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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텍스트] 유언장도 없는데 아들이 상속재산 독식, “우리 가족은 이런 식이에요.”

뉴욕타임스가 LG그룹의 경영권 분쟁을 추적한 기사를 내보내 눈길을 끈다. 구광모(LG 회장)의 어머니와 두 동생의 인터뷰도 실렸다.

이게 왜 중요한가.

  • 한국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않는 이야기다.
  • 영화보다 더 재밌는 이야기다.
  • 한국의 재벌 시스템이 다른 나라 시각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

사건의 개요.

  • 구본무(전 LG 회장, 구광모의 아버지)의 부인 김영식과 두 딸 구연경(LG복지재단 대표)·구연수가 구광모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김영식에게는 아들이고 구연경과 구연수에게는 오빠다.
  • 구광모에게 경영재산을 물려준다는 유언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 동의했는데 알고 보니 유언장이 없더라, 그렇다면 법에 정해진대로 유산을 분할해야 한다는 게 세 모녀의 주장이다.
  • 구본무가 남긴 유산은 2조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구광모가 1조5000억 원을 가져가고 나머지 5000억 원을 세 모녀가 넘겨 받았다. (경영재산은 구광모가 독식, 개인재산만 분할하는 내용으로 합의서도 썼다.)
  • 한국의 상속법에 따르면 유언장이 없는 경우 부인이 3분의 1을 상속 받고 나머지를 세 남매가 같은 비율로 나눠갖게 된다. 유언장이 있다는 말만 믿고 상속 재산의 75%를 구광모에게 넘기기로 합의했는데 유언장이 없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 세 모녀가 증거 자료로 제출한 녹취록에 따르면 구광모는 어머니에게 LG의 이미지와 리더십에 타격을 입힐 수 있으니 유산을 두고 분쟁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 뉴욕타임스가 확인한 녹취록에는 구광모가 이런 말을 하는 대목이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여론입니다. 사람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볼까요. 누군가가 욕심을 부렸다거나 내가 어머니를 잘 보살피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하겠죠.”

지금까지의 이야기.

  • 구본무는 LG그룹 창업주 구인회의 손자다. 구인회가 첫째 아들 구자경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구자경이 다시 첫째 아들 구본무에게 물려줬다.
  • 구광모는 원래 구본무의 동생인 구본능의 둘째 아들이었다. 구본무의 아들이 1994년 교통사고로 죽자 2004년 구광모를 양자로 들였다.
  • 구본무는 2018년 유언장 없이 죽었는데 구본무가 죽기 이틀 전 LG그룹은 구광모(당시 상무)가 차기 회장이 될 거라고 공식 선언했다.
  • 구광모는 구본무가 죽고난 뒤 한 달만에 상무에서 회장으로 승진했다. 만 40세였다.

“우리 가족은 이런 식이에요.”

  •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한 구연수의 말이다. “저는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껴야 했어요.”
  • 구본무 가문은 장자 상속 원칙이 확고했다. 그래서 아들이 죽고 난 뒤 두 딸이 있는데도 양자를 들였고 양자에게 상속 재산의 대부분과 그룹 경영권을 넘겨줬다.
  • “시아버지에게는 정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김영식의 말이다. 아들을 낳으려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스물여섯 살의 조카를 아들로 받아들이게 됐다. 시아버지 구자경은 구본무가 떠난 이듬해 세상을 떴다.
  • 세 모녀는 소장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호받는 우리의 권리가 무시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핵심 쟁점: 유언장은 없고 메모는 사라졌다.

  • 김영식에 따르면 구본무가 죽고 난 뒤 구광모의 친아버지 구본능이 열쇠 수리공을 불러 사무실과 별장에 있는 구본무의 금고를 땄다. 유언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면서도 다른 유족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게 김영식 등의 주장이다.
  • 구연경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가장 신뢰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찾아와서 유언장이 있다면서 모든 것이 구광모에게 돌아간다고 했다”고 말했다.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사람이 하범종(LG 사장)이다. 하범종은 법정에서 “유언장이 있다고 말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 구본무가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구본무는 처음 쓰러졌던 2017년 4월 두 가지 문서에 자필 서명을 했는데 하나는 연명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문서고 다른 하나는 구광모에게 경영 재산 전부를 넘긴다는 문서였다. 하범종은 이 문서를 가족들에게 보여줬다고 주장하는데 김영식과 두 딸은 보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하범종의 주장에 따르면 이 문서는 재산 분할이 끝난 뒤 폐기해서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 하범종은 세 모녀가 말을 바꿨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자 상속이라는 큰 원칙에 동의했고 상속 분할 합의서까지 작성했으면서 뒤늦게 지분을 요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 LG 창업주 일가는 개인재산과 경영재산을 구분해서 관리했다. 유언장이 있든 없든 경영재산을 장자에게 상속한다는 큰 원칙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는 게 구광모의 주장이다. LG는 회사 차원에서 성명을 내고 “LG의 전통과 경영권을 흔들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 뉴욕타임스 기사에는 차명거래에 대한 의혹도 담겨 있다.
  • 구연경이 대형 마트와 제휴된 신용카드 발급을 신청했더니 대출이 너무 많아 자격이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확인해 봤더니 LG 주식을 담보로 거액의 대출이 남아있었다.
  •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 돈인데 얼마나 있는지 몰랐어요.”
  • 구광모는 김영식에게 보낸 메일에서 직원들이 구광모 몰래 김영식의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상속세를 냈다고 해명했다. 갚을 계획이 있으니 상속권을 주장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선대 회장의 형제들이 상속법에 따른 분할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LG가 있느냐고 호소하기도 했다.
  • 지난 9월 추석 때 제사를 지내러 찾아온 구광모는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고 한다.

LG그룹의 해명.

  • LG그룹은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 LG그룹 관계자는 슬로우뉴스와 통화에서 “뉴욕타임스 인터뷰에 나온 주장은 법정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입증됐다”면서 “재산 분할과 세금 납부는 적법한 합의에 근거해 이행돼 왔다”고 반박했다.

뉴욕타임스의 평가.

  • 일단 투자자들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사이먼 왁슬리(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디렉터)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상장 기업을 사금고처럼 운영하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투자 인센티브를 박탈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 뉴욕타임스는 “큰아들이 권력과 부를 장악하고 다른 여성 가족 구성원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LG의 가부장적 전통에 도전하는 소송”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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