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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전 대통령)이 이용마(MBC 기자)에게 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대선 후보 시절이었던 2016년 7월, 투병 중이던 이용마를 찾아가 “공영 방송의 지배 구조를 개선하는 법적 장치를 제도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당선 이후 5년의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리고 윤석열(대통령)이 왔다.

여러 가지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첫째, 민주당 정권이 최소 5년 더 연장될 거라고 봤거나, 둘째, 그래서 당장 시급한 사안이 아니라고 봤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박근혜 탄핵 이후 한국 사회가 그 시절로 퇴행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을 수도 있다. 청와대 홍보수석(이정현)이 KBS 보도국장(김시곤)에게 전화를 덜어 “하필이면 세상에 (대통령님이) KBS를 봤네. 한 번만 도와주시오”라고 압박하던 그 시절 말이다. ‘눈 떠보니 선진국’인데 MBC 사장(김재철)이 큰집(청와대)에 불려가 쪼인트 까이던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믿음은 모두 깨졌다. 첫째, 정권은 영원하지 않고, 둘째, 때를 놓치면 손을 대기가 쉽지 않고, 셋째, 그런 퇴행을 막으라고 법을 만드는 것인데 애초에 이건 믿음의 영역이 아니었다. PD와 작가들이 수갑을 차고 방송이 불방되고 수백 명의 기자와 PD가 해고되거나 비제작 부서로 발령나서 공영 방송이 엉망이 됐던 게 겨우 10여 년 전 일이다.

“참혹했던 그 시절로 돌아갔다.”


미디어오늘은 문재인 정부 언론 정책을 평가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도 하지 않았다”고 요약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문재인 정부는 기사 삭제 압력이나 언론사 압수수색, 블랙리스트 작성 등 하지 말아야 할 일의 선을 넘지 않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굳이 안 할 이유가 없으니 마음 놓고 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달라진 것을 몇 가지 꼽아 보자.

