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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응급 환자를 받지 않는 병원을 비판하기는 쉽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환자를 받으라는 법을 만들고 있고 심지어 수술 잘못하면 처벌하는 법까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될까요? 무조건 환자는 받아서 수술하고 잘못되면 의사가 책임지고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할 때입니다. 강상범 카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의 페이스북 글을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부산 고교생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건’에서 보듯 이미 필수의료 붕괴는 시작되었다.

부산 ‘뺑뺑이’ 사망 사건을 초래한 진짜 이유.

부산 도심에서 경련을 일으킨 고등학생이 1시간 가까이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끝내 사망한 사건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부산 시내 대형병원들이 “소아신경과 배후진료가 어렵다”는 이유로 잇따라 수용을 거부했고, 그 사이 구급차는 도시를 빙빙 돌았다. 여론은 당연히 “사람이 죽어 가는데 어떻게 병원 응급실이 환자를 받지 못하냐”는 분노로 향한다. 또 ‘돈만 아는 의새’들은 질타를 당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곧바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을 내놓으면서, 응급환자를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대폭 줄이고, 구급대가 데려오면 웬만하면 일단 받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보겠다고 한다.

겉으로 보면 “환자를 안 받는 나쁜 의사들”과 “그 병원과 의사들을 제어할 강한 법”의 구도로 보이지만, 이 사건의 배경에는 이미 대법원에서 선고된 한 판결이 겹쳐져 있다. 신생아 장 염전 수술을 둘러싼 이른바 소아 장 염전 수술 판결은 표면상으로는 의학적으로 타당해 보이지만, 필수의료 현장에 떨어지는 메시지는 전혀 다르다.

이 판결과 부산 ‘뺑뺑이’ 사건, 그리고 지금 준비 중인 “구급대가 데려오면 무조건 받아야 하는 법”은 결국 하나의 흐름 위에 놓여 있다. 시스템의 책임은 감추고, 개별 의사에게만 모든 법적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가 바로 그 공통분모다.

소아 장 염전 수술 판결이 의료 현장에 보낸 메시지.

문제가 된 사건의 줄거리는 이렇다. 신생아가 담즙성 구토로 내원했고, 검사에서 중장염전이 확인되었다. 해당 병원에는 소아외과 세부전문의가 없었고, 유방외과를 세부전공으로 한 일반 외과 전문의가 1차 수술을 시행했다. 이후 장 괴사 소견으로 2차 수술까지 진행되면서 소장 대부분을 절제하게 되었고, 결국 극단적인 단장증후군과 뇌병증, 중증 장애가 남게 되었다. 1심 법원은 “중장염전은 시급한 응급 질환이므로 소아외과가 있는 병원으로 전원했다면 오히려 지연으로 더 위험했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수술 당시 전형적인 ‘Ladd band’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외과 의사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심과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표준 소아 장 염전 수술법(소위 Ladd 수술)을 단순히 특정 밴드를 잘라내는 수술이 아니라, 꼬여 있는 장을 풀고, 십이지장과 맹장의 위치를 재배치하고, 장간막을 넓게 펴서 다시 꼬이지 않도록 구조를 바꾸는 하나의 완결된 표준 술식으로 보았다. 따라서 수술 당시 전형적인 ‘Ladd band’가 눈에 띄지 않았더라도, 나머지 표준 소아 장염전 수술법의 핵심 단계들은 시행했어야 한다고 보았다. 감정의 의견을 근거로(감정의의 의견이 단순히 의학적인 완벽함에만 근거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이 수술법을 제대로 시행하면 중장염전 재발과 단장증후군 발생이 매우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이번처럼 재발과 극단적인 단장증후군·뇌병변까지 이어진 결과에는 수술법 미준수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결국 법원은 수십억 원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그 중 70%를 병원과 외과 의사가 부담하도록 했다.

여기에는 의학적 논쟁의 여지도 분명히 존재한다. 소아외과 의사들 가운데 일부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장 허혈과 쇼크 소견이 심한 고위험 신생아였는데, 설령 표준 술식을 가능한 한 충실히 따라갔다 하더라도 광범위 장 절제와 단장증후군, 장기적인 TPN 의존, 그에 따른 대사·영양 장애와 뇌 손상 위험을 완전히 피할 수 있었을까?” 또 다른 쟁점은 재발률과 인과관계다. 문헌에 따라 Ladd 수술 후 재염전이나 폐색의 빈도는 다소 차이가 있고, “완벽한 Ladd를 했으면 이런 나쁜 예후는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표현은 실제 임상 경험에 비추어보면 다소 과감한 추론이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수술 당시의 전신 상태, 장 허혈의 범위, 이미 손상된 장간막의 상태 등은 판결문에 다 담기기 어렵고, 현장 의사는 그 순간 “이 아이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한 데미지 컨트롤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판결은 “표준 술식의 이상형”을 법적으로 상당히 강하게 선언하면서, 개별 사례의 임상적 난이도와 변수를 얼마나 충분히 반영했는지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의 논쟁이 가능한 판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판결이 현장에 떨어뜨린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다. 소아외과 세부전문의가 없는 병원에서, 일반 외과 의사가 신생아 장염전 수술을 맡다가 나쁜 예후가 나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준 소아 장염전 수술법의 모든 핵심 단계를 제대로 수행했어야 한다. 그렇지 못했다면 장기적 예후까지 큰 비율로 책임져야 한다”는 신호로 읽힌다. 의학적으로 어떤 여지가 있었는지와는 별개로, 현장에서 체감하는 것은 “위험한 소아 응급수술은 웬만하면 건드리지 말라”는 압박에 가깝다.

