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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젠 너무 낡은 질문이긴 하지만. 사실 어떤 기술이든 그 기술이 닿는 영역에서 세상을 바꾸게 마련이다. 수많은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또한 등장 초기부터 세상을 더 낫게 바꾸려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온 매력적인 기술이다.

그동안 인터넷이 바꾸어왔고 앞으로도 바꾸어나갈 가장 중요한 영역을 꼽는다면 사람들의 ‘소통’ 체계가 아닐까. 물리적 거리, 언어, 나이, 지식수준과 같은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구 위의 그 누구와도 초 단위로 소통할 수 있는 이런 체계가 이전까지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데모크라시OS 웹사이트 캡처

데모크라시OS(DemocracyOS)는 바로 이 소통 체계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 한다. “인터넷 시대에 민주주의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은 특히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구성하는 입법과정에 개입하기 위해, 그 어떤 법안에 대해서든 시민이 직접 토론과 투표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하나의 답으로 제시했다. 인터넷을 발판으로 현실 세계의 권력 구조에 직접 접속하려 하는 것이다.

아이디어만 놓고 보자면, 이 역시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이 구상했고, 시도했고, 부침을 겪기도 한, 그다지 새롭지 않은 실험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이 실험은 기존 사례와는 조금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다.

직접 실험하고, 실패하고, 개선한다

아르헨티나의 사회운동가이며 데모크라시OS의 공동창립자인 피아 만치니(Pia Mancini)는 2014년 TED Global 발표를 통해 자신들의 구상이 어떻게 실현되어왔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백여 년 전 고안된 제도(대의민주주의)와, 수백 년 전 개발된 정보기술(인쇄술)에 갇혀 있다고 선언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떠올렸던 바로 그 아이디어, 온라인 시민참여 시스템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땠을까?

[ted id=2104 lang=ko]

우리는 전통적인 정당들에 접근해서 민주주의OS를 제안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 이 소프트웨어로 유권자들과 양방향으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네,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대실패였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밖에 나가서 놀라고 쫓겨났습니다. 특히 우리가 너무 순진하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지나고 나서 보니까 제 생각에도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맞서는 도전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었습니다. 정당들은 그들의 결정 방식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분명해졌습니다. 우리가 이 생각을 진전시키려면 스스로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큰 믿음을 가지고 작년 8월 우리의 정당을 만들었습니다.

– 피아 만치니 (TED 한글자막)

"우리는 21세기에 사는 아주 최선을 다하는 시민으로서, 19세기에 만든 제도에 맞추려 하고, 그 제도는 15세기의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이미지 출처: 데모크라시OS 블로그)
“우리는 21세기에 사는 아주 최선을 다하는 시민으로서, 19세기에 만든 제도에 맞추려 하고, 그 제도는 15세기의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이미지 출처: 데모크라시OS 블로그)

기존 제도권은 이 시스템을 순진한 발상이라며 거부했다. 결국,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 문화이며 의사결정과정에 있다고 판단한 그들은 직접 정당을 만들어 시스템을 실현하기로 했다.

2012년,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데모크라시OS를 만든 그들은 곧바로 아르헨티나에서 Partido de la Red(Net Party)라는 정당을 창당했다. 이 정당의 핵심 활동은 온라인투표 시스템을 통해 시민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모으고, 그 결과를 그대로 의회에 반영하는 것이다. 지방의회의 기존 법안에 대해 시민의 투표를 받아 당의 입장을 정하고, 새로운 법안 또한 일정 수준의 지지를 받으면 공식 제출하는 식이다.

Partido de la Red는 창당 바로 다음 해인 2013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방선거에 참여해 무려 1%가량의 표를 얻었다. 의석을 확보하진 못했지만, 신생 정당으로서는 의미 있는 성과였다. 이 당은 2015년 선거에도 참여해 실제 의석을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영문 위키백과 참조)

형태와 영역에 구애받지 않고 경계를 넘나든다

정당 활동이 이들이 하는 일의 전부는 아니다. 활동의 중요한 축인 데모크라시OS 시스템을 개발하고 전 세계에 확산하는 일은 데모크라시OS 재단이 맡고 있다.[footnote]재단은 아르헨티나가 아닌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비영리재단(501c3)으로 등록되어 있다.[/footnote]

한편, 데모크라시OS는 2015년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지원기관인 와이 컴비네이터(Y Combinator)의 지원을 받으면서 화제가 되었다. 비영리 재단이 지원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기술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관점이 와이 컴비네이터의 눈길을 끈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5월, 데모크라시OS는 와이 컴비네이터 데모데이에 등장해 지속 가능하며 독립적인 조직으로 성장하며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위해 일하려 한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YouTube 동영상

현재의 문제는 현재의 도구로 해결한다

그러고 보니, 과연 이들이 하는 일은 대체 무엇일까? 정치인가? 비영리 시민운동인가? 소셜벤처인가? 현재로썬 모두 다 맞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의 문제는 현재의 도구로 해결한다”는 모토로, 데모크라시OS는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그에 걸맞은 도구와 자원의 활용임을 창조적 실험을 통해 직접 보여주고 있다.

우리 정치 체계는 전복시키거나 파괴하지 않고 지금 인터넷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도구들로 재배치함으로써 바꿀 수 있지요. 하지만 진짜 도전은 그러한 연결 고리를 찾고 설계하고 창조하고 그 연결고리에 권한을 줘서 소음과 침묵을 혁신하고 변화시킬 수 있게 해서 마침내 민주주의를 21세기에 맞게 만드는 것입니다.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으로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 피아 만치니 (TED 한글자막)

데모크라시OS 데모 페이지 캡처

데모크라시OS는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어디서나 가져다 쓸 수 있다. 소스코드는 모두 오픈소스 커뮤니티인 깃헙에 공개되어 있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의회, 튀니지, 멕시코 연방 정부 등 30여 개국에서 15개 이상의 언어로 실제 정책 결정 과정에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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