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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순의 온도] ‘따뜻한 마음'(溫)이 담긴 ‘칼날 같은 시선'(刀)으로 우리 공동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주요 판결의 의미를 정연순 변호사가 이야기합니다.


“쟤는 항상 맛이 가 있어.”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
“학습 훈련이 전혀 안 되어 있어.”
“공부시간에 책 넘기는 것도 안 배웠어.”
“저쪽에서 학교 다닌 거 맞아, 1, 2학년 다녔어.”
“1, 2학년 때 공부 안 하고 왔다갔다만 했나 봐.”

새 학기가 시작되고 약 두 달 동안. 교사 A는 자신이 담임을 맡은 3학년 학생 B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2018년 3월 14일부터 그해 5월 8일까지. 피해학생 B의 엄마 C는 B의 가방에 녹음기를 숨겨 등교시켰고, A 교사의 문제 발언을 녹음할 수 있었습니다.

교사 A는 총 16회에 걸쳐 아동의 정신 건강과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습니다. 그중 14회가 학대로 인정돼 A는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판결받았습니다. 하지만 A는 상고했고, 대법원은 위 정서적 학대행위가 담긴 녹음의 증거능력을 부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교사 A가 무죄라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했습니다.

대법원판결은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는 학부모의 무분별한 ‘가방 녹음기’ 신공에 경종을 울린 걸까요? 아니면 교실 속 약자인 저연령 피해아동이 자신을 방어할 유일한 방법마저 박탈한 판결일까요? 슬로우뉴스는 대법원판결의 의미를 정연순 변호사께 물었고, 정연순 변호사는 칼럼으로 답해왔습니다. (편집자)


초등학교 3학년 자녀가 교사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당하는 듯했다. 엄마는 아이에게 녹음기를 들려 보내 그 사실을 교사 몰래 녹음했다. 이 녹음은 증거능력이 있을까.

해당 녹음은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에서 금지하는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타인 간의 대화 녹음’에 해당하여 교사의 아동학대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1,2심에서는 그 녹음을 증거로 유죄로 판결했는데 그 때문에 파기환송되었다.

아이는 10살, 초등학교 3학년이고, 기소된 것은 교사의 총 16회의 정서적 학대행위였다(2심에서는 이 중 14회를 유죄로 인정했다).

“변호사 님, 비밀 녹음 허용 기준을 모르겠어요”


변호사로 상담할 때, 많은 분이 물어보는 것 중에 ‘비밀 녹음’이 있다. 어디선가 비밀 녹음하면 처벌된다고 들은 거 같기도 한데 또 어떤 때는 괜찮다고 하고, 영 기준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 통비법은 모든 비밀 녹음을 금지하는 게 아니다.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 녹음’을 금지한다.

의뢰인이 묻는다:

“제가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상대방 동의 없이 몰래 녹음하면 처벌되는 거지요?”

나는 답한다:

아니요, 그건 괜찮습니다. 타인 간, 즉 다른 사람들끼리의 대화를, 즉 나는 대화에 끼지 않았는데 비밀 녹음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대화 당사자라면 괜찮습니다.

의뢰인은 고개를 갸웃한다. 어쩌나, 변호사님이 그렇다니 그럴 수밖에.

왜 똑같이 비밀 녹음하였는데, 나랑 대화한 그 사람의 동의가 없는 것은 괜찮고(아주 예외적으로 안 괜찮다는 대법원판결이 있긴 하다만), 남들 간의 대화 녹음만 문제가 되나… 그와 관련한 깊은 논의는 그만두고, 문제가 된 위 대법원판결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한 이유를 살펴보자.

증거능력 인정받으려면 10살짜리 아동이 엄마와 ‘공모’하라?


교실에서 교사가 30명 학생들 앞에서 한 말이 공개되지 않은 대화인가 하는 쟁점은 일단 제쳐두자. 대법원 결론이 가능했던 것은 학대 피해자로 지목된 아이가 녹음한 게 아니라 그 부모가 녹음기를 들려 보내 녹음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따른 것이다. 여기서 고개가 갸웃해진다.

생각해 보자, 아이는 미성년자이다. 미성숙한 아동의 경우, 부모는 그 아이의 법률행위를 대리할 권한과 아이를 위해 일정한 권한(친권)을 행사할 자격을 법으로부터 받는다. 아동의 보호를 위해 부모는 적절한 행동을 취하고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법원 논리대로라면, 이 사건에서, 부모는 학생에게 적절한 보호조치를 할 수 있을까?