소아외과 49명인 나라에서 나온 ‘완벽한 표준’ 판결.

우리나라에 활동 중인 소아외과 전문의는 50명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요 최소 인원 추계에 비추어 보면 실제로는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다. 신생아와 소아의 복잡한 수술 상당수가 여전히 일반 외과 의사들에 의해 수행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방의 많은 병원에서는 소아외과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표준’을 어떻게 해석했느냐이다. 이번 소아 장염전 수술 판결은, 구조적 인력 부족과 병원 간 격차를 거의 언급하지 않은 채, 개별 외과 의사에게 소아외과 전문의 수준의 “완벽한 표준 술식”을 요구했다. “그 병원에 소아외과가 없었다”, “지역적으로 전원이 쉽지 않았다”는 현실은 법리의 전면에 거의 등장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표준 소아 장염전 수술법(Ladd 수술)의 핵심 단계를 모두 알고, 모두 수행했어야 한다. 그 결과가 단장증후군·뇌병변으로 이어졌다면 상당 부분 책임져야 한다”는 결론으로 곧장 나아간다.

다른 나라의 접근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더 선명하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의료과오 소송의 기본 잣대는 “동일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역량을 가진 의사가 했을 행동인가”이다. 미국에서는 같은 수준의 병원·전문의가 처한 ‘similar circumstances’를 함께 고려하고, 영국도 전통적인 Bolam/Bolitho 원칙 아래 “동료 전문가 집단에서 지지할 만한 합리적인 진료였는지”를 본다. 여기에는 보통 다음과 같은 맥락이 같이 들어간다.

  • 이 병원이 대도시 소아전문센터인지, 지방의 일반병원인지,
  • 해당 시간대에 소아외과, 소아마취, 소아 중환자 인력이 실제로 가용했는지,
  • 환자를 상급 소아센터로 전원할 경우 지연과 교통 위험이 어느 정도였는지,
  • 수술 전·후에 상급센터나 소아외과와 전화 자문이나 원격 협진을 시도했는지 등이다.

즉, 미국·영국의 법원도 “표준 소아 장염전 수술법”이라는 이상형을 알고는 있지만, 그 표준을 그대로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었는지, “리소스·환경·시간 제약 속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이 무엇이었는지”를 함께 본다. 소아외과 전문의가 상주한 3차 어린이 병원(tertiary children’s hospital)에서라면 Ladd 술식 각 단계가 더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될 것이고, 소아외과가 전혀 없는 지방 병원(community hospital)에서 일반 외과 의사(general surgeon)가 새벽에 응급 개복을 한 상황이라면, 그 제약된 상황 자체가 책임 범위를 정할 때 하나의 요소로 반영된다.

반면 이번 아주 고매하신 대한민국 법원 판사 나으리의 판결은, 우리나라가 소아외과 전문의 49명 수준, 지방에 따라서는 0명인 곳도 있는 나라라는 점을 전제로 하면서도, 정작 책임 판단에서는 이런 구조적 결함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소아외과가 없으니 일반외과라도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는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결과가 나쁘면 “그래도 소아외과 수준의 표준 술식을 다 지켰어야 한다”는 식으로 개별 의사에게만 높은 문턱을 들이댄 셈이다.

그 결과 현장의 메시지는 이렇게 들린다. “소아 장염전 같은 고위험 응급수술은, 소아외과가 없는 병원에서는 손대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라면, 이런 고위험 케이스를 떠맡는 병원과 의사에게 추가 자원·네트워크·보상과 함께 일정 수준의 책임 경감 논리가 세트로 논의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소아외과 인력 부족, 전원 네트워크 미비, 필수의료 수가 문제 등 시스템 차원의 책임은 뒤로 밀리고, 개별 외과 의사에게 “완벽한 표준 + 광범위 인과관계 + 고액 배상”의 조합만 먼저 도달한다. 이 지점에서 이 판결은 환자 안전을 위한 ‘표준 제시’라는 긍정적(?) 의미를 갖는 동시에, 다른 나라에 비해 리소스와 현실을 덜 반영한, 상당히 “가혹한 표준”을 선언한 판결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 와중에 정부는 “무조건 받아라” 법을 준비 중이다.

