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은 우리나라가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를 시작한 후 여덟 번째 치러지는 대선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는 1997년 제15대 대선, 2007년 제17대 대선, 2017년 제19대 대선을 통해서 세 번의 정권교체를 큰 탈 없이 평화적으로 이루어냈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로 대표되는 외부로부터의 경제위기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도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대표되는 내부의 정치적 위기를 헌정 중단 없이 잘 극복했다. 전문가와 국제 평가 기관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안정적으로 공고화되었다고 평가한다. 미얀마 사례가 나타내듯이 민주적 선거의 제도화는 결코 작은 성취가 아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시민들은 제도권 정치가 시민들의 뜻에 반응하지 않을 때 주기적으로 촛불을 들어서 저항하곤 했으며 2016-17년 촛불 항쟁의 경우처럼 이를 돌파하기도 했다. 촛불 항쟁 당시 75%를 넘나드는 시민이 탄핵을 지지했다. 진영과 세대를 초월한 촛불 연합이 형성된 것이다.
이후 제19대 대선을 통해서 정치권의 이합집산 없이 오롯이 시민들의 힘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촛불과 정권교체를 경험하면서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원칙을 공유하는 민주주의 보수파와 민주주의 진보파가 민주주의 내용을 두고 경쟁하는 양손잡이 민주주의(ambidextrous democratization, Schmitter, 2012; 최장집 등 2017)로의 진전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촛불이 지나간 자리를 차지한 ‘비토크라시’
하지만 자칭 촛불 정부를 거치면서 촛불 연합이 해체되었다. 이에 따라서 촛불 이전 한국 정치의 특징이었던 극심한 진영 간 대립과 비토크라시(vitocracy)가 귀환했다. 극심한 진영 간 대립의 폐해는 매우 크다. 상대 진영은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배제와 제거의 대상이다. 이러한 대립의 폐해는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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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크라시’ (vitocracy)
‘역사의 종언'(원제: 역사의 종언과 마지막 인간;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1992)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미국의 양당 정치를 비판하며 만든 조어. 상대방 정파의 모든 정책과 주장을 모두 거부하는 극단적인 파당 정치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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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례를 통해서 시사점을 얻어보자. 미국이 견제와 균형을 중심축으로 하는 통치체제로서 민주주의의 전형이라는 데에는 그동안 대체적인 합의가 존재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의 선거 부정을 줄곧 주장해온 트럼프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에 의한 워싱턴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2021년 1월 6일)은 이러한 통념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사태의 자초지종에 대한 조사는 당파적 대립에 막혀서 큰 진전이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사태를 두고 미국 사회가 완전히 분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태 발생 1년 즈음에 실시한 한 조사(ABS/Ipsos, 2021년 12월 27~29일)에 따르면 응답자의 다수(72%)가 워싱턴 폭동이 미국 민주주의 큰 위협이었다고 답했다.
정당일체감으로 대답을 분류하면 극심한 분열상이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거의 만장일치(96%)로 같은 의견을 나타냈지만, 공화당 지지자들은 절반이 넘는 응답자(52%)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답했다.
제20대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난무했던 혐오와 배제의 언술이 잘 나타내듯이 민주화 이후 8번째 대선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번 선거가 역대급이라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정책이 사라진 선거라는 데 있다. 유권자가 극단적 양극화에 동원되어 반대 진영에 대한 혐오와 분노에 기반을 두어 투표를 하게 되면 진영 논리에 갇혀 묻지 마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위계적 카르텔 정치: 35년 동안 ‘인싸’ ‘아싸’ 구별짓기
촛불 항쟁을 거치면서도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단계로 진전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민주화 이후 지난 35년 강고하게 제도화된 카르텔 체제로서 한국 민주주의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87년 6월 항쟁에서 시민들이 저항과 희생을 통해서 민주화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민주화 과정은 시민사회의 참여가 배제된 채 권위주의 집권 세력과 야당의 협상이 지배했다. 새롭게 찾아온 민주주의 시간은 누구를 위한 어떤 민주주의인가가 아니라 대통령을 어떻게 뽑을 것인가로 채워졌다. 결국 중앙집권적인 대통령제가 다수제적인 선거제도와 결합하였다. 승자독식 제도(winner-take all system)가 제도화된 것이다. 더구나 이 승자독식 제도는 지역정당 체제와 결합하였다.
이 체제는 대통령직에 대한 보상을 극대화하여 내부자(insider)들 사이에는 치열한 경쟁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 체제는 시스템 밖에 있는 외부자(outsider)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다시 말하면 ‘인싸’와 ‘아싸’의 구별짓기가 민주화 35년 동안 한국 민주주의 가장 큰 특징이 된 것이다. 나는 이 체제를 위계화된 카르텔 체제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이러한 폐쇄적인 체제는 편향된 정치적 대표 나아가 대표의 실패를 낳았다. 청년층은 카르텔 체제로서 한국 민주주의가 대표하지 않은 여러 집단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촛불 정부에서 화두가 되었던 ‘청년 대표’를 통해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20대는 전체 유권자의 18.1%에 달했지만, 국회의원 수는 전체 300명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2명에 지나지 않았다. 30대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전체 유권자의 15.9%를 차지했지만, 국회의원 수는 11명으로 3.6%에 그쳤다. 이를 민주화 이후 전체 시기인 제13대 국회~제21대 국회로 확장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 기간 전체 국회의원 수(지역구+비례대표) 2,668명 중 20대는 단 4명, 30대는 91명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세대 대표가 청년세대를 대표할 가능성은 없는가? 제16대 국회~제20대 국회에서 청년 관련 법안의 통과 건수는 총 12,150건 중 10건에도 못 미쳤다. 청년에 대한 정치적 대표의 실패는 사회경제적 결과로 이어졌다. 한국 사회에서 노인 빈곤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지 오래되었지만, 청년 빈곤은 중요한 이슈로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새로운 정치세력 진입을 위한 조건
그동안 가려진 집단이었던 청년층의 목소리가 촛불 정부에서 공정성의 기표(記標)를 입고 폭발했다. 역설적으로 청년층의 외침이 드러낸 카르텔 체제의 속살은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민주주의는 대표자를 선택하는 방식의 제도화에 머무를 수 없다. 권력의 교체 방식의 제도화에 집중했던 그동안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내용을 두고 경쟁하는 체제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다양한 시민들의 의사가 더 골고루 반영되는 열린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 제20대 대선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우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기득권화된 카르텔 체제를 강화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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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거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를 듣고 계신가요? 후보자의 말이나 의혹에 대한 기사는 쏟아지고 있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정책과 무관하거나, 무분별한 의혹 제기 기사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한국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 선거, 대선을 앞두고 과연 무엇을 검증해야 하는지, 유권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게임의 룰은 문제가 없는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꼼꼼히 파헤쳐보는 대선 [유권자의 스케치북] (유스케)을 연재합니다. 이번 슈스케 칼럼 필자는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입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 유스케(유권자의 스케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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