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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IA가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발칵 뒤집혔다. 이문희(당시 외교 비서관)와 김성한(당시 국가안보실장)의 대화 내용이 공개됐다. 자나깨나 한미 동맹을 강조해 왔던 윤석열(대통령)은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동맹국 도청하는 미국 CIA과 침묵하는 윤석열

이 이슈가 중요한 이유는

  • 미국 CIA가 도청으로 얻은 정보일 가능성이 크다. 100 페이지 분량이고, 디스코드에서 떠돌던 문서를 뉴욕타임스가 확보해서 보도했다.
  • 국민 입장에서는 정말 모욕적인 상황인데 대통령실은 침묵하고 있다. 민감한 대화 내용이 탈탈 털렸고, 지금도 털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정부 차원에서 항의 성명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 2021년에는 미국이 독일과 프랑스 정부를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 있다. 앙겔라 메르켈(당시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프랑스 대통령) 등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거세게 비판하면서 해명을 요구했고 버락 오바마(당시 미국 대통령)는 사과와 함께 “동맹은 감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 그런데 한국은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것인가. 이제 이 사건은 도청의 문제에서 외교 문제와 국민들의 자존심의 문제로 확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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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화 내용을 보면,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한 걸 두고 이문희가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말을 했고, 김성한이 폴란드에 판매해서 들어가게 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 도청이 아니면 확보할 수 없는 대화 내용이다. 그야말로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들여다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 한국일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거나 부정확한 수준으로 보인다”는 익명의 여권 핵심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워딩은 다를 수 있지만, 실제로 전혀 없었던 말은 아니라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 김태효(안보실 차장)는 “공개된 정보 상당수가 위조됐다는데 한미 양국의 평가가 일치한다”고 밝혔다.

서 있는 자리에 따라 풍경이 다르다

  • 한겨레는 1면 머릿기사로 “항의도 않는 대통령실”이라는 제목을 뽑았는데 조선일보는 “정보전에 피아 없어”라는 모호한 제목을 내걸었다.
  • 조선일보는 “안보 문제는 초당적 사안”이라면서 “정쟁화하거나 대통령을 비방하는 소재로 삼으면 고스란히 국민 피해로 이어진다”는 익명의 전직 장관의 말을 소개했다.
  • 조선일보는 미국의 심기를 거스를까 조심하는 분위기다. “미국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우리의 방첩 역량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거나 “여야가 성숙한 자세로 사태 해결에 힘을 모아야 한다”, “어떻게 된 사정인지 충분히 들어봐야 한다”는 등의 납작 엎드린 모양새다. 윤석열에게 주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들통난 것만 여러 번이다

  • 1976년 코리아게이트 사건은 워싱턴포스트 보도로 알려졌다.
  • 박정희가 로비스트를 동원해 미국 국회의원 등을 매수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출처가 CIA 도청 파일이었다. 뉴욕타임스가 유리창 떨림을 분석해 대화 내용을 도청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 조선일보가 지적했듯이 모든 나라가 다른 나라들을 대상으로 첩보 활동을 한다. “하지 않는다면 무능이거나 바보일 뿐”이라는 지적도 맞다. 그러나 당하고도 가만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이 공개한 NSA 파일에도 한국 대사관을 도청했다는 의혹이 담겨 있었지만, 사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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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출된 문건의 의미가 뭘까. 미국이 한국 정부에 전쟁에 뛰어들라고 요청했고 한국 정부는 직접적인 개입은 곤란하다며 난처해 하는 정황이 담겼다.
  • 전체 문건을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미국 정부가 이 문건의 진위 여부에 명확하게 답을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러시아군 사망자가 1만6000~1만 7500명, 우크라이나군 사망자가 7만1500명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도 미국 정부 공식 발표와 크게 차이가 난다. 지금 공개된 문건이 일부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러시아가 배후라는 추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조작됐을 가능성? 아직 모른다. 미국 정부가 유출 경로를 찾고 있으니 조만간 결론이 나올 것이다. 드러난 이상 적당히 덮고 가긴 어렵다.
  • 한국도 발칵 뒤집혔지만 미국 정보 당국의 거대한 구멍이 드러난 상황이다. 미국 정부는 한국 상황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좀 더 들어가 보면

  • 한국은 대통령실이 털렸지만, 미국은 국방부가 털렸다. 도청으로 얻은 자료를 다시 털린 것이다.
  • 한국일보가 인용한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를 보면 미국 정부도 기밀 문서가 유출된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보안 허가가 있는 누군가가 유출했거나 해킹 당했을 수도 있다.
  • 유출된 문서는 A4 용지에 출력된 파일을 촬영한 것인데 두 번 접은 흔적도 있다.
  •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문건이라 러시아가 배후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 정부가 인정한 것보다 훨씬 더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미국 정부도 당혹스러워 하는 상황이다. 백악관 안보특파원 데이빗 생어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악몽”이라고 표현했다.
  • 중국의 관영 신문 환구시보가 이런 사설을 냈다. “‘밝은 곳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발견되면 어두운 곳엔 천 마리가 있다’는 속담이 있다. (감청 의혹은) 미국의 낮은 도덕성을 보여줄 뿐 아니라 미국과 동맹국의 교류·협력에 영향을 끼칠 사건이다

또 다른 쟁점이 있다

  • 용산으로 옮기지 않았다면 도청을 안 당했을까. 지난해 5월 국회에서도 제기됐던 문제다. 국가정보원 출신 김병기(민주당 의원)가 “이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 보안이 완벽하게 된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 실제로 미국이 모스크바에 대사관 건물을 지을 때 15년이 걸렸는데 보안 설비 때문이었다는 게 김병기의 주장이다. 공사 과정에서 기상천외한 도청 장치가 끊임없이 발견됐었기 때문.
  • 대통령실은 경호처에서 인부들을 따라다니면서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할 게 없다고 답변했지만, 결국 어디선가 뚫린 것이다.
  • 청와대라면 안전했을까.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청와대보다 대통령실이 더 안전하다”는 대통령실의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

핵심은

  • “동맹은 도청하지 않는다”는 약속은 애초에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 한미 동맹 역시 철저하게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다. 동맹인데도 도청하는 것이고 강력하게 항의를 한다고 해서 동맹이 흔들릴 것도 없다. 환상도 실망도 없다. 이런 것이 한미 동맹의 현실이다.

결론

  • 윤석열이 바이든의 심기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걸 모든 국민이 안다.
  • 한국 국민들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행위고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 윤석열이 이달 말 미국을 방문한다. 도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외교적 성과가 있다고 한들 빛이 바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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