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의견은 자유롭게, 사실은 신성하게’(찰스 프레스트위치 스콧) 이 글은 필자의 체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쓴 정치 칼럼입니다. 이 글은 사실을 확정해서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 글이 주장하는 의견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이견을 환영합니다. (편집자)
영화 [밀정] (2016, 김지운)은 독립군 의열단 지도자 정채산(이병헌)과 일제에 적당히 협력하는 경찰 이정출(송강호)의 ‘상상 속 만남’을 매우 흥미롭게 묘사한다. 한국 현대사를 탐구한 작가라면 소설 속에 꼭 그려 넣고 싶은 장면이기도 한데, 의외로 소설이 아닌 영화에 먼저 등장했다. 나는 이 장면으로 영화 [밀정]은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의열단 지도자 정채산은 아주 귀한 분을 모셨다며 술 한 독을 주문한다. 그리고 단 세 명이 순식간에 그 거대한 술독 바닥을 드러나게 한다. 짧은 시간 안에 동지를 만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이것은 비즈니스에서 아주 오래된 고민인데, 결국은 함께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시는 게 아시아적 방책이다. 삼국지연의의 도원결의(桃園結義) 이후 수천년된 낡았지만 검증된 전통이다.
아닌 게 아니라, 중차대한 거사를 앞두고, 상대편을 우리 쪽으로 돌려야 하는데, 사람의 마음을 사는 방법으론, 이 방법 이외엔 딱히 수가 보이지 않는다. 매수나 협박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어차피 사람 마음을 100% 간파하거나, 확실하게 옭아맬 순 없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고, 서로의 한계를 마주함으로써, 뜻을 공유하고 친구라고 믿는 방법이 전부다. 술의 힘을 빌려서 말이다.
운동권 386
내 고등학교 동기 중 서울대 농대에 진학해 NL 운동권 써클에 합류해 ‘꿘'(운동권) 생활을 한 친구가 하나 있다. 그는 자신의 운동권 경험을 대학 졸업 이후 몇 번인가 털어놓았는데, 듣는 입장에선 꽤 흥미진진했다. 그는 자신의 비밀 활동이 일제시대 ‘독립군 활약’과 흡사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더랬다. 고작 1993학번인데도 그랬다.
그러니까 단과대에 학생회가 있고, 중앙에 ‘언더 써클’이 있고, 다시 대학 바깥에 ‘진보정치 조직’과 ‘노조’ 등이 있을 것 아닌가. 막내 멤버들은 단계별로 연락을 주고받고, 점조직을 유지하며, 보안과 행동준칙을 준수하는 일종의 연락책으로 조직에 입문하는 식이다. 점차 임무는 커지고. 연차가 올라갈수록 책임감이 따르니, 고작 스무 살 초반의 나이에 얼마나 긴장되고 때론 도파민이 넘치는 일이었을까.
당연히 그러한 비밀행동이나 점조직은 1960년대생 386 선배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게, 1992년까진 남한은 군부정권이었고, 당시엔 진보정당도 취약했으며, 통일을 말하면 이적단체로 감옥에 가던 시절이었다. 386 정치가 시대와 맞서며 성장한 것도 맞고, 동시에 너무도 엄혹한 시절에 정치를 배우다 보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늘날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음도 부정하기 어렵다.
