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 칼럼] 2천600만명의 상수원도 보호하며, 두물머리 교통체증도 해소할 미래지향적 해법은?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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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3.7에 쓴 글을 현 시점에서 보완하고 퇴고한 글입니다. (필자)
뜨거웠던 서울-양평 고속도로 논란이 어느덧 잊혔다. 한국의 통상적인 문제 해결 프로세스를 생각해 보면, 잊힌 것이 그리 놀랍지는 않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양평을 넘어, 특혜 시비를 넘어, 국토 계획 전반에 대한 철학과 관련한 문제다. 새 정부 출범에 발맞춰 다시 돌아보는 이유다.

논란 당시 쟁점은 대략 3가지였다.
- 변경 과정이 정당했는지 (절차)
- 변경안이 정말 최적 안인지 (내용)
- 장관의 ‘백지화’ 선언의 문제점과 향후 방향
의혹을 제기하는 측에서는 주로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내용), 석연찮은 과정을 거쳐 변경했는지를(절차) 따졌다. 당시 정부와 여당에서는 ‘타당성 조사 중에 더 적합한 안을 제안 받은 것’이며, 이에 따라 절차나 내용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도중에 국토부 장관이 갑작스러운 백지화 선언을 했는데, 이것이 직권남용인지 불가피한 조치였는지도 논쟁거리였다. 국토부는 ‘일시 중단’과 ‘지연’이라는 식으로 수습하려 했고, 오히려 여론이 악화하자 장관이 한발 물러서면서 ‘재추진’으로 가닥은 잡혔다. 다만 재추진의 조건으로 야당 측의 사과를 요구하는 한편, 양평군민의 지지를 업으려는 현장 행보를 했다. 특혜성 여부를 어느 쪽이든 당장 증명할 만한 증거는 없던 상황에서, ‘전문가’와 ‘과학’이 ‘변경안’의 우수성을 증명해 주기를 기대하는 모양새였다.

의혹을 제기한 측에서는 특혜 가능성을 지적하며, 원안대로 추진하되 이에 IC를 추가하는 수정안 정도를 제시했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는 원안에 찬성하는 국민이 59.8%, 변경안 찬성은 16.4%에 불과했다(여론조사꽃. 2023.7.17.). “전국민보다는 양평군민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사실 양평군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그러나 본 사안은, 당시 국토부 장관이 돌파구로 삼았던(?) ‘종점 지역의 민심’만을 강조해서 결정할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계획은 상위계획, 이 경우 ‘국가도로망종합계획’에 맞는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겠다(당시 논의 중 일부는 그런 방향으로 조금 흐르긴 했다). 차제에 ‘상위계획’은 정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지도 되돌아보면 더욱 좋겠다(이에 관해서는 다들 별다른 논의가 없었다). 그런 성찰을 바탕으로 나아가 국가 경영의 관점에서 국토계획의 근본 철학을 가다듬어야 할 문제다(이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를 기다렸다). 이하 다음 순서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 양평군 주민이 결정할 문제인가?
- 국가간선도로망(10×10)은 금과옥조인가?
- 노선 논쟁 외에 다른 대안은 없나?
- 국토의 비전은 ‘누가 언제 어떻게’?
1. 양평군 주민이 결정할 문제인가?
여당의 주장이나 국토부 장관의 행보를 보면, ‘양평군민’(만)의 의사를 강조하곤 했다. 심지어 양평군 주민투표를 통해서 노선을 정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양평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원도를 포함하고, 나아가 전국 차원에서 봐야 한다.
예타에서 밝힌 사업의 취지에는 ‘서울-춘천(나중엔 양양) 고속도로의 교통량 흡수’도 있다. 물론 이 표현이 꼭 경춘고도와의 ‘직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신중론도 있다. 하지만 ‘제2차 국가도로망종합계획(2021-2030)’을 보자(그림1, 2).

이에 따르면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분명히 ‘동서9축 지선’이라고 되어있다. ‘동서9축’은 춘천(이후 양양) 쪽 노선이다. ‘동서9축 지선’이 되려면, 종점은 (남한강 북쪽의) 양서면으로 가야 한다(아래 그림3).

