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현장] 13.8억 근저당에 보증금이 18.5억, “40억 나간다”던 건물 시세는 20억 원 수준… 사기 고의성 입증 쉽지 않다. (⏳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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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대림동 하람빌 입주자들이 9일 사기죄로 집주인 김소희(가명·29)와 공인중개사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지난 5월 1일 슬로우뉴스는 전월세 보증금 36억 원을 들고 잠적한 20대 임대인 김소희를 추적한 기사를 내보냈다. 김소희는 전세 보증금을 돌려달라는 임차인들 요구에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모아둔 자본을 모두 사용해 돌려드릴 돈이 없다”면서 지난 4월 서울회생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집주인이 ‘배 째라’는 식으로 종적을 감췄는데, 대응할 마땅한 수단이 형사 고소 말곤 없다.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져 김소희가 처벌 받는다고 해도 보증금을 온전하게 되찾을지 장담할 수 없다.
- 임차인들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고소장을 썼다. 고소장 요지는 김소희가 애초부터 임대차 보증금을 반환할 의사와 능력이 없었는데도 임차인들을 속여 전세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 김소희는 서울 대림동에 ‘하람빌’, ‘엘리시아’, ‘케렌시아’라는 다중주택 3채를 소유하고 있다. 은행에서 총 25억 원을 대출해 세 건물을 세웠다.
- 김소희가 대출금을 못 갚으면 채권자인 은행은 집을 경매에 넘길 수 있다. 만약 낙찰이 이뤄지면, 은행은 낙찰 대금에서 우선적으로 대출금을 빼 간다. 낙찰 대금에서 은행 대출금을 뺀 나머지 금액이 임차인들의 보증금보다 작으면 전세금을 다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20대에 날벼락 “매월 50만 원씩 20년 갚아야….”
- 23가구가 사는 하람빌의 특징은 입주민 대다수가 정부 정책인 중소기업 취업청년 전월세 보증금 대출(중기청 대출)을 받은 20대 청년이라는 점이다. 사회 초년생에게 저금리 혜택을 주는 중기청 대출은 1억 원 한도 내에서 보증금의 80%~100%까지 대출을 해준다.
- 중기청 대출은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는 주택도시기금이 지원하는 정책으로 실제 대출은 우리은행과 국민은행, 신한은행, 농협은행, 기업은행 등 주택도시기금 수탁은행을 통해 집행된다. 즉, 중기청 대출 재원은 은행 자금이 아니라 정부의 공공 자금에서 나온다.
- 하람빌 전세 보증금은 가구당 1억2000만여 원이다. 보증금을 되돌려받지 못하면 임차인들은 “매월 50만 원씩 20년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 신세”(하람빌 임차인 대표 안산하)로 전락한다.

“하람빌 시가는 40억… 확실히 안전하다.”
- 전세 사기는 누구도 쉽게 피할 수 없다. 피해자들이 어려서, 세상 물정 몰라서, 기성세대보다 꼼꼼하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 하람빌 305호 정아무개씨(25)는 세무사와 함께 부동산 문서를 떼어가며 꼼꼼하게 살폈다. “전문가도 문서로는 문제를 찾지 못했을 정도인데, 일반인은 더더욱 정보를 알 수 없다.”
-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중개보조원들은 김소희 건물의 시가를 과다 산정하며 선순위 근저당 및 보증금이 존재하는데도 “안전한 물건”이라며 계약을 이끌었다.
- 301호 장아무개씨(27)는 전세 계약 전 중개보조원 한아무개씨에게 우려를 전했다. 전세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았는데 하람빌에 잡힌 13억 8000만 원의 근저당(김소희가 하람빌을 담보로 11억여 원을 대출했다는 의미)이 위험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 그러자 중개보조원 한씨는 이렇게 안심시켰다. “은행 창구에 계신 분들은 부동산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이 아니다.(중략) 하람빌은 이미 타 은행에서 중기청 대출이 나온 곳이다. 위험한 건물이면 은행이 승인을 해줬겠나.”
- 한씨 표현을 빌리면, “하람빌 실거래가는 40억 초반”이고 “잘못될 일이 아예 없는 건물”이다. 하람빌 시세가 높기 때문에 선순위 근저당이 있어도 전세 보증금 반환에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 ‘40억’의 구체적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되레 임차인 측은 건물 가격을 원가법으로 계산하고, 토지 시가를 일반적 기준인 공시지가의 2배로 산정할 경우 20억 원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하람빌 시세는 임차인들의 보증금 수준(18억 5000만 원)에 그친다는 것이다.
“김소희, 돈 못 빼주는 분 아니다.”
- 또 다른 중개보조인 김아무개씨는 김소희 부녀의 재력을 강조하며 “안전한 물건”임을 강조했다.
