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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콜드케이스] 선거과 윤리, AI와 노동… 2024년 미디어 분야를 ‘캡콜드’ 김낙호 교수와 함께 전망하고 도전적인 미디어 테제를 제안합니다.


정(情) 많고, 한(恨) 많은 민족이라고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쿨하고, 폼나는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잔인하고, 배타적인 증오 사회가 되었습니다. 2023년 우리는 악마를 학습했습니다. 진영에 아부하며 상대방을 조롱할수록 돈과 명성이 따라왔습니다. 몇몇은 죽었고, 몇몇은 매장됐으며, 대다수는 살아남았습니다.

2024년 미디어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한국의 4월 총선과 미국의 11월 대선을 전망합니다. AI와 스트리밍, 유튜브 시대의 동영상과 전략적인 텍스트 읽기를 생각합니다. ‘증오의 게임’을 넘어서. 2024년 새해 36개의 도전적인 미디어 테제를 캡콜드(김낙호 교수)가 제안합니다.

캡콜드가 미리 뽑은 화두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2024년 미디어 분야

  1. 선거와 언론 윤리
  2. AI와 미디어 노동
  3. 콘텐츠 평가 척도 재정립
  4. 스트리밍(OTT) 산업 합종연횡

물론 대화는 정해진 대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어서 하나의 이야기가 길모퉁이에 다다르면 미리 생각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그 길 끝에서 생겨나곤 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2023년, 우리 사회의 마지막 집단적 기억, 이선균의 죽음에 관해 따로 물었습니다. 이선균의 죽음은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해야 할 상처이자 슬픔이며 아프지만 계속 돌아봐야 할 해결되지 않은 미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편집자)

캡:콜드케이스 05.
2024년 미디어 분야 전망 및 제안

미디어 테제 36

독자의 가독성을 고려해 주제를 좀 더 작은 단위로 세분했습니다. 아래 ‘목차’ 항목 중 궁금한 주제를 클릭하면 해당 항목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 인터뷰는 2023년 12월 30일 (토)에 진행한 화상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

목차.

후보의 당선 확률보다 유권자의 이해를 보도하라


민노: 우선 선거라는 맥락 속에서 미디어를 이야기해 볼까요. 선거철이 되면 항상 정책 검증은 뒷전이고, 누가 지지율 1위인가 하는 경마식 보도가 판을 치는데요. 더불어 진영에 기반을 둔 확증편향적인 미디어들이 여전히 이런 선거판에서는 강세를 보일 것 같고요.

캡콜드: 경마 보도든 진영 기반이든, 언론 윤리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까지 번질 것이다라는 문제 진단은 사실상 확정적이죠.

민노: 미디어 연구자로서 상업적인 ‘흥행’ 여부를 떠나 선거와 관련해 평가할 만한 언론의 시도는 어떤 게 있(었)을까요?

캡콜드: 어느 후보가 우세하다는 확률을 보도하기보다는 유권자의 이해가 걸려 있는 지점에 관해 보도하라 (“not the odds, but the stakes”)는 언론윤리 규범을 밀고 있는 언론학자와 저널리스트가 있어요. 마가렛 설리반(Margaret Sullivan)이나 제프 자비스(Jeff Javis) 그리고 제이 로젠(Jay Rosen) 같은 이들이죠.

왼쪽부터 마가렛 설리반, 제프 자비스, 제이 로젠. 모두 위키미디어 공용.

탐사보도의 문제 의식을 선거와 연결하자


민노: 예를 하나 들어주신다면요.

캡콜드: A라는 후보가 질 경우에 어떤 계층에 어떤 영향이 미친다거나 B라는 후보가 당선이 되면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서 어떤 계층 혹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아서 삶이 망가질 수 있다거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거나 그런 보도를 하라는 거죠.

민노: 쉽게 말해 각 후보의 차별적인 정책이 뭔지 정책에 관해 보도를 하라는 거네요?

캡콜드: 정책으로 인해 어떤 정치적 결과, 어떤 사회적 경제적 파장이 오는지 그걸 보도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나라로 치면 사회면의 탐사보도들을 정치적인 선거 국면과 연결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봐요. 그 연결 작업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책적 차별성? 지역 단위로 정치적 초점을 이동해야 한다


민노: 바람직한 선거 보도 방법론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요. 소선거구제하에서 국회의원 공약이라는 게 다 지역민의 민원 해소 창구를 자처하는 거잖아요. 별로 차별성도 없고요. 병원 지어주겠다, 체육관 지어주겠다, 산업단지 유치하겠다… 그런 게 지역민의 공통적인 바람 같아서요. 각 후보별로 차별성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캡콜드: 그러게 말이죠… 다만 체육관을 짓는 문제만 하더라도 그런 결정을 모두 다 좋아할 수는 없거든요. 그 결정에 따라 누가 혜택을 더 많이 받고, 그 혜택은 어떤 방식으로 유지가 될 수 있는지, 실제로 기존 선거에서는 얼마나 많은 공약이 제시됐고, 또 얼마나 그 약속들이 지켜졌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정책적 선택에 따른 이해득실을 분석하고, 또 그런 선택과 이해 사이를 연결짓는 작업을 해야 해요. 좀 더 지역 단위로 정치의 포커스를 이동시켜야 합니다. 하이퍼 로컬, 하이퍼 로컬 하지만, 그게 다른 게 아니거든요.

양극단의 증오 게임… 규모 위주 사고방식을 멈추자


민노: 그런 바람직인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지배적인 관심사는 아무래도 진영에 기반한 상대방 악마화, 우리편 무조건 응원하기… 이렇게 양극단의 ‘게임’으로 진행할 공산이 큰데 말이죠.

캡콜드: 그럼요. 그게 현재 미디어 환경이 초래하는 근본적인 문제인데요. 모든 게 규모 위주였단 말이죠. 관심의 규모 위주로 영향력 평가가 이뤄지고, 수익도 그런 규모에 맞춰져 있고. 그러니까 돈 문제로 가면은 사실 너무 답이 없는데 … 그렇다고 유권자에게 바람직한 미디어를 선별해서 보세요~! 라고 하는 건 씨알도 안먹힐 거고, 진영에 편향된 매체를 보지 마세요~! 하면 그건 너무 무책임한 거죠. 실제로 그런 편향된 미디어들이 더 재밌으니까요.

민노: 네, 보지 말라고 한다고 안 볼 사람들도 아니고요.

캡콜드: 그럼요. 다만 너무 자극적인 불량식품만 먹지 말고, 가끔씩 몸에 좋은 채소도 먹고, 통곡물도 먹으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따지고 보면 슬로우뉴스라는 것도 슬로우푸드와 일맥상통하는 취지를 가지고 있는 거기도 하고요. (웃음)

총선과 미디어: 진영과 사이다~를 넘어서야 한다


민노: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2024 총선에서 미디어, 어떤 역할을 할까요, 그리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세요.

캡콜드: 진영을 넘어서 우리가 무엇을 근거로 결정해야 할 것인가. 그 근본적인 질문과 생활에 밀착한 함의를 계속 던져줘야죠. 그게 우선은 큰 방향이고요. 그거 말고 방법론의 차원, 그러니까 어떻게 그런 테마에 대한 관심을 이끌 것인가에 관해서는 사실은 아직 명쾌한 답은 없죠. 진영에 기반해서 상대방 바보 만들고, 혐오 발언(= 사이다 발언)하는 것만큼 통쾌하고 재밌는 게 어딨어요?

민노: 수다 떨고, 뒷담화 하는 것만큼 재밌는 게 별로 없긴 하죠. 그런 게 가성비가 좋죠, 아무래도. 별다른 취재나 고민이 필요하지도 않고, 그냥 진영론의 원칙으로 기본 공식을 적용해서 상대방 조롱하고 비난하면 되는 거니까요.

캡콜드: 그럼요.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너무 편하거든요. 사안에 관해 세부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고, 다양한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입장을 살피려고 하면, 말하는 쪽도 그렇고, 듣는 쪽도 그렇고, 불편해요. 뭔가 꽉 막힌 느낌이죠. 그런데 상대방은 바보고 음모를 꾸미는 모사꾼이고, 항상 끼리끼리 붙어 먹는 야비한 자들이고, 이번에도 자기들끼리 해먹으려고 한다! 이렇게 설정한 뒤에 그 상대방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인신공격하고 작은 것도 과장해서 침소봉대하면, 세상에 그런 재밌는 일이 없죠. 명쾌하고, 시원하죠. 사이다~! 인 거죠.

