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안을 밀어붙일 기세다. 의사 사회는 이에 맞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의대생들의 동맹 휴학으로 정부 정책을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 공공의대 증원안을 무력화했던 방식이다. 심지어 이제 빅5 교수들까지 집단 사직에 동참하겠다고 정부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적어도 아직은 정책을 물릴 계획이 없어 보인다.
필수의료, 유일한 대책은 ‘의료수가 인상’뿐?
의사 사회를 비롯해 일각에서는 정부 증원안이 필수의료 붕괴를 막는 데 효과가 없을 거라고 주장한다. 원가 이하의 의료수가(*행위별로 책정된, 의료서비스의 가격)를 정상화하고 필수의료 종사 의료인에게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분명 합리적인 대안이다. 하지만 언제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첫째, ‘의료수가를 정상화한다’는 말을 의사들과 비(非)의사들은 다르게 받아들인다. 비의사들은 이를 ‘의사 소득이 크게 높은 부문은 현재 수준을 유지하거나 조금 깎고, 대신 필수의료에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한다’는 뜻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의사들이 주장하는 건 ‘소위 필수의료뿐 아니라, 의료비 규모 자체를 크게 증가시켜야 한다’는 쪽에 가깝다.
실제로 정부는 수가를 상대적으로 조정하여 필수의료에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하려고 수 차례 시도해 왔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늘 의사 사회의 반대에 부딪쳤고, 결국 정부가 뜻을 굽히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정부의 대안도 궁극적인 해법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보통은 점진적 개선안, 또는 꼼수에 가깝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의사 사회는 ‘그 정도’ 개선안조차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료비 총액을 높이는 것만을 답안으로 주장하면서 말이다.
둘째, 의사 소득 역시 절대적으로 낮은 게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국민 소득 대비 의사 소득은 OECD 평균 대비해서도 높은 편이다. 여기에서도 문제는 ‘불균형’이다. 심지어 미용 시장 급여의 끝없는 성장 때문으로 인해, ‘필수의료 종사 의료인에게 충분한 대가’라는 게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미용의들이 리스크도 숙련도도 없이 일반의들이 연 1천만 원 수준의 실수령액(세전 연봉 2억 원 수준)을 받게 되면서, 필수의료 종사 의료인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셋째, 의사 사회의 요구대로 총의료비를 높인다고 해서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게다가 지방의료, 공공의료 부문에선 의사 소득이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총의료비를 높인다(이는 곧 건강보험료를 높인다는 말의 동의어이기도 하다)는 대안이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가능성은 없다시피 하다.
지방 의료원에서 3억, 4억씩 연봉을 주면서도 의사를 못 구하는 건 지나친 격무 때문이라 쳐도, 일선 수도권 보건소에서 1억 이상의 연봉을 주고도 산부인과의나 소아과의를 못 구하는 건 의사들의 급여 구조가 비정상적으로 왜곡돼 있음을 방증한다.
산부인과나 소아과는 ‘붕괴하고 있다’는 필수의료 분야의 대표적인 예다. 수가가 낮아서 필수의료가 붕괴한다는데, 정작 보건소에서는 연봉 1억을 주고도 해당 전문의를 못 구하는 상황. 이 아이러니는, ‘의사들이 원가 이하의 수가에 고통받고 있다’는 말에 뭔가 허점이 있다는 뜻이다.
‘원가 이하의 의료수가’란 말이 가진 함의
의사 사회는 한국의 의료수가가 원가의 60~80%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현행 의료수가가 ‘절대적으로’ 낮다고 주장하고는 한다. 하지만 이건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실제 의원급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의원들의 평균 영업이익은 (연구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2~3억 원 수준으로 국민 평균 소득을 아득히 상회한다. 게다가 그 상승률도 가파르다.
급여로 본 손해를 비급여로 벌충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것도 100%의 진실은 아니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수입 비율은 피부과 등 일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70~80% 수준이다. 의료수가가 ‘절대적으로’ 낮다면, 의원은 대체 어떻게 그런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가?
왜 이런 괴리가 벌어지는가? 여기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원가’라는 개념을 서로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 재화가 ‘원가 이하’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이를 어떤 개념으로 이해하는가? 보통은 재룟값, 또는 기껏해야 여기에 장비 감가상각비 정도를 더한 개념으로 이해하곤 한다. 예를 들어, 커피 한 잔의 원가를 순수한 커피 원두만의 가격으로 설명하는 식이다.
