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꺾정 44화 ‘대선특집’] 유성진(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 이화여대 교수)이 말하는 대법원 ‘선거 개입’ 논란을 우려하는 세 가지 이유. (⏳4분)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선거 시기 특히 대선은 유권자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비전을 제시할 후보를 선택하는 시기입니다. 선거의 주인공은 후보나 정당이 아니라 유권자이며, 유권자의 선택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선거가 거듭될수록 유권자의 알 권리와 목소리가 위축되고 있습니다.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하는 중.꺾.정.이 대선을 앞두고 더 자주 시민을 만납니다.

혼란의 일차적 책임 소재는 대법원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대통령 파면결정으로 일단락된 듯 보였던 우리 국정의 혼란은 이재명 후보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취지 파기환송 결정으로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대통령 파면 이후 헌법에 규정된 대로 조기대선 국면으로 전환되어 6월 3일 대선을 향한 선거일정이 진행되고 있던 정국은 또다시 극도의 불확실성에 빠지게 되었다.

선거에 나서는 각 정당의 후보들이 저마다의 경선규정에 따라 이미 결정되었고 곧 후보등록과 공식적인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지만 대법원 판결을 둘러싸고 정파적인 갈등이 다시 증폭되고 있다. 여야 막론하고 국정혼란 수습을 앞세우지만 선거일까지의 과정은 다양한 시나리오가 난무하는 속에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아직 최종적인 판단이 나오지 않았기에 이런 상황을 일각에서 제기하듯 ‘사법쿠데타’라고 정의하기는 이르지만, 현재의 혼란을 초래한 일차적인 책임이 대법원에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1. 공통체의 안정 대신 혼란과 불확실성 초래

우선 의도되었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사법부가 선거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함으로써 공동체 전체에 심각한 정치적 불확실성을 초래하였다. 삼권분립 하의 사법부는 사회적 혼란을 종식시킬 최종적인 권한과 책무를 부여받은 것이 사실이다. 다만 그러한 권한과 책무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판단과 결정에 불확실성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안정을 기할 경우에만 의미를 가진다.

더욱이 대법원은 최종적인 심판자로서 사안의 중대성에 대한 인식 속에 어떠한 결정이든 법리적인 해석을 넘어서 공동체 구성원 대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명백한 이유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이번 결정은 그 사안의 중대성에도 법리적 판단의 명백한 근거 제시 없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공적인 책임감을 갖고 공동체의 안정을 기해야 하는 사법부의 역할을 방기한 무책임한 결정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윤석열에 대한 헌재 판결이 상식에 바탕한 공동체의 동의와 사회적 안정을 가져왔다면, 이재명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대법원의 정치 개입’이라는 치명적이고 거대한 파문을 낳고 있다.

2.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권을 법률적으로 제약

둘째,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유권자 선택에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하는 선거과정에서 나타났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유권자가 스스로의 선호에 따라 ‘대표’를 선출하는 핵심적인 기제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의 중요한 사안에 대한 공동체 전체의 집합적인 결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사회의 중요한 논란에 대한 판단기제로서 갈등을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공동체의 안정을 기하는 것이 선거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이다.

이번 결정은 선거 국면을 극도의 불확실성 속으로 몰아넣었을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정치적인 선택권을 법률적으로 제약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미 대선 경쟁에 나설 정당의 후보가 결정된 상황에서 나온 대법원의 판결이 후보자격 상실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까닭에 유권자들은 선택에의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의 행위와 자질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일차적으로는 유권자의 몫이며, 공적인 결정은 무엇이든지 간에 유권자의 자율적인 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선거국면을 뒤흔드는 대법원의 판결은 이러한 대의민주주의의 지극히 상식적인 작동방식에 직접적인 균열을 가했다는 점에서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다.

3. 사회 현안 해법 모색해야 할 선거에 악영향

셋째,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치열한 선거경쟁 속에서 유권자들이 판단을 위한 정보를 수집, 평가해야 하는 선거과정 중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주권자의 참정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행위이다. 선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에 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정당과 후보가 이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평가를 근거로 유권자가 판단함으로써 정치공동체의 안정을 도모하는 일이다.

때문에 선거는 공동체가 처한 제(諸)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함께 정당과 후보가 이에 대한 정책의 우선순위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평가가 유권자 판단의 근거로 작용할 경우에만 제 기능을 한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선거에서 마땅히 제기되어야 할 다양한 사회 현안들의 논의를 이재명 후보에 대한 사법적인 판단으로 축소시켰다.

중요한 선거 이슈는 사장되고 한 쪽에서는 사법피해자로서의 억울함을, 다른 한 쪽에서는 법치의 존중에만 집중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경제불평등, 기후위기, 인공지능기능에 따른 산업구조재편과 노동문제 등과 같은 거시적인 현안과 함께 정치적 양극화의 완화, 트럼프발 세계질서의 재편에 따른 우리의 대응, 저출산 초고령 사회에 대한 해법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당면 과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 대법원의 결정이 선거에 미친 악영향은 더더욱 안타깝다.

정치의 바다에 자신을 내팽개친 대법원

그간 우리 사법부는 국가를 대표하는 엘리트 집단으로서 사회의 균형추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검찰이 법치의 집행자가 아닌 정치적인 도구로서 전락해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한 지 오래인 데 반해, 법원은 어려움 속에서도 신중한 결정과 합리적인 판단으로 여전히 신뢰도가 높은 공적 기관으로 역할을 해 왔다. 국가가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고 모두 합심하여 최선의 해법을 찾아야만 하는 현실에서 이번 사법부의 결정이 안타까운 이유이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적 기관의 실수는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공동체 전체 구성원에게 미친다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선거 과정에서 사법부의 판단과 결정은 더욱 그러하다. 스스로를 정치의 한가운데에 던져버린 사법부의 결정이 우려와 함께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이유이다.

📢 중꺾정 필자의 견해는 참여연대 공식입장이 아니며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원고는 대법원의 대선 개입 사태의 의미와 시민사회 대응 긴급좌담회 자료집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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