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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콜드케이스] 미디어를 통해 반영·증폭·구성되는 문제적 현상과 사고방식을 ‘캡콜드’ 김낙호 교수가 분석합니다. 이번 케이스는 MBTI(두둥!).

“MBTI의 핵심은 내 성격을 내가 안다는 게 아니에요. 내가 세상 모든 사람을 MBTI 하나로 다 알 수 있다고 생각(착각)하는 거죠.” (캡콜드)

MBTI, 더 말이 필요한가.
그 열풍에 관해 캡콜드(김낙호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에게 물었다.

캡:콜드케이스 [ep.09]

MBTI?
30점짜리 심리테스트, 100점짜리 예능 소품

질문, 정리: 민노

알림과 안내

– 이 글은 2024년 5월 3일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맥락화하거나 소제목으로 표시하고 캡콜드(김낙호 교수)의 답변을 중심으로 정리합니다.

MBTI 개요


MBTI 누가 만들었나.

MBTI는 ‘마이어스-브리그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준말이다. 즉, 이 지표는 칼 융 심리학에 심취한 작가 캐서린 브릭스와 그 딸이자 역시 작가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함께 개발했다.

MBTI를 창조한 모녀. 캐서린 쿡 브릭스(Katharine Cook Briggs, 왼쪽)와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Isabel Briggs Myers)는 칼 융의 1921년 책 [심리 유형] (Psychological Types)이라는 책에서 MBTI를 추론했다. 사진은 1900년대 초반 사진으로 추정. 해상도가 많이 낮죠? 심령사진 아닙니다(^^).

참고로, 최초의 MBTI 매뉴얼은 1962년에 출판됐다. 그 이후 MBTI는 몇몇 대학교와 교수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1980년 5월 마이어스가 사망한 후 메리 맥카울리는 MBTI 메뉴얼을 추가 업데이트했고, 1985년 두 번째 버전을 1998년에 세 번째 판을 내놨다.

MBTI는 심리테스트인가

심리테스트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지만,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심리테스트는 아니다. 무엇보다 MBTI는 ‘내가 바라보는/생각하는 내 모습’이지 객관적인 내 모습은 전혀 아니고 객관적으로 관찰된 내 모습도 아니다.

MBTI는 자가 설문만으로 이뤄진다. 자가 테스트다. 내 성격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의 성격’이고, 내가 나를 관찰하는 것인데, 그게 완전히 틀렸을 수 있다. 거기에 육체적인 컨디션도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내가 지금 온종일 일하고 녹초가 된 상태라면, 그런 상태에서는 우울하고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상태의 내가 반영되겠지.

제대로 된 심리테스트에서는 ‘자가 테스트’만 하고 끝나지 않는다. 전문성을 가진 제3자가 관찰한다. 가령 일반적으로 대기업에서 사람 뽑을 때 심리 평가를 할 때도 관찰이라는 요소를 넣는데, 지금도 그런 기조가 변했을 것 같지 않다.

범주화


4가지 척도와 16가지 유형

애초에 범주화한다는 게 ‘어딘가에 끼워맞춘다’는 거다. 그렇게 끼워맞추려면 그 범주가 그럴 듯해야 한다. MBTI의 네 개 범주(척도)는 다음과 같다.

  1. 에너지를 얻는 방향성(태도): 외부에서 얻는 외향(Extraversion)과 내부에서 얻는 내향(Introversion)
  2. 정보를 얻는 방식(인식 기능): 현실지향적인 감각(Sensing)과 미래지향적인 직관(Intuition)
  3.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판단 기능): 논리적 객관적 사고(Thinking)와 관계지향적 주관적 감정(Feeling)
  4. 외부에 대처하는 양식(태도): 통제 조정의 계획적 판단(Judging)과 개방성과 적응적 인식(Perceiving)

이들 4개 척도로 구별되는 선호 지표의 조합은 총 16가지 유형으로 최종 산출된다.

여기서 착각하기 쉬운 건 실제로는 16개 범주에 관해 각각 보는 게 아니라 4개의 척도만으로 판단해서 분류하는 것이고, 각 범주는 데이터로 산출했다기보다 그럴듯한 포괄적 세계관에 끼워맞춘 게 MBTI다. 한때, 네 가지 유형뿐이었던 ‘혈액형 심리학’도 많이들 좋아했다는 걸 명심하자. 혈액형 심리학은 직관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았는데도 인기였다. 그런데 16가지 유형이나 있다? 거기에 성장함에 따라 조금씩 바뀔 수도 있다? 그러면 뭔가 굉장히 과학적인 것처럼 보인다(웃음).

