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의 제안 1] 시간 불평등 도시 서울, 공간의 압축 넘어 시간의 회복으로 풀어야… 일자리 분산, 시간 환급의 정치가 필요할 때
시간도둑을 잡아라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시간 도둑’이 등장한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아껴준다고 설득하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차압해 세상을 회색빛으로 만드는 존재들이다.
오늘날의 도시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 도둑이 환상소설처럼 별도의 종족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도시 구조와 주거 환경, 일자리의 공간 배치가 시민의 시간을 서서히 잠식한다.
어느 동네,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하루 30분을 추가로 뺏기고 저녁이 사라진다. 흥미로운 점은 시간을 더 많이 빼앗기는 공간일수록 대개 부동산 가격이 낮다는 사실이다. 싼 집값은 대체로 긴 통근 시간과 맞바꾼 결과인 경우가 많다. 시간은 화폐처럼 거래되고, 거리(Distance)는 계급처럼 굳어진다.
이 글은 서울이 ‘시간 불평등 도시’라는 뼈아픈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도시가 시민의 시간을 빼앗는 구조를 유지한 채로는 공론장도, 숙의도, 민주주의도 유지되기 어렵다. 슬로우뉴스라는 매체이름이 겨냥하는 것처럼, 느린 호흡으로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될 때 사회는 건강해진다.
그렇기에 시간을 되찾는 일은 곧 도시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의 불평등’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세 편의 기고문에서 ‘돈’과 ‘건강’, 그리고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시간 불평등의 양상을 분석하고, 서울시장 입후보 예정자로서의 정책 대안을 설명하고자 한다.
통근 시간, 보이지 않는 경제적 손실
숨 막히는 지옥철과 꽉 막힌 간선도로 위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진을 빼는 고단한 일상, 우리는 이를 그저 ‘어쩔 수 없는 대도시의 숙명’쯤으로 여기며 견뎌왔다. 2025년 서울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서울시 평균 통근·통학 시간은 편도 기준 약 34.5분이다. 왕복으로 환산하면 1시간을 넘는다. 2024년 수도권 생활 이동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서도 출근 시간대(오전 7~9시) 서울시 내부 평균 출근 시간은 약 35.3분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는 평균일 뿐이다. 2023년 서울시 서베이 조사에 따르면 전체 시민의 13.5%가 편도 1시간 이상을 이동에 사용한다. 7명 중 1명 꼴이다. 즉, 서울 시민 다수는 날마다 최소 1시간 이상을 이동에 사용한다. 적지 않은 이들이 왕복 2시간 이상을 길 위에서 보낸다.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지겹고 피곤한 것을 넘어 구체적인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킨다. 이 ‘잃어버린 2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자기계발에 투자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투잡을 뛰어 가계 살림을 보탤 시간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저녁을 함께할 시간이다. 이 막대한 ‘기회비용’의 상실은 시민의 삶을 만성적인 피로로 몰아넣는 것을 넘어, 경제적 빈곤까지 유발하게 된다.
한국교통연구원은 2013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통근 시간 1시간의 경제적 가치는 월 94만 원”이라고 추산했다. 하루 2시간 이상을 통근에 사용하는 경우, 월 약 200만 원의 가치 손실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해당 수치도 2013년 기준이니 이후 10여 년간의 물가 상승률과 평균 임금 상승을 고려하면, 현재 가치로 환산할 경우 더 큰 가치손실이 발생할 것이다.
월 약 200만 원 이상의 가치손실이 발생하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출퇴근 시간 증가는 신체 활동, 여가, 자기계발, 사회적 관계 형성의 시간을 동시에 감소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통근 시간은 단순한 이동시간이 아니라 기회비용이 손해로 축적되고 누적되는 시간이다.

거리의 격차가 자산 격차로 굳어지는 구조
왜 이렇게 많은 시민이 장거리 통근의 굴레에 갇히게 되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장시간 통근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도시 구조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로 등 떠밀리듯 이주했기 때문이다. 서울의 양질의 일자리는 강남, 여의도, 종로 등 일부 핵심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직장은 도심에, 거주는 외곽에 위치하는 ‘직주 분리’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앞서 인용한 2025년 서울연구원 보고서 역시 장거리 통근 확산의 대표적 원인으로 ‘주택 가격 상승’을 꼽았다. 한국에서 상위 20% 노동자의 소득 점유율은 전체 소득에서 약 50%를 차지한다. 따라서 ‘고임금 노동시장’이 존재하는 지역과의 거리가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대한 요인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강남이나 도심의 집값이 천문학적으로 비싼 진짜 이유는, 그들이 화려한 건물을 샀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출퇴근의 고단함을 면제받고, 여유로운 저녁과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을 돈으로 산 것이나 다름없다. 반대로 집값이 저렴한 외곽으로 밀려난 서민과 청년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 시간의 격차를 몸으로 때우며 갚아나가고 있다.
이처럼 서울의 자산 격차는 공간의 차이를 넘어서 시간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로 전환되었다. 거리(Distance)가 계급이 되었고, 시간(Time)이 자산이 된 셈이다. 서울 부동산은 지금껏 그 자체로 고수익률의 투자상품이기도 했지만, ‘월 200만원 이상’의 손실을 아껴주는 수단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화려한 글로벌 도시 서울의 이면에 감춰진 가장 뼈아픈 진실, ‘시간불평등’이라 할 수 있다.

GTX 확충, ‘공간의 압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까지 ‘시간불평등’의 문제에 대처한 방법은 대체로 ‘속도’를 높여서 대응하는 것이었다. 지금 진행되고 있고, 완성된다면 효력이 날 대안으로 대입해서 말한다면 ‘GTX 확충’이 그런 방향일 것이다. GTX A, B, C 노선 등이 지금의 계획대로 완공될 경우 서울 외곽과 수도권에서의 통근 시간이 줄어들게 되므로, 서울 도심에 부동산 수십만채를 공급하는 것과 엇비슷한 효과가 나타날 거라는 분석도 있다.
