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리포트] 소멸 위험 단계 진입, 키워드는 2030 여성 일자리.
부산이 광역시 가운데 처음으로 소멸 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부산에는 노인과 바다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부산은 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지만 가까운 미래에 인천에 따라잡힐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기준으로 부산은 328만 명, 인천은 301만 명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 부산은 한국의 광역시 가운데 가장 먼저 소멸 위험 단계에 들어섰다. 인구 감소가 시골 마을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부산의 소멸은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문제다.
- 전체 인구 대비 수도권 인구 비중이 이미 2020년부터 50%를 넘어섰다. 수도권이 2619만 명, 비수도권이 2552만 명이다.
- 지역 소멸은 비수도권 대도시부터 본격화하고 있다. 부산과 대구, 울산 순으로 위험하다.
‘지역 소멸’의 개념 정의.
- 마스다 히로야(일본 국토교통성 공무원)가 쓴 ‘마스다 보고서’에 나온 개념이다.
- 20~39세 여성 인구 수를 65세 이상 노인 인구 수로 나눈 상대 비율을 말한다. 1 이하면 소멸 주의, 0.5 이하면 소멸 위험이다.
- 가임기 여성이 많아야 애를 많이 낳는다는 개념이라 일차원적 접근이란 비판도 많다. 현실은 여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환경이라 인구가 줄어든다고 봐야 한다.
- 전국 평균은 0.61로 이미 위험 단계에 들어섰다. 그나마 서울과 경기, 인천, 광주, 대전 정도가 0.5를 웃돌고 나머지 자치단체는 모두 위험 단계다.
‘소멸 위험’은 광역시 가운데 처음.
- 부산은 소멸 지수 0.48을 찍었다. 7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처음으로 소멸 위험 단계에 들어섰다. 서울이 0.80, 인천은 0.73, 경기도는 0.77이다. (고용정보원 조사는 2024년 3월 기준 0.49였는데 5월 기준으로 더 줄었다.)
- 통계청 인구 추계에 따르면 부산 인구는 2052년이면 245만 명으로 준다. 그나마 중위 추계 시나리오 기준이고 저위 추계 시나리오에서는 227만 명까지 준다.
- 인구 감소 추세를 방치하면 부산의 인구가 30년 안에 70% 수준으로 줄어든다. 식당과 학교, 학원 등등 모두 네 개 가운데 하나가 망한다는 이야기다.
합계 출산율 0.72.
- 당연히 출산율도 낮다. 합계출산율이 서울은 0.59명, 부산은 0.72명이다. 전국 평균은 0.78이다. (지속가능한 출산율은 2.1명이다.)
- 서울은 그나마 인구가 유입되는 지역이지만 부산은 인구가 줄어들면서 출산율도 떨어진다는 게 차이다.
부산이 특히 더 심각한 이유.
- 출산율만 보면 안 된다. 20~39세 여성들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
- 지난해 순유출이 1만1432명인데 25~29세만 놓고 보면 5445명, 30~34세는 2178명이 순유출이다. (부산 중구가 5만 명인데 4년마다 구 하나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 지난 28년 동안 연령대별로 전입과 전출 인구를 살펴봤다. 아래 그림이 전출 인구, 단위는 만 명이고, 굵은 빨간색이 25~29세, 굵은 파란색이 30~35세, 연두색이 35~39세다.
- 전입과 전출 모두 줄어드는 추세지만 전입보다 전출이 더 많다. 25~29세가 한해 4만 명씩 빠져 나가다가 2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한창 결혼하고 애 낳고 할 2030 세대들의 움직임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다음 그림은 연령대별 전입 인구 추이다. 역시 25~29세 인구 전입이 가장 많다.
- 28년 동안 전입과 전출을 더하면 순유출 인구가 이런 그림이 된다. 25~29세는 누적 195만 명이 들어오고 222만 명이 나갔다. 27만 명이 줄었다.
- 남녀 성비를 따로 보면 확실히 20~29세 여성의 전출이 두드러진다. 다음은 지난 28년 누적 집계 결과다.
여성 고용률이 키워드다.
- 부산은 울산과 함께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가장 낮은 곳이다.
-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서울은 55.6%인데 부산과 울산은 각각 50.6%와 50.2%밖에 안 된다.
- 여성 고용률이 지난해 기준으로 48.8%, 역시 최저 수준이다. 50%를 밑도는 곳은 부산과 울산 뿐이다.
부산이 거제의 미래였다.
- 양승훈(경상대 교수)은 조선 산업의 몰락을 다룬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2019)에서 “다수의 산업 도시가 여전히 남성 생계 부양자라는 물질적 토대와 그에 따른 가부장적 가족 모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 거제에서 태어난 여성들은 20대가 되면 거제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취업 자체를 꺼린다는 이야기다.
- 거제는 남성 고용률이 80%가 넘는데 여성은 45% 미만이었다.
- 남성 노동자들의 유입은 늘지만 정작 결혼할 여성이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단순히 조선 산업의 몰락 때문이 아니라 대기업+남성+정규직이라는 기득권 집단의 몽상에 가까웠다.
