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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중심에 선 성남시의료원

얼마 전 적자와 의사 구인난에 허덕이는 성남시의료원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몇 년 사이 공공병원은 코로나19 대유행에 맞서 신종 감염병 환자 진료를 전담하느라 환자 유치는커녕, 입원 환자조차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성남시의료원과 마찬가지로 전국 대부분 공공병원이 경영난을 겪는 중이다. 그렇다면 성남시의료원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대표 정책이라고 여겨지며 애꿎은 정치적 공격을 받았던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공공병원, 그리고 공공의료는 의료 개혁을 말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중요한 이슈다. 차별성 부족한 한국 정치에서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입장이 갈리는 사안이기도 하다. 이 후보는 보건의료 공약으로 공공의료 확충과 건강불평등 해소를 약속했지만,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공약에 공공의료를 포함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보수 진영이 공공병원 강화를 주장할 가능성은 작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분위기는 분명 달라졌다. 신종 감염병 유행처럼 예측 불가능한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공공병원의 필요성을 모두가 체감했다. 급할 때 정부의 손발이 되어 정책을 직접 수행하는 공공의료는 복지를 넘어 사회의 안전을 위해 필수적이란 인식이 널리 퍼졌다. 공공병원이 통상의 의료를 넘어 재난과 위기에 대응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공공병원을 건강 안보(health security)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흐름도 강해졌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선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쇄해 버린 일 같이 무모한 결정을 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보수 진영은 공공의료를 비효율의 온상으로 바라보며 혁파의 대상으로 여긴다.

참여연대, 진주의료원에 대한 오해와 진실


반대로 진보 진영은 한국 의료의 상업적, 영리적 성격을 비판하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공병원과 공공의료를 옹호한다. 전체 병원 중 공공병원이 5%도 되지 않는 유일한 OECD 국가, 병상으로 치면 공공병상이 9%가 안 되는 상황을 규탄하며 공공성 강화를 주장한다. 공공병원이 낙후했고 그곳의 의사들은 실력이 없을 것 같다는 인식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한국의 보건의료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하고 바람직한 길이라고 본다.

공공병원 적자∙낮은 신뢰…구조적 원인

그렇다면 공공병원의 적자와 낮은 신뢰는 누구의 책임인가? 그리고 다음 정부는 이 오래된 숙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 무엇보다 먼저 인정해야 할 중요한 전제가 있다. 바로 한국 사회가 이 사안을 논의하고 해석하는 데 필요한 경험과 지식이 아직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지금 아픈 사람들은 ‘어떤 의료 체계가 바람직한가’ 같은 질문을 할 겨를이 없다. 당장 어떤 병원에 어떻게 갈 수 있는지가 더 급한 문제다. 공공병원의 수가 워낙 적다 보니 애초에 이용해 본 사람도 드물고, ‘내가 경험한 공공의료’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적다. 지역에 따라 필요로 하는 공공의료의 역할과 구성도 달라 공공의료를 지지하는 운동 안에서도 입장이 꼭 같지는 않다.

이런 조건에서는 의료의 공공성이나 체제 개혁을 논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 주로 전문가나 의료인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시민들의 경험과 언어가 충분히 쌓이지 못한 현실은, 정치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2024년 7월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의료 위기 해결, 국민건강권 회복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의료연대본부

공공의료의 가능성에 회의적인 이들은 공공조직의 비효율을 탓한다. 완고한 공무원 조직 안에서 의사들이 자율적인 진료를 할 수 없고, 인력이 부족하고 임금이 낮은 탓에 동기부여가 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서울의 대형 대학병원처럼 인재를 붙잡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조직 충성도도 낮다. 선의를 품고 공공병원에 입사한 의료인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그러나 공공병원은 수익이 나지 않고 다른 병원에서 꺼리는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본연의 업무로 삼는다. 전국 HIV/AIDS 환자 중 절반 이상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진료받고, 지방 정부들은 의료급여 환자나 노숙인, 장애인, 이주민 등 취약집단에 대한 의료를 공공병원에 맡긴다.

병원마다 지역의 필요에 부응하는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해바라기센터를 수탁 운영하며, 없는 사정에 자체 예산을 들여 미등록 이주여성의 산전진찰을 지원하기도 한다.