결국은 범주화가 가장 강력한 대중 코드였던 거다. 다시 강조하지만, MBTI는 현대적 심리평가와는 상관이 없다. 더 보편적으로 근거를 인정받는 성격 테스트로는 빅5라는 게 존재하는데, 안타깝게도 결과가 다섯 가지 척도에 관한 ‘점수’로 제시되기 때문에 무척 재미가 없다. 사실 태고적에 포털사이트 야후코리아가 웹진을 만들며 빅5를 대중적으로 붐업하려고 노력했던 때도 있었다. 그때조차 재미를 위해 범주화를 시도하긴 했지만 MBTI같이 선명한 대립항 느낌이 없어서 잘되지는 않았다.

범주화 테스트가 추구하는 것

이런 범주화 테스트의 가장 큰 매력은 나 자신을 알 수 있다는 게 있는 게 아니다. 그것도 궁금하긴 하겠지만, 범주화 테스트의 본질은 세상 모든 사람의 성격을 MBTI 하나로 알 수 있다는 효능감을 준달까, 만족감을 준달까…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내가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내 앞에 있는 처음 보는 누군가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MBTI만 알면 나는 대충 그 사람을 알 수 있어! 그런 착각…. 그래서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아는 것 이상으로 세상 사람들을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30점짜리 심리테스트


굳이 점수 매겨본다면?

심리테스트를 10점으로 설정했을 때 혈액형 심리학은 0점이다. MBTI는 한 3점~4점? 결과를 직관적으로 이해시킨다는 대중성으로는 아주 뛰어나다.

성찰? 감각적 만족감!

3점~4점의 효용에 관해선 뭐랄까 자기만족감이랄까. 임상적인 수준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욕구와 성향의 심리를 알고 싶을 테니까. 아, ‘저 사람은 INTJ 타입이라서 저런 행동을 하는구나’, ‘저 사람은 ESFP형이라 저런 행동을 하는군!’ 그런 자기만족을 준다는 거다.

그래서 MBTI를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은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게, 우선 그런 유형화가 자신에 관해 뭔가를 많이 말해주지 않는다. 그건 그야말로 아주 거친 유형일 뿐이니까. 그 대신에 자신도 그리고 타인도 어떤 유형으로 한정해서 명료하게 일반화한다는 점에서는 아주 큰 감각적인 만족감을 준다.

사회적 역할? 글쎄…

그런 의미에서 MBTI가 사회적인 성찰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회의적이다. 좀 더 진지하게 MBTI의 사회적 역할에 관해서 생각해보면, ‘꽝’이다. 하지만…

MBTI, 오용을 주의합시다

앞서 MBTI는 그 유형만으로 굉장히 많은 나/타인을 안다는 착각을 줄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게 좀 있다가 이야기할 장점도 있지만, 좀 위험한 착각이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의 MBTI를 알면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부닥쳤을 때 어떻게 조언하면 되겠구나 하고, 모두 안다고 착각한단 말이다. 그런 착각에 따라 행동하면 당연히 부작용이 생기고 오히려 충돌과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MBTI로 정신과의사 흉내를 내선 안 된다.

제대로 된 기업은 MBTI를 활용하지 않는다

기업 인사팀들은 예전부터 성격 유형,직무적성검사들을 연구했다. 삼성 같은 대기업은 물론이고. 그런데 그걸 MBTI로 대체할 수 있을까? 그걸 대체하려는 기업이 제대로 된 기업일까. 제대로 된 기업은 MBTI를 활용할 리가 없다.

가령 중앙일보의 기사 ‘채용 때 MBTI 쓴다고? … 기업 “인재를 어떻게 놀잇거리로 뽑나”(2022.07.19.)를 보면 “일부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구직자의 MBTI를 요구하고, 구인 광고에 특정 MBTI를 선호하거나 배제한다는 문구가 등장”했다고 기사를 시작하지만, 곧이어 “기업 인사담당자는 ‘인터넷 놀잇거리로 어떻게 인재를 뽑을 수 있느냐’며 일축한다”고 지적한다.

MBTI가 유행하니까 어떤 회사들이 주목받으려고 구인 광고에 참고로 활용하는 정도로 봐야지, MBTI를 진지하게 채용에 고려한다면 그건 정신 나간 회사다.

