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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폐쇄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서로 직접 관련이 없는 역사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유사한 형태로 흘러간다.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기기에는 너무나 유사하다.

권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단순하지만 무시무시한 이 작동 방식에 이의 제기하는 것을 넘어 맥을 끊고, 흐트러뜨리고, 무너뜨리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모든 것들이 같은 방식으로 무력화될 것이다.

1. 명분과 상황 조성(프레이밍)

  • 한국사 국정화 과정: 올바른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데 역사학자의 90%는 ‘좌파’이다. 따라서 ‘부득이하게’ 국정화 해야 한다.
  • 개성공단 폐쇄: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 따라서 ‘부득이하게’ 개성공단을 폐쇄해야 한다.
2015년 11월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하는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954497.html
2015년 11월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하는 황우여 당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한국사 교과서와 역사 교육은 정권이 비판하는 지점과는 너무나 무관했다. 개성공단 역시 남북 갈등과는 무관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심각한 문제’라고 규정하며, 북한이나 좌파, 종북세력과의 연관성을 제기하고, 결론적으로 정부의 ‘자의적 결정’에 따라 교과서를 뜯어고치든, 공단을 없애버린다.

2.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한국사 교과서? 문제가 있었다면 암기 위주의 교육,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한 역사 교육의 왜곡이 가장 심각했을 것이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현장 교육자들이나 프로그램의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국정화의 목적은 다양해야 할 역사적 관점을 스스로 ‘통폐합’하여 하나의 관점으로 수렴해 한국사 교과서를 ‘권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형태로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이는 논리 필연적으로 보수 세력의 장기 집권을 위한 여러 병행적인 조처들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여겨졌다.

개성공단 내 훼미리마트(현 CU) 모습. (위키백과 공용, CC BY)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7/Kaesong_familymart.jpg
개성공단 내 훼미리마트(현 CU) 모습.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개성공단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남북 관계가 가장 심각했던 때도 공장은 잘도 돌아갔다. 심지어 2013년 4월 잠정 폐쇄 사태에도 남과 북은 2013년 8월 ‘개성공단의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를 도출하며 2013년 9월 개성공단을 재가동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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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은 통행 제한 및 근로자 철수 등에 의한 개성공단 중단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

– ‘개성공단의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2013년 8월 14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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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폐쇄는 과연 “정세의 영향”과 무관한가. 목적이 4월 총선인지, 아니면 북한 붕괴에 대한 자기 최면적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대북강경책을 통해 정치적 리더십을 확보하겠다는 것만큼은 분명하지 않은가. 역시 목적은 정치일 뿐이다.

3. 과장과 거짓 그리고 기만 

한국사 교과서가 주체 사상을 가르친다? 교과서는 북한 유일체제를 가르친다. 교과서에 유관순이 빠졌다? 교과서에는 유관순을 포함하여 3.1운동과 임시정부까지 가르친다. 교과서가 북한을 우호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교과서는 대한민국사를 다루지 북한사는 사실상 다루지 않는다.

한국사

북한이 미사일을 쏘았다? 북한은 인공위성이 달린 로켓을 쏘았다. 북한이 대남 도발을 목적으로 특별히 갑자기 쏘았다? 북한은 수년간 해오던 대응 방식으로 예상했던 시기에 쏘았다. 개성공단은 포로수용소다? 개성공단은 경제 협력지대이고, 남북 평화의 대동맥이고, 남한에 압도적인 흑자 수익을 주는 경제 모델이다.

사실, 근거 있는 해석, 여러 연구 결과, 상황을 입체적으로 고찰하려는 태도는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조간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할 수준의 자극적인 멘트 하나로 사건을 규정하고 밀어붙인다. 정부에서 상황을 과장하고, 호도하면, 여당과 언론은 강력한 응원자가 되어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한다.

4. 희생양과 방패막이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 사태 때는 황우여 교육부 장관, 김재춘 교육부 차관,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등이 얼굴에 먹칠했다. 평소에 국정화를 비판했고, 검인정제도를 옹호했고 자유발행제까지 고려하던 인물, 혹은 유신 시절 국정화에 반대했던 반듯한 인사들이 국정화의 수호신이 되어서 평생의 소신을 버리고 정권의 요구를 위해 방패막이가 된다.

이해찬 전(前)국무총리의 질타를 받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표정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말은 계속 바뀌고 표정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뒷조사를 해보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안에 대해 반대했던 인물이 권력의 힘에 강제로 끌려나와 방패막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치욕스럽겠는가. 더구나 홍용표 장관은 정세균 전(前)장관이 기대했던 인물 아니던가.