문제는 ‘공공성이 높은 의료’가 대개 경영에 부담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공공병원은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 각종 규제를 더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덕분에 민간보다 노조 조직률과 고용 안정성이 높아서 조직을 재편하거나 조정하는 일이 더 어렵다. 의사 등 관리자 역할을 하는 입장에서는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관행을 바꾸기 어렵지만 일반 노동자들에게는 더 좋은 일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처럼 규정이 엄밀하고 공공의 목적에 복무해야 하니 의료행위에도 더 많은 규제가 따른다. 값비싼 기계를 들여와 밤낮없이 돌리거나, 의학적 근거가 애매한 약을 처방하며 비급여 시장을 개척하기도 어렵다. 예방접종과 건강검진 등 비급여 의료를 하더라도 더 저렴하게 서비스를 제공해 지역의 의료비 상승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내기를 기대받는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나 메르스 같은 신종 감염병이 돌면 병원을 통째로 비워 감염병 환자를 받는다. 그 사이 기존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 돌아오지 않는다. 감염 관리를 위해 투자한 시설은 평상시 수익을 내는 데 도움이 안 되고, 괜찮은 수가를 보상받는 중증 의료를 수행하기엔 대학병원에 비해 두루 자원이 부족하다. 결국 일부 주민에게는 감염병 환자나 취약계층 진료를 전담하는 병원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나와는 상관없는 병원’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라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적자를 면할 도리가 없다.

지역에 공공의료 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유

현실의 공공병원은 운영조차 버거운 형편이지만, 공공의료는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다.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공공병원 유치는 곧잘 해당 지역 정치의 현안이 된다. 내가 사는 지역에 공공병원이 들어서기를 바라고, 지자체가 나서서 최소한의 의료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요구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서울은 인구 1천 명 당 의사 수가 4.7명(2024년)으로 OECD 국가 평균(2022년 기준 약 3.8명, 한국은 2.6명)보다 많다. 대조적으로 지역의 의료 상황은 훨씬 심각하고 사람들의 걱정도 본격적이다. 경남 하동군과 경북 영양군, 울산 울주군과 충북 단양군까지, 지난 몇 년 사이 공공병원 설립이 지자체장 선거의 공약으로 등장하는 지역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대도시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공공병원을 짓기로 한 부산, 대전에 더해 대구, 광주에서 의료원 설립 논의가 진행 중이고, 최근 경기도 부천시의회도 시민들의 투쟁에 힘입어 공공병원 설립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처럼 공공병원에 대한 요구가 분명해지고 또 나날이 커지는 지금, 그 요구가 말하는 바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 먼저 병원을 생각할 때 서울의 대형병원을 기준으로 삼는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의료의 공백과 불평등을 고민해야 하는데, 연 매출이 1조 원을 훌쩍 넘어서는 공룡 같은 의료기관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도저히 상황을 해석할 수도,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을 수도 없다.

공공병원 바라는 지역의 바람 ‘안전한 일상’

공공병원 설립을 바라는 지역에서 사람들이 바라는 게 뭘까? 당장 급할 때 찾아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는 말 뒤에, 안전한 일상에 대한 기대가 놓여 있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두 시간 걸려 도시 병원을 찾았다가 ‘별거 아니라’는 말을 듣고, 발을 동동 구르며 응급실을 찾았는데 ‘뭘 이런 걸로 여기까지 왔냐’는 타박을 뒤로 하고 허무하게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일상에 대한 바람이다.

이런 기대를 중심에 두고 병원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공공병원이 민간병원처럼 진료과별 수익과 환자당 진료비를 산출해 매주 공유하고, 1등 의사부터 꼴등 의사까지 줄을 세워 뒤에서 열 명은 병원장에게 호출당하는 조직이 되길 바라는 이는 없다.

퇴원하는 환자의 사정을 살펴 간호사 방문 서비스를 연결해 주고, 건강보험에 건건이 의료비를 청구할 수 없어도 병원이 할 수 있는 일을 살피며, 팀 접근의 포괄적 일차의료를 모색하고 지원하는 병원이 더 많아져야 한다. 신종 감염병 환자를 돌보던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지쳐 그만둔 자리를 신규 인력이 바삐 채우는 병원이 아니라, 메르스와 코로나를 거치며 베테랑이 된 노동자들이 다음 감염병 위기를 준비하는 병원이 필요하다. 그런 병원들이 지역사회를 든든히 지켜내야 한다.