AI 면접의 문제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정확한 성격 파악 이야기할 때 요즘 나오는 AI 면접 개념은, 의례적으로 해야 하는 질문들을 AI로 대체하자는 이야기다. 가령 임원들이 하는 최종 면접을 AI로 대체하지는 않는다. 그건 무엇보다 기업이라는 조직 안에서 소수의 인간(임원급)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 행사의 과정이니까. 그걸 포기할 조직이나 인간은 없다.

1차 거르기 면접은 AI로 걸러도 된다는 발상이고, 고객 대응에도 AI를 쓰기 시작했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고 고용을 대체하는 문제는 별론으로 그 내용 자체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만 퀄리티의 문제로 본다. 기업도 좋은 인재를 잘 뽑고 싶을 거라서 문제를 줄이는 방식으로 진화할 걸로 본다.

100점짜리 예능 소품


예능 도구로선? 훌륭하지!

하지만 예능 도구로서 엔터테인먼트 소품으로서는 아주 훌륭하다. 일단 모든 사람들을 MBTI라는 단일한 ‘툴’로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유형화가 많은 에너지를 덜 낭비하게 해준다. 나를 소개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주절주절할 필요가 없이 MBTI를 통해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그런 장점이 분명히 있다.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건 아주 피곤한 일이다. 그런데 INFJ입니다! 라고 하면 얼마나 명쾌하고 경제적인가. 그리고 그게 거친 유형화를 통해 설명한다고 해도 원래 설명하려는 것의 50~60% 정도는 설명할 수 있다. 상대방도 그 절반 정도에서 한 40~50%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니까 최종 점수는 50점의 절반 정도라서 25점~30점에 불과하기는 하지만(웃음).

예능 토크에서도 써먹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빠르게 낯선 사람들끼리 라포(rapport;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상호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어디 있겠나. 혈액형 심리학은 아무리 맞는 것 같더라는 너스레를 떨어도, 뇌세포들의 연결망이 혈액의 응고 패턴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걸 모두 안다. 하지만 MBTI는 그래도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MBTI로 ‘나’ 못찾습니다. 확신할 수 있습니다… 뭐 찾아보시든가… 물론 예능 소재로 하신다면야 맘껏 하시죠!

기본 범주 곱하기: 과학적(으로 보인다)!

이건 체계적 범주화가 가지고 있는 재밌는 속성인데, 사상의학(이제마가 주장한 한의학 체계)이 과학적으로 보이는 건 ‘태소'(2) 곱하기 ‘음양(2)’이라는 “체계적인” 틀거리 때문이다. 그렇게 두 개의 척도가 태양, 태음, 소양, 소음으로 네 유형이 나뉘면 뭔가 그럴듯해 보인다.

MBTI도 4개의 척도 곱하기 각각 2개의 범주가 있어서 2×2×2×2로 16개 유형이 있다. 여기에서 핵심은 ‘곱하기’다. 뚜렷한 범주들이 결합해서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냈다는 것이 핵심이다. 가령 별자리는 12개로 MBTI 16개보다는 그리 많이 적은 수도 아니지만 훨씬 비과학적인 느낌인데, 여기에는 곱하기가 없어서 체계로서 덜 세련되기 때문이다.

곱하기, 그러니까 조합이 생기면 과학적 체계와는 상관없어도 그렇게 보이기는 한다. 일단은 체계적인 프로세스가 있다고 느끼게 하니까. 하물며 사이비 종교나 음모론을 만들 때도 설득력을 위해 이와 비슷한 접근으로 체계성을 갖추는 경우가 많다.

정치성향 테스트


전형적으로 여러 척도를 좀 더 정교하게 설계해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짚어내는 테스트인데, MBTI의 틀에 끼워 넣은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곱하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런 것의 원조 격인 정치나침반 테스트는 문화적인 진보와 보수(2) 곱하기 경제적인 진보와 보수(2)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접근을 오늘날 한국에서는, MBTI가 유행하니까 아예 척도를 4개로 늘려서 해보는 쪽으로 맞춰서 만들었다고 본다.

2024 정치성향테스트. 중앙플러스.

