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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이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출판의 위기란 무엇인가?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이 출판의 위기는 아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은 항상 현재형으로 쓰였다. 책은 소수 미디어에 속하기에 항상 잘 팔리지 않았다.

그 내재적 가치에 비해 만족할 만큼 팔린 적은 드물다. 때때로 밀러언셀러가 나오고 출판이 활황을 보이기도 했지만, 주로 외부 요인에 따르는 우연의 결과였을 뿐이다. 출판은 항상 배가 고팠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아마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이는 책의 가치와 판매 사이의 긴장이 출판의 영원한 숙제임을 보여준다.

출판의 위기란 무엇인가?

다시 강조해 두자. 출판의 위기는 책이 팔리지 않는 게 아니다. 그것은 ‘현상’일 뿐이다. 오늘날 출판의 위기는 그동안 출판이 의지해 왔던 관행적 방식으로는 책이 ‘충분히’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백약이 무효’다. 출판의 세 친구인 서점과 언론과 도서관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갈수록 서점은 줄어들고, 언론(신문)은 위축되며, 도서관은 포화되었다. 그런데 책의 생산은 더욱더 손쉬워져서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책을 출판할 수 있는 풍요의 시대에 이르렀다. 자가출판과 독립출판은 날이 갈수록 활발해질 것이다.

책

출판의 진짜 위기는 책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오늘날 출판은 책의 존재감, 책이 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충분히’ 알릴 수 없다. 출판사는 더 가혹하게 경쟁하고,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도록 강요받는데, 문제는 그러고도 ‘판매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출판이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일할 수 없다는 것, 창조적인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대부분의 출판사는 비즈니스 모델의 완전한 혁신 없이 도저히 존립할 수 없다.

오늘날 출판은 종이책을 만들어 서점으로 내보내는 사업을 벗어나는 중이다. 오늘날 출판산업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혁신을 제조업이라는 프레임만으로는 잘 정의할 수 없다. 출판은 ‘읽기’와 ‘쓰기’를 연결하는 사업에 차라리 가깝다. 어쩌면 본래 ‘연결’이 전부였을 수도 있다.

링크 연결

제조라는 형태를 취하고 서점과 제휴하는 쪽이 그동안 사업하기 가장 좋은 형태였을 뿐이다. 지금도 이 부분에 출판은 많은 작업 노하우를 축적하는 중이며, 이는 일종의 진입 장벽을 이루어 출판산업을 약한 형태로나마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제조’가 아니라 ‘연결’을 숙고하지 않으면 새로운 사업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1. 저자, 출판사가 되다

누군가는 조금 더 빠르다. 출판의 비즈니스 모델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책이 충분히 팔리지 않으면, 먼저 거기에 생계를 의존하는 저자들부터 움직인다. 이른바 ‘광팬’을 거느린 슈퍼 저자들이 먼저 모범을 보인다. 스스로 출판사가 되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려 하고, 어떤 출판 자본은 이러한 움직임으로부터 기회를 얻으려 한다.

작가 저자 필자

약 30년 전에 김용옥은 출판사를 경영하면서 누구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의 책들을 출판했고, 최근에는 이지성과 김난도가 자신만을 위한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내기 시작했고, 김형경 역시 이 대열에 합류했다. 세 사람 모두 아직은 기존 출판사와 작업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로 움직이는 중이다. 마치 해외 베스트셀러 저자들이 전자책은 자가 출판하고, 종이책은 기존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문학동네는 이 분야에서 확실하게 혁신적인 생각을 보여 주었다.

게다가 가치사슬의 고리마다 동시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시험한다. 자가출판 사이트를 운영함으로써 서점은 출판을 병행하고 출판사는 북카페 등을 차리면서 스스로 서점이 되려고 한다. 정연하게 늘어서 있던 출판의 가치사슬이 전부 흐트러지고, ‘하이브리드화’하는, 즉 서로 상대방 영역을 침범하는 현상은 격변의 시기를 지나 새로운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책의 생산과 판매를 중심으로 분업했던 출판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이제 가치사슬의 다른 영역을 스스로 책임지면서 독자들을 향한 다양한 서비스를 포괄하는 복합 비즈니스 모델로 변신 중이다.