민노: 미디어를 하는 입장에서는, 저를 포함해서, 그런 가성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 총선 국면에서도 생산자 입장에서는 가급적 많은 독자(유권자)와 만나고 싶을 거고, 그러려면 아무래도 독자들은 ‘사이다’스러운 기사를 원할 테니 그런 쪽으로, 유튜브하는 소위 민주당 쪽, 국민 쪽 논객이나 뉴스채널처럼 독자의 지적 욕구에 소구하기보다는 독자의 정서적 만족감을 우선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 같기는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캡콜드: 약간 무책임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데요. 원래 하던 대로, 세밀하고 세부적인 맥락과 다양한 입장을 살펴서 이야기하되 그걸 가급적이면 재밌게 혹은 덜 재미없게 할 수밖에 없죠.

민노: 정보,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서적인 포장도 꽤 중요한 것 같기는 합니다. 좀 더 쉽고, 정서적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나 싶은 고민이 늘 있습니다.

캡콜드: 물론이죠. 다수 미디어들이 한동안 그런 생각을 한 적 있었죠. 이제 좀 사람 냄새나는 개인의 사연들을 위주로 개개인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연을 만들면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을까. 그런데 사회 자체가 양극화하고, 더 파편화하면서 그런 인간적인 공감을 강조한 이야기들이 별로 읽히지 않게 됐어요. 하지만 공감, 특히 다양한 인생의 조건에 공감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는 컨텐츠는 더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 대선: 트위터는 망가졌고 소셜의 영향력은 줄 것이다


민노: 미국 대선을 미디어의 관점에서 이야기해보죠.

캡콜드: 네, 우선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무엇보다 트위터가 ‘망했기’ 때문에,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질적으로 망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트위터가 이제 극우진영화된 좁은 공론장으로 쪼그라들었다는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민노: 머스크 인수 이후의 트위터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다면, 줄어든 트위터의 영향력은 ‘소멸’했나요, 아니면 ‘이동’했나요?

캡콜드: 사실상 소멸한 거죠. 트위터는 독특했던 게, 전체 사용자 수의 규모보다는 그 안에서 저널리스트, 학자, 정치인들이 과하게 애용하고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하면서 전체 담론장에서의 영향력이 굉장히 컸거든요. 좌파고 우파고 떠나서요. 하지만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면서 트위터 자체를 극우화시켜서 많은 기자들이나 학자들이 트위터를 떠났죠. 트위터는 머스크를 중심으로 머스크를 지지하는 목소리만 증폭시키는 쪽으로 구조화하여, 알고리즘마저 그렇게 설계하고 있고요.

머스크가 트위터를 망쳤다(완료형).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후 재택근무 폐지, 주당 80시간 노동 등 고강도 업무 지시에 반발해 2022년 11월 18일~20일 사무실을 일시 폐지하는 일이 있었다. 이용자들은 트위터 #트위터 명복을 빕니다’(#RIPTwitter), #잘 가 트위터#GoodbyeTwitter)’ 등 해시태그를 밈으로 사용했다. 머스크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그 패러디를 다시 조롱하는 의미로 트위터 로고를 묘비와 사람 얼굴에 붙인 이미지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2022년 11월 18일 모습.

민노: 떠난 사람들은 어떻게 됐나요.

캡콜드: 여기저기 흩어졌죠. 블루스카이로도 많이 갔고요. 저만 해도

민노: 그래서 이동이라기보다는 영향력의 소실로 본다는 말씀이군요.

캡콜드: 그렇죠. 그러니까 트위터에 모든 이슈가 집중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더 과잉, 남용될 수도 있었지만, 이제 그런 구심력이 상당히 사라졌다고 보면 되는 거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번 미국 대선에서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을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미 대선: 진영 기반 전통 미디어의 영향력은 여전할 것이다


민노: 소셜미디어의 영향이 줄어드는 만큼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캡콜드: 그 쪽은, 양극화한 사회에서 자기네 절반 안에서 영향력이 클 거라고 보고요. 당장 뉴욕타임스도 우리나라에서는 친민주당 리버럴 계열로 보고 있는데, 사실은 딱히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만큼 진영화된 관점으로 미디어를 양분해서 바라보는 우리들 시선의 양극화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폭스뉴스가 공화당을 대변하는 우익 미디어라면 거기에 대응하는 미디어는 뉴욕타임스라기보다는 MSNBC 같은 채널이죠. 뉴욕타임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친민주당 미디어고요.

민노: 미국은 그러면 편의상 거칠게 보면, 폭스뉴스 vs. MSNBC 구도로 봐도 되겠네요. 그 중간 어디 쯤 정론지로서 뉴욕타임스가 있고요.

캡콜드: 정론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사람들은 스펙트럼으로 보기보다는 이분법적으로 보는 걸 아주 좋아하죠.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개별적인 범주로 바라보는 걸 불편하게 생각해요. 뉴욕타임스와 MSNBC는 굉장히 다르지만, 그냥 반(反) 폭스뉴스로 보는 거죠.

재인용 출처는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 정책 리포트 2022년 6호 ‘미국 지역신문의 위기와 민주주의 시스템 유지를 위한 노력’.

좋은 지도자 선출이 점점 더 힘든 이유, 지역 언론이 쓰러지고 있다


민노: 현재 미국의 미디어 구조는 좋은 지도자를 선출하기에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보세요? 미국 생활도 오래 하셨고, 미국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계시니까요. 캡콜드 님의 평가와 해석이 궁금합니다.

캡콜드: 굉장히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죠. 가장 중요한 게 사실은 지역 언론이에요. 그 점은 한국에서도 갈수록 부각될 거로 보는데 말이죠. 지역 언론은 추상적 차원의 진영에 매몰되기보다는 정말 그 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구체적 내용에 기반한 뉴스들을 전달하기가 더 낫거든요. 거대 이슈 중심이 아니라 그 지역 이슈, 생활 밀착형 이슈를 주로 다루죠. 그래서 정책과 연계해서 이야기하기도 좋고, 훨씬 더 쉽단 말이죠. 지역에 사는 주민도 전국을 커버하는 미디어보다는 지역 언론에 관한 신뢰도가 아주 높고요. 그런데 그 지역 언론이 지난 15년 동안 꾸준히 망해가고 있단 말이에요.

민노: 네, 그랬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유겠지만, 그래도 그 지역언론의 쇠락 원인을 짚어주시죠.

캡콜드: 그간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사업성이 떨어졌던 거죠. 온라인과 모바일을 중심으로 언론이 돌아가면서 규모의 경제 구조를 갖춘 곳이 살아남고, 지역 언론은 점점 더 힘들어졌어요. 이제 점점 더 생활밀착형 지역 언론 기사는 사라지고, 상징적이고 음모론적이어서 소구대상이 넓은 기사들이 더 득세하는 거죠. 이런 현상이 미국 안에선 굉장히 심각하게 진행돼 왔고요. 그런 경향성이 뒤집힐 가능성도 없죠.

출처는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 정책 리포트 2022년 6호 ‘미국 지역신문의 위기와 민주주의 시스템 유지를 위한 노력’. 참고로 지도 오른쪽 상단 ‘Tow’는 ‘Two’의 오타인 것으로 보임(편집자).

가성비, 이분법적 진영 뉴스는 막장 드라마를 닮았다


민노: 음, 좀 암울하네요.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똑같은 질문을 우리나라에 한정해서 던진다면.

캡콜드: 우선 한국은 미국과는 사정이 크게 다르죠. 왜냐하면 애초에 지역 언론이 한번도 흥한 적이 없기 때문에…(웃음) (민노: 우리나라도 지역 언론이 꽤 많잖아요?) 물론 옥천신문 같은 예외적이고, 훌륭한 사례가 있긴 하죠.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그러니까 우선 한국은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는 해요. 지역의 삶과 밀착한 생활 밀착형 함의를 가진 정책, 그런 걸 구체적으로 계속 파고들고, 보완해야겠죠.

민노: 아주 공감합니다. 레거시 미디어를 보면, 누가 이기겠다, 어느 당이 이기겠네, 누구 파벌이 힘이 세네, 누가 감방을 갔네, 압수수색을 했네… 계속 그러고만 있으니까요. 지금 전국 단위에서 준비해야 할 과제들, 가령 인구 감소 문제나 환경 문제, 산재와 같은 노동 문제, 자영업 문제, 교육 문제도 산적해 있고, 또 지역 단위로도 준비해야 할 게 참 많은데 말이죠…

캡콜드: 그럼요. 구체적인 정책, 그 정책을 통해 어떤 계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하는 걸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하는데, 그런 건 취재하기도 어렵고, 그렇게 기사나 리포트를 만들어도 독자층은 한정되고 말이죠. 반면에 결론을 딱 내버린 뒤에 그걸 누구나 좋아하는 막장 드라마식으로 선악을 나눠서 계속 반복하면, 그야말로 가성비가 좋은 거죠.