물론 정치적인 성향과 정책적 결정은 당연히 이것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고 복합적인 변인들이 작용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만한 변인을 4개로 늘린 것만 해도 충분히 성과로 본다. 그렇게 MBTI의 유행이 좀 더 많은 변인들에 대한 대중적인 접점을 늘린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동시에 너무 MBTI스럽다는 한계를 가지는데, 정치 성향을 성격과 등치시켰다는 점이다. 정책적 평가와 판단, 선택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작용하는 것이지, 그저 성격 유형의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된 정치 성향 테스트는 존재하는가

이게 생각보다 아주 까다로운 질문이다. 개별 정책에 관한 테스트는 존재하지만, 어떤 정책에 관한 판단은 시공간에 따라 달리 평가된다. 과거에는 A라는 정책이 진보적이었지만, 지금은 A라는 정책이 보수적일 수도 있다. 개별 정책에 관해 측정할 수는 있어도, 변치 않는 이데올로기로 만들기는 어려운 이유다.

테스트는 일반적이어야 하는데, 정책을 일반화하기 어렵고, 또 그 정치적인 성향도 일반화한 유형으로 만드는 건 무지하게 어렵다. 물론 결국 일반화하기는 하긴 해야 하는데, 유동적인 속성들이 많아서 어렵다. 점수화 역시도, 그런 시도가 있었지만, 몹시 어렵다.

긍정적인 측면은 정치적 이념이라는 게 여러 척도로 합쳐진 거라는 걸, 그런 측면을 보여줬다는 점은 평가한다. 다만 앞서도 말했지만, 그걸 참여자에게 성격 검사인 양 잘못 인식하게 할 수 있다.

총선에 관한 관심 환기 차원에서는?

중앙일보 테스트는 테스트를 해도 내 지역구의 누군가와 이 테스트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설명해 주지 않는다. 내 정치 성향과 비슷한 사람으로 일테면 A.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나왔는데 혹은 B.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나왔는데, 그게 내 지역구에서 1번을 뽑아야 하는 건지 2번을 뽑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3번 4번을 뽑아야 하는 건지 알려주지 않는다. 참고가 되지 못한다. 일말의 설명력조차 없다.

한편으로 우리나라 선거 성격이 정책 선거보다는 적대적인 응징과 복수의 심판 선거 측면이 강해서, 거시적인 한계가 있다. 내가 나의 정책적 지향을 안다고 해봤자 혹은 내가 나의 정치 성향을 안다고 해봤자, 선거 자체가 정책이나 정치 노선과는 상관없이 1번이 싫다, 2번이 싫다. 이런 응보의 성격으로 선거와 정치적 선택이 흘러가니 내가 나를 알아봤자 현실 정치와 연결할 접점을 마련하기 어렵다.

증오의 정치가 뿌리박힌 사회에서 정책에 따른 판단으로 투표가 이뤄질 리 만무하다.

MBTI 열풍


열풍이 이렇게 오래 갈 거로 예상했나

당연히 예상하지는 못했다. 한편, 이 정도의 범주화나 유형화가 현재 대중이 바라는 적정 수준의 체계화로 보인다. 적당히 단순하고, 적당히 복잡하다. 한글 조합처럼 과학적으로 보인다. 정말 과학적이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인다는 거다(웃음). 나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을 커버할 수 있는 포괄적인 체계라는 매력도 크다.

사람들은 아주 단순한 법칙들을 결합해서 세상 온갖 걸 설명할 수 있는 그런 걸 당연히 좋아한다. 그렇게 거칠게 세상을 일반화했다가 예외를 발견하고 구체적인 조건들과 변수들과 상황에 따른 다양한 해법이 존재한다는 걸 배우는 게 지적 성장 과정이기도 하다. 거꾸로 그것을 못해내면 언제가 되었든 성장이 멈추는 것이고.

어린아이가 복잡한 공룡 이름을 외우는 비결

한편으로는 그런 체계 덕분에 더 많은 걸 탐구할 수 있기도 하다.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그런 걸 한다. 꼬마 공룡 덕후가 어려운 공룡 이름을 척척 외우는 것도 그런 체계와 패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룡 이름에 존재하는 체계를 인지하고 그걸 본능적으로 습득한다. 인간은 그런 패턴과 체계, 범주화를 좋아한다. 이를 통한 지적 성취를 좋아한다.

아기는 통계적 학습을 바탕으로 세계에 관해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행동한다. 마치 꼬마 통계학자처럼 아기는 가설을 세우고,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개연성을 평가하며, 환경에서 얻은 새로운 증거들을 통합하고, 검사를 수행한다. (….중략….) 아기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이 관찰하고 학습하는 패턴을 바탕으로 개연성을 평가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가능성을 최대화한다.

