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광장에서 확인된 목소리 ‘사회대개혁’···집단지성 실현할 공론장 설계해야. (황현숙/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이사) (⏳4분)
지난 2월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디지털 자유발언대 ‘천만의 말씀’과 온오프라인 ‘천만의 대화’를 아우르는 디지털 플랫폼 ‘천만의 연결’을 열었다. 이 플랫폼은 “광장에 모인 천만 시민의 빛을 온라인 공간과 지역, 삶의 현장으로 연결하고 확산”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광장의 무대에 서지 못한 보통의 시민들도 각자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남기고 변화를 제안할 수 있도록 설계한 디지털 공론장이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분명했다. “차별 없는 사회, 평등한 권리”야말로 시민이 요구하는 사회 대개혁의 핵심이다. 2월부터 5월까지, 100일 동안 천만의 연결에 모인 788건의 제안에는 차별금지와 평등, 민주주의와 정치개혁, 노동권 보장 등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핵심 의제들이 담겨있다. ‘무엇이 문제인지’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 ‘만들고 싶은 변화’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회대개혁특위는 이런 제안을 모아 118개의 사회대개혁 과제를 발표했고, 이 또한 천만의 연결을 통해 모두 공개했다.

사회적 대화 핑계로 차별금지법 미뤄선 안돼
문제는 이런 시민의 제안과 광장의 목소리가 실제 국가 정책에 연결될 구조가 존재하느냐는 점이다. 시민들은 지난 겨울부터 광장에 나와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내란 이전에도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이야기해온 변화의 요구가 있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세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다. 그러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 사회적 대화의 설계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타운홀 미팅을 통해 시민들과 직접 대화하는 자리를 연 것은 긍정적인 시도이다. 하지만 사회대개혁의 중요 의제들에 대한 정치권의 태도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대표적으로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의를 보더라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국민 합의가 어렵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왔고,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역시 인권과 종교라는 “두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보다 많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만 답하며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심지어 국무총리 인사 청문회에서는 차별금지법 관련 질의도 없었다.
정치권은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누구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는 부재하다. 사회적 대화가 정치권의 책임 있는 결정을 회피하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차별금지법 논의다. 지난 2007년 처음 입법이 추진된 이후 17년 동안 정부와 정치권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반복해 왔지만, 실질적인 입법은 번번이 무산됐다.

오랜 기간 시민사회에서 수많은 논의와 공론화가 이어져왔음에도 여전히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면, 이제는 그 대화가 실제 제도와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제도적 경로나 구조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대화는 차별금지법과 같은 어떤 제도나 정책에 대한 단순 찬반 논의, 일회성 공론장 행사로 그쳐서는 안 된다. 차별 없는 사회, 평등한 공동체,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시민들과 함께 기준을 정하고 방향을 결정해 나가는 공동 설계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시민 제안 수렴 넘어 실질 개혁 이룰 구조 필요
이를 위해서는 시민의 제안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제안 이후의 대화와 숙의·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연속성 있고 지속성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단순한 수렴을 넘어 집단지성을 실현할 수 있는 공론장의 설계가 요청된다. 디지털 기술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해 더 다양한 사람들이 더 많이, 더 쉽게 상시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한국에는 ‘민주주의 서울’처럼 시민의 제안에서 출발해 공론장을 열고, 숙의를 통해 정책에 반영하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사례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대화’처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만나 차이를 확인하고 접촉하는 대화의 장도 시민사회 차원에서 더 많이 열 필요가 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사회적협동조합 빠띠가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한국 사회 현안에 대해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1대1로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사전 설문을 통해 수집한 응답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이 대화 상대를 자동 매칭하고, 평등하고 안전한 대화를 위한 가이드에 따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기고 지는 토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와 공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실험이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일상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마주하고 듣고 이해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내란 청산을 외치던 광장 저편의 시민, 나와 다른 목소리를 낸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들은 여전히 거기 그대로 서 있기 때문이다. 내란세력은 아직 처벌 받지 않았고 그들의 지지자들은 여전히 견고하다. 나와 같은 광장에 섰던 이들조차 생각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구나 안전하게 참여하고 서로 다른 관점이 공존하는 실험을 꾸준히 이어온 ‘빠띠’ 같은 디지털 광장, 대안 담론을 만드는 ‘소셜 코리아’ 같은 시민의 공간을 더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주권정부’를 선언한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갈 진일보한 국가적 공론장을 만들기 바란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는 혐오와 배제 없는,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안전하고 개방적인 사회적 대화의 장을 어떻게 열 것인지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내놓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들이 직접 대화를 하자. 우리가 서로 만나고 듣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시민이 함께 만드는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