동서9축 지선이 되려면 제일 자연스러운 것이 설악IC로의 연결이긴 한데, 사실 정부의 공식 계획 어디에도 설악IC로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연결하겠다는 직접적 언급은 없다. 노컷뉴스의 위 도면은 여러 자료를 토대로 언론사가 직접 그린 것이다. 이에 정부는 노컷뉴스의 그림은 가짜뉴스라며 ‘사법 조치하겠다’고 까지 했다(7.27 국토위 현안 질의). 하지만 이후 노선 연장 가능성을 언급하는 각종 정부 문서나, 장래 노선 축 연장을 고려하라는 예비 타당성 조사 보고서의 의중은 분명히 ‘동서9축’의 방향과 일치한다.
이에 근거하여 당시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원안이 제대로 추진되고 나면 서울-양평도로를 연장해서 서울-양양 노선(동서9축)에 직결하는 사업의 타당성을 경기도 자체적으로 연구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서울-양양 노선의 수요 분산을 통해 “주말이면 서울에서 강릉까지 6시간 넘게 걸리는 많은 국민의 교통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며 국가 전체 차원에서의 기대효과를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국토부의 변경안에 따라 종점이 (남한강 남쪽의) 강상면으로 가면, 이 노선의 성격은 동서9축이 아닌 8축의 지선에 가까워진다. 또는 이도 저도 아닌, 계획에는 없던 동서 8.5축이 된다 하더라도, 동서9축의 지선이라고 규정한 제2차 도로망 종합계획과는 어긋나게 된다. 상위계획에 위배되는 셈이다.
물론 8축이든 9축이든, 계획이야 언제나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있다.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합당한 절차를 거쳐 바꾸면 된다. 합당한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이 도로가 동서9축으로 연결되지 않고 강상면으로 오게 되면, 양평읍 및 그 일대의 양평 제2 선거구민들은 서울까지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애초 계획 시와 달리 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을 수도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공급망을 구축하는 차원이 중요해졌다던가 해서, 강상면 주변에 물류창고 혹은 아파트를 개발해야 (설령 그로 인하여 권력자의 일가가 혜택을 보게 되더라도) 국가 전체의 편익이 늘어나는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어떠한 합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목적이나 내용이 수단이나 절차를 정당화하는 건 곤란하다. 양평군민(만)의 주민투표로 정하거나, 타당성 조사를 하는 용역업체의 제안을 국토부 혼자 수용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수단이나 절차에 대한 원칙론이 이 글의 핵심 주제는 아니다.)
합당한 절차와 관련해서는, ‘타당성 재조사’를 해야 하는 기준이 있다. 비용이 15% 이상 증가하거나 수요가 30% 이상 감소할 경우다. 변경안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국토부의 해명이고 이에 대한 논쟁도 있다. 그런데 ‘타재’ 여부만이 문제가 아니다. 도시계획이나 도로 계획에는 상위계획이라는 것이 있고, 하위계획은 상위계획이 규정한 틀 안에서 정해진다.
양평 고속도로의 경우에도 그 상위에 20년, 10년 단위 계획들이 있다. 이들은 ‘국가간선도로망(10×10)’이라는 비전에 맞춰 수립된 것들이다. 양평 고속도로 종점을 바꾸기 위해서는 20년짜리, 10년짜리 ‘상위계획’들도 바꾸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내용과 절차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상위계획은 누구 마음대로 바꿀 수 있나? 양평군민 주민투표로? 국토부 장관의 결단으로? 아닐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상위계획대로 잘 진행되던 원안을 ‘누가 언제 왜’ 바꾸기로 정했냐고 묻는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상위계획은 ‘누가 언제 정했고, 잘 정한 걸까?’ 국토 전체를 대상으로 한 이 계획에는 지역 주민의 숙원도 반영되긴 한 것일까? 그래서 이 상위계획을 절차대로 잘 따르면 양평군민 숙원인 6번 국도와 두물머리 교통체증 해소도 가능해질까? 다시 말해…
- 국가간선도로망은 언제부터 동서남북 10개씩의 격자망이 되기로 한 것일까?
- 그렇게 10×10 격자망을 만들면 세상이 좋아질까? 이것이 이 글의 핵심 주제다.
2. 국가간선도로망(10×10)은 금과옥조인가?