사라 페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5장 ‘개념과 단어의 통계학’ 중에서. 2017.
2016 미국만화 sheldoncomics.com 바탕으로 한국화된 밈.

열풍, 어떻게 봐야 할까

꼭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MBTI에 열광하는 대중을 한심하게 바라보면 안 된다는 거다. 앞서 살핀 것처럼 MBTI는 인기 있을 만한 요소가 있다. 그래서 대중도 그런 요소를 포용한 거다. 과학적 근거? 물론 없다. 희박하다. 그렇다고 MBTI 타령이나 하고 있냐, 이 무식한 것들아! 폄하해선 안 된다. 우리도 대중이다! (웃음)

다만, 그렇다고 MBTI가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가벼운 예능 소재,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해서 활용하는 것까지는 오케이다. 하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 ‘진지하게 활용’하려는 건 비판적으로 엄격하게 볼 필요도 있다.

바람이 있다면, MBTI를 써먹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면 MBTI가 언급될 때마다 ‘MBTI는 과학적 결과물이 아닙니다’라는 자막을 넣어줬으면 좋겠다. 위험한 실험 같은 걸 보여줄 때 “어린이는 따라하지 마세요”라는 자막을 넣듯.

MBTI도 지나간 유행이 될까

혈액형 심리학도 밀려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혈액형 심리학 자체의 매력 요소가 반감되었다거나 사람들이 더 과학적이 되었다거나 해서 혈액형 심리학이 밀려났다기보다는 다른 더 매력적인 것이 등장하면서 밀려난 거다. 여기서 더 매력적인 다른 게 바로 MBTI다.

그러니 MBTI가 밀려나려면 MBTI만큼 단순하면서도 설명력과 범주화가 쉬운 무언가가 나와야 할 것 같다. 테스트 결과로 따분한 점수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너는 이런 유형이야!’라는 식으로 완벽한 범주화와 설명력을 갖춰야 한다. 물론 그런 게 쉽게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진지한 심리학자 여러분들 화이팅!

세상이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온라인에서 떠도는 혈액형별 성격 및 궁합 등 설명. 출처 미상.

99:1과 51:49가 같은 세계


99:1와 51:49가 동일한 범주라는 게 함정 같다고? 앞서 말했지만, 바로 그래서 인기가 있는 거다. 점수가 아니라 범주로 ‘낙인’을 찍어주니까. 게다가 범주가 이진법이라서, 이것 아니면 자동으로 저것이다. 이해가 아주 쉬워진다.

다른 적용 분야?

예능과 연애, 창작에는 도움이 될 여지가 있다고 본다. 특히 창작의 경우, 작품 속 다양한 캐릭터가 다 똑같이 작가의 분신이면 얼마나 재미없겠나. 다양한 성격 유형으로 다른 행동 원리를 지닌 이들이 서로 협력하고 갈등하는 게 재밌는 이야기 전개의 필수적 요소라면, MBTI는 워낙 포괄적인 데다가 대립항으로 만들어지니 그런 창작 캐릭터를 체계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참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MBTI는 예능적 흥미와도 맞닿아 있고, 연애 초기의 라포 형성에도 참 잘 어울린다. 둘 다 나의 캐릭터를 상대방에 맞게 창작해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MBTI는 캐릭터가 필요한 모든 영역, 캐릭터 구도가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참고가 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깊이를 기대해선 안 된다

하지만 주의할 건, 어느 정도 이상으로 깊이 들어가면 곤란하다는 거다. MBTI는 관계 형성이나 흥미로운 정서적 윤활유로서는 아주 훌륭하다. 창작 캐릭터를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출발점’일 뿐, 그 자체로 깊이를 담보할 수 없다. 아니 어느 정도의 깊이와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는 MBTI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세상은 99:1의 선명함이 아니라 51:49의 회색이 지배하는 세계다.