GTX 확충이란 방식은, ‘속도’의 한계에 부딪힌 자동차와는 달리 최고속도를 계속 높여온 철도란 운송수단을 활용해서 ‘공간을 압축’하는 것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접근도 언제나 필요하고, 효력도 있다. 그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GTX 확충이란 대책은, 서울이라는 공간 내부에 존재하는 집중과 이로 인한 불균형의 문제는 건너뛰는 것에 해당한다. 과학기술을 활용한 편익을 우리가 거부할 필요는 없겠지만, ‘공간의 불균형’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시간의 불평등’ 문제를 세밀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좀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더구나 ‘속도’를 높여 ‘공간을 압축’하는 해법은 그것이 최대한 제대로 작동된다 하더라도 우리의 일상을 ‘GTX 시간표’에 종속시키는 문제가 있다. GTX로 인해 단축되는 시간은 그 시간표를 정확히 알고, 환승시간을 최소화할 때 극대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에서 서울 도심으로 출퇴근할 때 우리는 언제나 머릿속에 그 시간표를 기입하고(물론 요즘은 스마트폰 앱으로 언제든지 재확인이 가능하지만) 그에 맞춰 적정 출발시간을 정하는 수밖에 없다. 통상적인 출퇴근시간을 약간만 벗어나도 운행횟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시간표에 대한 종속’의 문제는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공간의 압축’은 실제로 ‘거리가 줄어드는 것’에 버금가는 효과를 낸다고 주장하지만 실제의 삶의 편리와 여유는 언제나 그 ‘이상’에 미달하게 된다. GTX로 시간을 아꼈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시간표’를 신경쓰며 전전긍긍하는 삶은, 전형적으로 기고문 서두에 인용한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 나온 ‘시간을 아껴준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차압해 세상을 회색빛으로 만드는’ 시간도둑들에게 휘둘리는 삶의 모습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발달된 현대 사회의 매트로폴리스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가 그러한 삶의 양상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집중’의 문제 자체를 완화시키는 해법을 고민하는 것 역시 ‘공간의 압축’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4+4 전략’: 일자리 분산이 만드는 시간 회복
그래서 서울시장 선거 입후보예정자로서 내가 제안하는 ‘일자리 분산’의 전략이 바로 서울의 다핵 구조 전환, 이른바 ‘4+4 전략’이다.
먼저 4대 도심 고밀 복합개발의 전략이다. 여기서 말하는 4대 도심은 각각 영등포·여의도 권역, 신촌·홍대 권역, 동대문·성수 권역, 청량리·홍릉 권역에 해당한다. 특히 영등포·여의도 권역이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곳에서 고밀 복합개발로 인해 일자리가 창출되면 강남으로 집중되는 출퇴근의 행렬을 상당 부분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로 출퇴근하는 이들이 언제나 공포스러워하는 ‘출퇴근길 9호선’의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동대문·성수 권역은 패션과 문화를 결합한 복합단지로 재창조할 수 있다. 네 권역 모두 주거와 일자리, 상업과 문화가 한 구역 안에서 해결되는 컴팩트 시티(Compact City)로 만들어, 도심 내에서 직주근접을 실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어서 4대 외곽 산업 거점 육성이 요구된다. 동북권(태릉·노원·도봉)은 경기 남양주·구리와 연계하여 ‘바이오·문화산업 중심의 경제자유구역’으로 키운다. 대학과 병원이 밀집한 지역 특성을 살려 홍릉에서 의정부로 이어지는 ‘생명공학 협력 단지’로 만든다.
서북권(은평·상암)은 경기 고양과 연계한 ‘영상·미디어 메가 클러스터’가 될 것이다. 상암 DMC의 방송 인프라와 고양의 콘텐츠 제작 기반을 묶으면 K-콘텐츠의 심장부가 될 수 있다.
서남권(구로·금천·온수)은 경기 부천·광명과 연계하여 ‘인공지능(AI)·디지털 중심 산단’이 될 수 있다. G밸리의 IT 역량을 확장하여 디지털 금융과 AI 산업의 전초기지를 노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동남권의 기존 인프라를 바탕으로 서울 전역에 ‘기후 기술’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한다. 서울에서의 기후 기술 산업은 도심과 생활 현장을 실증 무대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4+4’ 전략은 서울의 도심에 집중된 일자리를 서울 내 여러 권역에 분산시킬뿐더러, 경기도의 다른 도시들로 분산시키는 역할까지 하게 된다. 즉, 주거 수요를 서울 내에서도 분산시키고 서울 내외로도 분산시키면서 특정 지역에 집중된 부동산 수요를 완화시킨다는 것이 핵심이다.
‘시간환급’의 정치가 필요하다
나는 이러한 ‘4+4’ 전략이 GTX 확충 전략과 배치된다고 보지 않는다. 두 개의 전략을 병행하여 시민들의 편익을 취하고 ‘시간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시간 환급의 정치’라고 부르고 싶다. 빼앗긴 시간을 시민들에게 돌려줘서, 시민들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재조직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 불평등의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실 시간은 돈으로만 환산되는 자원이 아니다. 시간은 생체 리듬이며, 회복의 조건이며, 건강을 떠받치는 기반이다. 여기서 ‘시간을 빼앗기는 삶’은 ‘돈’의 손실을 넘어 ‘건강’의 문제로 직결된다. 시민의 건강과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훨씬 세밀하고 피부에 닿는 공간 복지가 필요하다. 이어지는 2편에서는 바로 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가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