막장드라마는 ‘(뇌)과학’이다. 그리고 막장드라마는 ‘가성비’가 보장된 장르(?)다. 그러니 누가 막장드라마를 포기할 수 있을까. 진영 이분법에 기반한 저품질 막장 뉴스도 마찬가지다.

좋은 컨텐츠를 우선은 ‘좀 모아야’ 한다


민노: 역시 아주 공감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항상 딜레마가 있다고 생각해오고 있어요. 말씀하신 생활밀착형 뉴스, 정책을 분석한 기사들, 이런 걸 누가 읽는가? 결국 비판적인 식자층이 읽을 거잖아요. 미디어 고관여자들이 읽을 텐데…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기사들이 필요 없는 사람들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는 거죠.

제가 종종 예를 들지만, 인권영화제나 여성영화제 같은 걸 하면, 인권이나 페미니즘에 관한 소양이 이미 높은 분들만 관객으로 참여하고, 오히려 그런 인권과 페미니즘에 관한 체험이 필요한 분들은 아예 그런 영화제에는 관심이 없는… 서로 엇갈리는…

캡콜드: 아주 오래된 문제죠. 그래서 포털이 적극적으로 정책이든 생활 조건이든 그런 것들을 다루는 양질의 프로젝트를 대문에서 보여줘야 한다는 식의 몇 가지 접근이 있긴했습니다. 그리고 전국 도서관에 양질의 미디어를 보급한다는 식의 접근도 있었는데, 모두 한계가 드러난 상태고요.

지금 상황에서 더 해볼 수 있는 것은, 이것도 명쾌한 답은 아니지만, 일단 그런 좋은 이야기들, 프로젝트들, 정책을 분석하고, 지역의 생활에 밀착한 좋은 콘텐츠를 우선은 좀 ‘모아야’ 해요. 모으고 분류해서 그런 양질의 컨텐츠를 찾는 사람들, 그런 컨텐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우선 그것부터 만들어줘야 한다는 거죠.

2023년 좋은 기사를 알려주마


민노: 그러면 유권자들에게 증오와 음모론에 치우친 그런 매체 그만 보고, 이런 것들 좀 봐라. 이게 더 맛있고, 건강에 좋다고 할 만한 기성언론이든 신생언론이든 그런 프로젝트나 보도, 생각나는 게 있을까요?

캡콜드: 2023년 기준으로는, 다음 보도를 뽑고 싶습니다.

한겨레, 씻을 권리 연재. 갈무리.

컨텐츠 효력 척도를 새로 정립할 것이다


민노: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자연스럽게 2024년 미디어계 이슈로 전망하신 개별 컨텐츠의 효과 측정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캡콜드: 지금까지 온라인 컨텐츠 측정 단위는 페이지뷰 또는 체류 시간이었습니다. 그걸로 개별 컨텐츠의 성과도 평가하고, 광고를 위한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했죠.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의 수익과 직접 연결됩니다. 하지만 그런 측정방식은 이제 대부분 한계에 부딪혔고, 2024년에는 좀 더 다양한 측정 방식이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민노: 예를 들면요?

캡콜드: 구글이라면 유튜브 같이 이용 형태가 다양하게 측정될 수 있는 것들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개발하겠죠. 뉴욕타임스 같은 개발 여유 있는 곳들도 자기 나름의 평가 기준을, 아무래도 자신이 만드는 컨텐츠의 성격이나 형식에 유리하도록 만들 것으로 봅니다. 특히 제가 주목하고 싶은 건 스트리밍 서비스, 우리나라에선 OTT 서비스로 더 익숙하게 불리는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컨텐츠 효력 측정 방식을 미디어 업계 전반이 벤치마킹하고 배워올 것 같다는 겁니다.

민노: 넷플릭스의 컨텐츠 세부 평가 척도를 다른 미디어업계에서 벤치마킹할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건 우선, 넷플릭스의 세부 평가 척도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캡콜드: 예를 들어서 첫 화에서 마지막 화까지 모두 정주행한 사람들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지, 첫 화 15분까지 본 시청자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지… 이런 아주 세부적인 척도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세부 척도를 다른 미디어 산업, 특히 언론계가 많이 배워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민노: 그런데 측정의 목적이요. 컨텐츠 품질 제고와 컨텐츠 판매 촉진, 이 두 가지 목적이 있을 것 같은데요.

캡콜드: 당연히 그런 면이 포함되고요. 컨텐츠 측정 방식이 진화해야 기존의 클릭에 기반을 둔 규모의 경제에 얾메여 있던 온라인 컨텐츠 산업 방식이 바뀔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민노: 예를 들면 A라는 매체는 평균 체류 시간이 다른 매체의 평균보다 훨씬 높다거나 그 중에서도 5분 이상 체류한 비중이 30%라든지 그런 걸 어필할 수 있다는 건가요?

캡콜드: 체류도 단순 적용을 하면 악용되기 쉽고… 예를 들면, 슬로우뉴스 기사는 조회수가 기사를 발행한 지 한 달이 지난 뒤에도 꾸준히 늘어난다든지 하는 것도 일종의 에버그린 영향력에 관한 홍보가 될 수 있죠. 지금은 단순히 몇 가지 예를 들었을 뿐이지만, 그런 컨텐츠 효과 측정 방식이 굉장히 다양하게 시도될 거라는 게 제 예측입니다.

민노: 그 예측의 근거는 뭘까요.

캡콜드: 규모 위주의 인터넷 매체 산업 패러다임이 확실하게 끝났습니다. 제가 최근에 바이스미디어나 버즈피드 등에 관해 이야기한 온라인 미디어의 쇠락이 바로 그걸 상징하죠.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라지고 있는 미디어들이 내세웠던 게 바이럴에 의한 규모의 경제였거든요. 그 시대가 끝났으니 이제 새로운 척도가 제안될 수밖에 없겠죠.

AI: 거대언어모델(LLM)는 ‘인용’을 전략적으로 생략했다


민노: 다음은 이야기할 게 많은 AI 시대의 미디어 노동 이슈입니다. 우선 헐리웃 작가, 배우 파업을 간단히 정리해보죠. 두 파업은 모두 종료했죠? 비교적 성공적으로?

캡콜드: 네, 비교적 성공적으로. 각 협회들 요구사항은 비교적 많이 관철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죠. 가장 표면적인 요구는 당연히 처우 개선이었는데, 근본적인 사안들 중 하나가 AI 문제였어요. 가령 배우협회는 3D 바디 스캔을 한 경우에 그 배우의 컴퓨터 버전을 인공지능화한 아바타 버전으로 영화에 출연시킬 때 어떤 식으로 보상을 할 것인가가 문제됐죠.

작가협회 역시 자기들이 쓴 글을 바탕으로 AI가 자동스크립트를 작성하면 이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이런 보상 체계가 전혀 갖춰지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텅 빈 부분’에 관해 선도적으로 뭔가 제도와 규정을 만들려고 했던 거죠.

민노: 헐리웃 파업의 여파로 ‘보도 노동’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예상하셨는데요.

캡콜드: 네, 보도 부문에서도 비슷한 분쟁이 발생할 것으로 보는 건 뉴욕타임스가 오픈AI와 MS를 고소했잖아요(참고: 뉴욕타임스 고소장 분석).

민노: 네, 저작권 문제로 고소했죠.

캡콜드: 그러니까 LLM(거대언어모델), 즉 언어 기반 인공지능의 가장 큰 문제가 사실은 그거잖아요. 마치 대학 초년생이 리포트를 쓰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가져다가 짜깁기한 뒤에 마치 자기 생각인 것처럼 이야기를 푼단 말이죠. 학습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지만, 애초에 누가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인용’을 통해 밝히고, 그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 연결점을 돌려야 하는데 그걸 안 하거든요. 그런 ‘인용 생략’이 사실 지금까지 언어 기반 인공지능 설계의 기본이었고요. 왜냐하면 그렇게 ‘인용’을 피해야 마치 사람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럴 듯하게 들리니까요.

민노: 핵심적인 지적 같습니다.

생성형 AI의 근본적인 문제는 ‘인용'(표절)을 전략적으로 생략해왔다는 점이다. 마치 자신(AI)이 생각해서 이야기한 것처럼.

AI: 저작권과 충돌? 정확히 말하면 ‘인용 문화’와 충돌한다


캡콜드: 정확히 표현하는 언어 기반 인공지능은 저작권과 충돌한다기보다는 ‘인용의 문화’와 충돌하는 거죠. 그 충돌을 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작권(법)을 동원하는 거고요.

