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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국가 안보 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보고서는 충격적인 내용이 많다. 외교와 통상 관계자들은 밑줄 치면서 읽어야 할 보고서다.

“미국은 아틀라스가 아니다.”

  • 이 보고서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로드맵이라고 할 수 있다.
  • “미국이 원하는 것”과 “미국이 세계 다른 나라들에 원하는 것들”을 정리한 보고서다.
  • 미국 정부는 “미국이 아틀라스처럼 세계 질서를 떠받치던 시대는 끝났다(The days of the United States propping up the entire world order like Atlas are over)”고 선언했다.
  • 미국의 역할을 잘못 계산했고(miscalculated) 과대 평가했다(overestimated)고 진단했다. (우리는 당신들을 지켜주지 않을 거야.) 중산층과 산업 기반을 붕괴시킨 파괴적인 베팅(destructive bets)이었다고 평가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당신들 지키느라 우리가 죽게 생겼다고!)

이게 왜 중요한가.

  • 미국의 외교와 안보 전략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선언이다. 트럼프 2기 이후 계속 지켜봤고 예상했던 변화지만 못을 박는 느낌이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이고 트럼프 이후에도 기조가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경제를 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본다는 게 중요한 변화다. 반도체와 배터리를 누구와 함께 만드느냐가 중요하게 됐다.
  • 트럼프 독트린은 미국과 동맹국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외교를 거래로 본다. 거래에는 대가와 책임이 따른다.
  • 한국과 일본에 방위비 부담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걸 넘어 사실상 미국의 전진 기지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고 한국도 선택을 요구 받을 가능성이 크다.
  • 단순히 트럼프의 변덕이 아니라 미국의 역할 모델의 변화라고 봐야 한다. 한-미 동맹의 성격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잘 돼야 당신들에게도 좋다.”

  • “모든 것에 집중하는 것은 결국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않는 것과 같다.”
  • 미국 외교 정책의 10가지 원칙을 공개했는데 결국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건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 “미국의 국익과 무관한 주변부 분쟁에 손을 뗀다”는 게 첫번째 원칙이다. 힘을 통한 평화 (Peace Through Strength)를 강조했고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인권이나 민주주의 가치가 아니라 국익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국제 기구의 권고도 무시하기로 했다.
  • 동맹과 파트너의 협력을 강조했다. 지배적인 적대 세력을 막아야 하지만 미국이 혼자 싸우지 않겠다는 의미다.
  • 미국 노동자가 우선이라는 원칙을 강조하고 다른 나라의 안보 무임 승차나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부유하고 힘 있는 국가가 돼야 다른 나라들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논리다.

미국은 더 이상 좋은 형님이 아니다.

  • 국경과 동맹, 경제가 세 가지 키워드다. 국경은 높이고 동맹은 부담을 나누고 미국 경제를 키우는 방향으로 간다.
  • “대규모 이주의 시대는 끝났다(The era of mass migration is over)”고 선언했다. 국경을 더욱 높일 것이고 미국을 동맹의 후원자가 아니라 거래적 조정자(transactional coordinator)로 역할을 다시 정의한다. 동맹국들도 책임을 다하라는 이야기다.
  •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줄여야 하고 핵심 공급망과 자원을 적대국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강조했다.
  • 리쇼어링 및 재산업화 (Reindustrialization)도 핵심 전략이다. 방위 산업도 재건한다. 석유와 천연가스, 원자력 등 모든 에너지원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회복한다(태양광 이야기는 없다).
  • 동맹국들은 GDP의 5%를 국방비로 써야 한다(지금은 2% 정도인데 두 배 이상 늘려야 한다). 미국 혼자 총대를 매지 않겠다는 의미다.
  •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국가 안보의 핵심 도구로 활용한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이 모든 조건은 미국이 압도적인 힘을 갖고 그 힘을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먼로 독트린의 트럼프 귀결.

