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지난 2일 피습된 이재명(민주당 대표)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습니다. 내경정맥을 다친 만큼 약간만 상처가 깊었어도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일치된 견해죠.

가덕도 공항 부지에서 피습당한 뒤 헬기를 타고 부산대 병원으로 이송해 응급조치를 받았고 다시 소방헬기를 타고 서울로 이송됐습니다. 부산대병원에서 서울대병원까지 이동시간만 2시간 40분, 사고 이후 5시간 만에 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일부에서는 특혜 논란을 제기했고 지역 병원에 대한 의료 불신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응급 상황에서 장거리를 이동한 게 옳은 판단이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죠. 이에 민주당은 전원은 이재명 가족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더불어 이송 가능한 상태인지에 관해선 의료진이 최종적으로 판단했고 헬기 이송 역시 의료진의 결정이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전원 논란과 절차에 관해 현장 전문가 조용수(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의 견해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아무리 중요한 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법. 초상집 가서 옳다 그르다를 따지면 쫓겨나기 십상이다. 애도를 표하는 게 먼저다.

칼에 목이 찔렸다


칼에 목을 찔리면 위험하다. 두개골이나 갈비뼈와 같은 단단한 물체가 지켜주지 못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일단 흉기가 피부라는 방어막을 뚫고 들어가면 그 즉시 응급이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만으로 중증도를 평가해선 안 된다. 사고기전만으로 중증외상 성립이다. 목 부위 자상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 오면 모두 초긴장 상태가 된다.

  • 가장 빠른 수단을 찾아 외상센터로 이송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부산대병원에 도착하는 데 거의 1시간이 소요되었다. 의료취약지의 어려움을 알 수 있다.
  • 중증외상의 목표는 손상 발생 1시간 이내 수술을 받는 것. 당연히 도서, 산간 의료취약지에선 불가능하다. 최소한 응급분야만큼은 의료취약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시골은 깔끔하게 포기하자는 이들도 있고.

패스트 트랙 (아마도)


아마도 패스트 트랙(신속처리 절차)을 탔을 것이다. 야당 대표쯤 되는 사람이 응급실에 온다고 하면, 관련 의료진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접수, 처치, 진료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을 터.

  • 이게 문제냐고 물으면? 원칙적으로는 문제다. 어쨌든 일반적인 환자들보다는 조금이라도 혜택을 더 받는 거니까. 응급실 자원은 응급도에 맞추어 배분될 때 최선의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 지위, 신분에 따라 달라져선 안 된다.
  • 하지만 현실은 원칙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지자체 시장만 와도 조금 더 신경 쓸 수밖에 없고, 병원장만 와도 앉아서 응대하기 어렵다. 응급의학과 교수인 내 부모님이 우리 응급실에 실려 오면 어떨까? 인간 세상이 다 그렇다.
  • 그래서 다들 병원 올 때 사돈의 팔촌까지 알아내서 잘 봐달라 부탁하는 거 아니겠나? 조그만 권력이라도 있으면 전부 행사하고. 기자들은 기사로, 인플루언서는 SNS로 협박하는 거 부지기수다. 물론 정치하는 분들은 명함 자체가 무기다.

현실과 원칙 사이: 대통령 실려와도 줄 세우는 게 맞을까


‘패스트 트랙’은 당연히 정의로운 일이 아니다. 다만 현실이 그렇다는 것일 뿐. ‘빅5’ 간호사가 뇌출혈로 사망했을 때, 자기 병원 직원도 수술해주지 못했다고 사회적인 비난이 쇄도했다. 원칙상 자기병원 직원이라는게 다른 환자와 다를 이유가 하나도 없음에도.

  • 현실이 그렇다고 모두 면죄되는 건 아니다. 진료 순서만 특혜를 줘도 김영란법 위반이다. 이 사회는 특이하게 현실과 법 사이에 괴리가 심하다. 현실이 워낙 엉망이라 최소한의 규제를 만들어 둔 걸 수도 있고.
  • 응급실에서 특혜는 다른 환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게 문제인데, 이를 어느 정도 회피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간단하다. 예를 들어 비번인 내가 ‘오프'(비번)를 반납하고 자발적으로 진료에 참여해주면 된다.
  • 아무튼 이런 여러 사항을 따져, 본인만의 기준을 세워 둘 필요가 있다. 의전 서열 8위이면 어느 혜택까지 챙겨주는 게 좋을까? 30위, 100위도 마찬가지여야 할까? 아니면 대통령이 실려와도 원칙대로 줄을 세우는 게 맞을까? 답은 각자가 내릴 일.
2022년 7월 24일 서울 대형병원 간호사 A 씨는 오전 출근 직후 극심한 두통 증상으로 건물 1층 응급실을 찾았다. 뇌출혈이었다. 하지만 당시 병원엔 수술할 의사가 없었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된 뒤에 숨졌다. 사진은 해당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

부산대 응급처치 이후, 시간을 다투는 상태는 아니었다



부산대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환자의 중증도는 많이 감소했다. 자상의 특수성상 반드시 상처를 열고 들어가 손상을 확인하여야 하나, 시간을 다투는 상태는 아니었다.