민노: 이정환 대표는 슬로우레터에서 이 소식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요약하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 입장에서는 당연히 화가 많이 날 것 같은데요.

“18개월 동안 인터뷰 600건을 담아 쓴 탐사보도에 오픈AI의 기여는 없었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거의 그대로 베껴쓴 챗GPT의 답변을 공개하기도 했다. ”172년 투자에 무임승차했다”는 지적이다.

슬로우레터 12월 29알, “챗GPT, 뉴스 긁어가려면 돈 내라.”
LLM은 저작권과 충돌한다기보다는 ‘인용의 문화’와 충돌한다.

캡콜드: 그럼요. 그런데 당장은 돈 내놓으라는 문제만 부각되는 느낌이지만, 더 중요한 건 AI의 방향성 자체를 바꿔야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인용하고, 그걸 짜깁기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해왔다면, 이제는 제대로 인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꿔야죠. 지금은 뉴욕타임스라는 거대 언론사와 오픈AI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기업과 기업의 문제지만, 개인과 기업 사이에서도 똑같이 불거질 수 있는 문제거든요.

민노: 예를 들면요?

캡콜드: 예를 들면, 뉴욕타임스 자체에서 AI를 쓸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 개별 기자가 나에게 더 월급과 수당을 주지 않으면서 회사 차원에서 AI를 활용해서 기사를 쓰고 있다고 하면 문제가 생기는 거죠. 언론 산업은 늘 위기였지만, 이제 더 수익성이 쪼그라들고, 그 와중에 안정적인 일자리와 처우 개선을 위해서 좀 더 집단적인 차원에서 단결하고, 노동쟁의를 할 수밖에 없고요. 당장 미국에서는 워싱턴포스트 같은 대형 언론사에서도 그런 일들이 생기고 있고요. 그보다 더 작은 규모 언론사들에도 그런 문제들이 점차로 생기겠죠. 한국에서도 그런 문제가 분명히 불거질 것으로 봅니다.

AI: 한국은 딱 ‘우라까이’하는 신입기자 상황이다


민노: 한국에서는 그 양상이 어떨까요, 예상해보신다면요.

캡콜드: 아까 AI를 온라인 자료 짜깁기해서 리포트 쓰는 대학 초년생에 비유했는데요. 더 정확한 표현은 소위 ‘우라까이'(베끼기)하는 신입기자 같은 거죠. 남이 쓴 기사를 잔뜩 긁어 모아서 자기 이름으로 바이라인 걸어서 마치 자기가 쓴 새 기사인 것처럼 발행하는 것. (민노: 어뷰징 기사 작성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 꼴이 된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익숙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제 그런 문제가 더 불거질 수밖에 없는 게, 언론사들의 그런 식의 어뷰징, 우라까이는 한국이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거든요. 이런 양산형 기사도 이제 한계점, 임계점에 부딪히면서 기존에 어뷰징하던 걸 AI로 대체하면, 얄굳게도 기존에 어뷰징 혹은 단순 양산형 기사를 쓰던 분들이 이제 처우 개선을 위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The Daily Beast

민노: 그런데 대형 언론의 자회사 혹은 계약직으로 어뷰징하는 분들은 너무 ‘을’ 아니 ‘병’ ‘정’이잖아요? 그런 분들께서 힘을 모을 수 있을까요. 모은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까요?

캡콜드: 그 부분은 제가 쉽게 예측할 수도 단언할 수도 없겠습니다. 그런 구조적인 불만이 터지는 것보다는 뭔가 개별적인 화제성 사안이 변수가 되는 경우도 많고요. 어쨌든 각 나라마다 AI로 대체 가능한 수준의 저널리즘의 비중이 결국은 조금씩 다른 거니까요.

민노: 2024년은 미디어가 본격적으로 AI를 활용하는 원년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캡콜드: 지금 AI의 기술 수준으로도 한국의 많은 언론사들에서 쓰는 양산형 기사, 우라까이 기사, 어뷰징 기사들은 충분히 소화할 수 있고요. 그 이상으로 온갖 기상천외한 서비스들이 본격적으로 시도될 거라서요. 위기의식을 느끼는 분들이 많아질 거고, 그런 분들이 단체행동을 할 가능성도 크다고 봐요.

AI: 규제는 ‘교양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방식이어야 한다


민노: AI와 관련해선 마지막 토픽인 것 같은데요. AI를 통한 긍정적인 시도, 혁신적인 시도들도 생겨날까요? 어떻게 보세요.

캡콜드: 90%가 쓰레기라면 그 중 10% 정도는 굉장히 재밌는 정말 혁신적인 뭔가를 할 수도 있죠.

민노: 반대로 90%라는 압도적인 ‘봉이 김선달’ 같은 매체들이 나올 수도 있고, 그런 독자들을 현혹하는 시도들이 많아질 거라는 이야기도 되겠네요.

캡콜드: 그건 각오를 하고, 준비를 해서 미리미리 거를 수 있어야죠.

민노: 규제는 어떻게 보세요.

캡콜드: 규제를 미리 이야기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면이 있고요. 저는 AI의 학습 자체를 규제해서 못하게 한다는 건 굉장히 시대착오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AI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인가. 거기에 관해선 확고한 상이 있는데요. 제대로 된 학생, 제대로 된 시민을 성장할 수 있게 하듯 해야 한다고 봐요.

사회적 교양이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AI 규제를 굉장히 교육자적인 입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여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배웠다면 제대로 인용함으로서 적절히 맥락화해서 따지고, 하나의 판단을 내릴 때는 하나의 소스에서 적당히 요약하는 게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갈등과 충돌 지점을 분석해서 그 조건들을 고려하고… 그런 식으로 학습한 내용에 바탕해서 판단을 제공해야죠.

인공지능을 의인화하는 것에 관해선 경계하는 지적도 많고, 충분히 합리적인 지적이다. 다만 굳이 비유한다면, AI는 합리적인 시민을 키워내는 그 방식으로 진흥하고 규제해야 한다.

민노: AI가 생산하는 컨텐츠가 표절스러우면 안 된다?

캡콜드: 표절이라는 게 단순히 남의 것을 도둑질한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생각이 만들어진 ‘맥락’을 없애는 거거든요.

민노: 그래서 논문의 기본이 인용이고, 학문의 기본이 인용이죠.

캡콜드: 모든 사람이 논문쓰듯이 인용에 엄격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이 생각이 어떻게 어떤 맥락에서 나온 건지, 어떤 경로에서 나온 건지 다시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 그 과정을 따라갈 수 있다면 미흡한 고리들을 보완하기도 쉽고요.

민노: 사유의 뿌리, 생각의 연혁 같은 건데 그걸 지우면 안 되죠.

스트리밍(OTT) 산업의 성숙기 도래, 합종연횡이 활발할 것이다


민노: 스트리밍 서비스 산업(우리나라에서는 흔히 OTT 산업으로 불리는 그것)의 합종연횡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요.

캡콜드: 우선 스트리밍 산업은 이제 사실상 포화상태입니다. 이게 더는 가입자를 늘리기 쉽지 않을 거라는 단순한 문제라기보다는 2023년까지 미국, 세계로 범위를 확대하더라도 여기저기 이 방송사 저 방송사 다 스트리밍 서비스 산업에 뛰어들어서 이제 다들 비슷한 방식으로 사업을 하고 있어요. 사업 방식이 공통적인 방식으로 수렴하고 있는 거죠. 프리미엄 등급은 광고 없이 시청이 가능하고, 저가 모델은 광고를 일정하게 포함해야 하는 그런 방식.

이제 스트리밍(OTT) 산업은 춘추전국의 백가쟁명을 마치고, 성숙기 혹은 노쇠기에 접어들었다. 이미지는 SK하이닉스 뉴스룸 제공.

민노: 산업의 재편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요.

캡콜드: 결국 넷플릭스라는 거인이 살아남고, 나머지들 가령 HBO와 디즈니플러스 정도가 2티어급으로 정착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1티어인 넷플릭스보다는 크게 밀리는 2등 그룹이죠. 여기에 모든 업체들에 공통의 문제는 제작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문제입니다. 요금제만으로는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안 되고, 그렇다고 회원들에게 OTT 서비스 안에서 광고를 보게 만들면 그건 기존 케이블TV와 모델이 똑같아져서 차별성이 훼손되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그 어려움을 타계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령 미국의 이야기지만, HBO가 넷플릭스와 계약을 체결했단 말이죠. 이제 넷플릭스에서도 HBO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거죠. 즉, 기존에는 HBO맥스에 가입해야만 볼 수 있던 상당수 컨텐츠를 이제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는 거죠. 그리고 회사들 사이에서 인수합병도 더욱더 많은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큰데,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2023년 12월 5일 티빙과 웨이브가 상호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요. 그런 식으로 OTT 산업이 이제는 하나의 성숙기에 접어들고 어쩌면 노쇠한 산업이 되면서, 그 안에서 더욱 다양한 합종연횡이 시도될 거고, 그러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채널 방식으로서의 다양성은 사라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죠.