2. 콘텐츠 마케팅 출판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은 출판에서  ‘콘텐츠 마케팅’에 바탕을 둔 새로운 유행을 들여다볼 기회다. 만인이 만인과 연결되는 초연결사회에서는, 읽을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상품을 선전하고 구매를 강요하는 형태의 광고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내가사랑한유럽 TOP10 (출처:YES24)
내가사랑한유럽 TOP10-홍익출판사

초연결사회는 관심의 연결, 취향의 연결, 의미의 연결을 지향한다. 고객한테 제품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매스미디어식 ‘도달’은 거의 가치가 없고, ‘도달’이 새로운 ‘도달’로 이어지는 ‘연결’만이 가치를 실제로 확산한다. 따라서 출판을 비롯한 모든 기업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싶어 하는, 소셜 친구한테 전달하고 싶어 하는 가치를 통해 자기 상품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단순한 광고가 아니라 의미가 담긴 이야기가 더 쉽게 연결된다. 다시 말해 기업이나 제품은 ‘콘텐츠’ 형태를 띨 때 더 효과적으로 공유된다.

기업이 콘텐츠를 만들어 기업이나 제품을 홍보하는 것을 ‘콘텐츠 마케팅’이라고 한다. 출판은 오래전부터 독자들에게 콘텐츠를 전해 왔으므로, 다른 산업에 비해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잘 알고, 노하우도 상당히 축적되어 있는 편이다. 출판의 비교 우위를 활용해서 책을 통해 기업이나 제품을 홍보하는 콘텐츠 마케팅이 해외에서는 몇 해 전부터 활발하게 운영되어 왔다.

가령, 영국에서는 자동차 브랜드인 재규어 랜드로버가 영국의 윌리엄보이드에서 책을 내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독자들이 읽고 싶어 하는 것을 잘 아는 출판사의 능력을 활용해 다른 산업에 속한 기업들이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덧입혀서 자기 브랜드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점점 확대될 것이다.

전통 출판과 광고 기획사가 결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콘텐츠 마케팅 출판’은 앞으로 유망한 성장 분야가 될 것이다. 출판사 입장에서 볼 때,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에서 보듯이, 질 높은 콘텐츠를 확보함과 동시에 마케팅 제휴를 통해 판매 안정성까지 만들어내는 일석이조의 출판모델인 셈이다.

3. 모바일 퍼스트 출판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의 충격적 성공은 출판산업에 ‘모바일 퍼스트’라는 과제를 남겼다. 먼저 발견성부터 확보하고 나중에 출판하는 모델의 실제 작동을 확인해 준 것이다. 지금까지 출판은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배본, 홍보, 광고 등을 통해 판매하는 ‘먼저 출간하고, 나중에 마케팅 하는’ 모델을 통해 주로 실현되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한빛 비즈(출처:YES24)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한빛 비즈

논술 강사 출신의 무명 저자였던 ‘채사장’은 이런 모델에 의지해서는 자기 책을 출판할 수도, 판매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서 출판 여부를 타진하는 대신에 일단 독자와 연결부터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닥치고 정치』의 김어준이나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이동진처럼, 먼저 콘텐츠를 ‘출판’해서 가상의 ‘독자들’부터 만났다.

팟캐스트를 이용해 개인방송부터 시작해서 독자부터 끌어모은 것이다. 일종의 ‘연재’를 통해 독자 먼저 만난 것이다. 이를 사전 홍보라 불러도 좋고 다른 어떤 이름을 붙여도 좋다. 인기 저자인 김어준도 이동진도 아니었던 채사장의 경우, 독자가 확인되지 않으면 어쩌면 출판 자체도 불가능했을 가망이 높다.

독자 모바일 스마트폰 패블릿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초연결사회에서는 ‘연결’에 따르는 비용이나 위험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덕분에 종이책/전자책을 출판하기 전에 누구라도 ‘먼저’ 독자를 만날 수 있다. 저자든, 출판사든, 편집자든 말이다. 전 국민의 손 안에 이미 들려 있는 각종 모바일 기기는 연결을 끊임없이 강요하고, 책 자체 또는 책과 관련한 콘텐츠를 모바일 기기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출판산업에 요청 중이다.

이제 책을 생산하기 위해 먼저 독자부터 생산하는 출판, 즉 모바일 기기를 활용해서 콘텐츠를 공개함으로써 독자를 먼저 만나고, 책 내용을 독자와 함께 조금씩 판올림을 통해 만들어가는 ‘모바일 퍼스트 출판’은 출판 비즈니스에서 하나의 중요한 흐름으로 떠오를 것이다. 펭귄랜덤하우스의 마케팅 총괄 부사장인 크리스틴 패슬러는 말했다.

