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정당은 아직 우리 삶에서 멀리 있다.

촛불과 탄핵, 그리고 뒤이은 선거를 치르면서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던 “정치적 인간”이니 “일상 정치”니 하는 용어들이 제법 대중에 익숙한 개념으로 자리 잡기는 하였다. 백만 명을 넘겼다는 모 정당의 ‘권리’ 당원 숫자는 이전에 비하면 상전벽해 수준임이 분명하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가 대규모 당원 가입을 이끌었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들린다.

정당 문화, 왜 아직 이 모양인가 

그러나 정치가 정치인의 전유물에 그치지 않고 시민의 삶 속에 살아있기 위해서는, 정당에 훨씬 더 쉽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이 당원으로서 정당에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표하면 그것을 실제 정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구조와 가능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의 꽃인 선거에서 정당 후보가 당원들의 의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함은 특별한 언급의 필요조차 없는 사항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당 현실에서는 이러한 기본을 지키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 정당 문화의 발전이 더딘 것은 어두웠던 권위주의 헌정사의 탓이 가장 크다. 여당이 폭압적 권력의 실행조직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야당에 가입하거나 지지자가 되려면 온갖 손해를 감수해야 했던 시절이 오래 지속되었다. 자연히 정치는 개발독재의 군사적 카리스마와 민주화운동의 조직적 카리스마 간 대결의 장으로 압축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 이후 시민의 자유로운 정치참여에 기초한 새로운 정당모델이 실험되기도 하였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정당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여기에 더하여 정당법의 후진적 체계 역시 정당문화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정당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아무리 높아져도 기성 권력질서와 이미 확고히 연계된 정당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민주화의 여정에서 정치개혁의 대의 속에 정당법 개정이 이어져 왔으나, 아직 정비하지 못한 과거의 유물은 여전히 건재하다. 여기서 논할 정당법 조항의 헌법재판소 결정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헌재 헌법재판소

정당의 등록·취소제도

헌법은 제8조에서 4개 항에 걸쳐 정당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정당의 법적 본질을 민법상 ‘권리능력 없는 사단’으로 보면, 대한민국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법인을 포함한)단체 중 헌법이 이만큼의 특권을 부여한 것은 없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box type=”info”]

헌법 제8조 

①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 제1항은 정당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도를 보장한다는 헌법적 의도에서부터 시작한다.

②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

→ 제2항은 정당 보호에 걸맞은 정당의 민주성과 최소한의 조직 구조를 요구하였다.

③ 정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

→ 제3항은 국가에 법률에 따라 정당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고 자금지원까지 하도록 함으로써 그 특권의 정점을 찍고 있다.

④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

→ 제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반될 때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해산될 수 있음을 규정하였으나, 이는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절차가 아니면 그 어떤 다른 방식으로도 함부로 정당을 해산할 수 없다는 보호의 의미를 밝힌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box]

헌법은 추상적인 국민의 열망과 의지를 반영한다. 헌법은 그 자체로는 미완이다. 공동체는 헌법 구체화 법률들을 통해 헌법정신을 실현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헌법은 추상적인 국민의 열망과 의지를 반영한다. 헌법은 그 자체로는 미완이다. 공동체는 헌법 구체화 법률들을 통해 헌법정신을 실현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겉보기에 정당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하여 아무 단체에게나 이러한 헌법의 특별한 취급을 해 줄 수는 없다. 정당법에서 정당의 구체적 요건을 매우 상세하게 정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헌법상 정당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당법의 요건을 갖추어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하도록 정하였다.

등록된 정당에 대한 보호를 거두어야 할 때를 대비하여 등록 취소에 대한 요건도 구비하여 두었다. 만일 정당법의 등록 요건이 매우 까다롭거나 취소 요건이 지나치게 느슨할 경우, 헌법 제8조의 정당 보호의 의도를 왜곡하게 될 것이다. 본 결정에서 문제가 된 것은 정당법 제44조의 등록 취소사유가 헌법에 합당한지 여부였다.

“유효투표 100분의 2” 정당취소 조항 = 위헌! 

[box type=”info”]

정당법 제44조 (등록의 취소)

①정당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때에는 당해 선거관리위원회는 그 등록을 취소한다.

(1호 2호 생략)

3.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하여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때

[/box]

이 조항에서는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한 정당이 의석을 한 석도 얻지 못하고 득표수가 유효투표 총 수의 100분의 2를 넘지 않을 경우 등록을 취소하고(제44조 제1항 제3호), 그렇게 등록취소된 정당의 명칭은 취소일 이후 최초로 실시하는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일까지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제41조 제4항) 하였다.

2012년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하였던 진보신당, 녹색당, 청년당은 모두 의석을 얻지 못하였고, 각각 유효투표 총 수의 1.13%, 0.48%, 0.34%를 득표하였다. 정당법 44조에 의해 이들 정당은 선거 다음날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하여 등록이 취소되었고, 곧바로 동일한 정당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이들은 헌법소원 및 위헌법률심판을 제기하였다.

