말은 15.2%는 은행에 물어줬다는 말입니다. 이 사이에 은행은… 은행은? 신문 기사로 갈음합니다.

280조 대출로 나가 있는 전세를 당장 폐지하기야 힘들 테지만…
하지만 모든 리스크를 가장 약자에게 떠넘기고, 은행은 아무런 부담이 없고, 공공의 지원은 엉뚱하게 쓰이는 이 시스템을 우리가 계속 유지해야 하나요? 그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집값이 계속 올라야만 하는 시스템이고, 집값이 안 오르면 전세 세입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 모두가 다 겪고도 말입니다.
은행과 금융이 공급자와 알아서 리스크를 해결하고, 그걸 소비자에게 떠넘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질서 있는 월세화(또는 반전세화)’ 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전환비용이 발생합니다. 일시적이고 행정적인 차원의 비용이 아니라, 계속 드는 비용입니다. 이제부터 리스크를 공급자와 은행이 지니까, 그 비용을 세입자에게 청구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그 리스크를 세입자가 스스로 지다가, 우리 중 몇몇 운 나쁜 세입자가 다 뒤집어쓰는 시스템이었다고 하겠습니다.)
할부 판매하면 물건 값이 조금 더 비싸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여기서 카드사가 ‘개입’해서 몇 개월까지는 무이자 할부 판매를 촉진합니다. 마찬가지로 시장에만 맡기면 전환 비용이 비싸서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이 늘어나니까, 공공이 개입해서 저렴한 월세 전환이 가능하게 하자는 겁니다. 무슨 돈으로요? 기존의 전세자금 대출 하던 돈에, 필요하면 좀 더 보태면 됩니다.
기존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기울이는 ‘전세자금 대출’ 대신, 그 돈을 공급자에게 (비슷한 금리로!) 빌려주면 됩니다. 아니면 은행이 장기 저리로 공급자에게 빌려주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세입자에게 반환 책임 떠넘기는 시스템에는 돈을 빌려주면서, 임대인에게 반환 책임 지우는 시스템에는 돈을 못 빌려줍니까?
그러면 ‘월세 전환도 저렴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림이 다음과 같이 바뀝니다.

실제 사례도 있습니다. 탄탄주택협동조합(탄탄쿱)이 보여줬습니다. 공급자가 빚을 지고,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고, 시세보다 저렴한 월세로 전환하는 실증 사례입니다. 탄탄쿱은 공급자가 평균 이자율 3.5%대의 돈을 빌려왔습니다. 개인에게는 2.2% 정도로도 빌려주는 전세자금 대출을 만약 탄탄쿱에 빌려줬다면, 더 저렴한 월세 전환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제발 전세 인질극을 이젠 끝냅시다. 당장 다 폐지는 못하지만, 반전세로 서서히 전환하면 됩니다. 이러면 또 왜 다주택자 편드냐, 그들이 욕심을 버리고 집을 싸게 내놓으면 다 팔리고 내 집 마련하면 된다, 세입자가 그 집을 사면 된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일단 현 세입자가 다 현재 집을 사고 싶거나(선호) 살 수 있거나(능력) 사야 하거나(의무) 하는 게 아닙니다. 임대로 살면서도 마음 편히 살 수 있고, 원하는 때 이사 갈 수 있고, 생애주기의 적절한 타이밍에 자신의 인생 계획에 맞춰서 내 집 마련을 하면 되지, 떠밀리듯이 원치 않는 주택을 ‘팔아줄’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반전세를 통해서든 절대액이 낮아져서든 일단 전세가율이 낮아져야 집값도 낮아지고 집도 팔립니다. 그 이유는 링크를 봐 주세요.
🔖 “전세에서 탈출해야 나라가 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