당장 미국 안에서만 하더라도 디즈니와 훌루가 2024년 서비스를 합칠 예정이고요. 아무래도 훌루는 별도 채널로서의 파워가 점점 축소되고 있던 형편이었으니까요. 그런 상태에서 채널을 유지하고 있기는 했는데, 2024년에는 그 채널마저 사라지고, 그 컨텐츠만 디즈니가 흡수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하기로 한 거죠.

민노: 넷플릭스의 독주 체제는 당분간 이어질까요?

캡콜드: 뭐 그렇죠. 넷플릭스가 군소 업체를 흡수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겠죠. 넷플릭스가 군소업체 컨텐츠 판권을 넘겨받는 식으로.

미디어 춘추전국: 지상파 v. 종이신문 v. 유튜버 v. 온라인 v. 개인들


민노: 지상파와 종이신문, 종편 등의 레거시 미디어와 구글이라는 사기업이 컨트롤하는 지배적인 플랫폼으로서 유튜브, 그리고 오마이뉴스와 같은 온라인 매체 또 뭐가 있을까요. (캡콜드: 소셜미디어에서 활동하는 개인들?) 네, 그런 개인들. 미디어 영향력의 관점에서 전망하면 어떨 것 같으세요?

캡콜드: 어떤 소재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파워 구도는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심층탐사보도는 여전히 레거시 미디어들이 강할 테고요. (민노: 지상파와 종이신문?) 지상파보다도 종이신문이 아무래도 강점이 있는 거고, 방송사 탐사보도팀, 가령 그알 팀 같은 경우도 워낙 잘하던 일이니까 그런 노하우를 유튜버가 아무리 기업화했다고 해도 갑자기 따라잡기는 어려울 거고요. 어떤 문제에 관해 전문가들을 만나고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건 기존 신문사들이 훨씬 잘하고요. 그런 것들 말고, 어떤 사안, 사건에 관한 코멘터리, 의견 제시는 유튜버들을 이제 더는 따라잡을 수가 없을 거고요.

유튜브 현상은 사실 대단히 신기하고 새로운 건 아니에요. 이미 80년대 말, 90년 초 미국에서 벌어졌던 일이죠. 다만 그때 매체 형식은 유튜브 동영상이 아니라 라디오였지만요. 당시에는 2시간 동안 의견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방식으로 진영 안에서 영향력을 확보했고, 사람들을 결집해냈어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의제를 확산시켰죠. 같은 구조와 방식이 팟캐스트로, 유튜브로 바뀌어서 반복되는 것으로 보고요.

더불어 확증편향적 행동과 사람을 결집하고, 그런 의견과 생각을 확산시키는 능력과 영향력은 소셜미디어, 특히 우리나라 환경에는 취향, 취미 커뮤니티가 특화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봐요. 그렇게 각각의 특징이 있는 거죠.

온라인 저널리즘의 글루미 선데이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민노: 온라인 저널리즘은 어떨 것으로 보십니까. 우울할 것 같기는 한데 말이죠.

캡콜드: 지금도 영향력이 많이 축소했지만, 2024년도 전망이 밝지는 않죠. 우선 당장 규모의 경제 관점에서 보면 인터넷 컨텐츠 사업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관심의 크기를 키워서 수익을 만드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는데, 그게 더는 유지할 수 없다는 게 최근 2~3년 동안의 큰 결론이고요.

그렇다면 규모가 아니라 ‘충성도’의 관점에서 충성 구독자를 확보해야 하는데, 팬덤화한 진양에 복무하는 것을 피하면서 그런 충성도 높은 독자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고요. 그 두 가지 요인으로 2024년도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구글 미디어 관련 행사에서 바이스에 관해 강연 중인 바이스 미디어 설립자 겸 CEO 셰인 스미스. 2014년 4월 30일 당시 모습. 뉴욕타임스를 긴장하게 했던 바이스 미디어가 2023년 파산했다.

정보 전달, 텍스트가 동영상보다 효율적이다 (장점 1.)


민노: 유튜브로 대표되는 동영상이 특히 2030이하 세대에는 지배적인 형식이 됐는데요. 유튜브 동영상을 1.5배속으로 돌려보면서 자신의 관심사에 관한 정보와 정서적인 만족을 충족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소비층은 텍스트와는 점점 더 멀어질 걸로 보이는데요. 동영상은 별론으로 텍스트는 그래도 힘을 가질 것으로 보세요. 그 점이 궁금합니다.

캡콜드: TV가 처음 등장하고 대중화횄을 때 평론가들은 사람들이 더는 책을 안 읽을 것 같다고 걱정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진 않았잖아요. 그게 이미 70년대~80년대 이야기인데 그 레파토리의 반복이라고 봐요. 왜냐면 텍스트로 읽을 때 더 잘 전달되는 정보가 있으니까요. 텍스트로 전달하는 게 효율적인 정보가 있고, 그런 정보들이 아주 필요한 정보라는 걸 보여줄 수밖에 없는 거죠.

민노: 젊은 친구들에겐 어떻게 소구할 수 있을까요?

캡콜드: 잘 작성된 텍스트는 동영상보다 더 효과적으로 더 복합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영상 문법은 즉각적인 반응과 쾌감을 이끌어내긴 좋지만, 같은 정보라면, 그리고 복잡한 문제라면 텍스트에 비해 훨씬 더 길어진단 말이죠. 이해당사자를 교차편집해야 하고, 앞 사람의 맥락을 고려해야 하고… 그런 관점에서 비효율적이고, 불친절해질 수 있어요. 반면에 텍스트로는 더 경제적이고 더 쉽게 접근이 가능하죠. 이렇게 매체 형식에 따라 서로 다른 효용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걸 젊은 층에 계속 어필해야죠.

민노: 젊은 친구들이 텍스트의 장점을 안다고 해도, ‘노잼? 즐!’ 이러면서 회피할 수 있잖아요. 공교육에서 해야하나 싶을 생각도 들고요.

캡콜드: 공교육에서 접근하면 더 거부할 것 같고요. 지금도 뭐 온갖 논술시험을 보지만, 정상적인 논술교육 토론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는 않잖아요. ‘시험을 위한 시험’만 있고요. 본질을 강조할 수밖에는 없다고 봐요. 제대로 사안을 파악하려면 제대로 된 논리적 검증이 필요하다. 제대로 사안을 파악하지 못하면 들러리를 설 수밖에 없다. 그걸 강조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1.5배속 동영상 소비보다 전략적 텍스트 읽기가 더 역동적이다 (장점 2.)


민노: 컨텐츠 폭주 시대에 유행하는 소비 방식 중에서는 1.5배속~2배속으로 유튜브는 물론이고, 드라마나 영화까지 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캡콜드: 볼 건 많고, 시간은 없으니까요.

민노: 제 경우를 말하면, 저는 유튜브 채널, 주로 제 취미인 해외축구 해설이나 수영, 고전 오디오북이나 플라톤 아카데미 류의 강의 같은 컨텐츠에서는 1.5배~2배속을 거의 사용해왔지만,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대중예술 분야에서는 다소 저항감을 느껴왔는데요. 최근에 사극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 부족을 구실로 1.5배속으로 봤는데, 별다른 정서적 저항감 없이 재밌게 잘 봤습니다. (웃음)

캡콜드: 그 장르 그 문법에 익숙하면 1.5배속이든 2배속이든 큰 문제는 없겠죠. 저는 소비 속도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다만 제가 추천하는 건 텍스트로 읽으면 2배속이든 3배속이든 5배속이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읽기의 장점, 텍스트의 장점이 그런 거거든요.

영상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속도의 통제력을 매체 쪽이 가지고 가지만, 텍스트의 경우에는 통제력을 온전히 자기 자신이 가질 수 있거든요. 아주 천천히 읽을 수도 있고, 어떤 부분은 굉장히 빨리 읽을 수도 있고요. 영상에서 사람들이 주도권, 통제력을 가질 수 있는 건 영상을 돌리는 속도뿐이지만요. 더 빠르게 읽기도 하고, 더 느리게 읽기도 하고, 스킵해서 넘어가기도 하고, 돌아가서 비교하기도 쉽고,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요.

