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인터뷰 37.] 무시무시한 블랙코미디. 트럼프 월드에서 이제 ‘계획’은 아무 의미가 없다.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준비하라. 이상헌(ILO고용정책국장)이 말하는 인간과 노동과 세계. (⏰15분)
원래는 ‘2025년 세계 노사정 기구의 방향성’을 짚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이제 그런 ‘공식 계획’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은 단언했다. 왜? 트럼프 컴백! 트럼프는 지나가는 바람일까? 아니면 새로운 질서의 시작일까. 이상헌은 후자라고 말한다.
트럼프라는 돌연변이의 출현. 그것은 이상헌의 지적처럼 우연이 아니다. 그의 출현은 물적 토대의 축적과 정서적 구조의 폭발로 어느 정도는 경고∙예견된 것이긴 했다. 두 번째 트럼프는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명심하라. 흔히 돌연변이는 종 자체의 되돌릴 수 없는 진화를 끌어내곤 했다. 그리고 잔인한 진실, 그 진화의 결과가 항상 축복인 건 아니다. 진화가 ‘진보’는 아니며, 그 반대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상헌의 ‘제네바 인터뷰’ [ep. 37]
트럼프라는 신질서,
무역부처의 준군사기구화
질문 정리: 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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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5년 1월 10일(금), 1월 17일(금)에 각각 진행한 인터뷰를 함께 정리한 것입니다.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소제목이나 본문에 맥락화했고, 본문은 이상헌 박사의 답변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최종 정리 과정에서 이상헌 박사가 직접 내용을 확인하고 퇴고했습니다.
트럼프로 인해 2025년 새해 공식 업무 계획은 무의미해졌다. 이제 각국 무역부처는 ‘준(準)군사기구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
트럼프 시추에이션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의 미국화(Americanization) 발언? 처음에는 트럼프가 늘 하는 농담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이제는 대부분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뿐 아니다. 영국 노동당을 극우적으로 바꾸면 좋겠다고 대놓고 말한다. 정말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이야기들이다.

그야말로 ‘트럼프 시추에이션’이다. 국제연합(UN)은 이 ‘트럼프 상황’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UN 사무국은 미국 분담금으로 매년 22%를 책정한다(참고로 한국은 2% 정도). 그러니까 UN 전체 예산의 5분의 1을 미국이 담당한다. 절대적이다. 트럼프가 이 분담금 지분을 지렛대로 삼아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분담금 전액 삭감이라는 트럼프의 협박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까지 존재한다. 그래서 구조조정과 직원 재배치 등을 미리 준비하는 등 초긴장 상태다.
트럼트 1기였던 20017년에 이미 전력이 있다. 트럼프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고 선언했고, UN은 이에 맞서 이스라엘의 지위에 관한 어떤 결정도 거부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찬성 129개국, 반대 9개국, 기권 35개국). 그에 대한 보복으로 트럼프는 UN에 지급하는 분담금을 대폭 삭감했다(약 2.8억 달러, 당시 환율로 약 3천억 원 삭감한 53.9억 달러로 책정).

한마디로 난리다. 트럼프로 인해 2025년 새해 공식 업무 계획은 무의미해졌다. 이제 각국 무역부처는 ‘준군사기구화’할 가능성이 크다. 기후문제, 노동, 인권 등 고전적인 국제 이슈를 생산적으로 논의할 공간은 점점 더 작아진다. 작용(트럼프)에 따라 반작용(각국 정부와 국제기구의 사업 방향성)이 생길 텐데, 수동적이고 반응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트럼프는 예측 가능성이 높지 않아서 더 대응하기 어렵다.
복잡 미묘… 모두가 반(反)트럼프는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반(反)트럼프인 것은 아니다. 애매한 관계인 경우도 많다. 가령 인도는 친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유럽연합 중에서도 이탈리아는 특히 일론 머스크와 우호적인 관계다. 공식적으로 트럼프에 대해 경계하고 염려한다는 입장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 수면 아래에서는 좀 미묘한 측면이 있다.
트럼프 1기와는 또 다른 양상이다. 1기는 트럼프의 극우적 경향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정도였다면, 트럼프 2기는 극우가 정치∙경제적 실체로서 시스템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극우화와 포퓰리즘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고, 트럼프의 ‘귀환’도 이런 흐름 속에서 생각해 볼 문제다.
‘워싱턴 컨센서스(합의)’(Washington Consensus; 1989년 정치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이 자신의 글에서 처음으로 쓴 표현. 미 재무부,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이 개발도상국의 발전 모델로 미국을 설정한 ‘합의’. 2010년대 이후 그 의미가 크게 퇴색) 이후 세계화는 비정규직을 양산했다.
그런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한 반세계화 흐름이 만들어졌는데,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세계화의 흐름에서 피해를 본 백인 남성들이다. 쇠락한 미 중서부 북동부 중공업 지대인 러스트 벨트’ 사람들. 미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추구한 세계화에서 낙오한 사람들을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다.

