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중꺾정’ 칼럼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는 선거제 개편 논의로 한창입니다. 선거제를 어떻게 바꿀지도 문제지만, 국회가 결단해야 할 정치개혁 과제들도 산적해있습니다. 선거제 개편이 아닌 개혁이 되기 위해, 나아가 정치개혁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칼럼을 통해 논하고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오늘 중꺾정 칼럼 필자는 박영득(충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입니다.
목차.
국회는 여러 기관들 가운데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기관이다.
국회 신뢰 고작 24%
한국행정연구원이 펴낸 2022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국회는 고작 24.1%의 신뢰도를 받았다. 새로울 것은 없다. 국회는 늘 불신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2021년도 조사에비해서도 약 10%의 신뢰도 하락이 나타난 것은 지금의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국회에 대한 낮은 신뢰에 대해서 국회의원을 비롯한 여러 국회 구성원은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은 좋은 기삿거리가 되지 못하므로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질 일이 거의 없는 반면, 국회에서 일어난 일이 보도되는 경우는 대부분 부정적인 일들 뿐이기에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악평이 다소 과장될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미 낮은 국회에 대한 신뢰가 대폭 하락한 것은 우리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들이 넘쳐남에도 중요한 문제들을 논쟁거리로 삼지 못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어놓지도 못하며,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특정 정치인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특정 정치인을 지키는 일을 더 중요시하는 국회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국회 개혁, 의원 특권 ‘내려놓기’
국회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국회에 대해서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는 분명하다. 국회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듯 국회를 개혁하자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가장 흔한 것은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자는 말이다. 정당이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면 자신의 뼈와 살을 내어 나라를 살리는 위대한 결단이라도 한 듯 심각한 표정으로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자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말을 꺼내놓고 지키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처방을 반복적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 더 문제다. 국회의 위기는 국회의원들의 ‘부당한’ 특권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공적 권한을 써야할 곳에 쓰지 않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서 공동체의 문제는 뒤로 제쳐놓고 대통령이든 당대표든 자기가 속한 정치세력의 지도자를 지키는데 온 힘을 쏟고 있는데 어떻게 시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
특권 축소 간판 메뉴, 의원 수 줄이기!?
국회의원의 정원 축소도 이른바 ‘특권’을 내려놓는 개혁조치로 자주 언급된다. 최근에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50석으로 국회의원 정수를 감축하자고 주장했다. 워낙 흔한 말이어서 이것을 꼭집어 한동훈 위원장의 고유한 주장이라 국한할 수는 없지만 이런류의 국회개혁안은 더 문제다.
다른 종류의 ‘내려놓기’ 개혁안은 지키지 않아서 문제이거나 별로 핵심적이지도 않은 문제만 지적하는 한심한 개혁안이어서 문제라면 국회의원 정원 감축은 마치 국회를 개선할 것처럼 보이고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는 듯 여겨지지만 실질적으로는 권력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극소수를 위한 정치를 만들고 국회의원의 권력을 더 크게 만드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더 문제인 것이다.
의원 수 줄이면 특권은 오히려 커진다
국회의원 정원 감축은 국회의원들의 힘을 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강화한다. 국회의원의 가장 큰 특권은 희소성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5천만 시민 가운데 국회의원은 단 300명뿐이다. 국회는 입법권을 행사하는 입법기관이므로 개별 국회의원들이 가진 권력의 본질은 입법권력이고 개별 국회의원들은 각자 동등한 크기의 입법권을 나누어 행사한다.
300명의 국회의원이 있다면 국회의원 한 명은 국가의 입법권력 중 300분의 1을 가지는 것이고 국회의원이 100명이라면 국가 입법권력의 100분의 1을 가지는 것이다. 이제 간단한 산수다. 한동훈 위원장을 비롯하여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는게 국회 개혁안이라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 묻는다.
300분의 1과 100분의 1 중 무엇이 더 큰가?
의원 100명과 500명, 어느 쪽이 기득권에게 더 손쉬울까?
국회의원이 300명인 나라에서 어떤 법안에 이해관계가 있어 국회의원을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151명의 국회의원을 자신이 원하는 법안에 찬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100명인 세상에서는 단 51명만 내 편으로 만들면 된다. 국회의원이 500명이라면 251명의 국회의원을 내가 원하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게 만들어야 한다.
어느 편이 더 쉬운가? 어느 편이 권력에 대한 더 큰 접근성을 가진자들에게 더 유리한가? 국회의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도 답은 같다.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100명 중의 한 명이 되는 것은 300명 중 한 명이 되는 것보다 국회의원에게 더 큰 특권을 제공한다.
300명 중의 한 명인 국회의원보다 100명 중의 한 명인 국회의원 앞에 훨씬 많은 ‘민원인’들이 몰려들 것이고 그만큼 100명 중의 한 명인 국회의원의 마음을 사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국회의원을 줄이면 국회의 크기는 줄어들지 몰라도 개별 국회의원들의 특권은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무지거나 기만이거나… 의원 특권은 ‘희소성’에서 나온다
국회의원을 줄이면 돈도 덜 들고, 더 좋은 정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권력을 모르고 있거나 무엇이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권력인지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의원 정수를 축소하는 것은 이런 면에서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는 것이다. 정수를 축소하자는 주장은 마치 작고 비용효율적인 정치를 만들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평범한 시민들이 입법권력에 접근할 기회를 줄이고 입법권을 오히려 소수에게 집중시켜 의원들의 특권을 강화하며 돈과 권력에 대한 접근성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만이 입법에 더 쉽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