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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증의 탄생
-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ft. 생각, 말, 글)
- 대화의 파토스와 에토스 vs. 글의 로고스
- 논증이냐 아니냐: 고등학교와 대학 글쓰기의 차이
- 왜 이것은 논증이고, 저것은 논증이 아닌가
- 논증의 다섯 가지 요소: 일상 대화에서 찾는 논증의 원리
- 냉소적인 방관자 ‘독자’ 설득하기: 실용 논증과 개념 논증
- 가치 있는 주장을 위한 세 가지 조건
- 인간이 가장 쉽게 빠지는 생각의 오류 (ft. 비판적 상상력)
- 우리가 원인을 잘못 판단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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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말 미국은 바야흐로 수사학의 르네상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매년 수십 종의 그리스로마 수사학 저술들을 번역출간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출발한 고전수사학이 본격적으로 부활했다. 마치 자신들에게 부재하는 글쓰기전통을 빠르게 채워 넣고자 하는 듯, 미국 대학들은 고전수사학의 내용과 형식을 대대적으로 차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의 글쓰기 연구는 고대그리스 이소크라테스 학파의 문체술까지 거슬러올라가 전통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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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rhetoric)이란?
그리스전통에 따라 간단히 정의하자면 수사학이란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하는 기술’이다. 참고로 번역어 ‘수사’는 ‘말(辭)을 꾸미는(修) 법’이라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를 ‘실용적인 설득의 기술’이라고 정의하며 수사의 핵심요소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를 꼽는다. 남을 설득하는 궁극적인 소통기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성적인 논리(로고스; logos)뿐만 아니라, 청자의 감정과 욕망(파토스; pathos), 화자의 인격과 윤리성(에토스; ethos)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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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시민 활동 속에서 벌어지는 ‘말로 하는 논증’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형식적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오늘날 논증에서 가장 기본적인 뼈대가 되는 유형은 변론과 토론이며, 이 두 가지 논증을 우리는 개념논증/실용논증으로 구분한다.
대화의 ‘비언어적 요소’ (예: 에토스와 파토스)
물론 ‘가치’를 기본적인 논증 유형에서 뺀 것은 그것이 가치가 없서는 아니다. 오히려 개념논증이든 실용논증이든, 말을 하든 글을 쓰든 화자는 독자/청자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가치를 발산한다. 논리적인 주장을 펼치려면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논증에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를 어떻게 틀을 짤 것인지 결정할 때, 또 논증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선택할 때 감정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사실 논증은 이미 반세기 전 주요한 설득의 방법론으로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1914년 몇몇 영문학과 교수들이 대중연설(public speaking)을 연구하는 학회를 설립하였는데, 이때 처음으로 논증의 실용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다. 고전수사학에서처럼, 구술언어로 이뤄진 대중연설에서 설득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자원으로서 논증을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 고전수사학이 부활했을 때 관심은 단순히 말뿐만 아니라 글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의사소통행위로 확장된 상태였다. 구술언어는 물론 문자언어로 전개되는 사회적 소통행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설득의 기술은 어쨌든 논증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우선 대중연설과 같은 구술담화가 채택하는 논증은 초기 그리스 수사학의 원시적인 형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연설을 비롯한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논증뿐만 아니라 청중의 감정 이입(pathos)과 말하는 사람의 개성이나 인격(ethos) 같은 비언어적 요소가 매우 중요한 설득의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대화 행위(speech act)에서 논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비언어적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기법이 갈수록 발전하면서 논증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줄어들었다.
글에서 ‘논증’의 역할과 ‘툴민 모형’
반면 글에서는 이러한 비언어적인 요소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논증을 정교하게 짜고 펼쳐 나가는 전략이 설득력을 크게 좌우한다. 특히 글쓰기는 한번도 보지 못한, 또 앞으로 거의 볼 일이 없는 독자라는 가상의 상대방을 앞에 놓고 설득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결국 이러한 치명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논증을 극대화하고 정교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대화나 연설에 적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전수사학의 ‘논증’이라는 개념은 글에 적용하기에 너무나 허술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일상에서 자연어를 통해 전개되는 논증을 글쓰기에 접목하고 정교화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는 바로 스티픈 툴민(Stephen Toulmin)이 창시한 비형식논리학이 제공했다.
