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꺾정 42화] 내란 이후 정치의 시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일. (유성진/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 (⏳5분)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민주화 이후 시민들의 오랜 기억 속에 머물러 있던 철 지난 ‘계엄’의 소환으로 촉발된 대한민국의 위기는 윤석열의 탄핵으로 종결되었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던 우리의 민주주의는 무려 4개월여에 걸친 거리에서의 시민들의 목소리에 조응한 헌법재판관 전원일치의 파면결정으로 복원되었고, 이는 위정자의 오판으로 비롯된 국가적인 위기 상황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함성 속에 법치의 작동으로 일단락되었음을 의미한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표면적으로는 복원국면으로 들어섰지만, 이번 계엄과 탄핵에 이르는 동안 우리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주는 징후는 뚜렷하게 목격되었다. 당파성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는 공동체의 분열은 탄핵의 둘러싼 거리의 찬반 집회로 점철되었고, 급기야는 폭력적인 법원 점거라는 전대미문의 파국적인 상황도 벌어졌다. 당파성에 따른 분열은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더욱 극심해졌고 시위군중의 극단성이 노골화되었으며, 이에 편승해 극단적인 선동도 서슴지 않는 정치인들이 등장하였다.

2016 vs. 2024
이번 상황을 유사한 위기국면이었던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시기와 비교해 보면 의미 있는 시사점이 발견된다. 2016년과 2024년이라는 불과 8년 사이에 반복된 우리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은 파행적인 국정운영에 따른 대통령 탄핵이라는 외견상 유사한 양상을 띠고 있음에도 이를 둘러싼 여론의 추이는 크게 다른 모습을 보였다.
2016년의 경우, 대통령 탄핵에 대한 압도적인 찬성 여론이 탄핵심판까지 줄곧 이어졌지만 2024년의 위기 상황에서 여론의 추이는 탄핵 직전의 압도적인 찬성에서 찬반의 격차가 크게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또한 2016년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직후 10%대로 추락한 당시 여당인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탄핵 선고 직전까지 회복되지 못했던 반면에, 현재 상황에서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 20%대 초반으로 하락하였던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대등할 정도로 회복되었다.
현안에 따른 여론 지형의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파성에 따라 민주주의에 대한 질적 인식의 차이가 현저해졌다는 점이다. 상황적으로 유사한 민주주의의 위기 국면이었던 2016년의 시기에 당파성에 따른 차이가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선호의 차이에 반영되었음에도 탄핵에 대한 압도적인 찬성 여론은 이와 관계없이 지속되었던 데에 반해, 현재의 위기 상황은 당파적인 선호의 차이에 따라 탄핵에의 찬반 여론뿐만 아니라 선거의 공정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 등 체제적인 입장의 차이로 이어졌다(올해 초 실시된 동아시아연구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자 중 40%가량이 선거의 공정성에 의문을 가졌고 30% 정도는 “상황에 따라서는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낫다”고 응답하였다).

물론 여전히 다수가 선거 공정성에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고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보인다는 점에서 그러한 변화가 우리 민주주의의 심대한 우려 상황을 보여주는 단정적인 증거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유권자 차원의 민주주의 인식변화가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심각한 오작동을 겪고 있고, 이대로 방치된다면 언제든 체제적인 위기에 다시 봉착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가져왔을까?
유권자마저 당파적 양극화
현재 갈등의 근저에는 우리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에 관한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평가가 자리하고 있고, 당파성에 따른 편향된 상황 인식과 선호는 이러한 불만족을 민주주의에 대한 질적인 인식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미디어의 권력감시 기능이 약화된 상황에서 편향성을 앞세운 소셜미디어가 유권자의 객관적인 인식과 평가를 저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유권자 차원의 당파적 양극화가 심화하였다는 것이 중요한 원인으로 제기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2016년과 현재 상황이 가진 정당 권력구조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유권자들이 정파적인 선호를 갖는 것은 다양성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유권자들은 정치환경의 변화에 따라 반응하며 이러한 반응은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선호로 표출된다. 다만 그러한 선호 표출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선호의 대상이 되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존재해야 하며, 이들이 보내는 신호가 유권자들에게 객관적으로 전달, 평가되어야 한다.

제3정당 사라졌다
2016년과 현재 상황에서 차이가 있다면 유력한 제3의 정당이 있었던 당시의 정치 상황에 비해 현재는 거대 양당의 독점적인 권력구조가 더욱 고착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치환경의 차이는 이전에 비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당 간 경쟁의 정도가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당파적 양극화와 결합한 양당제의 독점적인 권력구조에서는 정당은 정책과 비전으로 경쟁하기보다는 혐오와 차별을 앞세워 상대 정당을 비판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또한, 유권자들은 선택의 다양성이 제약된 상황 속에서 선호보다는 비선호에 기반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처럼 선거와 정치 경쟁이 두 정당 간의 다툼으로 제한된 상황에서 그리고 정서적 양극화로 대화나 타협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에서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안타깝지만 자연스러운 귀결이며 그 속에서 민주주의가 유지되리라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양당제가 고착된 상황에서 어느 순간 우리의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최선’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데에 익숙해 있다. 기득권 정당에 대한 선호를 갖고 있지 않은 무당파 유권자들에게 선거에서의 선택은 더욱 그렇다. 또한 기득권을 갖고 있는 정당과 정치인들은 스스로의 비전과 정책으로 경쟁하기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폄하, 그리고 때로는 혐오를 무기로 삼는다. ‘우리’와 ‘그들’로 이분화된 상황에서는 지지자들의 결집이 지지기반의 외연 확대보다 경쟁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서 국민의힘의 일부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무차별적인 선동에 나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혐오의 정치를 선호의 정치로
이제 대한민국을 대의민주주의의 정상국가로 회복시키기 위한 정치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정치의 시간에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의 파국을 막고 더 나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선거에서 정당 간 경쟁도를 높임으로서 혐오와 차별에 기반한 정당정치를 완화하고 유권자들이 저마다의 선호에 따라 정치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정치환경의 마련이다.
이는 거대정당의 독점적인 승자독식 구조를 차별적인 정책과 비전으로 다양한 정당들이 경쟁할 수 있는 구조로 재편하고, 그 속에서 유권자들이 비선호보다는 선호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환경을 의미한다. 소수정당이 국회에 진출하는 다당제로의 정당체제의 재편은 현재의 ‘혐오’의 정치를 ‘선호’의 정치로 전환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정치의 시간에서 시민들은 공허한 개헌논의보다는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의 개편을 통해 유권자들의 선호가 적극적으로 정치 과정에 투영될 수 있도록 기득권 정당들의 변화를 촉구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