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리포트] 한화에너지 상장 후 지주회사 합병 시나리오, “‘C급 삼성’으로 가는 길, 배임죄 논란 피할 수 있나.” (⌚8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떨군 ‘단군 이래 최대의 유상증자’ 폭탄이 상법 개정의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한화그룹을 뒤흔든 유상증자 사태는 ‘경영권 3세 승계’ 이슈와 맞물리며, 지배 주주 이익을 위해 소수 주주를 내팽개친 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민주당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상법 개정을 재점화하고 있다.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 전체 주주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게 개정 법안의 골자였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경제개혁연대, 참여연대 등은 14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소수 주주 보호’ 의제를 조기 대선에 띄웠다. ‘한화 경영권 3세 승계,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화를 저격한 세미나였다.

이게 왜 중요한가.
-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화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이다. 그동안 주요 재벌 그룹 가운데 승계 과정이 가장 매끄럽다는 평가를 받아봤지만 최근 일련의 인수합병을 거치면서 한화에너지가 과거 SK그룹의 SKC처럼 옥상옥 구조를 만들고 있다.
- 장기적으로 한화와 한화에너지를 합병해서 지주회사로 가고 한화솔루션과 한화시스템 등을 합병해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 이 과정에서 주주 가치가 훼손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자칫 과거 삼성그룹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처럼 배임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 가뜩이나 주주 충실 의무를 보장한 상법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한화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관심이 집중된다. 민주당이 한화를 건드릴 수 있을까.
한화에어로 ‘3.6조 유상증자 사태’ 살펴보니.
한화에어로 ‘3.6조 유상증자 사태’ 진행 일지다.
- 2월10일 한화에어로 이사회, 한화에너지가 보유한 한화오션 주식 7.3%를 1.3조 원에 인수키로 의결.
- 3월13일 한화에어로, 한화오션 주식 매입.
- 3월14일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 3월20일 한화에어로, 3.6조 원 규모 유상증자 발표. 주주들 반발.
- 3월31일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 세 아들에게 (주)한화 지분 절반 증여.
- 4월1일 한덕수 권한대행,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 4월8일 한화에어로 유상증자 ‘3.6조 원→2.3조 원’으로 축소 등 발표.
- 4월14일 국회, 한화 3세 경영권 승계 토론회 개최.

현금 많은데 사상 최대 유상증자, 결국 삼형제 지분 몰아주기 아닌가.
- 한화에어로는 한화그룹의 방위 사업을 주도하는 기업이자 한화의 미래 먹거리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이 11조 원, 영업 이익이 1조7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 한화에어로는 지난달 돌연 3.6조 원의 유상증자를 발표하며 시장에 충격을 줬다. 국내외 방위 산업과 및 해외 조선 시설, 무인기 엔진 투자 등에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국내 증시 사상 최대 규모의 유상증자 결정에 당시 한화에어로 주가는 10% 넘게 떨어졌다.
- 일반 주주들은 반발했다. 한 달 앞서 한화오션 지분을 사는데 무려 1.3조 원을 쓰고서는 금융권 차입이나 회사채 발행이 아닌, 유상증자라는 자금 조달의 최후 수단을 먼저 꺼내서다.
- 유상증자는 기업이 추가 주식을 발행해 자본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주식 수가 늘어나는 만큼 기존 주주의 주식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 유상증자가 필요할 정도로 자금이 필요했다면, 한 달 전 계열사 주식 매입에 1.3조 원을 쓸 필요가 있었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 당시 KB증권도 “매년 영업 활동을 통해 창출되는 현금 흐름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투자 규모임에도 대규모 유상증자를 선택한 것은 기존 주주들 입장에서 아쉬울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 한화에너지가 한화오션 주식을 한화에어로에 팔아 벌어들인 1.3조 원이 결국 세 아들의 승계 시드머니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의 세 아들(장남 동관 50%·차남 동원 25%·삼남 동선 25%)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총수 일가의 개인 회사다.