-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를 쓴 장민지(창원대 교수)는 “20대 여성이 취업을 원하는 일자리를 비수도권 지역에서 찾기가 어려워졌다”면서 “미디어나 디자인, IT 관련 업종 취업 자리는 서울 말고는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은 육체 노동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이 제품 검사나 납땜과 같은 단순 임가공이나 부품 세척 등 부차적 업무를 맡는 걸 ‘젠더 페널티’라고 규정했다. 울산과 창원의 300명 이상 제조업 기업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3.6%와 5.6%밖에 안 됐다. 관리직 비중은 1.0%와 0%였다.
부산이 더 심각하다.
- 거제는 그나마 여성 고용률이 조금 올라서 지난해 하반기 기준 51%다. 부산은 50% 밑으로 떨어졌다.
- 비슷한 규모의 인천과 비교하면 지역내총생산이 이미 인천에 뒤쳐졌다. 지난해 성장률이 인천은 6.0%인데 부산은 2.6%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나.
- 다음은 20~39세 여성과 남성의 전입과 전출 경로를 비교한 결과다.
- 남녀 모두 경남에서 전출보다 전입이 더 많다. 서울과 경기는 전출이 전입보다 많다. 경남→부산→서울과 경기로 빠져나가는 흐름이다.
- 전국 단위 전입과 전출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각각 20~39세 여성과 남성 데이터다.
문제는 속도다.
- 다음은 부산의 인구 순유출을 연도별로 살펴본 그림이다. 해마다 평균 3만 명씩 줄었다. 28년 동안 88만 명이 빠져 나갔다.
- 이 그림은 시기 별로 부산 지역의 연령별 인구 추계를 비교한 결과다. 2052년이면 80세 이상 노인이 47만 명인데 10세 미만은 11만 명밖에 안 된다.
- 당장 초중고 학생 수가 지금의 반 토막 수준으로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한국 전체가 그렇지만 부산은 특히 더 심하다.
- 결혼도 안 한다. 조혼인율이 전국 최저 수준이다. (조혼인율은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말한다.) 부산의 조혼인율은 3.1건, 전국 평균은 3.8명이고 서울은 3.9명이다.
- 부산도 한때 조혼인율 5건 수준을 기록했지만 10년 전부터 계속 줄어들고 있다.
- 아래 그림은 해운대구만 따로 뽑아 동별 지역소멸지수를 나타낸 것이다.
- 이상호(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는 “해운대에는 대형 쇼핑몰과 문화시설, 초고층 빌딩이 많아 젊은층이 선호할 것 같지만 임차료와 주거비가 비싸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자리 부족도 문제지만 지역 내 양극화가 심하면 청년들이 발붙이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성장 엔진의 부재.
- 한국의 상장 기업은 모두 2703곳. 이 가운데 부산에 본사를 둔 상장기업은 코스닥까지 포함해서 82곳밖에 안 된다. 충남(108곳)이나 충북(91곳)보다 더 적다.
- 상장기업 가운데 시가 총액 1조 원이 넘는 기업은 274곳, 부산경남에 9곳, 한화에어로스페이스(창원)가 12조 원, 두산에너빌리티(창원)가 11조 원, 한화오션(거제) 9조 원 등이다.
- 부산에 본사를 둔 상장 기업 가운데 1조 원 클럽 멤버는 금양과 BNK금융지주, 두 곳 뿐이다. 금양은 직원이 314명뿐이다. 부산에는 대공장이 없다.
- DRB동일이나 한국주철관공업 같은 50년 된 기업들이 있지만 성장 산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안 지표가 필요하다.
- 이상호는 “지방소멸 지수를 대체할 새로운 지표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대안지표는 청년 인재들에게 어떤 지역이 매력이 있으며,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어떤 요소가 갖추어져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긍정적-희망적 개념의 지표체계가 돼야 한다”는 제안이다.
- 소멸 위험 지수 0.4 미만인 지역에서 청년 고용률이 높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취약 계층 비중이 많기 때문에 대학 등 정규교육을 받기보다는 빠른 시기에 취업을 선택 하는 청년층이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소멸 위험이 큰 지역은 저숙련직 종사자 비중이 41.9%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근본적으로 양질의 일자리 문제를 인구 감소와 떼놓고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무엇부터 해야할까.
- 애 낳으면 얼마 준다는 접근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 여러 가지 분석과 가능하겠지만 부산의 인구 감소 추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2030 여성의 일자리와 출산율이 직접적으로 연동된다는 사실이다.
- 신경아(한림대 교수)는 “한국의 초저출산은 출산의 행위주체인 여성과 남성이 경쟁과 차별,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느끼는 고통과 그것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비관이 낳은 산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이 주체들의 고용과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 제도와 문화·관행을 바꾸고 이런 ‘전복적인 변화’에 대한 장기적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서울공화국 육칠십년대이후 악화되기만하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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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 젊은이 공급하는 식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