‘의료 원가’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의료수가가 원가 이하’라는 말을, ‘재룟값이나 장비값도 못 건지는 적자’ ‘서비스를 하면 할수록 의사가 손해를 보는 시스템’이라는 식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원가’는 재료비와 장비 비용뿐 아니라 인건비와 영업 비용, 세금 등 기타 비용까지 모두 포함해서 계산해야 한다. 의료행위의 ‘원가’도 마찬가지다. 건축비나 임대료, 관리비, 특히 의료인의 인건비 등이 모두 원가에 들어간다. 따라서 의료수가가 원가에 미달한다는 말이 곧 의사가 돈을 못 번다는 말은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이, 의사의 인건비가 높아질수록 인건비를 포함하는 원가도 높아지고, 따라서 의료수가의 원가 보전율이 낮아지는 기현상까지 발생한다.
물론 아무리 의사의 인건비가 높다고 해도, 인건비만으로 원가 왜곡을 전부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실제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의사 인건비는 약 20% 정도에 불과하다. 간호사 인건비 등을 모두 포함하면 40~50% 수준이다. 따라서 정말 원가 보전율이 60~80%에 불과하다면, 인건비를 아무리 깎는다 해도 원가 보전엔 한참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의사 사회의 주장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원가 보전율은 종합병원급보다 훨씬 낮은 60%대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실제 의원급 의료기관의 영업이익은 2~3억 대에 달하니 말이다. 이건 어떻게 해도 설명이 불가능한 아이러니다.
의료 원가라는 개념 자체가 그리 정밀하지 않다
여기 두 번째 문제가 있다. 애당초 ‘의료 원가’라는 개념 자체가 그리 정밀하게 계산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의료 원가’라는 개념이 단순히 재료비나 장비 감가상각뿐 아니라, 인건비, 관리비, 건축비 또는 임대료, 세금 등 각종 비용이 모두 포함된 것임을 감안해야 한다.
의료 원가가 단순히 재료비만으로 구성된다면 쉽게 계산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의료기관별로 천차만별인 관리비니 임대료니 기타 유지비용이니 하는 돈들이 같이 계산돼야 하고, 무엇보다도, 의료인의 공임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지 하는 문제도 있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원가는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 재료비 등 일부 항목은 쉽게 수치화가 가능하지만, 임대료나 관리비, 인건비 등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비용은 규모나 형태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원가 계산’을 위한 의원급 의료기관 패널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상급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은 각각 6개, 98개 기관이 원가 계산에 패널로 협력하고 있으나, 실제로 훨씬 많은 모수를 차지하고 있는 병원은 15개, 의원은 18개만이 패널로 참석하고 있다. 전국의 의원 수가 3만 개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작 0.06%가 표본으로 선택되었다는 얘기다(2021년 7월 기준).
그 18개 의원이 엄격한 통계학적 방법론에 의거해 ‘완벽한 평균 의원’을 뽑은 거라면 그나마 괜찮을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주된 진료 행위의 종류부터 시작해서 인력 구조, 임대료나 관리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천차만별이라, 이들 패널이 대표성을 갖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패널 조사를 기반으로 측정한 원가도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의원의 의료 원가는 패널의 심한 부족 때문에 병원급 의료기관의 원가 계산을 역산해 이뤄지기도 하는데, 당연히 정확도는 크게 떨어진다. 부정확한 의료 원가 계산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는 관련 기관에서 계속 논의 주제로 삼고 연구하는 부분이다.
세무자료를 기반으로 한 회계조사를 해 보면, 실제 원가 보전율은 6~80% 수준이 아니라 약 90% 수준까지 높게 측정되기도 한다. 회계조사에 포함되지 않는 기타 수익이나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의사 연봉 등을 감안할 때, 실질적으로 병의원은 인건비를 포함해 납득 가능한 수준의 진료비를 벌어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이 계산 역시 정확하다고 볼 순 없다. 다만 부정확한 의료 원가 계산을 보강할 한 가지 대안으로 볼 수는 있다. 의료수가가 원가에 미달한다는 의료계의 주장에 정부가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이 부정확한 원가 개념을 의료정책에 그대로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국민 의료비를 지금보다 크게 높인다 한들, 원가 보전율이 가장 낮은 의원급 의료기관을 먼저 챙겨줘야 하고, 병원이나 종합병원급은 그다음 순위가 될 거다. 국민이 생각하는 ‘필수의료 강화’와는 다소 동떨어진 그림이다. 주목할 점은 의사협회 등 주요 의사 단체들이 실제 저 원가 보전율을 근거로, 의원급 의료기관의 원가 보전을 우선 과제로 수차례 주장해 왔다는 것이다.