제3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91~1999)과 제4차 국토종합계획(2000~2020)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간선도로망은 ‘7×9체계’를 비전으로 삼았다. 이때까지는 ‘도로’를 대상으로 독자적인 ‘종합계획’을 따로 세우지는 않았다. 종합적인 도로 계획이야 있었겠지만, 국토계획의 하위 항목이었다.
개념상으로는 여전히 도로 계획이 국토계획의 하위계획이긴 하지만, 도로체계의 양적 질적 성장에 따라 2016년부터는 별도로 ‘제1차 국가도로종합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지역 간, 특히 남북축 연계는 양호하나 동서축 연계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토대로, 향후 통행수요 증가 예측에 따라
“2020년까지 고속도로 5천km 시대를 열어 전 국토의 78%, 전체 인구의 96%가 30분 내 고속도로에 접근 가능한 도로망을 구축”
하고, 상습 정체 구간 251km의 약 80% 구간을 확장하여 정체를 해소하는 것 등을 비전으로 세웠다.
이것이 양적 목표라면, 질적 목표도 있다. 도로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하고, 환승 터미널 등을 통해 대중교통과의 연계성을 높이겠다는 것 등이다. 민간투자를 활성화하고 예산집행을 효율화 하겠다는 재무적, 절차적 개선도 목표로 세웠다.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와 재난에 대응하는 측면, 사고 예방과 대응체계 구축 등 안전 측면, 지능형 교통체계 등 첨단기술 측면도 포괄하는, 명실상부한 ‘종합계획’이었다. 그리고 이때까지는 종합계획의 물리적 뼈대를 이루는 간선도로망은 ‘7×9체계’였다.
‘10×10체계’는 국가교통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된 ‘제2차 국가기간교통망계획(2021~2040)’에서 처음 등장한다. 과거의 ‘30분 내 고속도로 접근’의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된 모양이다. 이제는 ‘전국 대부분의 도시를 2시간대에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 취지다.

세로 7개 가로 9개의 격자가 세로 10개 가로 10개의 도로로 이루어진 격자로 촘촘해지는 과정에서 기존의 ‘동서7축 지선’은 ‘동서8축’으로 승격된다. 7축과 8축 사이에 하나가 신설됨에 따라 기존의 8축과 9축은 각각 9, 10축으로 한칸씩 올라가서 이름표를 바꿔 달았다.
특기할 점은 서울-양평고속도로의 운명이다. 방금 말했듯, 동서7축 지선을 포함한 7×9체계 시절의 몇몇 노선들은 10×10체계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지선이 아니라 본선으로, “동서8축”으로 신분이 상승한다. 그런데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여전히 지선으로 남는데, 8축으로 따라가지 않고 “동서9축”의 지선이 된다(그림4). 왜 그랬을까? 이 노선은 원래의 동료들과 함께 남쪽의 동서 8축으로 분류되지 않고, 북쪽의 동서9축의 지선으로 가닥을 잡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그때나 지금이나 찾지 못했다.
설마 20년짜리 장기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지도 제작 실무자가 기분 내키는 대로 순번을 매기지는 않았을 터다. 뭔가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정체성을 8축(이번의 변경안에 가깝다)이 아니라 ‘9축 지선’으로 정하게 된 정책적 배경이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러한 정책적 배경이 있었다면, 변경안의 예타와 본타에서 이를 충분히 검토하였는지는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되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R축(또는 축이라기 보다는 살 또는 망)의 개념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래 7×9체계는 6개의 순환망을 포함하는 ‘7×9+6R’이 기본 뼈대였다. 격자체계(7×9) 외에도 순환(Ring)망을 6개 주요 도시 둘레에 구축(6R)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2차 국가도로망계획에서는 ‘10×10+R2’로 바뀌었는데, 이는 Radial Ring(=R2), 즉 순환망(Ring) 안에 바퀴살처럼 방사형 노선을 추가(Radial)하겠다는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서울-양평 노선은 애초에 동서축이 아니라, 독립적인 ‘R(방사)축’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할 수도 있다.