79~82학번, 녹화사업
1981년부터 1992년까지 신군부는 잔혹했다. 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녹화사업’ 사건이 등장했는데, 대개 1979학번 까마득한 선배들 얘기였음에도 시청하며 가슴이 아팠다. 평범한 대학 2, 3학년생의 써클 활동까지 ‘빨간’ 딱지를 붙여 강제로 국가가 사상 개조, 즉 ‘녹화’에 나선 것이다. 협력을 안 하면 군대에서 고문으로 죽이고, 협력하면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고, 동지들에게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사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386’이라는 정치 세력이 정당성을 안고 시대를 대표하는 대표 세대로 자리매김 한 데에는, 수많은 선각자와 희생자가 있었다. 이 세대는 그러한 집단적인 부채감 속에서 ‘민주주의’라는 꿈을 키웠고, 그 집단의 대표자들이 대거 정치권으로 진출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전대협, 즉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계열)’이라는 조직이 지극히 비밀스럽고 사람의 믿음에 특화된 점조직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니까, ‘도대체 NL은 정권을 쥐었을 때 어떤 식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공조직을 굴리는지’하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임종석의 사례
한양대 86학번 임종석이 총학생회장이 된 건 1988년, 체포된 시점이 1989년, 특별 사면으로 석방된 시점이 1993년이다. 그 사이 1989년 6월, 임수경의 방북이 있었고, 1991년 그 유명한 91년 대투쟁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1993년 YS의 집권과 함께 임종석은 대학가와 진보운동 판에서 가장 유망한 청년 정치인으로 부상한다. 1966년생이니 고작 만 26살 때 말이다.
그를 키우고 후원한 수많은 전대협 선배가 있었겠지만, 대중 인지도 면에선 임종석-임수경을 넘어설 인물이 없었고, 실제로 수많은 전대협 선배는 현실 정치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 임종석은 한양대와 성동구라는 확고한 밑천과 특유의 유명세가 있었기에 1999년, 만 서른셋 나이에 여의도 정치인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과연 그의 정치인의 인생이 얼마나 뚜렷하고 인상적이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말 그대로 별다른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수면 아래에서 커다란 활약을 했을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원래부터 비밀스럽게 언더 ‘정치조직’에서 활약하는 게 습관인 분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티 나지 않던 그를 부각시킨 건, 박원순-문재인이라는 그보다 11~13살 많은 선배 세대 운동권이었다.
강력한 비서실장
임종석이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낙점받고, 어떤 인사를 추천했는지는, 훗날 기자들이 깊게 취재할 대목이라고 본다. 겉으로 드러난 뚜렷한 사실은 임종석은 386 세대의 좌장으로 군림하며, 문재인 청와대의 아주 뚜렷한 지분을 획득하고, 이후 인사에 막강한 개입을 했다는데 있다.
이건 비난할 일은 아니다. 실제로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는 자리는, 본인의 정치력에 따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고, 그것을 허락한 것은 대통령이기 때문에 문제 삼기도 곤란하다. 비서실장의 결정은 사실상 대통령의 복심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 정부는 임종석이라는 386 상징 권력을 오른팔로 씀으로 인해, 여러 효과를 얻는다. 문제는 집권 5년간 임종석의 그늘이 너무 컸다는 데 있다. 2019년 임종석 퇴진 이후 조직을 여러 차례 바꿔도, 한번 서열이 정해진 이후, 특유의 NL 조직의 향기가 남았다.
임종석의 가장 큰 영향력과 문제는, 검찰 인사에서 드러났는데, 결정적으로 2017년, 일개 고검 검사에 불과했던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승진 발탁한 데 있고, 이러한 믿음과 신뢰는 2019년 7월 무려 6기수를 뛰어넘어 그를 다시금 대검 총장 발탁이라는 무리한 인사로 계속된다. 당시 노영민 비서실장 체제라곤 했지만, 누가 봐도, 검찰은 임종석-양정철의 인사였으며, 민정 참모의 공식 건의를 무시할 수 있는 권력은 청와대 386세력, 그 좌장이 임종석이었다.

책임과 은퇴
2년 임기의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 정치인 한 명에게 정권의 모든 비난과 책임을 돌리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러한 결정이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는 2019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지난 4년간 모든 책임에서 자유롭게 행동해 왔다. 이것은 문제가 있다.