의료수가, ‘절대적으로 낮은’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불균형’하다
그렇다고 현행 의료수가에 문제가 없단 건 아니다.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 진짜로 의료수가가 낮은 부분이 있다는 거다.
많이들 보셨을 거다. 대한의사협회는 한국의 의료수가가 낮다는 근거로 맹장, 제왕절개 등 실제 수술 수가를 든다. 출처는 ‘OECD 국가의 주요 의료수가에 대한 비교 연구‘(2012)로, 대한의사협회가 발행한 다소 오래된 2012년 논문임을 고려해야겠지만, 한국 맹장수술 수가는 약 2047달러로 미국의 1만4010달러와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며 독일의 3351달러에 비해서도 매우 낮다. 제왕절개는 1769달러로, 독일의 3843달러와 비교해도 절반에 채 미치지 못한다. (의료정책연구소가 원본 데이터로 삼은 자료의 2022년 최신 버전은 ‘링크’ 참고. 편집자)
하지만 이건 절반의 진실이다. 예를 들어 혈액투석의 경우, 한국 건강보험 수가는 10만6864원에 이르지만 미국 건강보험 수가는 5만4632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2022년 회계조사에 따르면 수술 행위나 처치 행위의 원가보상률은 68.8%, 72.9%에 불과하나, 영상검사의 원가보상률은 106.2%, 검체검사의 원가보상률은 144.2%에 달했다. 의료 원가라는 개념이 불균형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행위별로 불균형이 심한 상태임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즉, 의료수가는 실제로 낮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전부’ 똑같이 낮은 건 아니다. ‘불균형하게’ 낮은 게 문제다. 수술이나 처치 등, 위험성이 높은 의료행위가 오히려 유난히 낮게 책정되어 있다는 점도 그렇다. 여기에는 의료행위에 필요한 숙련도나 위험도 등을 객관화해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이런 구조 아래에서는, 어려운 술기일수록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힘들다는 거다.
두 번째는 90% 이상이 ‘행위별 수가제’로 구성된 현행 건강보험 체계 자체의 문제다. 행위별 수가제란 의료 서비스 행위를 하나하나 다 나누어 개별적으로 수가를 책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행위별 수가제가 규정하는 ‘의료 서비스 행위’의 종류는 약 9천 가지에 달한다.
행위별 수가제의 장단점은 뚜렷하다. 재미있는 건 장점과 단점이 사실상 같은 특성에서 나온단 거다. ‘의료행위를 많이 할수록 의사가 돈을 많이 번다.’ 덕분에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많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대신 의료수가를 적정 수준에서 통제하지 못하면 국민 의료비가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 버린다.
여기에서 한국의 독특한 의료 환경이 조성된다. 행위별 수가제로 인해 의사들은 행위량을 높일수록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환자도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의료기관 이용률이 매우 높아진다. 하지만 국가는 총 의료비를 일정 수준에서 통제해야 한다. 회당 진료비는 낮아지고, 대신 진료횟수가 늘어난다. ‘박리다매형’ 진료 시스템이 확립되고, 의사는 격무를 수행하는 대신 OECD 평균과 대비해서도 높은, 국민 평균 소득과는 동떨어진 수준의 소득을 올린다. ‘낮은 의료수가’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의 어쩔 수 없는 결과물인 것이다.
의사는 행위별 의료수가가 낮다는 점을 강조하며 의료수가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비의사 국민은 OECD 평균과 대비해서도 높은 의사 소득을 거론하며 의료비를 높여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두 주장은 모두 근거가 있다. 심지어 똑같은 제도, 똑같은 숫자가 그 근거다. 동전의 양면을 보고 있을 뿐. 이건 일종의 숫자놀음일 뿐이다.
불균형한 의료수가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이런 현실을 개선할 방법은 뭘까? 한 가지 해결책은 행위별 수가제를 폐지하고, 국민의 의료기관 이용을 화끈하게 1/3 정도로 줄여 버리는 것이다. 병원 문턱을 높이고, 경증 환자는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의료수가 인상이나 개선도 논의할 수 있다.
