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이재명 정부, 어떻게 ‘보편적 기본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민생 회복 지원금’ 등 기본소득형 정책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 (오준호/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7분)
“모든 국민의 기본적 삶의 조건이 보장되는 나라, 두터운 사회안전매트로 위험한 도전이 가능한 나라여야, 혁신도 새로운 성장도 비로소 가능합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사

새로운 대한민국 비전으로 이재명 정부는 ‘기본사회’를 제시하고 있다. 기본사회란 소득·주거·돌봄·교육 등 모든 영역에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국민의 ‘기본’을 보장하는 사회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기본사회로 가는 핵심 정책이다. 외부의 변화나 위기에 상관없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 없이는, 기본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사회는 곧 ‘기본소득 있는 복지국가’이며, ‘진짜 대한민국’인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에서 ‘전 국민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기본소득의 취지와 의지를 담은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농어촌 주민수당(농어촌 기본소득) △햇빛·바람연금 확대(에너지 기본소득) △아동수당 18세까지 확대(아동·청소년 기본소득) 등이다. 전 국민은 아니라도 지역이나 연령 조건을 만족할 경우 조건 없이 제공하는 ‘기본소득형’ 공약이다. 또 이재명 정부는 추락한 경기를 살리기 위한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결정했는데, 역시 ‘기본소득형’ 정책이다. 이 정책들이 국민의 호응을 얻으면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가는 단단한 다리가 놓인다.
기본소득에 대한 오해
기본소득형 정책과 함께 ‘기본소득 있는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기본소득에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국민 여론을 설득해야 한다. 둘째, 공약의 구체적 실행 계획을 정교하게 짜야 한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대표적 비판으로 선성장 후분배론, 물가 인상론이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 비판에 적극적인 대응 논리를 가져야 하며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

쟁점 1. 성장이 먼저, 분배는 다음?
일각에서는 “경제의 파이가 충분히 커지기 전에 분배에 치중하면 성장에 해가 되고 지속 가능성이 없다”라며 기본소득 도입을 시기상조로 본다. 이들은 정부 재원을 생산적 투자나 기업 지원에 써서 ‘낙수 효과’를 기대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한다. 또한 기본소득이 근로의욕을 떨어뜨려 성장 잠재력을 저해한다고도 비판한다.
하지만 성장이 먼저 분배는 나중이라는 주장은 시대착오에 가깝다. 서구 복지국가가 성장을 완성한 다음 복지국가를 건설했을까? 스웨덴은 20세기 초 세계 대공황기에 사회적 타협으로 복지국가 시동을 걸었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상황에서 아동수당과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 제도를 도입했다. 복지국가의 역사는 ‘선성장 후분배’가 아닌, 포용적인 분배를 토대로 놀라운 성장을 이룬 역사다.
한국 경제는 오랫동안 대기업 중심 성장 전략 아래 양극화가 심화하고 내수 부족, 사회 갈등 문제를 겪고 있다. 이제는 과감한 분배로 사회적 역량을 고루 키워내는 전환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이 근로의욕을 꺾는다는 주장도 실증적으로 반박된다. 올해 4월 발표된 독일 베를린 기본소득 실험(2021-24년) 결과에서, 기본소득 수급자의 노동시장 참여율 하락은 나타나지 않았다. 수급자와 대조군 모두에서, 참여자의 약 90%가 조사 시점에 주당 평균 40시간 일하고 있었다. 실험 결과는 ‘나의 기본소득’(Mein Grundeinkommen) 웹사이트에 공개되어 있다.

게다가 기본소득 수급자들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감소해 미래를 위해 교육을 받거나 창업에 나서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잘 갖춘 사회 안전망이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떠받친다는 증거다. 성장 대 분배라는 이분법은 허구다. 오늘날 지속 가능한 성장은 기본소득 같은 과감한 포용 정책과 함께 가야 한다.
쟁점 2. 기본소득 지급하면 물가가 오른다?
기본소득에 대해 자주 제기되는 비판은 물가인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 모두에게 현금을 주면 유동성이 급증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민생고가 가중된다”는 주장이다. 보수적인 정치인과 언론은 기본소득을 포퓰리즘이라 비난하며, 생필품 가격 상승으로 소득증가의 효과는 상쇄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기본소득의 실제 메커니즘을 오해한 막연한 인플레이션 공포에 불과하다. 우선, 기본소득 재원을 조세로 조달하는 ‘조세형 기본소득’은 돈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고 한쪽에서 세금을 거둬 다른 쪽에 이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분배 구조의 개선 효과를 가져올 뿐 물가 인상 요인인 통화량 급증과 무관하다.
둘째, 기본소득 지급으로 증가하는 소비는 주로 저소득층의 필수 소비인데, 이 분야는 공급 탄력성이 높아 물가 폭등 가능성이 작다. 경기침체 때문에 한국의 제조업 생산 가동률은 평균 70% 정도로, 생산설비 열 대 중 세 대가 놀고 있다. 저소득 가구가 기본소득이나 민생지원금을 받아 생활 소비를 늘리면, 기업은 오히려 유휴 설비를 돌려 상품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다.