386 세대 NL이 지난 30년간 견지한 노선은 비밀주의와 사람 중심주의였다. 아마도 임종석은 윤석열을 따로 불러 면접을 봤을 가능성이 크고, 앞서 말한 [밀정]의 이병헌의 역할처럼, 송강호를 평가하는 위치에 섰을 것이다. 그리고 술 한독을 함께 비우며, 서로 의기투합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믿음 위에서, 거의 모든 검찰 개혁의 로드맵을 무시하고, 인적 개혁 중심으로 방향을 돌렸을 것이다. 그래서 6기수를 뛰어넘는 파격 인사가 나온 것이다. 그렇게 검찰 개혁은 공염불이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이 둘의 만남을 내가 추측하고 가능성의 영역으로 둔 이유는, 임종석이나 그 상대방도, 그 누구도 이 대목은 영원히 시인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검찰총장 후보와 비서실장의 만남…만일 이러한 ‘찐한 만남’이 없었다는 사실을, 임종석이 공개적으로 천명할 수 있다면, 나는 임종석의 정계 복귀를 용인할 의사가 조금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진 못할 듯싶다.
정치 낭만주의
임종석류의 오래된 정치 낭만주의는 집권 이후를 고민하지 못한 듯하다.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를 배격하곤 개인적 믿음과 인연을 소중하게 믿는 386 정치의 예고된 비극이기도 하다.
검찰 고위층분들이 항상 반박하는 얘기, ‘야권은 정권 잡으면 검찰권을 안 이용해 먹은 줄 아시나? 정치는 다 똑같아요!’ 전적으로 동의하긴 힘들지만, 무슨 취지인지는 이해가 된다.
잘한 것도 많지만, 실패한 것도 항상 있는 법이다. 임종석의 비선(秘線) 정치는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큰 국정 운영 방식이었다. 술 한독을 함께 비우는 게 정치나 국정의 요체일 리 없다.

임종석이 비밀스런 행보를 하는 정치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 뿌리가 어디인지는 덕분에 잘 알았습니다.
또한 이 글이 “인기있는 NL 출신 정치인인듯 보이지만 실상은 뒤에서 술자리 관계로 인사를 하고 실정을 하는 정치인” 이미지를 만들고자 하는 것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후자는 공감이 갈만한 근거가 너무 빈약하네요. 이 글의 전체에서 근거로 전하는 “숨겨진 이야기”는 임종석과 윤석열의 술자리가 다입니다. 기자님의 글과 제목을 보아한데, 그 술자리가 실제로 있었을 것 같긴 합니다만, 윤석열 발탁이 그 술자리에서 결정됐다고 믿는 사람은 기자님과 임종석 둘 정도일 것 같습니다.
검찰권력의 국정장악은 사법력 단독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보수진영과 결탁한 언론과 함께 하지 않으면 검찰의 여론조작은 불가능합니다. 야권(진보)도 정권 잡으면 검찰을 이용한다구요? 검찰 수사를 정권이 지시하는 것과 언론과 결탁한 검찰이 여론을 움직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공작입니다.
선생님 말씀도 맞습니다. 다만, 임종석이 “사기당했다”고 선언한 시점은 문제가 됩니다. 지난 3년 반 넘게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사기당했다”고 주장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면, 서초동에 사법개혁 검찰 개혁하자고 1백만명이 모인게 2019년 일입니다. 국민들이 나섰는데, 문청와대는 “윤석열” 하나 믿고, 조국과 추미애를 버리는 결정을 한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연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2021년 대선 직전에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후보도 참여정부 출신”이라며, 검찰총장의 정치 참여를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태도를 취했죠. 실제로, 이낙연과 임종석 등 청와대 핵심 인사 출신들은, 아무도 민주당의 대선 캠페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검찰-언론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건 당연한데, 그 과정에서 윤석열 검찰을 출발하고 도운 세력의 문제도 지적해야 합니다. 누가봐도 “공적 이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검찰총장으로 띄워서, 검찰개혁 세력을 몰락시킨 세력도 문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