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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국(민주당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이 *’수축사회’*를 펴낸 2018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9%(한국은행) 수준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은 1.8% 수준으로 추산된다. 그만큼 인구 감소와 고령화, 생산성 둔화, 지방 소멸 등 구조적 요인으로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약화됐다는 의미다.

📌수축사회:

저성장 기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정치, 경제, 환경을 비롯한 사회 모든 영역의 기초 골격이 바뀌고 인간의 행동 규범, 사고방식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 홍성국은 한국 사회가 성장을 낙관할 수 있던 팽창사회 시기는 끝났고, 수축사회로 돌이킬 수 없는 전환을 맞이했다고 분석했다.

홍성국이 예상한 대로 저성장 기조는 지속되고 있으며 정치, 경제, 환경을 포함해 전 사회 영역에서 ‘제로섬 게임’(Zero-sum)이 이어지고 있다. 성장을 낙관하던 ‘팽창사회’는 옛말이 됐다.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 사진=대통령실.

이재명노믹스, AI 통한 모두의 성장.

출범한 지 6개월이 막 지난 이재명 정부는 ‘AI 3대 강국 도약’을 기치로 내걸었다. AI, 반도체, 바이오, 로봇 등 첨단 산업에 15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래 먹거리인 AI 산업을 ‘생산적 금융’으로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재정과 정책 금융이 민간 투자와 혁신을 이끄는 마중물이 될지 주목되는 가운데, 지난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홍성국을 만났다. 한국 경제의 판을 흔들고 있는 ‘이재명노믹스’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다.

홍성국은 국정기획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으로 활동하며 이재명 정부 5년의 경제 정책 청사진을 그렸다. 민주당 의원들의 ‘경제 교사’로도 유명하다.

‘제로섬’ 구조개혁, 갈등 조정할 설계도 있어야.

— 2000년대 초반(2000~2004년)만 해도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5.3%였다. 이후 2005~2009년 4.3%로 하락했고, 2010~2014년 3.4%로 떨어졌다. 2015~2019년에는 2.7%로, 2020~2024년에는 2.1%까지 떨어졌다. 20년 만에 잠재성장률이 반 토막 났다.

“대부분 선진국이 비슷한 양상이다. 일본의 경우 잠재성장률이 제로에 가깝다. 잠재성장률 곡선은 꾸준히 우하향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특정 정부가 잘못했다, 이런 평가를 하는데 정치적 편향에 기댄 분석일 뿐이다. 2001년 잠재성장률은 5.4%였다. 지금은 1.7%다. 25년간 그냥 쭉 떨어진 거다. 모두 잘못한 거다. 안일했던 리더의 무능과 단기적 대응이 누적된 결과이지, 특정 정권만 잘못해 이 지경이 된 것은 아니다. 떨어지고 있는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는 것만 잘해도 성공인 상황이다.”

— 이 대통령은 집권 2년 차인 내년 6대 핵심 분야(규제, 금융, 공공, 연금, 노동, 교육) 구조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현재 경제·사회 시스템을 유지한 채로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어떻게 평가하나?

“흔히 ‘구조개혁’을 이야기하지만 여기서부터 실력이 나온다. 구조개혁은 ‘제로썸 게임’이다. 개혁하면 혜택을 보는 계층이 있고, 손해를 보는 계층이 생긴다. 이를테면, 정부가 시도교육청에 배정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일부를 대학 재원으로 활용하면, 대학은 혜택을 보지만 초중고 학교는 재정이 감소할 것이다.

과거에 비해 사람들의 이기심이 강화했기 때문에 개혁은 엄청난 정치적 리스크를 동반한다. 많은 나라에서 개혁을 쉽게 못 하는 이유다. 언론 개혁을 한다고 하면 신문과 방송들은 기사를 쏟아내며 거칠게 비판한다. 더구나 사회 구성원끼리 SNS를 통해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사회 갈등이 촉발하기 쉽다. 정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갈등을 조정하고 반발을 견뎌낼 큰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지방자치단체의 교육 행정 재원을 국가가 지원하기 위해 1971년 도입한 제도. 전국 초중고 교원 월급, 학교 시설 확충 등 비용은 대부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충당한다. 학생 수 감소와 상관없이 내국세의 20.79%가 자동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들어간다는 게 문제가 되고 있다. 출산율 감소와 고령화로 인구 구조가 변화하면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혁을 바라는 목소리가 크다.

민주당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 홍성국. 사진=홍성국 페이스북.

“AI, 기득권 ‘파괴적 혁신’에 촉매 역할 할 것.”