동서9축에 연결하는 것이 전제된 것이 아니었냐는 노컷뉴스의 위 보도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반론은 ‘연장은 전혀 고려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토부는 왜 ‘9축으로의 연장은 고려하지 않으면서’, ‘동서9축 지선’이라고 명명했을까? 그럴 거라면 9축 지선이 아니라 예컨대 ‘서울-양평R2선’이라고 했어야 마땅하다. 서울에서 순환2축(제2순환고속도로)까지만을 연결하는 ‘방사형 노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동서9축의 지선이라 명명했으면, ‘연장은 전혀 고려한 바가 없’어도 문제가 되는 것 아닐까?그러면 도대체 왜 2021년 겨울에는 ‘동서9축 지선’이라고 한 것일까?
하지만, (1)2020년까지는 ‘원주 방면 7축 지선’이었던 서울-양평 고속도로가, (2)어째서 2021년 부터는 ‘춘천 방면 9축 지선’으로 바뀌었다가, (3)다시 또 2023년에는 용역회사의 제안대로 ‘원주 방면’에 더 가까워졌는지, (4)또는 ‘동서축 연결은 고려하지 않으면서도 방사형에 속하는 R로도 분류하지 않고 여전히 동서축의 지선으로 남겨 놓은’ 국토부의 무슨 심모원려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
… 를 따지는 것 역시, 이 글의 주된 목적은 아니다.
3. 노선 논쟁 외의 다른 대안은 없나?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정책의 애초 취지와 목표가 무엇이었나? 8축이냐 9축이냐, 지선이냐 본선이냐 이전에, 서울-양평도의 취지 중 첫 번째는 “6번 국도 정체의 해소”다. 양평군을 거의 중앙에서 동서로 가로지르는 이 국도가 막히는 이유는 주말에는 행락객, 주중에는 서울로의 출퇴근 교통량 때문이다.
주말에는 외지인들의 차량이 너무 많아 주민들이 외출을 단념할 정도로 심하다고 한다. 그리하여 변경안이든 원안이든, 상수원 보호구역에 1조 8천억 원을 들여 비용 대비 편익이 0.8 수준인 도로를 더 만들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는 같다. 고속도로 증설이 해법이라는 전제는 공유하는 것이다(그림5 참고).
하지만 2,600만 국민의 생명줄인 상수원 보호구역에서, ‘길이 막히면 도로를 더 뚫는 것’만이 능사일까? 그 과정에서, 동서9축 지선으로서의 동북권(원안)의 통행량을 흡수해서 서울-강릉 간 6시간을 단축하든, 그보다 통행량이 더 많아서 비용편익분석에서 더 유리하다는 동남권의 통행량을 흡수하든(변경안), 굳이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통행량을 더 끌어오는 것이 바람직할까?
국토부의 주장은, 변경안으로 할 경우 동남권의 교통을 흡수해서 편익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동남권 교통 흡수는 애초 이 사업의 목적이 아니었다. 지난 20년간도 그랬고, 예비타당성 조사에서도 한결같았던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는 6번 국도 정체 해소였고 둘째는 동북권의 교통량 흡수였다.
그런데 도로가 지나는 상수원 보호구역은 유류·유독물 차량은 못 다니는 구역이다. 동북권이든 동남권이든 좋다. 용역회사가 추산하여 사업의 근거로 삼은 ‘추가 교통량’에 따른 비용편익분석에서, 유류·유독물 차량은 못 다닌다는 점을 제대로 고려했는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그런 위험한 차량이 아니더라도, 굳이 다른 차량들을 이리로 초대해야만 할까?
그런데 변경안이 더 좋다는 주장 중에는 상수원보호구역을 덜 지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이 문제를 파고든 주간조선의 기사에 따르면, “어떤 안으로 건설돼도 반쪽짜리 고속도로”가 될 우려가 농후한데, 그나마 변경안으로 하는 것이 상수원 보호구역을 조금 더 외곽에서, 조금 더 짧게 지나는 것으로 나온다.

자, 드디어 이 글의 본론이다.
6번 국도의 정체 해소와 함께, 상수원 보호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예컨대 지역 주민이 아닌 이들이 해당 구역 진입 시, 주말에는 상당한 수준의 혼잡통행료를 부과하는 정책 같은 것이다. 이런 일석이조의 해법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동북권으로의 연장은 고려한 바 없다”는 국토부의 혜안이 돋보인다.