가령 연애를 예를 들어보자. ‘썸’ 초기에 아이스 브레이킹 용도로 MBTI를 활용하는 건 OK다. 하지만 자신의 이상형을 MBTI를 통해서 찾으려고 하거나 상대방이 나에게 어울리지 아닌지를 MBTI를 통해 정하려고 해선 안 된다. ‘나는 ENFP인데 너는 ISTJ라서 우린 안 어울려!’ 같은 바보 선언을 할 필요는 없다. MBTI를 진지하게 사용하면 그건 정말 바보 선언이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관계를 배제하기 위한 차별적 도구로 쓰면 그건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

MBTI 유행은 저널리즘의 위기를 방증하는 걸까

MBTI 유행이 저널리즘의 한계를 방증하는 것으로 보진 않는다. 정치성향 MBTI만 해도, 적어도 평범한 이분법보다는 훨씬 더 정교하다. 오히려 MBT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독자 유형을 16개로 분류하는 등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언론이 보여준다면 나는 그런 언론사를 응원할 것 같다. 그렇게 분류한 다양한 독자 유형을 고려해 뉴스 전달 방식을 달한다면, 그렇게까지 ‘노력해서’ 더 효과적으로 깊이 있는 정보 전달을 노력한다면, 그건 오히려 칭찬할 일이다.

혹여라도 MBTI 열풍으로 인한 부작용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그때는 언론이 충분히 비판적으로 그 문제를 지적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 정도 신뢰는 있다.

전적으로 한국적 상황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걸까

오늘날 MBTI 유행은 어디까지나 한국과 한국 문화에 영향받은 중국, 동남아 정도에 머문다. 한국 예능을 많이 보는 나라들에서는 우리나라 예능에 워낙 MBTI가 자주 나오니까 MBTI를 알고 어느 정도 유행할 수도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MBTI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런 관계로 MBTI 영향권은 한국의 예능이 미치는 영향권으로 한정된다.

미국은 어떤가

미국 학생에게 MBTI 아는지 물어보면 대부분은 모른다. 심리학과 전공자가 아니라면 모르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 물론 범주화를 좋아하는 건 한국만의 독특한 특성은 아니라서, 미국에서는 별자리 성격 유형 같은 것이 전통적으로 인기다.

좀 더 현대적으로는 버즈피드가 한창 개가를 올리던 2010년대 초반 무렵에 크게 유행했던 기사 유형이 바로 성격 퀴즈이긴 했다. 가령, ‘드라마 프렌즈 캐릭터 중에서 당신은 누구 타입일까’라는 기사가 흥했던 시기가 있다. 너는 레이첼 인간, 나는 챈들러 인간, 뭐 그런 식으로.

미국에서 MBTI가 유행하려면, 미국을 강타하는 빅히트 K-드라마에서 MBTI가 중요한 소재로 쓰이면 그때는 미국 빅히트도 어쩌면 가능할 것 같긴 하다. 가령, 오징어게임 시즌 2에서, 참가자들이 성격유형에 따라서 16개 팀으로 나누어져 죽음의 경쟁을 한다든지 말이다(웃음). 그러니까 자생적으로 미국에서 MBTI가 유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한국 K-드라마를 통한 MBTI 상륙 작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외국 나가서 MBTI로 아이스 브레이킹 시도하면 상대방이 못 알아들을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독심술 ‘놀이’

우리는 타인을 쉽게 파악하고 싶어 한다. 초능력 중에서도 독심술은 특히 매력적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을 읽는 방법이라면 그걸 받아들이고 싶고, 그게 과학적인 느낌을 주면 더욱 기꺼이 받아들인다.

MBTI는 적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기대 수준에서 활용하면 재밌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경계를 두지 않고 함부로 맹신하거나 너무 진지하게 접근하면 망한다. 특히 MBTI가 관계의 윤활유나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배제하고 고립하기 위한 차별의 도구로 억압의 도구로 사용하면 그때는 정말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때 MBTI는 음모론이라는 가면을 쓰고 작동하는 사회적 편견, 배타적 증오의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MBTI를 도구로 한 반사회적 행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종적 프로파일링, 지역색 부여, 특정 업무나 직군 배제…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겠지만. 그래서? MBTI는 그냥 캐릭터 유형 놀이 문화로만 받아들이면 좋겠다. 그게 어딘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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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누가 MBTI를 심리테스트라고 함ㅋㅋㅋㅋ
    MBTI자체가 만들어진게 애초에 디테일하고 정확한 심리분석이 아니라 간이 성향분류였는데요? 심리학애들이 괜히 수요줄고 긁혀서 발작하는거지 아얘 처음부터 분류 목적이었지 전문적 분석이 아님. 누가 전문적 분석을 이딴식으로 함.
    누구나 할 수 있고 간단하게 사람성향을 분류하고 이를 근거로 사람을 적절한곳에 할당했던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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