극우 과두정 ‘올리가르히’
하지만 2010년 이후로 세계화는 힘을 잃기 시작했다. 노동법을 정비하고 정치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 득세했다. 잃어버린 걸 채워야 한다는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흐름은, 우경화라기보다는 ‘극우화’의 모습을 띤다. 그러니 극우화의 이면에는 세계화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노동이나 노동권에 대한 공격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극우화된 정치의 압력이 노동권을 공격하는데, 그들이 강조하는 게 바로 ‘일자리’다. 일자리를 위해서는 시장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방향이 있고, 시장 중심으로 가면 망할 수 있으니 공공으로 가자는 방향도 있다.
공공 정책을 떼고 시장 정책으로 일자리를 찾자는 시장 중심주의도 예전과는 좀 다르다. 예전엔 중소기업도 챙기는 전체 생태계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극우적 정경 복합체의 프레임은 뭐냐면 대기업을 중심으로 낙수효과, 리더십을 강조하는 방향성이다.
극우파 과두정이라고 할까. 정치의 모습을 경제가 모방하는 것 같은 모습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트럼프와 머스크다. 기업도 예전에는 윤리적인 ‘눈치'(PC; 정치적 올바름)를 봤다면 지금은 그런 눈치를 보지 않는 분위기다. 극우 정치가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정치∙경제시스템이 한 번에 바뀐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정치∙경제적 패키지랄까? 그런 모습을 현재 아르헨티나가 보이고 있는데, 이런 게 굳어지면, 잘나가는 노동자는 어떻게 버틸지 모르겠지만, 교섭력이 약한 중하층 노동자는 아주 힘들어질 거다.


정치라는 ‘사치재’의 비용은 더 올랐다
지금까지 정치와 경제의 결합, 정치∙경제적 공동체, 정경복합체라는 등의 표현은 어느 정도는 메타포였다. 하지만 이제 더는 비유가 아니다. 현실이다. 베이조스(아마존 워싱턴포스트), 주커버그(페이스북)의 백기 투항은 상징적이다. 디지털 시장의 독과점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경제와 정치가 한몸으로 합쳐지는 과두 체제가 되면 게임의 규칙이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체제에서는 기존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확보하기에 너무 큰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시대의 게임 룰은 정치와 경제의 구별과 경계가 사라진 완전히 다른 체제다. 기존 경제 권력 입장에서는 정치가 일종의 ‘사치재’였다. 그런데 이제 그 비용이 더 커진 셈이다.

관세 ‘전쟁’, ‘전시’ 경제
중국은 자신의 영향력을 공고화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대단한 성공은 아니지만, 국내 시장을 넘어 자신의 영향력을 개발도상국 시장에 확장하고 안정화하는데 노력 중이다.
미국의 극우 과두정에 대한 여러 가지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의 관세 정책에 대한 반응이 없을 수 없는데… 관세 전쟁이 벌어지면, 서로 경쟁적으로 관세를 높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 번 올리기 시작하면, 또 다른 합의가 있기 전까지는 끝이 없다. 그레서 관세라는 말에는 자연스럽게 ‘전쟁’이 붙는다.
일하는 사람의 관점으로 돌아가면, 골치 아픈 상황이다. 자국 경제가 내수 시장 중심으로 형성돼 있으면 그나마 낫지만, 외부시장(수출시장)에 의존하는 나라들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30년~40년 동안 ‘열린 경제’를 만들자고 ‘워싱턴 합의(Washington Consensus)’ 등 뭐든 경주해 왔다. 그런 게 세팅된 시스템에서 ‘트럼프 시추에이션’이 생겨버리면, ‘전시’ 경제는 불가피해진다.