묘지나 가족 등 연고가 있는 이들에겐 약간의 할인을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혼잡통행료 수입은 수질 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에 대한 보상 기금으로 쓰면 좋겠다. 한편,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운길산역이나 양수역에서 지역 내 대중교통을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외곽에 주차장을 만들고 ‘역사 도심’까지는 저렴한 가격(때론 무료)의 트램을 운영하는 외국의 사례도 있다(아래 그림6). 주말에 우리가 두물머리나 정약용 유적지의 풍광을 즐기기 위해, ‘바로 그 앞에까지 반드시 차를 몰고 가야 한다’는 법은 애초에 없지 않은가?

문화유산이나 중요한 환경보호구역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일반 주거지나 업무지구, 또는 교외 지역을 대할 때와 같아서는 곤란하다. 탄력적 운용이나 수요 관리, 대체 수단 제공과 같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결합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막히면 더 많은 도로를 만들자’는 방식은 사실 도심에서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방식이다. 휴일 행락객들을 위해서는 이렇게 수요 관리 차원에서의 대안을 마련하자.
그렇다고 주중 통근 대책까지 수요관리 차원에서 접근하면 곤란할 것이다. 경의중앙선이나 KTX, GTX를 더 많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애초에 양평읍 중심에 기차역이 있으면 제일 좋겠다. 기차역과 연계하여 지역 내 대중교통체계를 정비하고, 정 필요하면 기차역에 주차장도 확충하고,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정액권이나 할인권 등을 활성화하는 것 등이 방법이겠다.
양평이든 어디든, 광역 통근을 하는 사람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기후 위기 시대에, 일상의 광역 통근을 자가용으로 하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기본 방향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대중교통의 수송 분담률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 자가용이 전부 ‘전기차’라면?
그 자가용이 전부 전기차여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의 일상 통근 자가용이 모두 전기차가 되면 충전 인프라나 전력 생산이 당장 이를 뒷받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가도로나 지하 주차장 등 기존 인프라도 한계가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보다 20% 정도 더 무겁다. 한두 대가 아니라 전부 전기차가 되면, 기존의 물리적 인프라가 받쳐주지 못한다. 물론 이는 건설업계에는 희소식이 될 수도 있는데…. 정말 가볍고 화재위험도 적다는 소디움 전지가 빨리 상용화되길 바라고, 건설업계엔 다른 건으로 희소식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토지이용계획의 차원에서도 생각해 봐도 그렇다. 국토의 균형발전이나 효율적 활용 차원에서도, 굳이 2천 6백만 명을 위한 상수원 보호구역에도 주택단지나 물류센터를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인가? 이는 인근의 땅 주인이 (지금은 추락한) 권력자의 친인척이어서(만이) 문제가 아니다.
설령 “전체 인구의 96%가 30분 내 고속도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정책목표라고 해서, 굳이 상수원 보호구역 안의 전원주택에서도 상수원의 오염을 감수하며 30분 만에 고속도로에 진입하게 해줘야 할 이유가 있는가?
설령 ‘동서9축의 정체 해결을 위해서 추가 도로가 반드시 필요하다’ 해도, ‘상수원 보호구역에는 애초에 들어가지 않는’ 제3안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두물머리로 향하는 차들은 우리가 무조건 다 받아줘야 하는가?
이기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1년에 몇 번이나 가게 될지 모르는 고속도로를 만든 대가로 어느 날 뉴스에서, ‘유독물 실은 차량 전복 사고로 수도권 식수원 오염 비상’이라는 헤드라인을 보고 싶지는 않다. (아, 그때쯤이면 건설단가는 훨씬 더 비싼 스마트 오염 방지 도로로 지으면 괜찮다는 보도자료도 보게 될지 모르겠구나.)
4. 국토의 비전은 ‘누가 언제 어떻게’?
‘소국과민(小國寡民;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을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상으로 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라가 작고 백성이 적어서 자원 소비도 잦은 왕래도 필요 없다는 노자의 이상사회를 우리에게 적용할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하지만 7×9체계로 열심히 만들었더니 부족해서 10×10체계를 만들어놨는데, 길이 또 막히면 어쩔 것인가?