책읽기 혹은 텍스트 읽기가 오히려 동영상 소비보다 더 전략적으로 능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

민노: 아주 인상적인 지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캡콜드 님의 경우에 일상에서 정보를 얻는 매체로 영상과 텍스트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요? 궁금하네요.

캡콜드: 제 경우에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걸 제외하고 보면 거의 전부 텍스트를 통해 정보를 습득합니다.

민노: 텍스트가 높을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의외네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캡콜드: 1.5배속, 2배속으로 돌리기가 귀찮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시간 단위라면 정보 전달력과 정보 밀도에서 동영상이 훨씬 떨어지니까요.

하지만 정서적 감정적 전달은 효과적이지 않다 (단점.)


민노: ‘더 주도적으로 주체적으로 자신의 전략으로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정리해도 될까요? 말씀처럼 동영상은 소비하는 사람이 다소 수동적이 돼서 받아먹는 느낌이 좀 더 강하죠. 텍스트 ‘읽기’가 동영상 ‘보기’보다 정보의 습득이라는 관점에선 장점이 많은데 왜 점점 더 동영상이 득세할까요?

캡콜드: 한 가지 단점이 있어요. 텍스트를 읽는 방식은 아무래도 감정 전달, 정서적인 전달은 효과적이지 않아요. 정서적인 교감이나 만족감을 느끼고 싶은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한 경우에는 동영상보다는 텍스트가 당연히 낫죠.

민노: 말씀하신 것 외에도 동영상을 보거나 딴짓하면서 듣는 행위는 뭔가 나의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투여, 투사하는 느낌이 덜한데, 책을 읽고 기사를 읽는 행위는 뭔가 딴짓을 못하면서 나의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투여하고 투사하는 느낌이 강한 것 같기도 합니다.

캡콜드: 노동력을 들여야 하는 거죠. 그 정도 노동력도 없이 날로 먹으려고 하면 그게 오히려 도둑놈 심보고요.

내가 좋아하는 평론가가 같은 내용으로 말하더라도/쓰더라도 동영상이 아무래도 책/온라인 텍스트보다는 더 정서적인 교감과 감정적인 만족감이 크다.

선택 장애의 시대, 폭주하는 컨텐츠 속에서 컨텐츠 찾기


민노: 한편으로 OTT를 통해 생산되고 유통되는 컨텐츠, 유튜브를 통해 생산 유통되는 컨텐츠가 거의 무한대라고 해도 좋을만큼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옥석을 가릴 수 있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좋은 컨텐츠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시간은 한정적인데, 컨텐츠는 너무 많은 환경,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캡콜드: 제가 실제로 하고 있는 노하우를 말할 수밖에 없는데요. 저는 해당 플랫폼에서 직접 추천하는 엔진을 믿지 않습니다. 가령 넷플릭스라면, 넷플릭스에서 메인 첫 화면에 띄우는 컨텐츠, 넷플릭스의 순위 시스템이 추천하는 컨텐츠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려고 하죠. 왜냐하면, 모든 플랫폼 추천 알고리즘은 그 서비스 안에서 가장 재밌고, 자극적인 걸 추천하게 돼 있단 말이죠.

볼 작품은 많고, 시간은 없다. 결론은 선택 장애.

민노: 아무래도 많은 제작비가 투여된, 인기가 많은 대중적인 컨텐츠를 추천하겠죠.

캡콜드: 네, 그래서 저는 A라는 서비스에서 어떤 컨텐츠를 선택하려면 A 바깥의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제가 좀 구식이라서, 가령 넷플릭스의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선택하려고 할 때, 아무래도 레거시 미디어를 참고하죠. 가령 뉴욕타임스나 버라이어티를 통해 제가 관심을 가질만한 작품들을 먼저 추린 뒤에 넷플릭스에 다시 와서 해당 작품을 보는 방식으로 하죠.

민노: 그러시군요. 저는 IMDB 평점을 참고하는 편입니다.

캡콜드: 네, 그래도 되고요. 어쨌든 강조하고 싶은 건 서비스 안의 추천 시스템은 그 서비스에 빠져들고, 중독될 위험성이 있다. 아무래도 해당 서비스가 그렇게 설계한 거니까요. 그러니까 바깥 서비스에서 작품을 선택한 뒤에 봐라. 그 방식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MBC, YTN, KBS2… 왜 정부는 다 팔고 싶어할까


민노: 현 정부에서는 YTN도 MBC도 KBS2도 모두 사영화하고 싶어합니다. 왜 이렇게 다 팔고 싶어할까요? 이거 어떻게 될 걸로 보십니까.

캡콜드: 상당히 성공할 거로 봅니다. 실제로 현재도 완전히 공적 지배구조라기보다는 혼합적 지배구조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애초에 그 활동 원리가 완전히 공공성 위주로 간 적도 없어요. 공적 성격이 일정하게 유지됐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들 언론사를 완전히 민영화 혹은 사영화한다고 했을 때 거기에 대해 적당한 방어논리가 사실은 없거든요. 그래서 민영화/사영화 드라이브가 상당히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요. 세계적으로도 시장 논리에 맡기는 게 최선이라는 식으로 우경화하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관찰되기도 합니다. 물론 정권 차원에서는 민영화해야 더 ‘관리’하기가 쉽기도 하고요.

MBC 지분 구조.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은 1988년 12월 31일 방송문화진흥회법에 근거해 설립한 비영리공익법인이다. 정수장학회는 5.16 쿠테타 이후 국가통치기구가 된 국가재건최고회의(문교사회위원회)가 1962년 연구보고(당시 국무회의에 해당) ‘5.16 장학회 설립’안을 바탕으로 설립한 단체다. 전신은 1958년 김지태가 세운 부일장학회인데, 농지법 위반, 탈세, 밀수 등을 무마하기 위해 지분을 모두 넘겼다. 1962년 5.16장학회로 설립했지만, 1979년 박정희 사후, 박정희의 ‘정’, 육영수의 ‘수’를 따서 1982년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민노: 아무래도 정권 차원에서는 민영 언론을 컨트롤하기가 더 쉽겠죠.

캡콜드: 정부 광고에 의존하는 언론사도 많고, 아무래도 정권으로서는 민영일수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도 쉽죠.

민노: 현재의 종편들도 노태우 정권의 ‘선물'(시혜적 특혜)인데 말이죠. 그런 특혜에 기반을 둔 언론 권력의 구조화를 어떤 방식으로든 조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나요.

캡콜드: 이제와서 다른 명분 없이 조선TV, 채널A를 폐지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민노: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이 그걸 시도했다고 보세요? 물론 현재 재판 중인 사건이긴 하지만요.

캡콜드: 나름으로는 시도한 것에 가깝다고는 보는데요. 저는 거기에 관해선 한 가지 기준밖에 없다고 봐요. 하나의 동일한 언론 윤리, 그 규범을 모두에게 적용하는 것. 모두에게 똑같이 강제하는 것. 문제는 그 규제가 너무 솜방망이라는 게 문제죠. 어느 언론사의 개별 프로그램이나 기사가 문제일 때 거기에 관해 적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하는데, 그 대가라는 게 무슨 방송 허가권을 철회하느니 마니 하는 ‘너무 큰 처벌’인 경우에는 오히려 그냥 넘어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좀 더 정교하게 개별적인 문제 사안에 관해 큰 벌금이나 징계를 내릴 수 있는 방식으로 정밀한 규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방송사들이 좋은 방송을 만들 이유도 없고, 언론 윤리를 지킬 이유도 없죠. 그냥 대충 만들어 놓고 핑계 대면서 버티면 되니까요.

2024, 가장 우려하는 것: 우리는 악마를 학습했다


민노: 이야기가 또 길어졌는데요. 2024년 가장 우려하는 것과 가장 기대하는 것, 하나씩만 말씀해주신다면요.

캡콜드: 가장 우려되는 것은 2023년의 악화 심화 버전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더 진영화하고, 더 선정적으로 하면 돈도 벌고, 힘도 세질 수 있다는 걸 23년에 배웠잖아요. 그 부작용이 혹독했죠. 커뮤니티 중심으로 실제 실력행사를 통해 효능감을 느끼기도 했고요. 그게 2024년의 절망 편이고요.

메이플스토리 집게손 논란에 참전한 류호정(정의당 의원)의 헛발질. 1) 집게 손가락과 일베 손 모양 마크는 아주 다르다. 집게 손가락은 누구나 흔히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포즈고, 일베 손 모양 마크는 고도의 ‘병맛’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손동작이다. 2) 기본 사실에 관한 팩트체크가 되지 않은 발언. 3) GS 편의점 해프닝을 겪고도(알았다면, 당연히 알았을 위치인데) 저런 발언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정치적 욕망은 영혼을 잠식한다…

2024, 가장 기대하는 것: 우리는 충분히 환멸했다


민노: 2024년의 희망 편은 뭘까요.

