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시민사회 통제력 키우고, 공공성 강화하고, 사람 중심 접근해야. (정백근 경상국립대학교 의대 교수·시민건강연구소 소장) (⌚8분)
의대 정원을 놓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버티던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어 업무가 정지되었다. 이에 지난 2월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의료 대란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환자 건강 생명 때문에? 의사의 말과 행동의 괴리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이미 끝났는데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여전히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 와중에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탄핵당하였고 전공의와 의대생, 교수들까지 포함한 15인의 의협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이들도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점에서도 의협 비대위가 의대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라고 주장하는 핵심 이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꺼번에 증가한 의대생 교육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의사들이 배출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련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 현재 의협 비대위원으로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탠 전공의들은 환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다투는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까지 내팽개치고 나오지 않았나. 환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환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뒤로했다는 것인데,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노래 가사가 연상되지만,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두고 벌어지는 말과 행동의 괴리는 당혹스럽다.
전공의가 진료 현장을 떠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깝게는 2020년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때 그랬고,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도 그랬다. 하지만 의약분업 사태 때는 응급실, 중환자실 등 필수 의료시설을 유지하려는 전공의 차원의 노력이 있었다. 2020년에는 이런 필수 의료시설에서도 이탈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번 사태에서는 집단적인 개인 사직이라는 형태로, 은밀하지만 더욱 노골적으로 진료 현장 이탈이 행해지고 있다.
의대생 신분은 강력한 문화적 자본
사안에 따라서 의사도 파업할 수 있다. 외국의 여러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의사의 업무는 사회 구성원의 건강, 생명과 밀접하다는 점에서 그 파업은 정당한 이유와 올바른 의도에 기반해야 한다. 또한 파업의 중심에는 사회 구성원의 건강권 확보라는 명제가 자리 잡고 있어야 하고 파업은 최후 수단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파업이 환자에게 과도한 피해를 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를 하는 것이 정의로운 파업의 양보할 수 없는 기준이다. 그러므로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등 필수 의료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공의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 의사들은 2020년에도, 그리고 2024년에도 이 기준을 제대로 견지하지 못했다.
의료행위가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에 미치는 의미를 환자나 사람 중심의 관점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관점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의사들의 지식과 기술은 권력이 된다. 보건의료 서비스의 특성상 의사의 지식과 기술은 그 자체로 일정한 권력 효과가 있지만 이조차도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IMF 이후 의대 선호 현상이 뚜렷해졌다. 2002년까지는 상위 20개 학과 중 의예과가 절반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2023년과 2024년 자연계 상위 10개 학과는 모두 의예과였고 상위 20개 학과로 넓혀도 이 중 18개 학과가 의예과였다. 그러므로 의대생은 전국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로서, 의대생이라는 신분은 그 자체로 강력한 제도화된 문화적 자본을 보증하게 되었다.
의대생이라는 강력한 문화적 자본은 의사가 된 후의 높은 경제적 자본을 보증한다. 그 수준은 이미 잘 알려진바 OECD 최고 수준이다. 특히 개원 전문의의 소득은 평균 노동자 임금의 6.8배에 해당한다. 이는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큰 격차다.
새로운 의사의 출현, 시민사회와 자신을 분리한 의사 집단
한국 의사들의 강력한 자본가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들의 경제적 이익의 원천은 그들이 가진 전문적 지식과 기술에 기반한 ‘의료행위’였다. 의사들은 자신들이 수행하는 의료행위의 경제적 가치를 잘 알고 있고 그 행위를 통해서 이윤을 추구할 방법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시장화된 의료체계, 행위별 수가제 중심의 진료비 지불제도, 비급여 창출의 넓은 공간 등은 의사들의 경제적 자본 축적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예전의 의사들은 적어도 자기들 행위의 의미와 가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도덕적 차원에서 넘어서는 안 될 선(線)에 대한 숙고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의 전공의를 비롯한 젊은 의사들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는 환자들을 외면한 채 병원을 나올 수 있는 집단 또는 개인이 되었다. 바야흐로 새로운 의사들이 출현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 자체에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새로운 의사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시민사회와 분리함으로써 ‘추앙’받길 원한다. 이런 경향은 전공의들의 7대 요구, 의대생들의 8대 요구에서도 드러난다. 이들은 공통으로 ‘정부의 사과’를 요구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 속에서 응급실을 앞에 두고 환자가 사망하고, 119구급차에서 임신부가 출산하고, 중환자실 사망률도 증가했다는 보도가 빗발치는데 정부와 의료계 어느 하나 시민사회를 향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있는가? 오히려 우리 귀에 들려온 건 시민들을 ‘개돼지’로 표현하고 “죽을 뻔한 경험이 쌓여야 의사에 대해 감사함과 존경심이 커진다”는 의사·의대생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글들이었다.