  • 환자는 확률로 존재한다. 응급실에서, 죽냐? 사냐? 일도양단해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서 괴롭다. 그걸 알면 내가 신이겠지. 죽을 가능성은 꽤 낮습니다만, 그래도 잘못되면 죽을 수 있습니다. 이게 대답할 수 있는 최선이다.
  • 경증과 중증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확률은 시시각각 변한다. 응급처치가 끝난 후 환자의 사망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자상의 수술적 처치가 완료되지 않아 백 퍼센트 확신은 없다. 이걸 경증이라 할지, 중증이라 할지. 언어의 한계일지도.
  • 자상의 수술적 확인 및 처치는 초고난도 의료행위가 아니다. 상급종합병원 정도면 충분히 처치 가능하다. (우리나라 상급종합병원은 총 45개.)
  • 실력이나 예후 차이를 논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장기이식 수술도 아니고. 사람을 기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삼성 AS센터 가는데 어느 지점의 수리 실력이 높을지 고민하는 수준이다. 가까운데 아무 데나 가면 될 일이다. 이걸 인정 못 하면 어떤 의료체계도 계획할 수 없게 된다.

환자 선택권과 라뽀 그리고 현실: 대부분 빅5를 원한다


환자와 보호자가 서울대병원에서 수술받기를 희망하였다. 보통 사람은 권역외상센터 같은 개념을 잘 모른다. 대부분 할 수만 있으면 소위 ‘빅5’ 병원에서 치료받길 희망한다.

  • 일반적으로 환자와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수술이나 시술이 불가능하다. 환자의 선택권은 매우 중요하다.
  • 라뽀(rapport; 의사와 환자 사이의 상호신뢰 관계)는 의료에서 필수 요소다. 의사 입장에서도 나를 믿지 못하고 타병원을 원하면 손쓰기 어렵다. 라뽀는 단순한 감정 관계에 그치는 게 아니라, 환자의 예후에 영향을 끼친다.
  • 자살할 권리는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환자의 오판은 얘기가 달라진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의 위험이 크거나, 이송중 악화 가능성이 높다면, 환자의 선택권을 존중할 수 없다. 의사는 최선을 다해 환자를 설득해야 하며, 자의퇴원서 한 장으로 그 책임이 소멸되진 않는다.
  • 그러면서도 선택권은 중요하다. 여호와의증인은 출혈로 생명이 경각에 달려도, 일반적으로 수혈이 불가능하다.
  • 서울대병원을 선호하는 건 현실이다. 환자의 선호도를 막는 게 중요하지, 선택권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지방에서 가능한 수술임에도 굳이 서울을 찾아가는 이 사회를 탓해야지, 선택권을 행사한 각 개인을 탓해봐야 아무 쓸모 없다. 내 가족도 수술받을 때 되니, 우리 병원이 아닌 서울을 택하더라.
대부분 ‘빅5’ 특히 서울대병원을 선호한다. 그게 현실이다. 서울대병원 제공.

양측 병원의 ‘동의’: 충분히 이송 가능한 상태였다


신체검사, 활력징후, 검사 결과 등을 종합했을 때, 환자는 이송 가능한 상태였을 것이다. 양측 병원의 동의가 이루어지면 이송이 진행된다.

  • 이송 중 환자가 악화되면 보내는 측의 책임이다. 따라서 보내는 측이 고민해야 하는 건 이송 가능한 상태인지 여부다. 물론 충분히 가능한 상태였다.
  • 이송 결정은 받는 쪽 의지에 달렸다. 인력, 시설, 장비가 충분하다면 수용이 가능하다. 이유가 뭐든 치료를 못 하는 상황이니 의뢰했을 테고, 이쪽은 치료가 가능한 상황이니 받을 뿐이다.
  • 부산대병원이 치료를 못 하는 이유는, 환자와 보호자가 원치 않아서다. 전원의 사유에는 실력과 기술만 있는 게 아니다. 권역응급, 권역외상은 일반적으로 중증환자를 타병원으로 보내는 걸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지만, 환자가 원할 때는 예외로 허용해 준다.
  • 솔직히 야당 대표가 아니었다면 서울대병원이 환자를 수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빅5나 거점병원쯤 되면 워낙 포화도가 심해, 다른 병원에서 처치 가능한 환자는 잘 받지 않는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각자 권역 내에서 처리하는 게 기본적인 룰이다.
  • 내가 일하는 전남대병원에 전원 의뢰가 왔다면? 야당 대표쯤 되는 사람이 자상을 입었다면? 나라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용을 결정하였을 것이다.