(…침묵….)

캡콜드: 사람들이 너무 피곤하다. 이제 좀 다른 방식으로 좀 더 잘 미디어를 써보고 싶다. 그런 것들을 마침내 조금씩 깨달아 갈 수 있다면 좋겠죠. 예를 들어 트위터에서 블루스카이로 넘어 온 많은 사용자들이, 나는 이제 내 소셜미디어에 내 감정을 내 분노를 터뜨리기만 하기보다는 고양이 사진도 많이 올리고, 푸른 하늘 사진도 많이 올리고, 그러면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도 많이 올리겠다 다짐을 하고 계신단 말이죠. 아주 좋은 다짐이라고 봐요.

이제 소셜미디어가 분노를 증폭하는 증오의 실험실이 될 수 있다는 건 충분히 보고 겪었으니까, 좀 다른 방식으로 가능성을 찾아보겠다고 일종의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 꽤 많다는 것. 그게 희망이라고 할 수 있네요.

관 번호 104: 실현 불가능한 이 증오가 실현 가능한 사랑이 될 때까지
검시 번호 A-13: 그 비가시적 사랑이 비로서 가시적 부활이 될 때까지
묘지 번호 115: 이름 없는 그대여

황지우, ‘호명’ 중에서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사업장인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한국발전기술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고(故)김용균(1994년~2018년, 향년 24세). 김용균의 죽음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채 2년이 되지 않아 같은 사업장에서 하청업체 운전기사가 2톤 무게의 스크루에 깔려 사망했다. 그리고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이 제정됐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 그리고 민주당까지 합세해서 법을 누더기로 만들고, 2024년 1월로 예정됐던 50인 미만 사업장의 법 적용도 계속해서 미루고 있다. 굳이 증오하고 분노하려면 제대로 된 상대에게 하면 좋다. 참고: 김용균의 죽음으로 만든 법이 후퇴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사회적 뒤섞임… 할 필요 없어요


민노: 문득 든 생각인데요. 소셜미디어 상에서 유독 까칠하고 편협한 모습을 보여주는 분들이 많은데요.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끼리 모여서 그런 모습이 된다고들 하잖습니까? 그런 확증편향과 독선, 배타성에 관해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캡콜드: 한 때는 저도 비슷한 이들끼리 뭉치다보면 확증편향이 커지니 다양한 정보와 의견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요. 미디어 환경이 현재 버전에 도달하면서 좀 달라졌습니다. 현재 미디어 구조는 아무리 필터링을 열심히 해도 자신의 소셜미디어 ‘바깥’ 정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배타성은 뭘 배척하는지는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스스로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정보 출처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과는 별개의 과제에 가까워졌습니다. 고로 소셜에서도, 아무리 봐도 제정신 아닌 생각까지 일부러 사회적 뒤섞임을 추구하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일부러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으니 블락과 뮤트를 적절히 사용하시고 (웃음), 그래도 논의할 가치가 있는 견해는 어쨌든 흘러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민노: 네, 아주 공감합니다. 저도 소셜미디어는 좀 울렁증이 생기고 힘들어서 잘 들어가지 못하는 편인데 말이죠… 그냥 조금씩만 더 친절하고 따뜻하게 말하면 좋을 텐데… (웃음)

가끔 사람보다 동물이 낫다.

보유: ‘마약과의 전쟁’과 이선균 그리고 미디어

윤석열과 한동훈의 ‘마약과의 전쟁’


1년 넘게 마약과 전쟁 중이었던(?) 한동훈(전 법무부장관, 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정치적 음모론은 배제하고…


민노: 지금까지 2024년 미디어 부문을 전망했습니다. 끝으로 하나만 더 조심스럽게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선균 자살에 관해서인데요. 정치적 음모론을 배제하고, 이선균 자살은 ‘마약과의 전쟁’ 연장선에 있는 사건으로 볼 수 있을까요.

캡콜드: 사회담론의 차원에서 생각할 때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프레임은 마약 ‘청정국 만들기’ 같은 표어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자극적이죠. 그런 의미에서 윤 정부뿐만 아니라 여러 정부들이 마약과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등의 프레임을 가져다 썼습니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라서, 미국이 1980년대에 그랬고, 2016년 필리핀 두테르테 정권이 집권하면서 마약을 사회악으로 규정하여 화끈하게 사회악을 일소하는 정의의 수호자 이미지를 만드는 기법으로 썼죠.

민노: 마약 범죄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럴 때마다 연예인들이 경찰에 붙들려가면서 신문 1면을 장식했던 기억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필리핀은 정말 심했죠.

두테르테(재임: 2016년 6월 30일 ~ 2022년 6월 30일)는 집권하자마자 공약인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그 과정에서 최소 6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엠네스티 코리아(유튜브), 체포보다 살인, 필리핀 ‘마약과의 전쟁’, 2017. 2. 3. 중 캡처.

메커니즘: 주적(예: 연예인) 때려잡기 게임


캡콜드: 기본 메커니즘은 같습니다. 주적을 화끈하게 때려잡는다! 라는 것이 전쟁이니까요. 그렇게 무언가를 때려잡아야 한다면, 대상이 뚜렷해야 해서, 널리 알려진 연예인이 아주 효과적인 대상입니다. 청소년 입시 고통을 완화하거나 사회 불평등을 개선하는 추상적인 것보다는 훨씬 더 눈에 보이고 업적 같으니까요.

민노: 맞습니다. 가령 신중현이나 조용필 같은 위대한 뮤지션들도 대마초로 붙들려 가고 그랬었죠. 활동도 정지당하고요.

캡콜드: 연예인의 유명세, 상징가치를 악용하는 거죠. 그 연예인들을 때려잡아 넣었다고 하면 아,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구나! 하는 선전효과를 쉽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오래되고 흔한 접근 방식인데, 오늘날엔 그게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걸 다들 알 만큼 아는 세상이 된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드래곤이나 이선균 건에서 그런 관행이 반복됐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975년 12월 4일 자 경향신문 갈무리.

불량한 품질의 이선균 마약 보도… 그저 언론 관행이다


민노: 무수히 많은 언론이 정말 풀빵찍듯 이선균 마약 수사 관련 보도를 찍어냈지만, 가령 KBS와 JTBC의 ‘단독’은, 그 매체에 관한 기대를 고려하면, 뉴스상품으로서의 품질이 아주 불량하다고 봅니다. 관련 피의자 일방의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이선균 입장에서보면 ‘망신주기’식으로 보도했죠.

캡콜드: 품질을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KBS든 JTBC든 나름으로는 마약사범과 관련한 수사상 단서를 폭로함으로써 사회 정의에 기여한다고 생각했을 거로 저는 봐요. (= KBS 경우에 박민 사장으로 11월 새로 취임한 것과 관련 있을까요? 그건 너무 억측일까요?) 그건 억측이라고 생각하고요. 그저 언론의 관행이라고 봐요.

이선균의 사적 대화를 왜 KBS 시청자가 알아야 하는가? 이 대화가 마약 범죄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출처는 KBS, 유흥업소 실장 “5차례 투약” 진술…이선균 측 “허위 주장”. 2023.11.25.

캡콜드: KBS 보도를 보면 그 기본 형식은 익숙히 봐왔던 거라는 거죠. 범죄 피의자가 있고, 그 피의자의 범죄성을 입증하는 녹취 증거가 나왔다. 단독, 특종이다!! 딱 그 모양새라서, 리포트 문장을 보면 꽤 건조해요. 70년대80년대의 범죄자 때려잡기 보도 관행이 현재의 미디어 환경과 맞물려서, 소위 말하는 대중에 의한 인격 살해로 집단 매장, 사회적인 낙인 찍기로 빠르게 퍼지는 거죠.

불량 보도 책임자는 기자 개인 아니라 그 언론사 시스템이다


민노: 궁금한 게, 해당 단독을 쓴 KBS 기자, JTBC 기자요. 그런 기사를 쓰면 누군가(이선균)는 정말 혹독한 여론 재판을 당할 거라는 일말의 죄의식, 긴장 같은 게 있었을 걸로 보세요? 아니면 그냥 관행적으로 이런 소스, 취재원을 확보하면 땡큐하면서, 내가 무슨 특별히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랬을 걸로 보세요.