진보신당 녹색당 청년당

헌법재판소는 정당이 “자신들이 원하는 명칭을 사용하여 정당을 설립하거나 정당활동을 할 자유”는 헌법 제8조의 정당설립의 자유에 포함된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위 정당법 조항이 위헌이라 결정하였다. 즉, 이 제도를 만든 목적으로 추정되는 “군소정당의 난립 방지” 효과에 비하여 침해되는 정당설립의 자유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등록취소의 기준이 되는 국회의원선거 득표수 비율이 지나치게 낮아 신생·군소정당의 존속과 보장이 너무 쉽게 박탈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양한 종류의 선거에 여러 번 참여할 기회를 주는 등 “덜 기본권 제한적”인 방법을 취할 수 있음에도, 국회의원선거의 기준 미달 한 번에 즉각 등록을 취소하고 향후 4년 동안 같은 이름을 쓸 수 없게 한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난 위헌적 제도라고 한 점이 두드러져 보인다.

정치적 자유를 위한 정당법

정당등록 취소 조항은 동일한 정당 명칭 사용 금지 조항과 함께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의해 개정된 정당법에서 신설되었다고 한다. 어떤 정치적 맥락에서 만들어졌을지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헌법재판소가 결정문에서 누누이 강조한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의 담당자이며 매개자이자 민주주의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의 정당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제도이다. 정당을 통해 정치할 국민의 자유를 위해 헌법재판소가 비합리적이고 반기본권적인 정치제도를 없앴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결정이다.

전두환. 80년 광주를 군홧발로 짓밟고, 무수한 폭압으로 정권 내내 무고한 피를 뿌린 전두환.
전두환. 80년 광주를 군홧발로 짓밟고, 무수한 폭압으로 정권 내내 무고한 피를 뿌린 전두환. 정당법 44조에는 그 전두환으로 상징되는 신군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정당과 선거에 관한 법제도는 본래 정치권이 주도하여 개혁하여야 할 ‘게임의 법칙’이다. 민주주의 주체들 사이에서 가장 민주적으로 합의되어야 할 제도에 관한 문제이므로, 정치적 존중과 타협의 미덕이 강하게 발휘되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우리 정치주체들이 이를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기득권 포기의 용기를 기대하기에는 정치권의 수준이 아직 모자란다.

결국, 제도를 개혁할 새로운 대의 주체를 세워야 하며, 이는 유권자인 우리의 몫이다. 국민의 지지 의사를 왜곡하는 대표의 권력 지형은 정의롭지 못하다. 속히 고쳐져야 한다. 또한 정당 민주주의가 확립된 정당이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려서부터 정당을 가까이하고 정치활동을 장려하는 정치교육의 방향 전환도 필수적이다. 이 모두를 위해서, 제도 개혁의 길목마다 정치활동의 자유, 정당설립의 자유를 폭넓게 확인하는 헌법재판소의 이정표가 꼭 내걸려야 할 것이다. 그 시작이 바로 정당법 개혁이며, 이는 반드시 ‘정치적 인간’의 자유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box type=”info”]

대상판결과 판결요지 

  • 헌법재판소 2014. 1. 28 자 2012헌마431 결정 【정당법 제41조 제4항 위헌확인 등】 위헌 [헌공제208호]
  •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하여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2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정당에 대해 그 등록을 취소하도록 한 정당법(2005.8.4.법률 제7683호로 개정된 것)제44조 제1항 제3호(이하 ‘정당등록취소조항’이라 한다)가 정당설립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적극=침해=위헌)

[/box]

[box type=”note”]

판결비평 ‘헌재 5기’ 특집 

헌법재판관 5명(이진성·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의 임기(2012~2018)가 지난 9월 19일 만료되었습니다. 이로써 헌법재판소 5기 재판부는 막을 내렸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5기 재판부가 내린 결정 가운데 주요 판결을 골라 [판결비평 헌재 특집]을 진행합니다. 이 판결에는 1) 위헌법률심판, 2) 탄핵심판, 3) 정당해산심판, 4) 권한쟁의심판, 5) 헌법소원심판, 6) 신청사건 및 특별사건 등 여섯 가지 종류의 헌법 재판이 모두 포함됩니다. 헌재 5기 재판부에 대한 판결비평을 통해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재판부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1회 판결비평은 정당이 원내에 진출하지 못하거나 정당투표에서 2% 이상 득표하지 못하면 정당 등록을 취소하고 같은 정당명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해 사실상 정당해산 효과를 초래했던 구 정당법에 관한 헌재의 위헌 결정을 다루었습니다. 필자는 장철준 교수(단국대 법과대학,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1. 정치적 인간을 위한 정당법 (장철준) 
  2. 광장의 성난 민심이 스스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임을 확인하다 (이종수)
  3. 국가의 DNA 채취행위, 첫 제동이 걸리다 (조지훈)
  4. 영장주의의 예외는 예외다워야 (하태훈)
  5. 사법부가 면죄부를 준 사이,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국가범죄 (이상희)
  6. 국가형벌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둔감한 헌재 (서보학)
  7. 패킷 감청의 헌법불합치 결정, 수사 권력 통제엔 미흡 (오동석)
  8. 통합진보당 해산: 헌재가 만든 또 하나의 ‘과거사’ (한상희) 

[/box]

관련 글

4 댓글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