이제 여기에 부산 ‘뺑뺑이’ 사망사건이 더해졌다. 경련을 일으킨 고등학생이 1시간 가까이 여러 병원에서 거절당한 끝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정부와 정치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응급실 뺑뺑이를 없애겠다”며 응급의료법 개정과 지침 강화를 꺼내 들었다.

개정 논의의 핵심 방향은 응급환자 수용 거부 사유를 대폭 좁히고, 119가 미리 병원에 전화해 “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 절차를 없애거나 축소하는 것이다. 권역·지역응급센터는 중환자실·수술실·배후진료가 충분치 않더라도 우선 받아야 한다는 압력이 강해지고 있다. 서류상으로는 “국민 생명 보호”를 위한 조치처럼 보이지만, 응급의학과와 필수의료 현장에서는 정반대로 읽힌다.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거부는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중환자를 받았다가 결국 배후진료가 안 되어 재이송이 필요해지면 그 혼란과 책임은 모두 응급실이 뒤집어쓴다”는 두려움이다.

이미 소아과, 소아외과, 응급의학과, 외상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에서는 낮은 수가와 높은 법적·정신적 부담, 밤과 주말을 포기해야 하는 근무환경으로 인해 젊은 의사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소아 장염전 수술은 표준 수술법을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수십억 배상”, “응급실은 배후 인력·시설이 안되어도 일단 받고 보라”는 법과 판결이 겹쳐지면, 현장의 체감은 더 악화된다. 시스템의 인력·인프라 문제는 손대지 않은 채, “법으로 책임만 늘리는 방식”이 반복되는 것이다.

소아 장염전 수술 판결 + ‘무조건 수용’ 법안 = 필수의료를 떠나라는 신호.

이제 두 흐름을 같이 보면 구조가 선명해진다. 한쪽에서는 소아 장염전 수술 판결을 통해 “소아외과가 없어도 소아 장염전 수술의 표준 술식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수행해야 하며, 그렇지 못해 생긴 장기적 후유증도 상당 부분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배후진료가 안 되어도, 인력이 부족해도, 중증 응급환자를 웬만하면 거부하지 말고 받으라”는 응급실 수용 강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이 두 메시지가 합쳐지면 필수의료를 하는 의사에게 떨어지는 현실적 결론은 간단하다. “환자를 받아도, 안 받아도, 결국 모든 결과는 당신 책임이다. 그러나 인력도, 배후진료도, 충분한 보상과 보호도 없다.” 이 구조에서는 소아과, 소아외과, 응급의학과, 외상외과, 산과처럼 필수지만 위험한 분야를 선택할 이유가 사라진다. 오히려 선택과목, 미용·검진·비급여 중심의 안정적인 분야로 옮기는 것이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 되어 버린다.

부산에서 숨진 고등학생의 죽음을 “환자를 거부한 의사들의 도덕성 문제”로만 몰고 가면, 분노는 잠시 가라앉을지 모르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그 사건 뒤에는 “필수의료 인력과 인프라는 방치한 채, 판결과 법으로만 ‘무조건 책임져라, 무조건 받아라’고 몰아붙여 온 누적된 구조”가 있다. 소아 장염전 수술 판결도, 부산 뺑뺑이 사건도, 그리고 앞으로 나올 여러 필수의료 참사도 모두 같은 패턴을 공유한다. 시스템의 책임은 보이지 않고, 최전선 의사만 법과 여론의 표적이 되는 패턴이다.

진짜 해결책은 “의사들을 더 때리는 법”이 아니다

진짜 해결책은 방향을 정반대로 잡는 것이다. 소아·응급·외상·산모 등 필수의료 분야에 인력과 배후진료 체계를 먼저 깔고, 그 위에서 표준 치료를 요구해야 한다. 소아 장염전처럼 고난도 수술은 소아외과 전문의가 담당할 수 있도록 인력·수가·전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그래도 현실적으로 일반외과가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 “제약된 상황”을 고려해 책임을 나누는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응급환자 강제 수용은 “무조건 받아라”라는 구호와 함께 “무조건 책임져라”가 따라붙어서는 안 된다. 강제 배정과 필수 수용이 필요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민·형사상 책임 경감과 보상, 그리고 병상·장비·인력 지원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응급실의 문은 열리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의 마음의 문이 하나씩 닫혀 갈 뿐이다.

마지막으로 소아 장염전 수술 판결 같은 사건에서, 법원이 개별 의사의 과실 여부만 따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왜 이 나라에는 소아외과가 이렇게 적은 지, 왜 소아 중증수술과 소아 응급이 특정 몇 개 병원과 몇 명의 의사에게만 의존하는 구조가 되었는지까지 함께 묻는 시각이 필요하다. “왜 이 나라의 법과 판결과 정책은 필수의료를 살리는 방향이 아니라, 필수의료를 떠나라는 신호로 읽히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부산의 뺑뺑이는 다른 도시에서, 다른 연령과 질병의 얼굴을 쓰고 다시 반복될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 단순히 의사수를 늘리고 지역의사제도 같은 탁상공론이 계속 된다면 대한민국 미래는 단호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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