소방헬기 → SMICU 이동


병원 요청에 따라 소방헬기로 이송이 이루어졌다. 서울 도착 후에는 서울중증환자 공공이송서비스(SMICU; Seoul Mobile Intensive Care unit) 차량을 통해 서울대병원까지 이송되었다.

소방헬기. 소방청 제공. 본문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
  • 일반적으로 소방은 병원 간 이송을 담당하지 않지만, 항상 안 되는 건 아니다. 환자 중증도가 높고 이송이 시급한 경우는 예외다. 보통은 의사의 동승을 요구한다. 소방은 환자의 중증도를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의사가 병원을 버리고 이송에 참여할 정도면 중증으로 판단한다.
  • 환자 상태는 구급차로 이동이 가능했을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 99.9% 확률로 사설 구급차로 이송한다. 물론 이송 가능한 상태인 것도 확률로 존재할 뿐. 아직 수술적 처치가 끝난 게 아니니, 이송 중 나빠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가능하면 빠르고 안전하게 이송하는 게 무조건 좋다.
  • 장거리 이송을 떠나는 환자는 작든 크든 모두 리스크를 가진다. 야당 대표쯤 되면 이송 중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수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만에 하나 환자가 잘못되면 해당 의사가 져야 할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클 테니까.
SMICU(응급차). 서울중증환자 공공이송센터(SMICU) 제공. 본문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
  • 헬기와 SMICU 모두 환자가 야당 대표라서 가능했다. 일반적으로 둘 다 이런 경우 사용되지는 않는다. 헬기나 SMICU는 전문 인력이 따라붙어야 하는 등 자원 소모가 매우 크다. 병원에도 의사가 부족한 나라에서 무슨…
  • 그렇다고 헬기의 사용으로 누군가 직접적인 피해를 보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여력이 없진 않다. 재난 상황이 아니라면 평소 그 정도의 자원은 가지고 있다. 의사도 헬기도 여분이 있었을 것이고, 그 시각에 헬기 부족으로 출동이 불가능한 사건은 없었을 것이다. 굳이 조사해 볼 필요도 없다.
  • 결국 피해를 끼친 건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자원은 가능한 아껴두는 게 맞다. 하지만 야당 대표의 피습을 그 만약의 상황으로 간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의전 서열에 따라 예외를 만드는 게 정의롭냐도 문제다. 물론 국가원수의 공무수행처럼 충분히 예외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각자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따져보면 될 일이다.

만약 우리 병원에서 이송했다면? 자진해서 헬기 동승했을 것


나는 평범한 ‘의사 1’이라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산다. 야당 대표뿐 아니라 힘 있는 사람이 오면 한 번이라도 발품을 더 팔 용의가 있다.

  • 만약 전남대병원에서 헬기를 띄워 이재명 대표를 이송했다면, 나는 오프를 반납하고 병원에 뛰어와서라도 내가 직접 헬기에 동승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고맙다고 술이라도 사준다면, 나는 꼭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지역의료 발전을 위해 힘 써주시라고.
  • 이건 야당 대표에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아이유가 광주 투어 중에 쓰러져도 나는 이송에 자원할 것이다. 대가는 싸인 한 장이면 충분하다.
  • 그래도 원칙은 있다. 다른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이다. 다른 환자를 봐야 하는데 그걸 내팽개치고 VIP 이송에 참여하는 일은 없다. 급한 환자의 수술을 미루고 VIP 수술을 밀어 넣진 않을 것이다. 설령 VIP의 진료가 먼저 시작되었더라도, 뒤늦게 온 환자의 중증도가 더 높다면 VIP의 진료 순번을 미룰 것이다.
  • 근데 그러면 현실적으로 곤란한 일이 생길 수 있으니, 근처에 있는 쉬고 있는 동료 의사들을 최대한 불러 모을 거 같기는 하다.

죽을 뻔했다…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이 가족이었다면?


무엇보다 환자는 목에 칼을 맞았다. 많이들 간과하는데, 저승 문턱 다녀온 것이다. 한 치만 더 들어가도 현장에서 사망했을지 모른다.

  • 사람이 목에 칼을 맞고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특수한 훈련을 받은 경우가 아니라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을 거다. 나라도 같은 상황이었으면 혼이 날아가고 없었을 터.
  • 정치인이 초인이길 바라는 건 잘못이 아니다. 거대 당의 대표고 대통령 후보쯤이면 그런 상황에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개인보다 공동체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정치인을 그런 시각으로 보지는 않는다. 정치인도 나와 같은, 당신과 같은 사람이다.

그래도, 그렇지만…


나는 트롤리 딜레마의 정답을 확신하는 사람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렇지만 응급의료시스템을 고민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이재명 대표의 선택이 아쉬운 건 사실이다.

관련 글

첫 댓글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