시민사회 참여와 통제력 확보가 문제해결 첫 단추
정부가 이 사태를 계기로 다양한 의료 개혁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개혁이 현재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에 국한된다면 오히려 한국 보건의료 체계의 문제는 더욱 심화할 수 있다. 그 개혁은 중장기 방향 속에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내용과 형식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당장 현실은 어떠한가!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책무성을 가진 국가권력과 전문가권력이 정작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부차적으로 다룬다. 그래도 시민들은 참고 견뎌야만 하는 현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가능하게 하는 힘의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이런 현실과 힘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의료 개혁은 모두 허구다.
개혁이 무엇인가를 바꾸는 과정이라고 할 때 현재를 유지하려 했던 권력관계를 변화시키지 않고서 의료 개혁은 불가능하다. 돌이켜 보건대 현재 갈등 국면에 있는 국가권력과 전문가 권력(사실상 경제 권력)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보건의료 체계의 상업화를 주도해 온 한 몸이었다.
보건의료서비스의 상업화는 다양한 문제들을 발생시켰고 그 결과가 집약된 것이 지역의료와 필수 의료의 공백이다. 돈이 되는 곳에 의사들이 몰리면 상대적으로 수익이 나지 않는 영역은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전공의들이 요구하듯 ‘의정 동수’의 보건의료 거버넌스든 또는 그 어떤 다른 형태든 그들만의 테이블에서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중심에 둔 문제 해결 방안이 도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상황에서 의료 개혁은 시민사회의 통제력을 키우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 국가권력과 사실상 경제 권력 성격이 강한 전문가권력 간의 연합 또는 갈등이 현재처럼 시민들의 삶과 생명을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작 건강과 의료 이용의 주체인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그들의 건강과 생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배제된 이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가 되어야 한다. 시민사회가 중요한 결정 권력이 되어 국가, 그리고 보건의료 전문가와 함께 현재 상황을 개선하고 근본적인 의료 개혁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의료 개혁은 보건의료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의료 개혁은 보건의료의 상업성을 완화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을 견지해야 한다.
사실 전공의 및 의대생을 포함한 의료계의 투쟁이 지금과 같이 격화한 이유 중 하나는 정부가 의대 입학 정원 확대를 너무나 시장적인 방식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공적 자원으로서 의미를 갖추지 못하고 느닷없이 등장한 정원 2천 명 확대는 시장 경쟁을 격화시킬 수밖에 없음이 명확하다. 이는 의료계, 특히 젊은 의사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상징 자본화’ 하면서 ‘구별 짓기’ 하려는 전략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미 논의한 바 있듯이 ‘공공의학전문대학원’, ‘지역의사제’와 같이 지역·필수 의료 영역과 직접적으로 연관성이 있는 공적 자원을 늘리는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물론 4년 전 사태 때는 의료계가 이를 반대한 바 있지만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해 배출한 의사 인력을 기존 시장과 일정 정도 분리된 지역·필수 의료 영역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명확히 하면 이전과는 다른 국면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참여와 협력에 기반한 보건의료 분권 필요
또한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지역·필수 의료 공백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가 국가의 보건의료에 대한 방임 및 보건의료 체계의 상업성 심화라는 맥락에서 보건의료 기획, 보건의료 인력 양성 및 배치, 서비스 조직화·공급 및 전달체계 구축 및 운영 등에 대해 정부의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의사 인력이 공적 자원으로 배치되어 활동할 수 있는 공공병원 및 공익적 민간병원을 신설, 매입, 지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확충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바와 같이 건강보험 재정으로 시장을 만드는 수가 중심의 재원 조달이 아니라 일반예산, 기금 등 다양한 공적 재원의 확충에 기반하여 목적 의식적인 투자하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편, 정부의 책무성 강화와 관련해서는 보건의료 분권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지역의료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비수도권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에서는 건강, 의료 이용이 중요한 정치적 의제가 되고 있으며 선거 때가 되면 관련 공약이 넘쳐난다.
하지만 지방정부는 보건의료 재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권한이 없고 의료 취약지 지정조차도 중앙정부가 한다. 더군다나 재정 분권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보건의료에 투자할 수 있는 재정 여력도 취약하다.
이런 상황들은 지역의 건강, 지역의 보건의료는 지역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중앙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을 심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주민 건강과 의료 이용에 대한 책무성은 더욱 약화한다.
의료 공백으로 인한 고통은 개별 사회 구성원들의 구체적인 삶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해결 역시 즉각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일상적으로 이런 상황들을 모니터링하면서 즉각적으로 개입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앙정부는 방치하고, 지방정부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지역의료의 위축을 가속했다면 참여와 협력에 기반해 지역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보건의료 분권을 이 시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이 논의 구조를 의료 개혁을 이야기하는 테이블로 전환할 수 있다면 개혁의 방향은 보건의료의 민주주의와 공공성을 강화하는 사람 중심 접근이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국가권력과 전문가권력, 그리고 경제권력은 이런 개혁 방안을 저지하는 힘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혁이 권력관계의 변화를 전제한다면 이 테이블은 기존의 힘에 저항하는 주체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사회권력을 의료 개혁의 주체로서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의료 개혁 담론은 기존 권력 간 이해관계를 새롭게 조정하는 발판이 되고, 또다시 사람은 소외되고 개혁은 오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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