이제는 12×14 체계로 가야 할까? 이렇게 촘촘한 격자망으로 전국을 구획하자는 식의 ‘건설확대 일변도’로 가는 것이 문제가 없는지 돌아볼 필요는 있다. 오히려 그렇게 촘촘한 도로만 지향해서, 즉 철도와 대중교통으로도 (두물머리에) 불편함 없이 갈 수 있도록 만들지 않아서, 그래서 모두가 자가용을 선호하도록 시스템을 만든 결과로, 여전히 더 촘촘한 도로가 필요해지는 상황을 자청하는 것은 아닐까.
지역 차원에서도 마냥 고속도로가 해법은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안으로든 서울-양평고속도로가 완공되면 ‘서울까지는 빨리’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댓가로 양평의 하늘엔 연결 경사로만 가득하고 6번국도를 비롯한 군내 도로는 365일 더 막힐지도 모른다. 교통이 좋아지니 양평에는 아파트와 물류센터가 더 많아지고, 10×10체계가 완성되어 전국의 차량이 더욱더 많이 몰려올테니 말이다.
그리하여, 도로 예산이 철도나 대중교통에 비해 몇(십) 배나 더 많은 것이 수십 년째 좋을지도 살펴봐야 할 시점인 것이다. (물론 당장 뒤집어엎자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될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자동차(회사)를 위한 ‘도로 건설비용’은 이렇게 7×9체계에서 10×10체계로 늘려 공공이 나서서 투입하면서, ‘철로 건설비용’은 철도(회사) 적자의 원인으로 삼는 문제를 공공정책 차원에서 점검해 봐야 한다.

물론 ‘연결성의 제고’ 자체야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30분’과 ‘2시간’인가? 20분이나 1시간 50분은 안 되는가? 그냥 ‘보기 좋은 시간 구분’에 맞춰서 국토의 구획 단위도 일률적으로 정하면 되는 것일까? 단순히 표현에 대한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다. 왜 2시간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 2040년이 되어 이제 10×10체계가 완성되었다손, 여전히 공사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주요 도시 간 1시간 내 이동”이 정책목표가 되면 ‘그렇구나, 10×10으로 모자라서 12×14 체계의 도로망을 구축해야만 하겠구나’, 하는 상황이 되는 걸까?
7×9체계가 10×10체계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무엇을 논의했고 어떠한 합의를 만들었기에, 이번에 변경안을 비판하거나 추진하는 근거로 삼는 것일까? 어떤 지역은 좀 더 촘촘히, 어떤 지역은 좀 더 성기게 만드는 과정에서 물론 전문가들의 의견과 자문은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국토를 7×9갈래로 80조각으로 나누는 게 좋을지, 10×10갈래로 121조각으로 나누는 게 좋을지, 이를 위해서 철도 대신에 도로 중심의 국토 체계로 갈지 등에 대해서 뭔가 사회적으로 논의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사실 우리가 바람직한 국토의 미래상에 대해 제대로 논의해 본 적은 ‘민주화’ 이후에도 별로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속도로의 종점 위치 논쟁에서 특혜 여부를 중심에 놓는 것’은 그 자체로 필요하긴 하지만 이는 형사법 차원의 문제요, 국토 정책 차원에서는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양평고속도로 이슈를 좋은 계기로 삼자. ‘7×9체계가 완성되어가는 지금 6번 국도는 더 막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면, 한 번쯤은 우리의 국토계획의 철학을 점검해 봐야 할 때다.
이제 결론이다
균형발전과 지능형 국토는 분명 지향해야 하고, 연결성을 제고하는 것도 좋다. 차량의 소유 자체를 죄악시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기후 위기 시대에, 2600만 명의 상수원을 가로지르는 1조 8천억 원짜리 노선을 놓고, 양평군민 끼리든 전 국민이 함께든, ‘강상면과 양서면 중 어디가 종점으로 낫냐’를 따지는 것은 ‘소국과민’보다도 한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리하여 국민주권정부가 고민하는 출발점은 ‘양평고속도로 종점으로 어디가 좋겠느냐’가 아니라,
- 광역 교통체계에서 철도의 역할이나,
- 철도역 주변의 효율적인 토지이용계획,
- 상수원 보호구역에서는 특히 사람과 물자의 이동에 대한 ‘스마트’한 수요 분산 정책 및 주민 불편 해소책, 예컨대 주말 혼잡통행료 부과와 그 수익의 적절한 재투자
…등이 되고, 이것이 새 정부와 향후 선거에서의 주요 쟁점이 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