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암컷들]. 그런데 부제는 더하다.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 옥스퍼드에서 리처드 도킨스 제자로 동물학을 전공하던 루시 쿡은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 “암컷은 수줍음이 많다”, “수컷은 효율성과 적극성을, 암컷은 수동성을 상징한다”는 가르침에 의문을 가졌다. 도킨스, 그 이전에 다윈이 짜놓은 교과서다. 진화론의 경전은 여성을 시민 취급 않던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실제 암컷들을 확인하기 위해 자연으로 향했다.
학계를 떠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변신, 온 대륙을 누볐던 그가 발견한 암컷들은 어마어마했다. 아니 성의 세계가 오색찬란하게 경이롭다. “스토리텔러로서의 유머에 생물학 연구자의 과학적 권위가 결합한”(사이언스), “대담하고 매혹적인 엎어치기. 놀라움으로 가득한”(가디언) 책의 추천사도 예사롭지 않다. 내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조용한 생활’ 6월호 책으로 소개했는데, 내 목소리에 살짝 흥분이 느껴진다.
알보고니, 동물의 암컷은 수컷만큼이나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경쟁심이 강하며 적극적, 공격적이고 우세하고 역동적이다. 자기가 낳은 알을 버리는 암새도 있고, 바람난 아내를 둔 수컷들의 하렘에서 새끼를 키우는 물꿩도 있다. 정절을 지키는 암컷도 있지만 전체 종의 7%만 성적으로 일부일처이며, 많은 암컷이 여러 상대를 전전하는 바람둥이다. 자기들끼리 살벌하게 경쟁한다.
다채로운 성은 이분법을 사양한다
성의 세계가 암컷, 수컷 이분법으로 정리되지 않는 사례부터 놀라움의 연속이다. 난소와 고환을 다 갖춘 암두더지는 짧은 번식기를 제외하면 수컷처럼 살아간다. 얘가 특이한 게 아니었다.
아마존에서 거미원숭이 암컷을 처음 봤을 때 아랫도리에 매달린 부속물을 보고 나는 영락없이 수놈인 줄 알았다. 크기도 작지 않아서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걸려서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까지 했더랬다. 하지만 옆에 있던 영장류학자들이 점잖게 진실을 알려주었다. 오히려 수놈 쪽은 제 물건을 안쪽 깊숙이 넣고 다니기 때문에 겉에서는 음경이 보이지 않았다. 반면에 암컷은 보란 듯이 음핵을 덜렁거리고 다닌다. 생물학계에서는 ‘가짜 음경’이라고 칭하는 해부 구조다. 이런 남성중심적인 용어는 특히 거미원숭이 암컷의 ‘가짜’ 남근이 수컷의 ‘진짜’ 남근보다 더 길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소 거슬린다.” (‘암컷들’ 중에서)
저자의 서술이 얼마나 거침없고 유쾌한지 짐작되는가? 고대 자연과학자들은 하이에나가 암수한몸이라고 굳게 믿었단다. 점박이하이에나 암컷의 20cm 음핵은 모양과 위치가 수컷의 음경과 똑같을 뿐 아니라 발기까지 한다.
남성호르몬이니 여성호르몬이니 하는 것은 없다는 학자의 발언도 뒤통수를 친다. 흔히들 착각하지만, 남자나 여자나 모두 똑같은 호르몬을 갖고 있고, 성 스테로이드를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꾸는 효소의 상대적 양, 호르몬 수용기의 분포와 민감성 차이가 전부란다.
개구리가 물속에서 올챙이 암컷으로 살다가 땅위로 올라와서 수컷으로 성전환되는 것 다들 알고 있었나? 와중에 제초제에 노출되면 다시 암컷으로 성을 바꾼단다. 턱수염도마뱀은 수컷으로 예정됐던 알이 땡볕에 노출되면 암컷이 되어버린다. 얘네들은 보통 암컷보다 알도 많이 낳지만, 하는 짓은 수컷에 가깝다.
암수 전환보다 더 대단한 것은 암수 공존. 몸의 절반은 화려한 주홍색 털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누런 갈색인 홍관조. 암컷과 수컷의 생식기를 한몸에 갖춘 ‘자웅모자이크’ 생명체는 다수의 새, 나비, 곤충 중에 발견된다고 한다. 남성 여성만 있다는 이분법은 진짜 뭘 모르는 얘기다.
카리브해의 작은 물고기 초크배스는 하루 최대 20번이나 성을 바꾼다. 매끈비늘도마뱀붙이 개체군은 암컷뿐이고, 생식 대신 클론을 복제한다. 유전적으로 동일해서 다양성 부족으로 질병 등에 취약한게 특징. 아빠 없이 새끼를 가진 네브라스카 수족관의 귀상어 얘기도 놀랍고, 니모 아빠 흰동가리 종족의 비밀은 동심파괴라, 궁금하면 책을 보시라.
이분법을 넘어, 무지개빛으로 진화해온 자연의 진짜 이야기는 성소수자들에게도 힘을 실어준다. 흑백으로만 따질 수 없는 성에서 회색 지대를 이상하거나 병든 것으로 낙인 찍는 것은 다양성을 깨우치지 못한 행동이다. 조앤에서 조너선이 된 러프가든 쌤의 이야기는 다정하고 유쾌하다.