아이가 부모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또박또박 아동학대로 딱 꼬집어 정확하게 말한다. 그다음에 부모와 함께 의논해서 ‘자, 별다르게 증거가 없으니 어떻게 할까요?’ 한다. 그러니까 부모가 ‘녹음기를 써 볼까?’ 라고 화답한다. 아이가 ‘그럼 제가 녹음기를 가져다가 가방 밑에 숨겨 오늘 선생님이 또 그런 말로 저를 야단치시면 녹음하겠습니다’ 알리고 녹음기를 들고 학교로 간다.

이 판결 이후 학부모의 ‘가방 녹음기’는 현실(대법원 판례)에 적응해서 아이-학부모의 공모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

즉, 아이와 부모가 공모하는 것이다. 별개의 인격체로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교사의 폭언을 녹음했다면, 그건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니라 “타인과의” 대화를 녹음한 게 되므로 증거능력이 있어서 유죄 증거로 삼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피식’ 웃을 것이다. ‘아니, 10살짜리 아이가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말도 안 돼요!’ 그렇다. 그게 가능하지 않다면, 아이는 어떤 식으로 자신이 당한 학대에 대해 (보호자의 관여 없이)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일까.

장애아동, 노조활동가, 직장내성희롱 피해자라면…


이게 겨우 말장난일 뿐일까? 10살짜리 아동에 비견되는 다른 사례들이 많다. 모두 제한된 공간에서 사실상 같이 있는 사람들이 묵인하거나 또는 두려움에 빠져 침묵하는 가운데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지적장애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 노조파괴 공작을 벌이는 공장 라인, 성적 희롱과 갑질이 상습적으로 난무하여 모두가 위축되어 있는 직장이나 조직 같은 곳에서, 피해자들과 조력자들은 그 증거를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녹음기를 들기도 한다.

물론, 그로 인한 처벌을 감수하는 것은 별개의 몫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와 같이 해서 입수한 증거를, 권력기관이 적법절차를 어기고 수집하는 위법수집증거와 동일시하여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것은 좀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대법원판결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데 기여하는 건 아닌지…

아동보호 공익 언급 않은 대법원… 무력한 피해자 도울 수 있을까


몇 년 전 대구지방법원 항소부는, 10개월짜리 아이를 맡은 위탁 보모가 아이를 학대한 사건에서 역시 부모가 비밀리에 녹음한 것에 관해 “ 피고인의 업무 공간에서 발생하는 피고인의 목소리 등을 몰래 녹음하였다고 하여 이로 인한 피고인의 인격적 이익의 침해 정도가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실체적 진실발견이라는 공익적 요구와 비교할 때 사회 통념상 허용 한도를 초과할 정도의 현저한 침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하였다.

이번 사건에서 원심(2심) 재판부 역시 “피해아동과 피해아동의 부모는 (법인격을 동일시해도 될 정도로) 밀접한 관련이 있고, 아동범죄라는 사회적 해악이 더 큰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이유를 아동 가방에 넣은 녹음기로 수집한 녹음을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법원은 증거로 사용해야 할 공익적 필요성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교실에서 30명의 학생이 듣고 있다고 해서 공개된 대화라고 할 수 없으며 아이와 부모는 별개의 인격체라고만 판단했다.

사실 그간 대법원이 위법하게 수집된 자료 중 어떤 것을 증거로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공익적 필요성을 전혀 따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생활의 보호라는 사익과 실체적 진실발견이라는 공익을 저울질한다는 기본 원칙을 여러 차례 표명했다. 다만 그 세부적인 저울질 기준이 뭔지는 뚜렷하게 밝히지 않아 다들 알 수 없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가타부타 말없이 그저 아동과 부모가 별개의 인격체라는 이유를 대면서 아이에게 녹음기를 들려 보낸 경우에는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결 내렸다. 그로 인해 아동학대 사건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무력한 상태에서 이를 돕고자 하는 제3자의 녹음 행위는 단지 위법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의미도 실효도 없어지게 되는 건 않을는지 걱정된다.

정서적 학대?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됐으니 이제 알아서 막으렴.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1항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


대법원판결

대법원 2024. 1. 11. 선고 2020도1538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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