한화에너지 지분 갈아타기도 결국 지배력 강화.
- 시장의 강한 반발에 한화그룹은 8일 한화에어로의 3.6조 원 유상증자에 한화에너지가 1.3조 원 규모로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 주식 거래로 ‘한화에어로’에서 ‘한화에너지’로 이동했던 1.3조 원이 다시 ‘한화에어로’로 되돌아왔다. 이 결정으로 한화에어로의 주주배정 유상증자 규모는 3.6조 원에서 2.3조 원으로 축소됐다.
- 한화 측은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일반 주주에게 15%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데 반해 대주주인 한화에너지는 할인 없이 참여한다며 “대주주 희생, 소액주주 이득 방식”이라고 홍보했다.
- 한화에너지 입장에서 보면 1.3조 원어치의 ‘한화오션 주식’이 ‘한화에어로 주식’으로 대체됐다. 그룹의 주력 기업인 한화에어로의 지분 3~4%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세 아들은 추가 자본 이득의 기회를 얻게 됐다.
-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 김종보(변호사)는 “세 아들이 100% 지배하는 한화에너지가 직접 확보한 한화에어로 지분은 향후 한화그룹 전체 지배력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년 준비한 승계 완료? “계열 분리 남았다.”
- 한화에너지는 지난해 7월 공개 매수를 통해 (주)한화 지분 5.2%를 매입했다. 12월에는 고려아연이 보유한 지분 7.25%를 추가 확보했다. 세 아들의 회사 한화에너지가 확보한 (주)한화 지분은 22.15%로 김승연 회장 지분(22.65%)에 필적했다.
- 논란의 3.6조 유상증자 사태 10여일 뒤 한화는 김승연이 보유한 ㈜한화 지분 22.65% 중 11.32%를 세 아들에게 증여했다며 “이번 지분 증여로 세 아들의 ㈜한화 지분율은 42.67%가 돼 경영권 승계가 완료된다”고 선언했다. 증여 후 ㈜한화 지분은 한화에너지 22.16%, 김승연 11.33%, 김동관 9.77%, 김동원 5.37%, 김동선 5.37% 순이다.
- 한화그룹은 “경영권 승계 완료”라고 선언했지만, 3세 승계를 위해 한화에너지가 상장 후 (주)한화와 합병할 것이라는 관측이 다수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이런 전망과 루머가 나오는 까닭에 “한화에너지 주가가 높고 한화 주가가 낮을수록 합병 비율 측면에서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 전문가들은 2015년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사례를 떠올린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재용이 대주주인 제일모직의 자회사로 합병 시 매우 큰 자산 가치로 평가됐다. 삼성 총수 일가가 삼성물산 주주보다 유리한 합병 비율을 받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 김종보는 “향후 한화와 한화에너지가 합병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한화에너지의 한화에어로 보유 지분은 제일모직의 바이오로직스 보유 지분처럼 기능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배임죄 논란 피할 수 있을까.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곽정수는 “재벌 총수 자녀들이 여러 명일 때는 승계는 지분 증여뿐 아니라 계열·사업 분리를 수반한다. 이 과정이 남아있는데 경영권 승계가 완료됐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 장남인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관은 에너지·방산·조선, 차남인 한화생명 사장 김동원은 금융, 삼남인 한화갤러리아 미래비전총괄(부사장) 김동선은 호텔·리조트·유통을 나눠 맡고 있다. 사업 분리를 위해서는 (주)한화의 분할이 필요하다. 그러나 회사 발전이 아닌 3세 승계만 위한 기업 분할은 주주 손실을 초래한다. 배임죄 소지가 있다.
- 곽정수는 “회사 가치와 주주 가치에 피해를 주는 계열 분리는 선진국 기업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삼성 합병 사건 후 ‘10년의 사법 지옥’ 경험에서 조언을 얻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앗 뜨거라, “불찰이고 실수였다.”
- 한화에어로 전략부문 총괄사장 안병철은 8일 기자 설명회에서 “유상증자 논란을 뼈저리게 반성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주주 가치 제고를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겠다”고 다짐했다.
- 안병철은 유튜브 채널 ‘언더스탠딩’에도 출연해 해명했다. ‘한화에어로가 한화오션 주식을 급히 매입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한화오션의 사업 확장과 해외 수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모회사인 한화에어로가 실질적 지배력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고 답했다.
- 안병철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지난해 11월 호주 신형 호위함 사업 수주에 실패했다. 실주 원인을 분석한 결과, 한화오션만의 영업 활동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화오션이 한화에어로 등에 업힌 채 영업을 해야 경쟁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 해외 발주처들은 입찰 기업의 연결 재무제표, 현금 흐름, 신용 등급, 주주 구성, 범죄 이력 등을 매우 꼼꼼하게 따지는데, 모회사의 확실한 재무 능력 없이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 안병철은 한화에어로의 대규모 유상증자에 관해 “주식 가치 희석을 우려하는 소액 주주들 질책에 따라 유상증자 액수를 3.6조 원에서 2.3조 원으로 줄였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우리가 3.6조만 필요해서 ‘3.6조를 유상증자하겠다’고 말씀 드렸던 것은 아니다. 2028년까지 방산 및 조선·해양·에너지 분야 투자를 위해 11조 정도가 필요하다. 유상증자는 11조 중 일부로, 나머지 자금은 차입, 채권 발행, 순영업이익 등으로 채워넣을 것이다.”
- 경영권 3세 승계 논란에는 “그런 반응을 예측 못한 것은 우리의 불찰이고 실수”라며 “그래서 (김승연) 회장님이 ‘그런 것과 관련 없다’는 취지에서 (주)한화 지분의 반을 증여한 것이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증여세를 내주려고 (계열사 간 주식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주식 매입과 유상증자는 전적으로 한화에어로 경영진과 이사회 판단이라는 것.

