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AS센터] 문재인 회고록에서 “젊은 세대의 공정, 우리와 달랐다”… 자기 예언적인 6년 전 이대남 보고서, 남녀 공통의 의제부터 풀자. (⌚6분)
성평등가족부가 1일 출범했다. 여성가족부를 확대·개편했다. 2001년 여성부로 출범한 이래 24년 만에 명칭에서 ‘여성’을 뗐다.
남성이 겪는 차별을 조사·연구하는 부서도 신설됐다. 성평등정책관 아래에 생긴 ‘성형평성기획과’다. 성평등가족부 장관 원민경은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동등한 기회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남성 차별’ 이재명의 일관된 메시지.
- 대통령 이재명은 지난달 19일 대통령실이 주관한 ‘2030 청년 소통·공감 토크콘서트’에 이렇게 말했다.
- “여성이 구조적으로 불평등하게 억압당하거나 불이익을 입는다는 건 맞는 말인데, 특정 영역에서는 남성이 상대적으로 차별당하는 측면이 있다. 이걸 관심 갖고 지켜봐 주지 않으니 소외감을 느낀다.”
- 이재명은 전날 수석보좌관회의에 보고된 통계 자료를 인용했다. “20대 여성의 70.3%는 여성 차별이 심각하다고, 20대 남성의 70.4%는 남성 차별이 심각하다(2023년 기준)고 여긴단다. 구체적으로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시정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
- 이재명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왜 20대 남녀가 서로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할까’ 주변 의견을 물어보니 한 인사가 이런 의견을 전했다고 한다.
- “취업하기까지는 여성이 유리한 것 같다. 군대를 갔다 와도 가산점을 주지 않는 등 남성은 차별받는다고 생각한다. 취직 뒤에는 남자가 우대되고 여성이 차별받는다. 여성 간부·상사가 별로 없고, 조직과 시설도 남성 중심이며, 유리천장 같은 게 실제 작용하는 것 같다.”
- 청년 여성과 남성이 겪을 수 있는 문제를 두루 짚은 것이다. 다만 2022년 조선일보·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여론조사를 보면, ‘취업이 남성에게 유리하다’는 데 찬성한 20대 여성 응답자 비율은 70.1%, 20대 남성 응답자 비율은 16.8%였다. 취업을 놓고도 성차별에 대한 남녀 인식 차이가 뚜렷하다. 같은 조사에서 20대 남성의 절반 이상(53.6%)은 “징병제는 남성을 차별하는 제도”라는 의견에 찬성했다. 20대 여성은 28.2%만 찬성했다.

‘갈등’을 방치 않겠다는 의지.
- 이재명은 지난 6월 10일 국무회의에서도 당시 여가부 차관 신영숙에게 “남성들이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영역이 있는데 공식적 논의를 어디서도 안 하고 있다.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한다고 했으니 여성 정책을 주로 하겠지만 특정 부분에서 남성 차별을 연구하고 대책을 만드는 방안을 점검해달라”고 했다.
- 성별 갈등 문제를 방치했던 문재인 정부와는 다른 태도다. 문재인은 2019년 1월 기자회견에서 ‘20대 남녀의 국정 지지도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기자 지적에 “젊은 남녀 사이 젠더 갈등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가 바뀌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이라며 “그런 갈등을 겪으면서 사회가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문재인과 달리 당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보고서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 요인 분석 및 대응 방안’을 통해 위기감을 드러냈다.
- 보고서는 “20대 남성이 피부로 느끼는 역차별 이슈들은 법 제도 불만에서부터 생활 문화적 고충까지 폭넓게 형성돼 있으나 대체로 정부 정책의 여성 ‘편익 우선적’ 편향성에 대한 불신을 공통된 특징으로 한다”고 지적한 뒤 통합적 정책 메시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20대 남성들이 성별 할당제, 가산제 등 여성 친화적 정책에 역차별과 박탈감을 느끼고 있으니, 정부·여당 인사들이 통합의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부메랑으로 돌아온 ‘이대남’ 표심.
- 문재인도 청년 사이에서 달라진 ‘공정’ 의미를 인식하고는 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은 당국자들의 선의와 달리 젊은층의 이반을 불러온 이슈였다. 특히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 중심으로 비판이 거셌다.
- 그는 지난해 5월 출간한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서 이렇게 말했다.
- “그전 같으면 그런 (화합의 올림픽이라는) 대의 속에 일부 선수가 단일팀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고 해도 양해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평창 때는 단일팀이 갖는 대의는 엄청 큰데도 공정 논란이 일어난 것이 뜻밖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의 공정에 대한 생각이 우리하고는 참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 계기가 됐다.”
- “공공기관에서 업무 면이나 기간 면에서 정규직과 아무 차이가 없는 비정규직들에게 정규직으로 전환될 기회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 특혜이고 불공정하다는 논란이 이는 게 당혹스러웠다. 공정 문제를 좀 더 세심하게 생각하고 다뤄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능력주의를 공정이라고 보는 것은 우려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 문재인 정부 정책 기조에 변화는 없었다. 문 정부에 등 돌린 ‘이대남’ 표심은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 오세훈에게 몰표를 주는 것으로 돌아왔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 72.5%가 오세훈을 찍었다. 30대 남성 63.8%도 오세훈을 택했다. 윤석열과 이재명이 맞붙은 2022년 대선에서도 20대 남성 58.7%가 윤석열을 뽑았다. 이재명을 선택한 20대 남성은 36.3%에 그쳤다.