국가 이기주의?
한편, 트럼프를 국가 이기주의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이라는 수퍼 파워가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의 관점에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비칠 여지가 있긴 하다. 하지만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사적 이익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미국이 국제적인 제어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작아지고 있지만, 국제 질서 자체가 왜곡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UN이든 뭐든 이야기할 수 있는 틀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국제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 친한 나라들끼리 전략적 그룹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강해지면, 국제질서는 좀 더 불완전해지고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전후 질서를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가 ‘파나마 운하’인데, 트럼프는 그걸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핑계로 기존 러시아와의 무한 핵 경쟁과 같은 논리로, 중국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미국 내 노동자 보호? 일자리 확보?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그 말 그대로 될 가능성이다. 왜냐하면 외국의 자본 투자를 통해 빠져나간 노동자를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돈을 주고 끌어오는 산업 정책을 통해 그런 효과를 꾀했다면, 트럼프는 경제적 인센티브에 정치적 인센티브(협박과 강제)까지 동원하고 있는 셈이다.
가령 멕시코 수입품목에는 관세를 대폭 높이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면 기업은 멕시코에 공장을 짓는 대신 미국에 직접 투자해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다(예: 현대스틸 등). 트럼프의 장담처럼 일자리가 느는 효과가 아주 클 수는 있다. 국제적인 효과로서도 일자리는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미국 내에서는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도 크다. 일의 양 자체는 좋아질 수 있지만, 일자리의 질은 떨어질 수도 있다. 임금이나 노동시간의 문제, 고용안정의 문제 등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복잡한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외부 효과와 관련해 일자리 총량을 늘긴 하겠지만, 내부적으로는 일자리의 질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투자를 늘릴지는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것이 미묘한 가능성이다. 트럼프 공약은 빈 공약이 아니라 말대로 될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일자리 스위칭?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이동
세계화는 경제 성장을 분배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일하는 사람도 수출과 관련한 사람들은 혜택을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피해를 봤다. 그 양극화로 인해 세계화의 불만이 쌓였고, 그런 불만의 축적으로 포퓰리즘이 생겼다는 건 이미 몇 번 이야기한 바 있다.
- 세계화의 황혼, 포퓰리즘 (2024.04.23)
- 정년 연장이냐 고용 연장이냐: 노인과 청년 그리고 포퓰리즘의 나무 (2024.11.27)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관세라는 장벽을 통해 국내 시장을 보호하면 그 역학이 또 바뀔 수밖에 없다. 가령 이주노동자를 포함해서 타격을 받는 그룹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기존에 울분이 있던 사람들이 일자리 관점에서 트럼프 시대에 좋아질지 좋아지지 않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는 자본이 자국으로 들어오는 정책을 펼친다는 건데, 그러면 일자리는 생기겠지만, 그 자체로 지금 배제되고 불만 많은 그룹에 무조건 유리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 점을 유의해야 한다. 중요한 건, ‘어떤 일자리가 생길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반도체 공장을 만들면, 그 공장에 취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지금 고생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유형, 러스트 벨트 사람들과는 다른 이들일 수 있다. 자동차 업체에서 일하다가 실업자가 된 사람들이 신규 투자하는 하이테크 산업의 노동자로 ‘숫자’ 그대로 옮겨가는 건 쉽지 않다. 아니 거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한편으로 전통적인 제조업 사업을 다시 살리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미 경제 구조가 많이 바뀐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2기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로 ‘트럼프가 약속했던 사람들’이 제대로 옮겨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그렇다면, 트럼프 2기의 경제 정책은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다. ‘러스트 벨트’로 상징되는 트럼프 지지자에게 유리하지 않은 시나리오가 전개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트럼프, 에너지 가격을 낮춰서 제조업을 유치하겠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긴 하다. 하이테크가 전기를 많이 쓰니까. 문제가 간단하지 않은 게 만약에 관세 전쟁을 통해 미국이 수출을 늘리게 되면, 제조 단가를 낮춰서 수출을 늘리면 효과가 있긴 하다. 하지만 현재 상태에서는 수출이 늘 것 같지 않고, 수입이 줄긴 할 텐데, 수출과 수입이 동시에 줄면서 균형이 맞춰질 가능성이 있는데, 에너지 가격을 낮춰서 제조업을 유치하겠다는 구상이 가지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트럼프 정책은 솔깃한 것도 있고, 서로 모순적인 것도 있다.
프레이밍 대결 격화
정리하면, 국제적 외부 효과는 순작용, 내부적으로는 반작용 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트럼프는 순작용만 말할 거고, 민주당은 부작용을 이야기할 거라서, 미 정치 환경은 정치 조작과 프레이밍의 대결이 지금보다 더 격화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유념해서 각 사안을 바라봐야 할 것으로 본다. 백인 노동자가 트럼프의 주력이긴 하지만, 미국 내에서 극우적 정서를 공유하는 노동자들은 연령이나 세대 그리고 민족별로도 아주 광범위하다고 봐야 한다.