암컷에 대한 편협한 고정관념
책의 표지는 암사자. 이들은 방탕하다. 발정기 중에 다수의 수컷과 하루 최대 100번까지 짝짓기를 한 유명한 암사자도 있단다. 저자는 “동물학과 학생이었을 때 나는 성적 방종이 생식세포에 명시된 수컷의 생물학적 책무라고 배웠다”고 돌아본다. 하지만 “어떻게 한 성은 절대적으로 문란하고 다른 성은 절대적으로 정숙할 수 있을까? 그렇게 모든 암컷이 조신하다면 대체 수컷들은 누구와 섹스를 한 것인가?”, “암컷에게 맞지도 않은 정조대를 채워 성의 석판을 깨끗하게 닦아낸 것은 다윈이었다.”
문제는 다윈은 절대적 존재. 감히 그 권위에 도전할 수 없는 분이다. 다윈의 후예 생물학자들은 확증편향에 빠졌다. 보고 싶은 것만 봤다. 암사자의 방종한 행위를 마주치면 조심스럽게 외면했고, 구차한 설명을 시도했다. 암컷이 싸움꾼인 피뇬제이 새에 대해 ‘인간 여성의 월경 전 증후군(PMS)’에 해당하는 ‘번식 전 증후군(PBS)’에 시달린 탓이라 주장했단다.
당연하게도 새한테 그런 증후군은 없다. 여자들이 성질 좀 내면 ‘히스테리아’ 병이라고 진단해 심하면 자궁적출이 필요하다고 했던 게 다윈이 활약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정서다. 그때는 그렇다 쳐도, 이후에도 강간, 혼외정사, 가정폭력 마저 수컷들의 진화론적 본능으로 대우해주며 면죄부를 얻은게 100년 넘는 세월이다. 난잡한 수컷과 까다로운 암컷이라는 다윈의 명제에 들어맞는 결과만 골라서 봤던 학자들. 과학은 편협했고, 진화론은 정치적 무기가 됐다.
여성의 본능적 모성도 다윈 창작물이다. 조류의 90%는 부모가 함께 자식을 돌보고, 아비의 돌봄이 거의 관례 수준이라고. 물고기는 전체 동의 3분의 2가 싱글 대디의 양육 책임을 보여준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수컷이라고 다 공격적인 것도 아니고, 암컷이라고 한결같이 모성이 지극하지 않다. 아주 제각각이란다.
암컷은 연구도 제대로 안했다
암컷들을 제대로 보지 않은 배경은 다윈의 영향이라 쳐도, 남성중심주의 사회는 이렇게 구멍 숭숭이다. 그들은 암컷들의 행동은 물론 몸도 제대로 공부 안했다. 음핵은 질보다 덜 연구된 유일한 기관인데 1998년에야 호주 의사가 상세한 해부 구조를 출간했다. 모든 영장류 암컷에는 음핵이 있지만 맹장처럼 퇴화된 기관 취급했다. 남성 과학자들은 “여성의 오르가슴은 일부일처 체제에서 배우자와의 유대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영장류 중에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했단다. 대부분의 영장류 암컷들이 동물원에서든 야생에서든 왜 수음을 하는데?
발기하면 42.5cm에 달하는 파란부리오리의 음경은 와인 오프너처럼 꼬여있는데, 암컷의 생식관도 반대방향 나선형이다. 강제 교미를 시도하는 경우, 암컷의 생식기가 음경의 진로를 차단해 임신 가능성을 낮춘다. 암컷에게 친부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 건 정자 경주설일까.
어떤 경우, 수컷들은 제 새끼를 바로 임신하도록 다른 영아를 살해한다. 여기에 맞서 암컷들은 무리에 침입한 수컷과 섹스한다. 제 자식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하여 새끼의 목숨을 보전하는 효과가 있다고. 저자는 “새끼의 생존력을 높이려는 진화의 교활한 계책”이라 했다.
부계 중심 호전적 침팬지 사회를 집중 연구하던 학자들은 모계 중심 평화로운 보노보들을 뒤늦게 보기 시작했다. 보노보 암컷은 자기들끼리 동맹을 맺고 수컷을 지배한다. 암컷들은 서로 털고르기와 G-G 문지르기, 생식기를 비비면서 가부장제를 전복했다. 이들은 암수 모두 양성애자라고. 헌신적 일부일처의 상징 레이산알바트로스(Laysan albatross)는 알고 보니 3분의 1이 레즈비언 커플이다. 수컷이 부족하다보니 정자를 받아 알을 낳고 암컷끼리 키운다.
빅토리아 시대의 고정관념이 100년 넘게 지속된 게 이 주제 뿐일까 싶지만, 암컷은 오해를 많이 받았다. 저자는 “진실은 다양성과 투명성에 있다”고 했다. 남자들만 진화론을 연구할 때는 뭔가 이상하다고 인지도 못했다.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를 [다이버시티 파워]에서도 구구절절 입증했지만, 여전히 다윈의 고정관념이 교과서에 남아있다. 암컷은 방탕하니, 인류도 그럴거란 식의 얘기가 아니다. 이분법으로 정리되지 않는 무지개빛 세상을 제대로 보자는 얘기를, 자연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눈을 감지만 않으면 된다. 세상은 다양하고 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