잘만 된다면 이상적인 해결책이지만, 이건 불가능에 가까운 해결책이다. 국민은 갑자기 높아진 문턱에 분노할 것이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사회적 대타협 수준의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의사, 특히 개원가나 일부 전문과목의 의사들 역시 현재의 고소득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의사 정원 확대나 면허 장벽 완화 등 다른 개선책도 같이 논의돼야 한다.
하지만 가능할까? 의사 사회도 ‘의료수가를 높이고 의료기관 이용의 문턱을 높이는’ 방향의 개혁에는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의사 정원을 늘리고, 대신 1인당 의사 소득은 다소 줄이고, 공공성을 크게 확대하고, 면허 장벽을 완화하는…’ 등등의 개선책에 대해서는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다들 자신이 유리한 점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불리한 점은 절대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 의사 사회는 의료 개혁이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로 정부 의지 부재나 국민 인식만을 들지만, 사실 그 원인은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에도 똑같이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해결책이 있다. 좀 더 온건한 해결책이다. 수술, 처치 등 상대적으로 낮은 수가는 높이고, 검사 등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된 수가는 낮추는 것이다.
실제로 행정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상대적 불균형’을 개선하려고 해왔다. 상대가치점수(*의료행위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비교한 점수, 행위별 의료수가 결정의 근거가 된다)를 조정하려고도 했고, 때로는 소아과 등 의사 부족에 시달리는 일부 과목에 대해서만 환산지수(*상대가치점수를 실제 원 단위의 비용으로 환산하기 위한 일종의 배수. 상대가치점수에 환산지수를 곱하여 실제 수가가 결정된다. 실질적으로 건보료 인상률에 맞춰 환산지수도 인상된다.)를 높이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행정부의 시도는 늘 실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의사 사회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었다. 의사 사회의 반대 논리는 늘 같았다. 저수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체’ 수가를 인상하는 것이 방법이지, ‘일부’ 수가만을 인상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23년 말 행정부는 검체, 기능, 영상 분야 등 원가 이상의 수가가 책정된 일부 분야의 환산지수를 동결하고, 이를 의원 초진 진찰료 및 소아 진찰료 가산에 활용한다는 안을 내놓았으나, 의사협회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이 대안을 폐기했다.
의사협회는 당시 장외투쟁에 나서며, “필수의료 살리기라는 목적 아래 별도 재정 투입 없이 재정 중립을 강행하는 것은 오히려 의료현장에 혼란과 부작용을 가중시킬 것이 심히 우려된다”거나 “필수의료 가산은 추가재정 투입이 필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즉 의료비를 늘리는 방향만이 의사 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상황이다.
물론 보건복지부 안도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차라리 꼼수에 가까웠고, 기대 효과도 그리 높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작은 한 걸음이기는 했다. 그런 ‘꼼수’를 쓸 수밖에 없던 이유도 있다. 상대가치점수를 고친다든지, 아예 뒤집는다든지 하는 건 훨씬 더 어려운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어째서인가? 사실 행정부가 정말로 ‘행정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부조리한 형태로 자리 잡아버린 현행 상대가치점수제를 개편하는 건 일도 아니다. 문제는 행정부는 여러 정치, 사회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는 거다. 개중에서도 상대가치의 개편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의사 집단 그 자체인 셈이다.
의사라는 거대 집단의 파워 게임
수가 문제는 의사 사회 내부에서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파워 게임’의 결과물이다. 건강보험료를 화끈하게 수십 퍼센트씩 인상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총의료비 규모는 일정액 수준에서 정해져 있다. 2021년 기준으로는 111조 원이다. 이중 건강보험공단은 약 71.6조의 진료비를 부담했고, 22.1조 원은 본인부담금, 나머지는 건강보험 환자의 비급여 지출액이었다.
이렇게 총의료비 규모가 개략적으로 정해진 상황에서, 이제 내과니, 외과니 하는 각 전문과목별로 진료비를 얼마씩 나눌지 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각 과목 협회 간의 파워 게임이 벌어진다. 또 의원, 병원, 종합병원끼리도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다.