“출판 마케팅은 이제 모바일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움직이게 될 것이다. 더 많은 독자들이 모바일에서 책을 사거나 읽고 구절을 발신하고 저자와 직접 관계를 맺을 것이다. 출판은 마케팅 활동 전체를 모바일 친화적으로 만들어야 하며, 독자들이 책을 구입하는 장소에서 직접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위기에 빠진 출판의 활로가 어쩌면 여기에 있을 수 있다. 페이스북의 적극적 이용자와 도서 구매자의 데모그래픽이 거의 중복되는 것을 생각하면, 출판이 모바일에서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민하지 않는 일은 출판의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4. 독자 직접 연결 모델(D2C)

“트위터는 출판사다.”

세계 최대의 과학 출판사 중 하나인 스프링어맥밀란이 제휴해서 만든 스프링어네이처의 책임자인 닐스 페터 토마스는 올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트위터는 아주 적은 분량의 책을 쓰는 저자들을 모아서 독자들과 연결하는 출판사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묻고 싶다. ‘레진코믹스’는 출판사인가. 당연히 만화 출판사라고 불러야 한다. 저자와 제휴해서 만화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만화를 읽는 독자까지 모아서 가치사슬을 파괴한 새로운 형태의 출판사라고 보아야 한다. 퍼블리는 어떨까? 퍼블리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자주 만난 새로운 형태의 출판사다.

sns

이들은 클라우드펀딩을 활용한 출판사다. 먼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출판할 책의 취지를 설명한 후, 그 뜻에 동의한 독자한테 미리 출판 자금을 모았다. 그러고 난 후 출간 과정을 뉴스레터 등을 통해 공유하면서 충분히 독자와 교감한 후 나중에 책을 출판하고 독자와의 대화까지 마무리하는 새로운 출판 방식을 선보였다. 이 두 회사의 출판은 독자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 초, 세계적 마케팅 전문가 세스 고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출판에서 가장 생각할 만한 것은 출판의 고객이 누구인가를 결정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서점인가, 뉴욕타임스인가, 아마존인가, 독자인가?”

이 질문은 오늘날 출판에서 무척 중요한 이슈다.

서점이 줄어들고 책 판매가 감소함에 따라 출판사는 점차 자신의 고객이 서점이 아니라 독자라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독자 중심 비즈니스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두 회사처럼, 독자와 직접 연결되는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출판사가 점점 늘어나는 중이다. 이를 독자 직접 연결 모델(Direct to Consumer)이라고 한다.

사람들 독자 모바일 SNS 소셜미디어

세계 제2의 출판사인 하퍼콜린스는 최근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급속히 늘려가고 있다. 로맨스 소설 출판사인 할리퀸을 인수해 특정 분야의 전자책 서점을 전 세계에서 동시에 오픈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거기다 자사 홈페이지를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재편하고, 저자가 블로그 등을 통해 책을 홍보한 후 자사 플랫폼을 통해 판매할 경우 두 배의 인세를 보장하는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계속해서 쏟아내고 있다.

영국의 문학 출판사 파버앤드파버는 홈페이지를 럭셔리 상품(고급 호화 양장본 등)을 판매하는 프리미엄 브랜드 몰로 개편했으며, 아셰트는 서점이 아니라 검로드 같은 독립예술가를 위한 오픈마켓에서 책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잠재 고객이었던 서점을 넘어서 진짜 고객인 독자와 직접 연결되어 생산부터 판매까지 동시에 책임지는 비즈니스 모델이 출판에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출판의 가치사슬 전체를 다시 상상하라

아마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생태계가 곧 출판의 생태계는 아니다. 출판의 생태계와 책의 생태계는 서로 상당 부분 겹쳐 있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책의 생태계와 출판의 생태계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는 중이다.

출판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다면, 책의 생태계는 곧바로 이별을 선포할 것이다. 지금 출판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독자 입장에서 볼 때, 책은 자명하지만 출판은 자명하지 않다. 이런 시대의 출판은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가치사슬 전체를 다시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사슬 연결 링크

[box type=”note”]이 글은 2015년 11월 25일 출판 콘텐츠 마케팅 연구회 공개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필자)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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