캡콜드: 기자 개인이 아니라 KBS와 JTBC는 뉴스룸 시스템이니까요. 1인 블로거나 작은 단위의 유튜버 그룹, 가로세로연구소와 같은 선정주의 매체와는 구분해야 한다고 보고요. 조직으로서의 의사결정구조가 있으니까요. 그 과정을 거쳤을 테고, 일선 기자에서 보도국장까지, 그 시스템으로 그 기자와 리포트가 나갈 수 있도록 허가했으니 그 사람들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민노: 그 시스템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씀에 아주 동의합니다.

캡콜드: 네, 이 문제는 일선 기자 한 명이 문제가 아니라 그 조직에서의 언론 윤리가 기본적으로 잘못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지목해야 하는 거죠.

너무 가혹한 유명세… 적극 보도는 공적 권력자에 한정해 허용해야 한다


민노: 미국이라면 어땠을까요. 폭스뉴스 같은 곳은 당연히 보도할 텐지만, 뉴욕타임스도 이런 아이템을 보도했을까요?

캡콜드: 보도했을 수도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서 트럼프 정권에서 세금 보고 내역이 유출됐을 때 그걸 대서특필한 적 있거든요.

민노: 제 질문의 요지는 KBS나 JTBC 보도는 ‘단독’을 달고 나오긴 했지만, 그 녹취가 무슨 스모킹건도 아니고, 그냥 냄새만 피우는 아주 약한 정황 근거에 불과했잖아요. 그것도 사적 대화였고요.

캡콜드: 정황 근거지만, 녹취록이면 그래도 단서이긴 하니까요. 저는 그런 간접 증거나 정황을 보도하는 게 문제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누구에 관해서 그런 보도를 하는가에 핵심이 있다고 봐요.

민노: 공적 인물론에 기댄 보도 관행에서 연예인을 제외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캡콜드: 그렇죠. 우리가 그 정도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공적 함의가 있는 사람인가. 이선균은 그런 사람도 아니죠. 그런 공적 함의를 대표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정치인, 기업 고위 임원이나 대표, 대학연구소의 헤드급 교수공적 권력작용이나 권력적 위계가 작동하는 경우에는 좀 더 적극적인 보도가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선균은 그냥 연예인일뿐이잖아요.

민노: 그렇죠. 유명세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도 그 대가가 무거운 세금이죠.

캡콜드: 권력의 크기가 보도를 허용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유명세의 크기가 아니라.

‘마약과의 전쟁’의 책임… 물고 뜯고 즐기는 잔인한 사회


민노: 윤석열, 한동훈의 마약과의 전쟁은 얼마나 책임이 있다고 보십니까.

캡콜드: 윤석열 정부가 이선균을 죽였다거나 한동훈이 주범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약이고요. 다만 ‘마약과의 전쟁’이 이선균의 비극적인 자살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몰고 갔다는 거죠.

민노: 이선균 이야기가 좀 길어졌지만, 몇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정연순 변호사 말씀에 아주 공감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정이 많은 사람들인데요. 왜 언제부터 어떤 구조와 환경, 메커니즘 속에서 이렇게 잔인해졌을까… 그 잔인함을 만드는 미디어 환경, 담론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그런 공범 구조 속에 당연히 존재하고 있고요.

우리 사회는 집단적 비난과 사회적 처형에 능하다는 것이다. 비범죄와 범죄를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판결이 확정되기 이전에도 말을 아끼지 않는다. 저마다 확증편향이 너무도 강하기 때문이다.

판결이 내려지면 판결과 다른 사실이 동시에 또는 따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범죄자의 인권은 필요 없다는 말이 인터넷에 넘쳐흐른다. 인권위법은 ‘전과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데, 범죄를 저지른 자에 찍힌 낙인은 결코 지워져서는 안 된다. 아니, 요즘에는 그게 굳이 범죄일 필요까지도 없다. 유독 연예인에게 시시때때로 공공정책을 책임지는 이보다 더 높은 고결함을 요구하는데, 그건 대중의 취향과 입맛에 따른 것일 뿐 특별한 근거가 없다.

한국 사회는 잔인해졌다. 모두가 알 권리라는 미명하에 물고 뜯고 즐긴다. 우리는 알 필요가 없는, 아니 알아서는 안 될 정보에 대해 굳이 저항하지 않는다. 그러지 말라는 목소리는 잠시, 미약하게 나타났다 사라질 뿐이다. 답과 해결을 찾는다면, 저마다 ‘나로부터’일 것인데, 정말 자신이 없다.

정연순, 알 권리? 물고 뜯고 즐기는… 잔인한 한국 사회, 슬로우뉴스 2023. 12. 29.
1919년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인종 폭동 당시 신체가 절단당하고 불태워진 고문과 집단에 의한 피살자 윌 브라운. 잔인한 폭행으로 죽어간 윌 브라운의 모습을 담은 엽서와 사진은 미국에서 인기 있는 기념품이었다. 불과 100여 년 전인 미국의 1919년 당시 모습. 사진 속에서 남자들이 웃고 있다.

캡콜드: 네, 하지만 그런 잔인함이 한국인, 한국 사회만의 독특한 특성이라고 보지는 않고요. 일반적으로 대중이 힘을 합쳐 악을 처단하는 그런 효능감을 찾는 동기는 어디에나 있다고 봐요. 현재의 미디어 환경은 그런 효능감을 극대화하죠. 그러다보니 더 자극적으로 더 빨리 더 화끈하게 때려잡는 걸 추구하고, 전체 미디어 산업도 그 사회도 거기에 맞춰 움직이고요. 예를 들면 이선균 마약 의혹 보도가 터졌다면, 예전이라면 광고 취소든 영화 미개봉이든 간에 좀 더 시간도 걸리고, 그 과정까지에서 다른 증거도 나와서 뭔가 조율되는 절차라는 게 있었을 텐데, 지금은 보통 짧게는 하루이틀, 길게는 한 달이면 다 결판이 나버린단 말이죠. 파장과 피해는 큰데, 결정은 훨씬 더 신속하고, 게다가 신중하지 못하죠.

민노: 너무 안타까워서 이야기가 좀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습니다…

이선균의 죽음, 과거 아니라 반복될 미래… 그 모든 게 연결된 문제다


캡콜드: 이선균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사건의 기본적인 단죄 추구 패턴은 최근 넥슨 집게 손가락 사건이나 몇 해 전 집게 손가락 사태의 기본적인 전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거든요. 이런 비극적인 사건, 부당하고 공정하지 않은 일은 현재 사람들이 정보를 흡수하고, 재확산하는 방식에서 또 반복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고, 현재 미디어 환경, 특히 소셜 미디어, 취향과 취미 커뮤니티의 구조, 언론 산업의 수익 구조와 관심 유도 기제들, 그 모든 게 다 연결된 문제죠…

민노: 맞습니다. 좀 퉁친 표현이지만, 다 공범자 구조 속에서 망신주기식 수사와 받아쓰기식 보도, 그리고 아무 생각 없는 확산과 재생산을 통한 잔인한 사회적 처형… 그게 구조화된 거죠. 그런데요.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요. 가령 마약과 알코올로 오랫동안 고생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지금은 마약 문제를 극복하고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배우가 됐는데 말이죠.

마약으로 1999년 3년형 판결받아 15개월 복역하고 보석금으로 풀러났다. 그 후로도 온갖 마약 관련 문제로 구설에 올랐다. 한 마디로 구제불능. 하지만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디즈니 제공.

마약은 범죄보다는 질병, 공중보건 문제다 (미국을 참고하자)


캡콜드: 미국이라면 언제 일어났느냐에 따라 달랐겠죠. 레이건 집권기인 80년대였다면, 그때는 마약과의 전쟁이 한창 기치를 올리고 있을 때고, 문화적 우익화가 득세하던 시기라서 아주 그냥 대서특필하고 매장하고 그랬겠죠.

민노: 지금의 미국에서 이선균 같은 높은 위상을 가진 배우의 마약 스캔들이 터졌다면 어땠을까요.

캡콜드: 미국은 이제 마약 문제를 범죄의 관점으로 보기보다는 질병에 가깝게 인식해요. 마약을 불법적으로 소지하거나 매매하거나 유통하거나 그런 범죄로 보기보다는 약물남용이라는 관점으로 보게 된 거죠. 물론 아직 미국도 갈 길이 멀죠. 좀 더 본격적으로 사회적인 공중보건의 문제로 보고, 공적 개입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아직 그 정도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고요.

민노: 미국은 마약이 굉장히 심각한 문제죠.

캡콜드: 그렇죠. 그런데 불행히도 한국도 열심히 따라잡고 있어요. 한국은 뭐든지 빠른데, 마약도 아주 빠른 속도로 따라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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