중국과 유럽 그리고 ‘울고 싶은 사람들’
가장 큰 변수는 중국
아무래도 가장 큰 변수는 중국이다. 러시아는 경제적 변수로는 약하다. 중국은 경제적인 변수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중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어떻게 정리될 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의 극우 음모론은 반중 정서가 강한데, 기본적으로 극우가 친미적 성향이 강해서 그렇기도 하고, 한국 극우 유튜버가 미국 극우의 영향을 받은 면도 있고, 서로 유사성이랄까 그런 게 발견된다.

유럽, 회색지대 커 보이지만 ‘오른쪽’으로 꽤 이동
유럽은 미국의 극우에 동조화 움직임이 있긴 한다. 하지만 미국과는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한 구조가 좀 다르다. 유럽연합도 갈래가 많지만, 지배적 경향은 ‘경계’에 선 회색 지대, 그 땅이 가장 커 보인다. ‘우리끼리 살아야겠다’는 움직임도 보인다. 독일은 올해 선거를 해야 하고, 영국은 유럽연합은 아니지만, 노동당이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영국 노동당은 압도적 당선 이후에 내리막길이다. 머스크는 영국 노동당을 없애야 한다는 발언까지 불사한다. 네덜란드, 핀란드는 우파가 득세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유럽연합도 오른쪽으로 많이 이동했다.

이런 흐름에 관해서는 우파는 좀 오합지졸들 아니냐는 시각이 있긴 하다. 그래서 우파들이 무슨 제대로 힘을 발휘하겠느냐는 시선이 있는 게 사실인데, 그런 오합지졸스러움이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보통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은 현재 정치 체제에 50% 정도는 불만을 가진 상황이다. 비유하고 울고 싶은 심정이다.
진보는 분노하고 울고 싶은 사람들 앞에서 ‘더 노력하자, 더 좋은 사회를 만들자’고 한다. 그 대신 (극)우파는 ‘이게 더 저들 때문이라고 공동의 적’을 만들어 시원하게 해주고 때려주는 게 있다. 그래서 불만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면이 크다.
울고 싶은 사람들 안아줄 수 있는 정책?
논리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정서적인 문제다.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중도나 좌파나 좀 이미지가 차갑다. 대중의 시선으로 보면 그런 측면이 있어 보인다. 엘리트주의랄까. 본인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비춰지는 모습은 좀 차갑고, 잘난척하는 느낌이 든다. 말은 맞는데 마음에 안 든다. 좌파 지도자들이 정서적으로 호감을 얻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노무현 같은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진보적 정치인이 부족하달까.