— 이재명 정부를 상징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AI’다. 공공 부문 AI 대전환을 통해 정부 혁신을 이뤄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부 혁신은 AI와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가?

“정부가 선제적으로 AI를 도입하면 국정의 많은 분야가 효율적으로 바뀌면서 재정을 절약할 수 있고 정책의 사각 지대를 없앨 수 있다. 이른바 효율적인 결과까지 만들어낸다. 자금 세탁 등 부패를 감시하는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이 AI를 활용해 추적한다면, 국세청과 관세청이 AI를 활용해 탈세를 감시한다면, 괄목할 만한 행정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성장’을 하는 이유는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복지를 통한 소비는 다시 성장의 원천이 된다. 이 선순환을 위해서는 기득권에도 파괴적 혁신과 전환이 요구되는데, AI는 혁신의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AI를 중심으로 사회 모든 영역을 고속 전환해야 한다. AI 분야에서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 홍 의장은 특히 과학 기술 중심의 교육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을 강조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지난달 발표된 올 3분기 통계청 조사를 보면, 상위 20%(5분위) 가구의 월평균 교육비 지출은 58만 원이었다. 반면, 하위 20%(1분위) 가구는 2만 5000원에 불과했다. 실제로는 더 큰 차이일 거다. 사회적 신분을 규정하는 교육에서 수십 년간 불평등이 누적되고 있다. 이러면 사회적 불평등은 더 커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교육이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면 사회적 고통이 뒤따른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노동 착취 문제가 대표적이다. 다행히 이후 20세기 들어 교육은 기술 발전을 추월해서 사회 번영의 기반이 됐다. 디지털 혁명으로 AI 사회가 도래했는데 현 교육 시스템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학교에서 AI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육 수준을 제고하지 않으면, 다시 사회적 고통이 커질 것이다.”

“대한민국, 모든 분야에 AI 접목할 수 있다.”

— AI는 미국과 중국이 선도하고 있다. ADB(아시아개발은행)에 따르면, IT 경쟁국인 대만의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은 인공지능(AI) 수요 급증으로 7.37%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한국은 0.9%에 그쳤다. 한국의 AI 산업 경쟁력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AI 주도 성장이 가능한가?

“블룸버그 등 자료에 따르면, 제조업 강국 가운데 한국의 산업 포트폴리오가 가장 안정적이다.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보면 대만 시장에서 IT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64% 수준이다. 한국은 36% 정도로, 여타 제조, 소비 산업과 비교해 보면 균형적이다. 일본도 균형은 잡혀 있으나 IT 비중(24%)이 다소 낮다. 독일은 자동차, 기계, 등 제조업 비중이 높지만, 독일 제조업은 빠르게 중국에 밀리고 있다.

대만이 잘된다고 해서 대만 산업을 따라가야 한다?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 AI를 접목할 수 있는 산업 구조다. 일례로, 불닭볶음면 생산·판매 라인, 소비자 분석에 AI가 활용되면 생산비를 더 절감할 수 있다. 만일 우리의 조선이나 방산이 없었다면? 소재 부품 산업이 없었다면 미국과 관세 협상이 어떻게 진행됐을까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요즘 핫이슈인 AI 투자가 버블 단계에 진입했다면 한국보다 대만이 훨씬 더 위험하다. 제조업의 AI 전환이 굉장히 중요한 이유고, ‘AI 100조 투자’ 이야기가 나온 배경이다.”

— 이재명 정부는 AI 같은 첨단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고 있다.

“’생산적 금융’은 금융이 주도해 신성장 동력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성장펀드, 벤처 중소기업에 자금 공급 확대, 상법 개정 같은 제도 개선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적용 대상 확대,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상향 등을 통한 ‘가계 부채 관리’, 서민금융안정기금 설치 등을 통한 ‘포용 금융’이 자금시장 대전환을 위한 3단계 전략이다. 결국 부동산 기반의 금융시장에서 생산적 금융을 통해 기업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가는 게 이재명 정부의 최대 과제인 것이다.

📌DSR:

Debt Service Ratio의 약자. 개인이 가진 모든 대출의 원금과 이자 상환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비율. 한 사람이 매년 갚아야 하는 모든 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이 그의 연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 연 소득이 5000만 원이고 연간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2000만 원이면 DSR은 40%. 금융기관은 DSR 규제로 대출 한도를 정할 수 있다.