- 305호 정씨는 계약을 앞두고 거액의 선순위 근저당(김소희의 은행대출금)과 확정일자가 앞서는 임차인들의 보증금 규모를 우려했다. 부동산이 경매로 넘어가면 배당 순위에 따라 돈을 나누는데, 확정일자 순서에 따라 임차인 순서가 정해진다. 확정일자가 앞서는 임차인들이 나보다 먼저 보증금을 돌려받는 것이다.
- 그러자 김씨는 “그분들(김소희 부녀)과 우리는 거래한 지 오래됐다”면서 “김소희 아버지가 따님 명의로 건물을 올린 것”이라면서 “(김소희 부녀는) 돈이 없는 분들이 아니다.(중략) 돈 못 빼주고 이러는 분이 아니다. 안심해도 된다”고 달랬다. “진짜 너무 안전한 물건이라고 자부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중개보조인 김씨는 슬로우뉴스 취재를 거부하고 있다.

공인중개사 “잠수탄 김소희, 나도 답답해 죽겠다.”
- 중개보조원을 대표하는 공인중개사 권아무개씨는 11일 통화에서 “나도 김소희씨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답답해 죽겠다”고 토로했다. 권씨는 김소희 부녀에 대해 “김소희 아버지는 임대사업자에 가전 제품을 납품하는 일을 하는데, 그렇게 번 돈으로 김소희 앞으로 건물을 산 것”이라고 했다.
- 권씨는 전세 보증금을 ‘먹튀’한 김소희 사건에 “공인중개사 10년 하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이렇게 될 줄 전혀 몰랐다”고 했다. ‘시세를 과장한 것 아니냐’는 질의에는 즉답을 피하면서도 “김소희씨가 전세를 내놓을 때 ‘이렇게 비싸게 내놓으면 안 나간다’고 말씀드렸으나 꼭 그 가격(전세 보증금 1.25억~1.35억 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김소희와 2019년부터 거래를 해온 만큼 신뢰를 갖고 전세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노력했다는 취지다. 엘리시아, 케렌시아는 2019년 지어졌고, 하람빌은 2023년 사용 승인이 난 신축 건물이다.
“공인중개사도 사기 공범”…처벌은 쉽지 않아.
- 하람빌 입주민들은 공인중개사 권씨, 중개보조인 한씨·김씨도 사기죄로 고소했다. 하람빌 입주민들은 고소장에 “우리는 대부분 사회 초년생들로 힘들게 모은 자산 전부를 ‘깡통 전세’ 사기 사건으로 모두 잃을 위기에 처했다”며 “김소희는 파산 신청을 할 예정이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고,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은 기존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폐업하고 고소인들의 연락을 피하고 있다”고 했다. “사기의 공동정범, 사기 방조 등의 죄책을 물어달라”는 것이다.
- 공인중개사들이 전세 사기에 가담했다가 처벌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달 부산에서 전세 사기 건물을 다수 중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공인중개사들과 중개보조원들은 벌금 200만~700만원을 선고 받았다. 경기 화성시 동탄 등지의 오피스텔 268채를 사들이면서 145명으로부터 약 170억 원의 보증금을 편취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임대인과 공인중개사는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다.
-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원인 제공자인 공인중개사도 사기 공범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공인중개사를 사기의 정범 내지 공범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사기죄의 구성 요건에 해당한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사기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뜨거웠던 정치권 여론…조례 지원 이어질까.
- 슬로우뉴스 보도 후 ‘김소희 사건’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컸다. 하람빌 임차인 대표 안산하(28)는 더불어민주당 진짜 대한민국 선대위 국가미래정책위원회 주최 연속 토론회에 참석해 재발 방지 대책을 주문했다.
- 안산하는 이재명 정부에 “실효성 있는 특별법 개정과 함께, 금융·중개 시스템의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억대 빚을 떠안고 사회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전세 사기를 사회적 재난으로 인식해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 안산하를 포함한 251명의 전세 사기 피해자 및 시민들(이 가운데 91명은 전세 사기 피해 당사자)은 6·3 대선을 앞두고 “전세 사기 걱정 없는 사회”를 요구하며 민주당 후보 이재명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 하람빌 입주민들은 10일에는 영등포구의회 부의장 유승용을 만났다. 유승용은 조례 제정을 통한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을 약속했다. 유승용은 “영등포에서는 전세 사기 사건이 크게 부상하지 않다가 코로나19 이후 불거지기 시작했다”며 “작년에도 이 문제를 검토했는데, ‘김소희 사건’을 계기로 어떤 지원을 할 수 있을지 조례 제정을 포함해 구의회 역할을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