  • 200년 전 외교 철학을 다시 끌어냈다. 먼로 독트린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이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인데 먼로 독트린의 트럼프 귀결(Trump Corollary)이라는 건 미국의 우월적 지위(American preeminence)를 회복하겠다는 선언이다. 트럼프는 먼로 독트린을 확대 해석해서 ‘우리 서반구’와 나머지로 구분하고 외부의 공격에 맞서겠다는 전선을 그었다. 사실상 트럼프 독트린(doctrine)이다.
  • 미국의 GDP는 30조 달러,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의 GDP는 35조 달러, 합치면 세계 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트럼프는 동맹국들을 끌어모아 나머지 세계의 절반, 특히 중국의 공격에 맞설 계획이다. 한국은 그 중간에 걸쳐 있는 나라다.
  • 2017년 트럼프 1기 때 중국의 미국 수출이 GDP의 4%였는데 올해는 2% 수준이다. 중국의 수출이 줄어든 게 아니라 대리 국가(Proxy Countries)를 경유하는 우회적인 수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 미국은 참여와 확장(Enlist and Expand) 전략으로 간다. 동맹을 참여시키고 파트너를 확장해서 미국의 부담을 나눈다(떠넘긴다)는 의미다. 중국의 약탈적 경제에 공동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한국도 중국과 거리를 두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 유럽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GDP의 25%를 차지했는데 지금은 14%로 줄었다. 유럽을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유럽의 안보는 유럽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Burden-Shifting)는 입장이다.
  • 중동에도 관심이 식었다.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무리해서 국가 건설(nation-building) 전쟁에 나설 이유가 없다. 이스라엘 등 지역 파트너들에게 안보 부담을 넘기고 중재자 또는 지원자 역할로 남으려고 한다.
  • 아프리카도 원조에서 투자 중심으로 전환한다. 돈 안 되는 건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빨간색 점선이 도련선이다. 미국은 중국 코앞의 대만을 최전선으로 하는 1도련선을 지키려 한다. 미국 혼자 떠안지 않을 테니 한국과 일본이 거들어야 한다는 게 미국의 달라진 전략이다.)

미국이 한국에 바라는 것.

  • 이 보고서에는 북한 이야기는 한 줄도 없다. 이미 미국의 관심이 북한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 미국에게는 대만이 훨씬 더 중요하다. 대만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첫번째 도련선(Island Chain)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다. 도련선은 섬(島)을 연결(鏈)하는 선이라는 의미다. 일본 열도와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를 잇는 선이다.
  • 한때 미국이 두번째 도련선으로 물러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돌기도 했지만 이 보고서에서는 첫번째 도련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 미국이 혼자하지 않겠다(stop going it alone)는 게 핵심이다. 한국과 일본이 방위비를 늘려서 대만을 지켜야 한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집단방위(collective defense)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do much more)는 요구다.
  • 다카이치 사나에(일본 총리)가 “대만에서 유사 상황이 발생하면 일본이 군사 개입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트럼프의 의중을 떠받드는 것이다.

미국의 리밸런싱 전략, 지금까지의 세상은 없다.

  •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지속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 미국이 물건을 팔아줄 테니 미국의 적자를 해결하라는 말일 수도 있고 미국의 제조업을 키울 테니 미국 물건을 사달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최대 걸림돌은 역시 중국이다.
  • 중국의 무역흑자는 1.3조 달러에 이른다. 중국은 무역흑자의 대부분을 글로벌 사우스 교역 상대국에 대출로 다시 투자해 왔다.
  • 미국은 동맹국들을 끌어모아 중국에 대응하는 경제 동맹을 만들려고 한다. 유럽과 일본, 한국 등이 보유한 대외 자산이 7조 달러에 이른다. 미국은 동맹국들이 미국과 연합 전선을 구축하고 중국의 확장을 막는 데 동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핵 추진 잠수함도 미국 대신 싸우라는 의미.

  •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이 남았다.
  • 중국과의 교역을 줄일 수 있나. 반도체와 배터리 등 전략 산업에서 중국과 관계를 끊을 수 있나.
  • 미국이 해달라는 대로 끌려가면서 중국과 맞서는 미국의 군사 기지 역할을 할 것인가.
  • 이미 주한 미군에 330억 달러를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지금보다 방위비 부담이 세 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 트럼프가 핵 추진 잠수함을 선뜻 승인하기로 한 것도 동맹국이 부담을 나눠져야 한다는 미국의 방향과 맞아떨어진다. 한국이 중국 견제의 최전선에 서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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