(기자 질문 : 이재명 정부가 장기 빚 탕감 등 취약 계층 보호에 나서자 일각에서는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논란을 제기한다.) 포용 금융은 금융 거래를 거의 못할 정도의 사회적 약자들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것이다. 일부 언론은 ‘열심히 돈을 갚은 사람과 형평에 맞지 않다’는 취지로 비판하는데, 대공황 당시 루스벨트 미 대통령도 똑같이 했다.”

“이 대통령, 정치 양극화 해소에 진심… ‘아령사회’ 극복은 쉽지 않다.”

— 개혁과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입법’일 것이다. 일회성 정책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안정적 집권과 행정을 뒷받침하는 법 제도가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루스벨트가 뛰어난 이유다.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는 1932년 11월 8일이었고, 취임일은 이듬해 3월 4일이었다. 루스벨트가 ‘뉴딜 정책’으로 알려진 100일 계획을 발표한 게 3월 9일, 즉 취임 5일 뒤였다.

이때 역사적인 법들이 만들어졌다. 붕괴한 금융시장을 살리기 위해 건전 은행만 재개장하는 긴급은행법, 기업의 투자 정보 공개를 의무화한 연방증권법, 저소득 지역 전력 및 인프라를 개발하는 테네시강 유역개발법, 최저임금·최대근로시간을 도입하는 산업부흥법, 예금자를 보호하고 상업·투자은행을 분리한 글래스-스티걸 법, 공공 인프라 건설로 고용을 창출하는 공공사업진흥법 등등….

임기 초에 밀어붙인 법으로 미국은 대공황에서 벗어나고 지난 100여 년간 세계적 패권을 유지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K-뉴딜 정책에 참여했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은 매우 유감이다.”

취임 5일 만에 ‘뉴딜 정책’의 핵심 프로젝트인 ‘테네시강 유역 개발 공사'(TVA) 등을 포함한 ‘100일 계획’을 발표해 오늘날 미국의 기틀을 마련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여러 인터뷰와 강연에서 한국을 ‘아령형 사회’로 진단했다. 아령처럼 양극단에 몰리고 중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여·야 정치는 상대를 대화 상대가 아니라 절멸해야 할 적으로 규정한 듯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치의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는가?

“이 대통령은 정치적 양극화 해소에 진심이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나라 미래를 생각하다가도 종국적으로는 자기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린다. 지금은 아예 노골적으로 아령 한쪽의 대장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빠진 정치인이 너무 많다. 지금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기에 현 경기가 어떠냐고 물어보면, 공화당 지지자는 좋다고 말하고 민주당 지지자는 나쁘다고 말한다. 바이든 때 물어보면, 민주당 지지자는 좋다고 공화당 지지자는 나쁘다고 답한다. 그래프로 보면 극적으로 대조적이다.

우리도 양상은 비슷하다. 이렇게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하면 경제 정책도 먹히지 않는다. 다음 책 주제이기도 하지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파시즘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극심한 양극화로 제로섬 게임이 끝을 달리면, 과거처럼 파시즘으로 판을 엎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성층이 득세한다. 서부지법 난동 사태가 대표적이다.”

“불평등, 불공정, 불확실, 불안정은 사회적 책임.”

— ‘수축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수축사회는 불평등, 불공정, 불확실, 불안정을 노정하고 있다. 난 ‘4불’(不)이라고 부른다. 사회가 성장하고 커지는 시기인 팽창사회일 때는 불행은 나의 책임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힘들고 어려운 것이 과연 나의 책임일까.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igmunt Bauman)은 ‘유동적 현대성’(Liquid Modernity)에서 세계가 전환되면서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개인 책임’으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개인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진단이다.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이들이 있지만 ‘유치원 의대반’, ‘토익 푸는 유치원’ 이야기가 나오는 사회에서 4불이 어떻게 개인 책임일 수 있을까. 4불은 사회적 책임이다.”

홍성국은 누구.

  • 증권계 ‘샐러리맨 신화’ 주인공. 1988년 대우증권에 신입사원으로 입사. 2014년 공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CEO 자리에.
  • 2008년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를 1년 전인 2007년에 정확히 예측했다. 2016년 미래에셋증권 CEO를 끝으로 이후 저술과 강연, 기고, 방송 등 왕성한 활동.
  • 2020년 민주당 인재 영입 통해 정치권 입성. 21대 총선서 세종갑 지역구 출마 당선.
  • 2023년 12월 “민주당 당원으로서 좋은 정책을 당과 사회에 제안하는 1인 싱크탱크 역할을 하겠다”면서 22대 총선 불출마 선언.
  •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 현 민주당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 혜안리서치 대표.
2020년 4월 12일, 홍성국(당시 민주당 국회의원 후보)이 선거운동 중인 모습. 홍성국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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