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라인야후 사태를 공공성과 인권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오병일(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은 국가주의 프레임에 빠져 라인야후 사태를 보면 타국의 보호주의를 비난하면서 자국의 보호주의를 요구하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라인야후 대주주인 A홀딩스의 네이버 지분을 매각하라는 일본 정부의 요구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한국의 기업과 기술을 강탈하려는 일본과 이를 수수방관하는 듯한 한국 정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급기야 일본 정부의 요구를 미국의 틱톡 금지법, 유럽연합의 디지털시장법과 인공지능법까지 연결 지으며 데이터 주권, 자국 보호주의 시대에 한국은 역행하고 있다는 한탄까지 나온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익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고, 은근슬쩍 규제 완화 요구와 연결한다.
네이버는 구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삼별초인가
정작 당사자인 네이버는 말이 없다. 사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내부적으로는 (어떤 의미에서 얘기하든 소위 ‘국익’이 아니라) 자사의 이익을 위한 방안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네이버는 ‘구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삼별초’가 아니다. 구글의 지위를 꿈꾸는 또 다른 빅테크 플랫폼일 뿐이다. 네이버가 글로벌 빅테크로 성장하면 우리는 자랑스러워해야 하는가? 그럼 쿠팡은 어떠한가?
구글, 메타, 애플 등 초국적 빅테크 플랫폼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한다. 이에 따라 시장 독점, 시민 인권, 미디어 다양성 등 여러 측면에서 정부와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초국적 기업의 지배력에 맞서 각국 정부는 안보, 공공성, 인권 보호 등을 명분으로 기업에 대한 규제를 시도한다. 공공의 이익과 시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다만, 이를 명분으로 정부(특히 권위주의 정부일수록)가 불합리하거나 자의적인 규제를 하거나 시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합리화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미국 정부가 틱톡을 금지하면?
미국에서 논란이 되는 틱톡 금지법은 라인 사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틱톡 제공자가 중국 기반 기업인 바이트댄스라는 이유로 미국 정부는 미국 시민의 개인정보가 중국에 넘어갈 수 있고 이에 미국의 안보가 침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디지털 권리 단체들은 틱톡 금지법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방대한 이용자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고, 이렇게 수집된 개인정보가 데이터 브로커에 판매되고 있어 언제든지 중국 정부에 넘어갈 수 있다고 비판하며, 개인정보를 보호하려면 실효성 없는 틱톡 금지법이 아니라 연방 차원의 강력한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하라고 주장한다.
또한, 틱톡 금지법은 미국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데, 이에 지난 5월 15일 틱톡 크리에이터들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나아가 디지털 권리 단체들은 틱톡 금지법이 지금까지 미국이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에서 옹호해 왔던 ‘오픈 인터넷 원칙’을 훼손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미국이 틱톡 금지법을 제정한다면, 다른 나라에서도 유튜브 금지법을 제정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권위주의 국가에서 해외 인터넷 서비스를 차단하는 검열을 정당화할 것이다.
- 틱톡 금지 법안은 2024년 4월 23일 연방의회를 통과했고, 바이든도 법안에 서명했다.
- 하지만 법은 매각으로 9개월, 추가 유예기간으로 3개월을 별도 설정하고 있다.
- 따라서 실제 매각은 2025년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 여기에 차기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틱톡 퇴출을 막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상 편집자)
틱톡도 라인도 본질은 ‘비례성’ 상실
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 그러나 충분한 근거가 없고 비례적이지 않은 조치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미국의 틱톡 금지법은 개인정보 보호나 국가안보를 위한 조치로서 설득력을 잃었고, 오히려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인터넷의 개방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라인야후가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던 네이버 클라우드와의 위탁관계를 종료할 것이라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네이버 지분 매각을 강요한다면 이 역시 비례성을 상실한 조치로 비판받을 수 있다. 이는 비단 그 대상이 한국 기업이기 때문이 아니며, 이처럼 비례성을 상실한 일방적인 조치는 인터넷의 분절화를 초래하여 인터넷을 통한 자유로운 소통을 억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장법이 보호주의? 국가주의 프레임 넘어서자
그러나 유럽연합의 디지털 시장법(DMA, Digital Markets Act: 특정 시장에서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는 빅테크 규제를 목적으로 한 법)이나 AI법까지 자국 보호주의로 몰아붙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다.
국내 산업계나 기업 친화적 전문가들은 유럽연합의 개인정보보호법(GDPR)부터 AI법에 이르는 규제 정책을 미국 중심의 빅테크를 견제하고 자국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하면서, 네이버와 카카오와 같은 국내 빅테크가 있는 한국은 유럽의 강력한 규제 정책을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의 논리에 따라 강력한 규제 정책이 국내 산업 발전에 저해가 된다면, 유럽연합은 자국 산업의 발전을 포기했다는 것일까. 나아가 자국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빅테크의 독점력 남용 방지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정책이 희생되어도 된다는 것인가. 유럽연합의 이들 법은 유럽연합에 기반하거나 유럽연합 시민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기업에 적용된다. 이를 미국의 틱톡 금지법이나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와 연결하는 것은 규제 완화라는 정치적 목적이 깔린 아전인수일 뿐이다.
라인야후 사태를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과 주장이 난무하고 있지만, 국가주의적 프레임에 빠질 때 자칫하면 플랫폼에 대한 공적 규제의 필요성이나 시민 권리의 보호와 같은 중요한 가치를 도외시할 위험이 있다. 타국의 보호주의를 비난하면서 자국의 보호주의를 요구하는 모순된 주장에 빠질 수 있음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