한화에너지-한화에어로-한화오션 수직적 지배구조 완성.
- 여전히 해명은 석연치 않다. 한화오션 주식 인수로 한화에어로가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은 23.14%에서 30.44%로 상승했지만, 1대 주주라는 지위에는 매입 전후 변화가 없다. 더구나 한화오션은 지난해 12월 말 한화에어로의 연결 종속 기업으로 편입됐다. 두 회사가 회계 장부를 하나로 합쳤다는 뜻이다. 한화에어로는 이미 한화오션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이와 관련 안병철은 “실질적 지배력 행사를 위해선 한화오션 지분 40%를 확보하는 게 시급했다”고 해명했다. 7.3%의 한화오션 지분 매입 전 한화에어로는 한화오션의 지분 23% 갖고 있었고, 한화에어로 자회사인 한화시스템이 한화오션 지분 11%를 갖고 있었다. 합치면 약 34% 수준이다. 이 수치를 40%까지 높여야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는 취지다.
- 3세 경영 승계 논란에 대한 해명 역시 미흡하다. 한화의 지배 구조만 파악해도 1.3조 원의 주식 거래 대금이 한화에너지로 향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한화에어로 경영진이 3세 승계 논란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지독하게 무능한 것 아닌가.

전망: C급 삼성 후계 구도, 오해 벗으려면.
-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최한수의 말이다. “한화는 ‘C급 삼성’ 같다. 총수 일가가 편법을 쓰거나 법 제도 공백을 악용해 그룹 지배권을 상속하는 게 기업의 존재 이유가 되어 버렸다.”
- 세 아들의 개인 회사인 한화에너지의 전신은 한화S&C다. 2001년 (주)한화의 전산 사업 부문을 분리해 만든 회사다. 자본금 30억 원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24년 만에 (주)한화의 1대 주주가 됐다.
- 한화에너지는 총수 가족·계열사 간 주식 매매, 일감 몰아주기, 사업 기회 유용, 기업 인수, 인적·물적 분할, 합병 및 역합병 등으로 성장했다. “재벌의 편법, 탈법 승계 방식의 종합판”(곽정수)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최한수는 “외국은 한국 재벌에 대해 ‘어떻게 100조가 넘는 회사를 상속세 한 푼도 안 내고 3대 이상 끌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서 “기업 지배 주주들이 계열사 간 자본 거래와 합병을 어떤 규제 없이 마음대로 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충실 의무 같은 개별회사법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공정거래법이나 별도 법제를 통해 계열사 간 출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 토론회 발제를 맡은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이창민은 집중투표제 도입, 감사위원회 위원 분리 선출, 소수 주주의 과반 결의제 등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