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길고 긴 미국의 선거운동이 끝나고 2016 미국 대선이 바로 오늘이다(미국 시각 기준 11월 8일). 그동안 이 연재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여전히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전반적으로는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아무도 장담하려 하지 않는 이유는 트럼프 지지자들은 항상 예상외의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트럼프가 승리할 가능성은 여전히 30%를 넘는다. 여론조사는 트럼프가 우세할 만큼 박빙이지만, 최소 270명을 확보해야 하는 선거인단 확보에는 클린턴이 앞서있다. 관건이 되는 주는 당연히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 그리고 네바다 주. 클린턴이 그 세 주를 다 잃고도 뉴햄프셔, 콜로라도,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등을 모두 얻으면 모르지만, 그중 한두 개만 삐끗해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사라진 여성들’
미국에서는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느냐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사퇴하느냐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다.
물론 2016년을 사는 우리는 자격만 된다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나 국가의 수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충분히 계몽된 개인의 수준에서 그럴 뿐, 온갖 유권자들이 모인 하나의 집단으로서의 사회는 여전히 역사적인 관성에 사로 잡혀있고, 그런 사회에서는 여성이 국가의 지도자가 되거나 지도자에서 물러나는 일은 큰 의미가 있다.
말콤 글래드웰은 새롭게 시작한 팟캐스트의 첫 에피소드[footnote]’The Lady Vanishes’[/footnote]에서 역사적으로 남성들이 차지해온 자리를 빼앗은 최초의 여성이 사회에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를 이야기했다. (결론: 그 후로 아주 오랫동안 여성은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어릴 때는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닐 줄 알았던 2016년에도 여성은 보수적인 남성들이 특별히 허락하는 경우에만 리더가 될 수 있다.
최초이자 최장수 여성 법무장관 ‘재닛 리노’
어제 미국 최초의 여성 법무장관이었던 재닛 리노(Janet Reno)가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클린턴 행정부 8년의 시작부터 끝까지 같이 한 최장수 법무장관(정확히는 150년 만에 처음)으로 유명한 리노는 사실, 클린턴이 가장 원하던 최초의 여성 법무장관 후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첫 번째 후보자가 불법 이민자들을 도우미로 고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낙마하고, 두 번째 후보 역시 낙마하면서 정권 출범 초기부터 공화당에 발목을 잡히자 어쩔 수 없이 찾아낸 사람이다.
여기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클린턴이 내각에 들일 만큼 잘 알지 못하던 사람이라는 말일 뿐, 리노는 이미 (미국 드라마 CSI: Miami로 유명한)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의 검찰 총수를 네 번이나 연임한 실력자였다.
그 시기에 CNN을 봤던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재닛 리노”라는 이름은 “빌 클린턴”이라는 이름 다음으로 뉴스에 자주 오르내렸다. 장관의 이름이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는 말은 그만큼 논란의 중심이 된다는 말이고, 장관이 논란의 중심이 된다는 말은 그만큼 정권에 부담이 된다는 뜻이다.
빌 클린턴은 법무부의 일 때문에 공화당의 공격을 끊임없이 받는 리노를 좋아할 리 없었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 리노 장관을 클린턴은 왜 끝까지 데리고 있었으며, 공화당은 왜 리노를 사퇴시키지 못했을까?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 유권자들의 분노를 살까 봐? 물론 그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하지만 리노가 재임 기간에 다뤄야 했던 대규모 사건과 뒤따른 논란들은 여자라고 봐줄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었다. 리노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남아서 최장수 장관이 되었다.
웨이코 참사
리노 8년 임기 중 최악의 오점으로 남은 사건은 그가 법무장관이 되자마자 일어났다. 텍사스 주 웨이코(Waco)에서 일어난 사교조직 ‘브랜치 다비디언(“다윗파”)’의 포위, 진압작전이 그것이다.
1993년 2월, 제7 안식교의 분파로 알려진 그 사교조직이 불법 폭발물과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미국의 주류, 담배, 총기 및 폭발물 단속국(ATF)이 급습했다가 총격전이 벌어져 4명의 요원과 6명의 다윗파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법무부는 이 문제를 FBI에게 넘겼고, FBI는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해 다윗파가 사는 건물들을 포위했다.
2월에 시작된 길고 긴 포위는 4월 19일, 탱크까지 동원된 FBI의 무리한 습격으로 끝이 났지만, 그 과정에서 무려 7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거기에는 20명 이상의 아이들과 2명의 임산부가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법무부가 성급한 판단으로 인명사고가 났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이 사건은 오래도록 뉴스거리가 되면서 클린턴의 임기 초반을 어둡게 만든 중대한 사건이었을 뿐 아니라, 재닛 리노 재임 기간 중 또 하나의 대형 사건인 오클라호마시티 폭탄 테러 사건의 범인인 티머시 맥베이가 자신의 범행 동기 중 하나로 웨이코 사건을 들면서, 미국 연방정부에 반대하는 백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청문회에서 생존하다
하지만 재닛 리노는 그 후에 이어진 공화당의 청문회에서 살아남았다. 비결은?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내린 판단이었음을 입증한 것이다. 급습을 결정할 당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하고 공화당 의원들을 비난을 모두 꺾은 것이다.
클린턴 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공화당 의원들은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리노를 청문회에 불렀지만, 리노는 그때마다 “그래? 가지 뭐(Fine, I’ll be there)”하고 나가서 전부 답변을 하면서 의원들을 눌러버렸고, 그런 일이 계속되자 나중에는 의원들도 리노를 부르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키 187의 장신에, 임기 중에 이미 진행된 파킨슨병으로 떨리는 손으로 청문회에서 당당하게 답변하는 모습을 보면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성공과 괴로움
재닛 리노는 임기 중에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유너바머(Unabomber)와 오클라호마시티 테러범의 검거 등의 업적도 남겼다.
하지만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았던 리노도 훗날 웨이코 사건을 회상하면서, 사건 후에야 알게 된 정보를 그 때 알았더라면 습격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리노 장관 밑에서 일했던 월터 델린저에 따르면 웨이코 사건을 겪고 난 리노는 그때의 경험으로 중대한 사건은 현장에서 모든 정보를 직접 파악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특히 법무부 내에서 장관에 대한 존경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자신이 이끄는 법무부가 다루는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전부 파악하는 직업윤리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게 하고도 여전히 많은 대형사건이 임기 중에 일어났고, 리노는 그로 인해 꾸준히 비난을 받았지만, 빌 클린턴도, 공화당도 리노를 사퇴시킬 수 없었다. 아무리 대형사고가 터져도 자기 일을 철저히 한 사람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지만, 여자일 경우 능력을 더 많이 의심받는 세상에서 긴 임기를 누린 여성 지도자들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남성 이상으로 철저히 일한 사람들이다. 파킨슨병으로 손이 떨리면 드럼을 치기에는 편리하다고 농담을 할 만큼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직시하면서도 느긋할 줄 알았던 재닛 리노는 여성이 고위직에서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물론, 어떻게 하면 그게 가능한지 또한 보여준 인물이다.
선택과 대가
이제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길고 긴 여정이 끝나고 미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누가 뽑히더라도 미국인들의 선택이고,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리더와 4년을 지내야 한다. 그게 “부패한 클린턴과 4년을 더 지내는” 것이든, 혹은 “농담인 줄 알았던 트럼프를 대통령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든, 미국인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른 대가를 치를 것이다.
우리가 지금 치르고 있는 대가와 마찬가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