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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 속의 대중매체는 제4부라고 호칭될 정도로 그 역할이 중요하다. 대중매체가 제대로 역할을 할 경우 민주주의를 보호,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지만 그 역기능도 심각하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대중매체가 ‘기레기’ 비판을 받는 것은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 지표로 보면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해 사회 여러 분야의 민주주의 의식화가 진행되면서 그 수위가 높아지는데 대중매체는 평균치를 밑도는 것은 큰 문제다. 대중매체가 안고 있는 큰 병폐의 하나는 출입처인 검찰 등 공공기관, 대기업과의 부적절한 공생관계다. 이른바 받아쓰기 보도 행태가 심화하면서 그에 따른 폐해도 심각하다.

한미동맹의 틀에 갇혀 방향 감각마저 상실한 듯


한국 대중매체의 받아쓰기 관행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국방 안보와 관련해 그 정도가 심각하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희박한 실정이다. 국가보안법과 한미동맹의 틀에 갇혀 방향감각조차 상실한 듯한 감을 준다. 이른바 보수, 진보 모두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한국이 미국과 맺은 조약, 협정, 합의 등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통해 동북아에서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는 전략적 이익을 보장해 주는 데 기여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공직자들은 미국에 보조를 맞추는 쪽으로 기여했다. 한국 역대 정권이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 퍼주기식으로 군사주권을 넘겨준 것이다.

이승만은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어 미군의 한국 주둔을 권리(right)로 인정하고 박정희는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해 기존에 유엔사가 맡고 있던 한미연합군의 작전통제권을 연합사로 넘겼다. 유엔사는 유엔기구가 아닌 미국 정부 기관이라는 성격 때문에 그 존립 적절성을 놓고 유엔에서 문제가 되자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1976년 1월 1일 자로 유엔사를 해체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1923. 5. 27, – 2023. 11. 29, ) 사진은 흑백은 1970년대 중반 국무장관 시절 모습. 퍼블릭 도메인, 컬러 사진은 2016년 당시 모습. 위키미디어 공용.
1987년 팀 스피리트 87 군사훈련 중인 한미연합작전지휘소와 미군부대를 시찰하고 훈련 상황을 보고받는 전두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증자 정태원.

전두환은 정권을 찬탈해 대통령에 취임한 뒤 미국이 1981년 정통성을 인정해 준 대가로 팀스피릿 훈련(1976년부터 1993년까지 대개 일 년에 한번 실시하던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정례화해 북한에 대한 핵 공격이 포함된 대규모 훈련 실시를 가능케 했다. 윤석열은 유엔사 활성화에 적극 기여하면서 한국군이 그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에 반대하지 않으면서 북한을 미국의 세계 전략 속에 포함해 북한에 대한 압박을 한층 강화토록 했다.

‘설마 전쟁 나겠어?’ 언론의 불감증


한반도 비핵화는 소련 붕괴 이후 남북한 모두 핵무기로부터 자유로워지자는 목적으로 추진되었지만, 그것이 북한 비핵화로 좁혀졌다. 결국 북한은 남한은 물론 미국을 위협하는 핵 공격력을 갖춘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등장했다. 이렇게 된 것은 한미 두 나라 지배층이 ‘북한은 옛 소련처럼 붕괴하고 말 것이다’라는 오판에 매달리면서 북한에 대한 제재, 봉쇄에만 주로 매달린 탓이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남북관계는 지난 수년 동안 급속히 악화했는데 그 이유는 한미와 북한이 서로를 자극하는 군사적 행동을 지속하면서 도발과 방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는 악순환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주력하고 남한은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받기 위해 한미관계를 강화하면서 한일군사 관계도 보강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2022년 가을, 미국이 북한을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의 대상에 포함하면서 한국은 미국의 핵심적인 국방 시스템의 보호를 받게 되었지만, 군사적 자주권은 위축되었다. 북한이 남한을 통일의 대상이 아닌 주적으로 삼고 핵 공격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로 바뀐 원인의 하나는 한미군사 관계의 강화로 추정된다. 한반도 정세가 전쟁 위기감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치닫지만, 매체는 ‘설마 전쟁 나겠어?’라는 체질을 버리지 못하고 국방 안보 당국의 보도자료 받아쓰기를 반복하고 있다.

설마?

30년째 출구 찾지 못한 한반도 비핵화


1990년대부터 제기된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30여 년째 출구를 찾지 못하고 결국 남북한이 핵무기로 공멸할지 모른다는 지구촌 차원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은 자체 개발한 핵무기로, 남한은 미국 핵무기로 서로를 공격하겠다고 으르렁 거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남북은 상대방이 먼저 도발할 경우라는 단서를 공통적으로 달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현재 남북은 모든 관계가 단절된 상태라서 대중매체의 경우 북한에 대한 직접 취재나 보도는 불가능하다. 단지 남한 정부에 대해서만 제4부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한계 속에서 대중매체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할 때 ‘남한 정치는 국방보다 상위개념’이라는 점에 입각해 4부의 역할을 할 수 있고 그래야 마땅하다 할 것이다.

한국의 법체계로 보면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이고 정부는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 증진에 노력할 책무가 있다. 북한이 도발하면 몇십 배로 되갚아주겠다고 대통령이 언급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충분치 못하다.

‘갑을’ 한미 군사협정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대중매체는 제4부의 입장에서 북한이 남한에 대해 왜 핵무기로 적대시하는지 그 원인을 살피고 북한이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정부가 견인해 내도록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 정상화를 위한 집단지성 발휘를 저지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개폐와 갑·을의 형국인 한미관계를 유엔 회원국에 걸맞게 정상화되도록 공론화에 앞장서야 한다. 한국이 안고 있는 국방자주권 문제는 필리핀, 일본이 미국과 맺고 있는 군사협정 등과 비교해 보도하면 국민 모두에게 자명해질 것이다.


민언련칼럼

‘민언련칼럼’은 시민사회·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글입니다. 시민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의 필자는 고승우(80년5월민주화투쟁언론인회 상임대표·언론사회학 박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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