셋째, 외국의 현금지원 실험에서 물가 상승의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알래스카 영구기금배당(APFD)에 대한 2022년 미 시카고대의 연구(존스, 마리네스쿠)는 “APFD와 인플레이션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없다”라고 밝혔다. 실제 알래스카 물가 인상률은 APFD가 실시된 1982년 이전엔 미국 평균 물가 인상률보다 높다가, 배당 지급 후에는 장기적으로 미국 평균과 비슷하거나 낮게 나타났다. 재원 조달, 지급 수준 설계에 따라 기본소득 제도를 얼마든지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기본소득 본격화를 위한 네 가지 제안
이재명 정부가 기본소득형 대선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이 구체화와 공론화가 요청된다.
1. 햇빛·바람연금 전국화
햇빛·바람연금은 신안군에서 큰 호응을 얻은 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의 정책적 이름이다. 이 제도를 확대하려면 햇빛, 바람, 육지, 바다 등 ‘모두의 것’에서 발생한 이익을 공공에 되돌려주는 국가적 입법이 요청된다. 예컨대 풍력발전 선진국 덴마크는 해상풍력 발전 사업자가 사업지분 중 20%를 정부에 의무 할당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기업이 바람이라는 공동자원을 이용하려면 정부와 국민에게 일정 몫을 나눠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도 이런 내용의 ‘재생에너지 이익공유법’이 필요하다. 대규모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사업자는 정부와 일정 지분(공공지분)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공지분의 수익 절반은 전 국민 ‘에너지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고, 절반은 지자체별 햇빛·바람연금으로 지급하자. 이에 관한 법안 발의를 기본소득당에서 준비하고 있다.

2. 농어촌 기본소득 단계적 도입
식량주권, 탄소중립, 생물 다양성이 중요해지면서 농촌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농촌 주민의 기본 삶을 보장하고 지역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특단의 방법이 필요하다. 현재 도농 가구의 소득 격차를 줄여 농촌 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면 최소 1인당 월 30만 원 이상 농어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 농촌 인구 약 945만 명에게 지급하면 연간 34조 원이 든다. 재원은 균형발전특별회계 중 일부, 지방소멸대응기금 등을 사용할 수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법’을 제정해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인구소멸 위기 지역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확대하자.
3. 아동·청소년·청년기본소득
한국처럼 저출산 문제를 겪은 다른 선진국들은 포용적인 아동수당 등 공적 지원을 늘려 출산율 반등에 성공했다. 지난해 기본소득당은 아동수당을 18세까지 확대하고 금액을 30만 원으로 인상하는 ‘아동·청소년기본소득’ 법안을 발의했다. 저출산 해결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이 요청된다. 이와 함께 ‘청년기본소득’도 논의해야 한다.
한국처럼 사회 진출 전인 청년들을 ‘무복지’ 상태에 내던지는 선진국은 거의 없다. 많은 나라에서 아동수당을 20대 초까지 지급하거나 학업·생활·주거비 명목의 현금수당을 제공한다. 이런 사회적 지원이 없으면 청년의 미래 진로는 ‘물고 태어난 수저’’에 좌우될 것이다. 연 100만 원 청년기본소득을 전국 24세 청년(60만 명)에게 지급해도 예산은 5년간 3조 원으로, 이재명 대통령 공약에 드는 전체 재정 약 210조 원의 2%가 안 된다. 그 정도도 청년에게 못 쓸 이유가 있을까? 이재명 정부가 약속한 생애주기별 소득보장 핵심에 아동·청소년·청년기본소득을 넣자.

4. 기본소득 공론화위원회
기본소득처럼 사회경제 구조에 큰 변화를 야기하는 정책은 국민적 토론과 합의가 필수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기본소득 공론화법안’을 발의했다. 국무총리 소속으로 ‘기본소득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해 1년간 전국 권역별로 시민 숙의 토론을 실시하는 내용이다. 시민 숙의 토론에선 기본소득의 효과, 설계 방식, 재원 마련 등을 심층적으로 논의한다. 공론화 결과는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한다. 기본소득을 당장 도입할지에 대한 의견은 달라도 ‘미래에는 필수’라는 공감대는 넓다. 최소한 공론화는 서두르자.
기본소득이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
국민은 ‘성장과 회복’을 내건 이재명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런데 국민의 선택을 ‘성장이 우선, 기본소득 같은 분배는 나중’이라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 기본소득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왜일까? 기본소득은 혁신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할 구조 변화를 가져온다. 첫째, 기본소득은 노동시장을 변화시킨다. 기본소득이 있으면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불합리한 조건의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고, 기업은 일할 사람을 붙잡으려면 더 나은 근로조건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노동환경 개선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
둘째, 기술혁신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높아진다. 인공지능(AI)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노동의 대변혁 시대에 기본소득은 필수 안전망이다. 기본소득을 통해 실업의 불안감이 줄어들면 사람들은 기술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며 혁신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베를린 기본소득 실험 연구진이 “기본소득은 사회적 도약대(social launchpad)”라고 평가한 이유다. 실험 참가자들은 실패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과감히 직업을 바꾸거나 창업에 도전했다.
셋째, 사회적 지속 가능성이 커진다. 기본소득은 불평등을 완화하여 사회 통합에 기여하고, 범죄율 감소나 건강 개선으로 이어져 사회적 비용을 절감한다. 2017-18년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에서, 기본소득 수급자들은 비수급자에 견줘, 정부와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투표 참여율이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종합하면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전략의 일부다. 인적자본 강화, 사회적 안정, 혁신역량 제고를 통해 성장의 질을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성장과 회복’을 목표로 하는 이재명 정부는 기본소득의 이런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경제 실정과 내란으로 공동체의 기초를 허물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로 새집을 지을 순 없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불평등과 양극화의 굴레를 끊고, 혁신과 포용이 공존하며, 국민 모두의 존엄한 삶을 국가가 보장하는 나라야말로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대한민국이다. 그 중심에 기본소득이 있어야 한다. 우선 이재명 정부가 약속한 기본소득형 제도를 도입하고, 이를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발전시키자. 기본소득 있는 복지국가, 아니 모두를 위한 행복한 미래가 여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