행위별 의료수가의 큰 골격이 크게 변할 수 없는 이유다. 각 행위별로 얼마나 많은 자원이 소요되는지를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게 현행 의료수가 제도의 핵심 근간이다. 외과 수술이나 소아과, 산부인과 등 일부 필수의료행위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건, 즉 다른 의료행위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를 부여받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고도의 조율이 필요한데, 누구도 내가 하는 행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를 부여받는 걸 원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의사 사회가 ‘필수의료를 강화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목소리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내부 파워 게임의 결과, 그건 어디까지나 ‘내게 손해가 오지 않는 선에서’ 필수의료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되고 만다. 덕분에 실제 수가 결정 과정에서는 결국 과목별 파워 게임이 벌어지고, 필수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과목별 파워 게임을 피하기 위해, 의사들이 원가를 고려해 스스로 행위별 적정 수가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상향식(바텀 업)으로 수가 계산 방식을 완전히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안이다. 상향식으로 의사 사회가 스스로 정한다면, 당연하게도 가격이 과다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 또 의사협회는 개원의 비중이 높은 만큼 개원가의 목소리가 과잉대표되는 경향도 있다. 실제로 협회 내에서는 개원가의 다빈도 단순 술기에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따라서 이는 총의료비의 상당한 증가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정부는 총의료비 순증 규모를 2% 남짓에서 유지하며 진료과목별, 행위별로 수가를 조정하는 방안을 선호해왔으나, 의사협회는 총의료비 순증 규모를 파격적으로 늘리는 방향의 개혁안을 꾸준히 주장해 왔다.
상대가치점수를 아예 총체적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본질이 바뀔 순 없다. 필수의료의 가치를 ‘지금보다 높게’ 보장하자면, 다른 의료의 가치는 현행보다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꼭 상대가치점수라는 제도로 못이 박혀 있지 않다고 해도 그렇다.
면허라는 궁극의 진입 장벽, ‘면허의 무기화’
또 한 가지 문제는, 의사 사회가 이미 ‘타협하기 거의 불가능한 상대’로 여겨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왜 의사들의 투쟁에 동감하지 못할까? 가장 큰 이유는 의사들이 면허를 ‘무기’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의료제도에 쉽게 ‘독재’나 ‘공산주의’ 같은 딱지를 붙이지만, 사실 의료제도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게 면허다. 특히 한국은 의대 정원을 철저히 동결하여 면허 보유자의 수를 조정함으로써, 면허제도를 사실상 노동 시장을 통제하는 도구로 쓰고 있다. 가장 독재적이고 공산주의적인 점을 하나만 고르라면 이 ‘면허’를 빼고 생각할 수가 없다.
면허란 원래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보유한 사람에게만 의료행위를 허가하는 개념이다. 의료시장의 수요 공급을 조정하는 건 부수적인, 행정적인 필요에 따라 행정부가 하는 일일 뿐이고 말이다. 지금처럼 정원을 극단적으로 경직된 상태로 놔둔 채, 정원을 조금이라도 늘리려 할 때마다 의사들이 병원 파업, 집단 사직 같은 극단적인 형태로 대응한다는 건 오히려 의사 사회가 의료를 ‘시장 통제’의 영역하에 놓고 싶어 한다는 뚜렷한 방증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전공의들이 파업을 벌이고, 의대생들이 동맹 휴학의 형태로 투쟁할 수 있는 중요한 까닭은, 의사들이 ‘면허’라는 궁극의 진입장벽을 통해 노동 공급 자체를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의사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공고화된 ‘닫힌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하나의 이익집단으로서의 의식이 굉장히 강해져 있단 얘기다.
윤석열 정부의 2천 명 증원안은 부조리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대 개설안에서도 의사들은 똑같이 파업으로 대응했고, 결국 공공의대 개설안을 무력화시켰다. 당시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덕분에’ 챌린지를 비틀어 ‘덕분이라며’ 챌린지를 벌였다. 코로나 대응이 우선이었던 정부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의료 정책에 어떤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자면, ‘면허를 무기화’한 의사 사회의 반발에 부딪힌다. 윤석열 정부의 2천 명 증원안이 사람들에게 ‘사이다’로 받아들여지게 된 건, 이에 비해 온건했던 과거 정부의 의료 개혁안들이 전부 의사 사회의 반대에 좌초했던 탓이 크다. 의사 사회의 반대 논리가 선민의식을 두드러지게 드러냈던 것도 중요한 이유다.