공공의료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현실의 공공병원 역량을 한참 넘어선다. 공공의료에 담긴 기대는 현재의 의료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을 담아내는 거대한 그릇에 가깝다.

현재 한국의 의료는 자유방임적이고 수익추구적이어서, 그런 의료를 활용할 자원이 있는 사람들에게 편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같은 질병, 비슷한 치료에서도 연령, 지역, 계급에 따라 의료 이용 경험이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다. 공공의료에 대한 요구는 이처럼 사람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의료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제동을 걸기를 기대하는 정치적 의사 표현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준석 개혁신당, 권영국 민주노동당,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오른쪽부터)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2025년 5월 18일 서울 상암동 SBS 프리즘센터 스튜디오에서 열린 1차 TV토론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공공의대에 담긴 기대: 시민은 어떤 의사를 원하는가?

공공의대에 담긴 기대도 비슷하다. 누구도 드라마 아닌 현실의 의사가 슈퍼히어로 또는 슈바이처가 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공공의료사관학교라고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이 학교에 입학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남다른 책임감으로 헌신하게 될 거라고 믿지도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의료인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여 모두의 건강을 앞에 두고 판단하고 실천하는 전문가가 더 많아지는 미래다.

이름을 바꿔가며 반복해서 등장하는 ‘공적 의사 인력 양성’ 정책은, 결국 지역과 계층을 막론하고 아픈 사람들이 믿고 찾아갈 수 있는 의료가 더 친절하고 촘촘하기를 바라는 요구의 산물이다. “의사가 없다”는 반복되는 장벽 앞에서 구체화한 하나의 대안일 따름이다. 실제 이 대안이 어떤 의사를 길러내고 어떤 의료를 약속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농어촌과 지역의 삶과 현실을 이해하고, 이에 맞춘 의료를 익힌 의사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2020년 의사협회는 일반의대 출신 의사와 공공의대 출신 의사를 비교하며 후자를 비하하는 듯한 홍보물을 만들었다. 그러나 시민들이 원하는 의사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고교 시절을 가슴 깊이 품고 사는 능력주의자가 아니다. 각자 자신이 일하는 병원과 지역에서 환자의 필요와 지역사회의 복잡한 사정을 헤아리는 전문가다. 아픈 몸을 사는 사람들이 좀 더 살만한 삶을 살도록 돕는, 그럼으로써 존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의사다.

의사협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홍보물.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둘 중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2020)

새 정부 의료 개혁, 부천 공공병원으로 시작하기를!

성남시의사회의 입을 빌어 공공병원과 이재명 후보를 비난한 조선일보의 성급한 보도는 넘치는 ‘의료 공공성’ 요구에 대한 조바심이었는지 모른다. 의료취약지에서도 존엄한 노년과 돌봄이 가능한 의료를 원하는 사람들의 요구는 끝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할 의제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우려와 암묵적 반대는 앞으로 다른 의료와 돌봄을 상상하고 기획하는 이들이 함께 연대하여 극복해야 할 핵심 전선이 될 예정이다.

의료 대란 이후의 정치는 ‘해결’이라는 이름 아래 기존 의료를 원상복구하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 2025년에 시작할 새 정부는 공공의료를 지키고 또 늘려나가야 한다는 시민의 요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현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시민은 그저 응급·분만·외상치료 등 의료의 공백으로 생명의 위협을 겪는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이제 정치는 시민을 다른 의료를 요구하고 상상하는 주체로 여기고 이들이 바라는 의료의 모습을 설계해야 한다. 의료전문가들이 ‘현장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공간 역시 이런 대안을 모색하는 공공성 높은 의료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의료 개혁의 현장은 계급의식으로 똘똘 뭉쳐 ‘한국의 의료는 이미 훌륭하니 그 값을 더 치르라’고 요구하는 집단과는 가장 먼 곳에 있다. 대선 이후 의료 개혁이 그저 의사단체의 비위를 맞추는 타협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민간병원 폐원 후 공공병원 설립을 위한 주민들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경남 양산시 웅상에서, 공공병원의 역할이 가난한 사람 치료를 넘어 민간병원이 외면해 온 장애인 치료와 재활, 통합 돌봄의 거점이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시민들이 있는 경기도 부천에서 새 정권의 공공의료가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회원들이 2025년 4월 19일 경기도 부천시 공공병원 설립 조례 가결 촉구 농성장을 지지방문하고 있다. ©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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