“자기 예언적”인 6년 전 이대남 보고서.
- 6년 전 문재인 정부 정책기획위 보고서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공개 당시 진보언론과 시민단체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선거에서 이대남 표심이 반(反)민주당으로 확인될 때마다 회자된다. 이대남 지지도 하락 원인을 잘 분석한 것이다. 2019년 보고서에 맹공을 가했던 한겨레의 한 논설위원도 3년 뒤 “보고서가 자기예언적 성격을 띠고 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20대 내부의 젠더 갈등이 심각해 보인다”고 했다.
- 보고서는 특히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잠재적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페미니즘 편향적 교육 내용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젠더 차별적·배제적 요소를 해소한 성평등 교육 프로그램으로의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실제 2020년 여가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성평등 교육 영상에서 “남성 스스로가 자신은 성폭력을 가하는 남성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도록 해야 한다. 남성들이 잠재적 가해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시민적 의무”라고 주장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정의당에서 국회의원을 했던 류호정(현 목수)은 “‘모든 남성은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라는 주장은 성평등 실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성평등가족부 출범에 여성계는 ‘걱정 반, 기대 반’
- 성평등가족부 출범에 여성계는 기대하면서 우려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이선희는 “윤석열 정부 때 여성가족부 기능이 마비됐었는데 (성평등부 출범으로) 복원됐고 이재명 정부의 (성평등 정책) 컨트롤타워로 역할을 격상했다고 본다”며 “원민경 장관이 (여성 인권 변호사로 일했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성평등과 안전에 있어 역할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 그러면서도 이선희는 “이 대통령의 발언 등을 들어보면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아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문재인과 달리 ‘여성 인권’을 최우선 의제로 내세우지 않는 이재명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남녀 모두 공감하는 공통 의제부터 풀자.
- 남녀 모두 공통으로 취약한 의제에 주목해 보자. 일례로 ‘육아’는 남녀 모두 고민거리다. 19일 ‘2030 청년 소통·공감 토크콘서트’에서 마이크를 쥔 두 남녀는 이렇게 말했다.
- 세쌍둥이 아빠 A씨는 “낳고 보니까 너무 힘들다. 그나마 나는 나름 좋은 직장과 와이프의 재택근무로 육아를 버틸 수 있다. 이제 아이를 낳은 부부나 예비 부모 입장에서 보면, 현재 복지 제도만으로는 아이 낳는 일에 두려움을 가질 것 같다”고 전했다. “실질적으로 육아와 보육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 39개월 아기의 엄마 김진희씨는 “둘째를 낳고 싶다. 가능하면 셋째, 넷째도 낳고 싶다”면서도 “세 쌍둥이 아빠 A씨가 말씀해 주셔서 편해졌다. 남편이 외벌이하고 있고, 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지금 버는 돈과 정부 지원금을 합하면, 간신히 세 가족 사는 걸 맞출 수 있다. 여기서 애를 더 낳으면 우리는 휘청한다”고 토로했다.
- 두 사람 모두 육아와 보육에 어려움을 호소했고, 정부의 과감한 정책 지원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특히 김씨는 “아기가 너무 예뻐서 또 낳고 싶지만 임신·출산을 하면 그나마 남은 경력도 완전히 절단 날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가 출산의 장애물임을 알 수 있다.

어떻게 갈등을 완화할 것인가.
- 심각한 사회 갈등을 방치하지 않는 이재명 태도는 평가할 만하다. 한국리서치가 2021년부터 매년 2월 실시하는 젠더 갈등 인식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57%는 ‘우리 사회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22년 2월 71%로 최고점을 찍은 뒤 하락 추이를 보이고 있다.
-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 이재명 경기도지사 시절 도청 메시지 담당으로 근무했던 정치평론가 이석현은 “이재명 대통령실 내부에도 ‘20대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자’ 정도 고민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여성에 관한 우대 조치를 전폭적으로 되돌리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이 문제를 일방향으로 끌고 가지 않겠다는 의지는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사회적 갈등을 전향적으로 풀어보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시도는 평가해야 한다”고도 했다.
- 이재명은 “대화를 많이 하면 좋겠다. 예전에는 점선을 그었는데, 요즘은 실선을 그을 뿐 아니라 아예 벽을 쌓아 접촉이 안 된다”며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같은 공간에 살고 협력해야 한다. 노동자와 기업인들이, 청년과 기성세대들이, 특히 청년 남성과 청년 여성들이 대화를 많이 하면 좋겠다”고 했다. 남녀 청년 간 ‘대화’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