툴민은 다음과 같은 통찰에서 출발한다.
- 논증의 형태는 분야마다 다르지만, 모든 논증에는 공통 구조가 있다.
- 논증의 공통적인 구조는 기본적으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논리에서 나온다.
- 논증의 공통 구조는 연역적인 형식논리보다 형식이 없는 일상적인 논리에 가깝다.
이러한 통찰 위에서 툴민은 무수한 글의 논리적 구성을 분석하여 진술을 의사소통적 기능(communicative function)을 여섯 가지로 분류한다. 그리고 이러한 여섯 가지 요소들이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고 정리했다.
툴민의 논증 모형은 발표되자 마자 글쓰기 교육 현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1981년 예일대학에서 학부생 대상으로 개설한 ‘비판적 문해'(Critical Literacy)라는 글쓰기 강좌에서 툴민의 논증 모형을 글쓰기 교육에 처음 도입한 이래, 미국 동부의 명문 대학들은 툴민의 논증 모형을 글쓰기 교육의 기본 이론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 툴민의 논증 모형을 활용하여 논증을 분석하거나 글을 쓰려다 보면, 어딘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개선되거나 변형된 툴민의 논증 모델이 나왔다.
윌리엄스, 툴민 모형을 넘어서
시카고 대학에서 라이팅 센터를 설립하고, 20여 년 동안 글쓰기를 가르치며 미국의 라이팅 센터의 표준을 세운 조셉 윌리엄스는 툴민의 통찰을 유연하게 적용하면서도 툴민 모형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전혀 새로운 논증 모형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민했다.
윌리엄스는 툴민 모형의 문제 핵심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1. 화살표
우리가 머릿속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론’할 때는 생각의 흐름이 있지만, 글로 표현된 논증요소 사이에도 화살표를 무조건 적용하기는 어렵다. 실제 글에서는 추론의 방향대로 논증 요소가 제시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화살표는 실제 추론 과정을 제대로 묘사하지도 못한다. 우리는 자료나 전제를 바탕으로 결론을 산출하기보다는 주장부터 떠올린 다음에 거꾸로 자료와 전제와 근거를 채워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해결방식을 ‘가추법abductive reasoning’이라고 한다)
2. 보증
보증은 분야마다 논증의 형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표시하는 논증요소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를 글 속에 직접 표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3. 한정
‘아마도’ ‘대부분’ ‘?할 수 있다’와 같이 진술의 범위를 제한하는 문장요소들은 논증의 완성도를 높여주기보다는 거꾸로 논증을 약화시키는 요소다. 한정은 별도로 분리할 수 있는 논증요소가 아니라 논증 전과정에서 저자가 올바른 에토스를 투사하기 위해 삽입하는 것이다.
4. 자료
자료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증요소를 의미한다. 하지만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논증요소 중에는 자신의 확신에서 나온 것도 있고 ‘논증 밖 현실’에서 가져온 것도 있다. 이 두 가지 요소에 대해 독자들은 매우 다른 태도를 취한다. 따라서 논증에서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5. 논박
‘논박’이라는 말은 논증에 대해 상당히 전투적인 태도를 촉발한다. 성숙한 논증에서는 대안이나 반론에 대해 무조건 논박하기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어느 정도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윌리엄스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어느 논증에나 적용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논증 모형을 만들어냈다. 그는 [논증의 탄생] 개정판(2007)에서 자신의 논증 모형을 다음과 같은 형태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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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유나 전제 모두 또다시 논증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따라서 또다른 하위 논증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순환구조가 복잡해지면, 논증 모형은 물론 글의 형태 역시 복잡해진다.
어쨌든 이러한 논증 모형은 구술언어적 속성을 가진 사고과정과 문자언어적 속성을 가진 표현과정 사이의 괴리를 이어주고 둘 사이의 전환을 촉매하는 역할을 하는 가장 합리적인 도구가 바로 논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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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와의 협의 하에 [논증의 탄생: 21세기 민주시민을 위한 비판적 사고, 토론, 글쓰기 매뉴얼] (조셉 윌리엄스)에서 발췌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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