민주당은 트럼프를 친기업, 가족이기주의로 움직인다고 비판받지만, 광대한 불만 세력이 보기에는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정도 차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래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도 차이는 아주 크다고 볼 수 있지만, 대중이 보기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그 대신에 트럼프는 솔직하기는 하잖아. 그런 정서랄까. 사기꾼은 사기꾼이지만, 술 한잔 마시면서 시원시원하게 맘속에 있는 말을 대신 해주는 것 같은 그런 대리 만족이랄까.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한국도 닮은꼴… 메시지에 어울리는 메신저
딜레마다. 한국도 진보 진영에 속한 정치인은 자신의 과거로 현재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우파는 현재를 통해 현재를 정당화한다. 머스크가 자신의 자본으로 현재를 과시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처럼. 그런데 민주당 정치인들은 나는 과거에 노동 그룹이었다, 열심히 살았다 등등으로 자신의 현실을 정당화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런 어필 방식이 현재는 별로 공감되지 않는다. 차라리 그렇게 이야기하기보다는 머스크처럼 돈 자랑하면서 돈을 뿌리는 걸 솔직하게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86 운동권 정치인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깔린 정서 중에 ‘도덕적 정당성’이라는 말, 그게 한국에서는 아킬레스건이다. 기본적으로는 좋은 이야기지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그 ‘도덕적 정당성’을 현재에서 끌어오는 게 아니라 ‘옛날이야기’에서 끌어내고 있다. 그게 문제다. 과거의 정당성이 현재의 정당성이 아닌데,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정당화하려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탕수육 주문은 취향이지만…
어떤 정치적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가. 정책적으로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는 상태다. 결국 문제는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다. 메뉴는 정해졌는데, 무엇을 어떻게 언제 주문할 것인가의 문제인 셈이다. 선택의 문제인데, 선택할 때 선택의 이유,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첫 번째다.
중국집에 갔는데 짜장을 탕수육을 주문한 건 취향 문제지만, 공공에서는 정책적 선택 문제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든 먼저 선택하고 그걸 도덕적으로 정당할 수는 있다. 어차피 정치적 과정이니까. 그러면 하다못해 정책을 실현하겠다는 사람에게 ‘동조'(싱크나이즈)하는 믿음이 필요한 데, 현재는 그런 것도 잘 안된다.

메시지에 어울리는 메신저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의 문제다.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 필요함. 25만 원 지원금 사례를 보면, 커뮤니케이션 ‘테크닉’이라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을 생각하면 그 방식이 좀 거친 측면이 있다. 정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메시지 전달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공감대가 필요하다. 받는 사람이 ‘아, 네가 말하면 믿을 만하지’ 그런 교감, 공감이 부족한 것 같다.
영어에는 ‘나는 메신저니까 날 죽이지 마라’는 표현이 많다. 사람들은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누가 말하느냐’가 중요할 수 있다. 민주주의적인 절차, 불평등을 줄이자… 다 맞는 이야기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부적절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매우 달라질 수 있다. 메시지에 어울리는 메신저가 필요하다. 우리는 노사정 대화를 강조하는데, 메신저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체험적 진실이랄까. 우리 분야에 특수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지나가는 바람인가, 새로운 질서의 시작인가
트럼프를 미국식 민주주의의 실패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두 가지로 나눠서 살필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볼 것인가.
- 절차
- 실체
우선 절차라는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 당선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실체로 보면, 달리 해석할 수 있다. 그때엔 실패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실패의 근거가 무엇인가를 보면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트럼프가 임기 첫날부터 국회의사당을 공격했던 폭동 가담자 1500명을 사면∙감형한 행위를 반민주주의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통상적으로 민주주의를 말할 때는 다수가 선택하고 선호하는 사람에게 나라를 이끌어갈 기회를 주는 것을 말할 뿐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그 권한을 행사했을 뿐이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그런 관념이나 이상으로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더는 부정하면 안 된다. 민주주의의 원리와 원칙은 변하지 않겠지만, 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권력과 그 권력이 만든 현실 시스템은 ‘비가역적’이다. 되돌리기 힘들다.
한국의 민주주의도 안전하지 않다는 걸 윤석열 비상계엄이 보여줬다. 아마도 기존 정치 시스템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절반은 되는 것 같다. 그런 국민을 국민의힘에서 가져갈 수도 있고, 더불어민주당에서 가져갈 수도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건, 트럼프 추종자들이 국회를 공격했을 때 처음에는 정말 반응이 좋지 않았고, 반대와 비판 의견이 격렬했다.
그런데 계속 버티니까 어느 순간 비정상이 정상화했다. 거기에 더해 트럼프가 공격당하는 것을 보면서 감성적인 차원에서 자기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런 명백한 반민주주의, 국회의사당 폭동의 흉터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다시 대통령의 권좌에 복귀했다.
트럼프는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다. 더는 우연한 돌연변이가 아니다. 트럼프 2.0은 새로운 질서의 시작으로 나에겐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