홍영표 통일부 장관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933281.html
홍영표 통일부 장관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5. 무수한 반박 vs. 의미 없는 동어반복

어마어마한 반발에 직면한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과정 중에 쏟아진 반박은 주장된 내용에 수십, 수백 배에 달한다. 개성공단 폐쇄가 결정되자마자 북한 전문가, 통일 전문가, 동아시아 국제 관계 전문가들에 의해 온갖 비판과 문제 제기가 쇄도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수많은 반박과 비판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예정되었다는 듯이 같은 말만 반복하고, 토론회에 나와서도 똑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비판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답변도 못 하며, 감정적으로만 분위기를 고취시키고 온갖 자극적인 언사가 여당 플래카드와 보수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뿐이다.

6. 대통령이 단호한 선언, 지지층은 맹목적으로 따른다

정말 놀라운 점은 결정적인 시간에 대통령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국정화 논란의 정점에 대통령은 국회를 방문했고 왜 국정화 교과서가 필요한지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개성공단 역시 못지않은 단호함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사안인가, 대통령의 굳은 신념과 의지인가.

잊소리 박근혜 개성공단

흥미로운 점은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지지하는 보수층들이 점점 맹목적이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는 딱 두 개의 입장만이 존재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내가 새누리당을 지지하면 무조건 국정화는 찬성해야 한다.

심정적으로 아니라고 느껴도 그것이 지지율 하락이나 투표율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상대에 대해 역정을 내고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의 이유를 찾는다. 무상 복지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하면 ‘그깟 돈 안 받으면 되지’라고 말하고, 경제가 엉망이라고 하면 ‘누가 맡아도 이 정도 수준’이라고 답한다. 세월호나 메르스 때 보여준 무능한 모습이 드러나면 ‘애도합니다’ 라는 말 한마디 혹은 침묵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보수층은 판단하지 못하고, 의견을 드러내지도 못하는, 오직 지지하고 인내하고 동의하는 거수기가 되어버렸다. 복잡한 사정이 있더라도 결국 부천경찰서 여대생 성고문 사건 때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 보여준 보수층의 격노가 민주항쟁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민영화든 국정화든 노동개혁이든 개성공단이든 단 하나라도 비판을 받기 시작하면 무작정 정부 여당에 신뢰를 보내며 빨갱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믿고 찍고 꾹 참고 있을 뿐이다.

7. 결: 권력은 승리하고, 국론은 분열된다

이로써 권력은 또다시 승리를 거둔다. 어차피 행정부 과잉 구조에 입법부가 국민들에게 극도의 불신을 받는 상태이기 때문에, 또한 이미 수년간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면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야당도 국민도 지쳐있긴 매한가지다.

사실 더는 효과적으로 저항할 방법도 별로 없다. 거리에 나온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과격해지면 집시법과 경찰의 진압 논리 앞에서 무력화되고 만다.

합리적 논리와 근거 있는 비판은 맹목적인 감정 앞에서 조금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국론은 그대로 분열된 상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서 그렇게 소통과 타협을 강조했건만, 결국 남은 것은 힘의 승리, 뻔뻔함 그리고 절대 해결되지 않는 분열적 정서다. 조선 시대 숙종 때 노론과 남인의 관계가 이보다 더했을까.

법 정의 권력 부조리 현실

왜곡된 국정교과서를 들고 2017년 3월부터 전국 6만 여명의 역사 교육자는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 개성공단 폐쇄로 공단 관계자 5만 5천여 명은 이제 미래를 잃었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면 위법이 되고, 열심히 땀 흘린 임직원들의 가족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만다.

어차피 역사 관계자들이야 교수나 교사들이니까 정치적 영향력이 제한적일 테고, 개성공단에 종사하는 한국 쪽 관계자와 그 가족의 피해도 자신의 정치적 득실과 비교해도 무시할만한 ‘부수적 피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 무자비한 마음으로 인해 발생할 비극이 이미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고, 또다시 벌어질 것이다.

사람을 직접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쏴야만 살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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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저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고 굳이 따지자면 중도 보수나 중도 진보라고 생각하는데, 교과서 국정화, 위안부 합의, 노동법 개정, 개성공단 폐쇄까지 지켜본 결과 … 그냥 욕이 나옵니다. 이건 정책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에요. 진보든 보수든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원칙이 무시당하면 분노해야 합니다. 설령 보수라고 하더라도 반민주적 반법치적 행태를 보이는 대통령이라면 다른 보수 인사로 갈아치우면 그만인거죠. 그런데 그게 안되는 걸 보고 깨달았습니다. 지금 내가 목격하는 건 ‘민주국가의 국민’과 ‘왕정 혹은 귀족정 치하의 백성’ 간의 싸움이라는 걸.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걸 말할 수준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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