면허라는 궁극의 진입장벽은 노동 시장은 물론 의료 시장의 왜곡까지 부른다. 피부과는 사실상 ‘미용과’가 된 지 오래다. 피부과의 레이저 시술은 물론, 심지어 여러 침습적 시술조차도 사실 난도가 높다거나 위험성이 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단 얘긴 아니다. 당연히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 모든 직무는 다 그렇다. 반대로 훈련을 거친다면 누구든 쉽게 할 수 있는 수술기법(흔히 ‘술기’라는 축약어로 의료계에서 많이 쓰임)이 많다.
이 시장은 낮은 위험도와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누구든 월 실수령액 1천만 원 이상을 벌 수 있다고 한다(소위 ‘무천도사’, 경력 없어도 세후 월 1천만 원 이상 받고, 도시에서 일하는 미용 피부과 의사. 편집자). 왜 이런 비정상적인 고소득이 보장되는가? 시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이런 미용 시술을 할 수 있는 건 의사 면허 보유자로 한정되어 있고, 따라서 노동 공급이 극단적으로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이건 그리 상식적인 노동 시장이 아니다. 이런 노동시장의 왜곡은 불균형한 의료수가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면허 장벽이 노동시장에서 공급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만 고치면 된다’는 건 거짓말이다. 둘 다 고쳐야 한다.
더불어, 의사 면허의 권능을 어느 정도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간호법을 결국 폐기한 데서 볼 수 있듯, 의사 사회는 면허의 권능을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다. 심지어 문신법조차 반대한다. 여전히 한국에서 문신은 의사만이 시술할 수 있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의사 면허는 생득권 같은 게 아니다. 이건 그저 행정적인 편의에서 비롯된 장치일 뿐이다. 누구든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거치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어떤 수술이나 진단처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의료행위도 있지만, 다수의 ‘공장형’ 미용 의원에서 하는 시술이 6년의 교육에 4년의 실습이 필요한 고도의 시술이라고 보이진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이미 간호사 등 직종이 사실상 의사의 일부 과업을 대신하는 형편이다. 로컬 의원에서도 엄격한 의사의 지도 감독이 필요한 행위가 간호조무사나 물리치료사 등 다른 보건의료인의 손으로 루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상 의료 현장에서는 의사 면허의 ‘절대적인 장벽’이라는 게 이미 무너져 있다. 사실상 불법을 방기하는 이상한 상황임에도, 의료법의 엄격한 장벽을 조금이라도 고치려 하면 의료 붕괴를 얘기하며 반대의 기치를 높이 건다.
정부와 의사, 모두의 책임… 돌파구는 있나
이상의 이야기가 윤석열 정부의 2천 명 증원안이 합리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간호사법을 거부했음에도 갑자기 의대 정원의 극단적인 증원안을 꺼내든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최소한의 정합성조차 없다.
하지만 ‘의료수가 정상화’가 그렇게 완벽한 답안지인 것도 아니다. ‘정상화’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 ‘의료 원가’라는 개념도 그리 또렷하지 않다. ‘의료수가 정상화’는 그 과업만 똑 떨어뜨려 홀로 이룰 수 있는 과업도 아니다. 선결 과제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불분명한 원가 개념을 다듬어야 하고, 객관적으로 정량화하기 어려운 수술기법의 난이도나 위험성 등을 어떻게 의료수가에 반영할지 고민해야 한다.
한편, 몇 가지 온건한 정책적 대안들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 도떼기시장 같은 현재 응급실 환경을 개선하고, 경증 환자의 3차 의료기관 직접 방문을 제한하는 것.
- 다소 조삼모사 방식이겠지만, 필수의료에 아예 별도의 재정을 빼 지원하는 것. 이를 통해 전문의 위주의 병원 환경을 조성하는 것 등
- 거기에 정원도 늘리고, 행위별수가제나 상대가치점수까지 전면 개편을 논의했다면 훨씬 바람직한 그림이 됐을 것이다.
‘의료수가를 정상화하라!’ 말은 쉽지만,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다. 정부는 물론 병원도, 의사들도 다 그 이해관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판을 바꾸려 할 때마다 아무도 손해를 보려 하지 않고, 다들 그 와중에 정치 게임을 벌여 이득을 챙기려 한다.
‘의료수가를 정상화하라’. 일견 뻔한 정답처럼 보이는 말이지만, 이미 이 말은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다. 의사들이 일방적인 희생을 감수하고 있으니, 최소한 우리의 이익을 흔들지는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인 것이다.
문제가 복잡해서인지 글이 무척 길어서 읽다가 집중력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대체 무슨 문제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