  • ‘바이든 날리면’ 보도를 문제 삼아 MBC 기자를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지 못하도록 했다. (뉴스토마토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58.7%가 바이든으로 들었다고 답변했다.)
  • 천공이 대통령 관저를 사전 답사했다고 보도한 한국일보와 뉴스토마토 등을 경찰에 고발했다. (천공이 아니라 백재권인 것으로 확인됐으니 사실무근인 것은 아니었다.)
  • 대통령 명예훼손을 이유로 뉴스타파와 JTBC 등을 압수수색했다. 신학림(전 뉴스타파 전문위원)이 김만배(화천대유 대주주)에게 1억65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긴 했지만 뉴스타파가 김만배 녹음파일 보도에서 제기한 의혹은 여전히 해명되지 않은 상태다. ‘비방 목적’을 입증하려면 검찰이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 KBS 수신료 분리 징수를 밀어붙였다. 7월12일 시행 이후 8월 들어서만 22억 원 가까이 수입이 줄어든 상태다.
  • YTN 매각을 밀어붙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매각을 검토했으나 포기했다.) 한전KDN과 한국마사회 지분 30.95%를 매각한다는 계획이다.
  • TV조선의 재승인 심사 결과 조작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방통위원장(한상혁)을 면직시켰다. (검찰은 한상혁이 보고를 받고 “시끄러워지겠네” 등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점수 조작을 지시한 정황을 입증하지 못했다.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 한상혁 후임으로 임명된 이동관(방통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시절 대변인을 지내면서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방송 장악을 진두지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이버 여론전을 지시하기도 했고 보수 단체들을 앞세워 MBC 규탄 시위를 조장하기도 했다.
  • 업무추진비를 문제 삼아 임기가 남은 방통심의위원장(정연주)을 해촉하고 그 자리에 류희림을 앉혔다. (류희림은 이명박 정부 시절 YTN 해직 사태 때 경영기획실장을 지냈다.)
  • 류희림은 임명되자 마자 ‘가짜뉴스 심의대책 추진단’을 만들고 인터넷 언론까지 심의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KBS 이사장(남영진)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권태선)을 자르고 KBS 사장(김의철)까지 날렸다. 내친 김에 MBC 사장(안형준)까지 날릴 계획이었겠지만 법원이 방문진 이사장의 해임 무효 가처분을 받아들이면서 무산된 상태다. 남영진의 해임 사유는 법인카드 부당 지출인데 아직 권익위 결론도 나지 않은 상태였다. 권태선은 관리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해임했는데 법원은 이사장 한 명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의철은 리더십 상실 등이 해임 사유였다. 해임 무효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크다.
  • 야당 추천 방통위 상임위원(최민희)의 임명을 거부했다. 남영진과 권태선 등의 해임은 5명의 상임위원 가운데 2명만 남은 상태에서 진행했다.
  • 이밖에도 한동훈(법무부 장관)의 동선을 추적했다는 이유로 더탐사 기자를 스토킹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고 인사청문회 자료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MBC 기자를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 심지어 이동관은 방송 사고를 이유로 YTN에 5억 원의 손해 배상을 제기하기도 했다. (흉기 난동 사진에 이동관 사진을 잘못 썼다는 이유다.)
YTN 해당 방송 화면 캡처. YTN은 단순한 실수라고 사과했지만…
  • “프로그램 하나 없애려고 방송국을 통째로 날리는 권력을 본 적 있나. 마음에 들지 않는 기자를 전용기에 태우지 않는 대통령을 본 적 있나. 방송사고를 이유로 방송사가 압수수색 대상이 되는 걸 본 적 있나.” 언론노조 KBS 본부장 강성원의 말이다.
  • 네이버와 다음이 제휴평가위를 중단하고 팩트체크 서비스를 종료한 배경에도 국민의힘의 외압이 있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 문재인 정부가 언론 개혁의 기회를 놓쳤다면 윤석열 정부는 노골적으로 공영 방송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KBS 수신료 분리 징수는 말을 듣지 않으니 아예 박살을 내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지원금을 대폭 삭감한 것도 마찬가지다. 돈줄로 공영 언론을 길들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게 모두 윤석열 정부 들어 나타난 변화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언론 개혁의 요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론 개혁의 큰 방향은 명확하다.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 선임에 정치의 개입을 차단하고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라는 요구다. 지금 국회에 올라와 있는 방송법 개정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영방송 3사의 이사회를 공영방송운영위로 전환하고 위원 수를 21명까지 늘리자는 것, 둘째, 정치권 추천을 최소화하고 방송 관련 학회와 시청자위원회 같은 다양한 집단으로 확대하자는 것 등이다. 공영방송 사장 선임은 100명으로 구성된 국민추천위원회에서 후보를 추천하면 이사회에서 3분의 2의 찬성으로 의결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언론이 ‘정치 후견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미완의 언론 개혁, 바로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이른바 방송 3법은 문재인 정부 시절 발의됐으나 상정조차 하지 못했고 윤석열 정부 들어 상임위를 거쳐 올해 4월에서야 법사위를 건너뛰고 본회의에 올랐다. 언제라도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상황이지만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언론 개혁에 손을 대지 못했던 건 시절 언론 개혁의 최대 쟁점은 언론 보도에 징벌적 손해 배상을 부과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가짜뉴스’ 퇴출에 목을 매는 것처럼 문재인 정부도 징벌적 손배로 비판 언론을 콘트롤하겠다는 욕심을 쉽게 꺾지 못했고 골든 타임을 흘려보냈다. 성격은 크게 다르지만 언론 개혁의 기회를 놓쳤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적다고 보기 어렵다.

박성중(국민의힘 의원)이 “민주당이 방송법 개정을 그렇게 염원했다면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왜 개정을 안 한 것이냐”고 비난한 것도 뼈를 때린다.

아이러니한 대목은 박성중이 2020년에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이나 박홍근(민주당 의원)이 2016년에 발의한 개정안의 내용이 거의 같다는 사실이다. 전혜숙(민주당 의원)이나 정필모(민주당 의원) 등의 법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슷비슷한 법안이 야당에서 나왔지만 그때마다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발목이 잡혔다.

윤석열 정부는 아마도 언론을 잡지 못하면 내년 총선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불러다 쪼인트 까던 차원을 넘어 언론사들이 알아서 정권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동시에 비판 언론을 아예 공론의 장에서 퇴출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지나간 일을 안타까워해 봐야 의미가 없고 지금이라도 문제의 본질을 짚고 해법을 모색하는 게 시민사회의 과제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방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게 첫 순서고 방통심의위가 ‘가짜뉴스’ 퇴출이라는 명분으로 벌이는 인터넷 언론 심의에 맞서는 게 당면 과제다. 공영 방송을 찍어 누르려는 시도에 결연히 저항해야 한다. 뉴스의 신뢰가 바닥없이 추락한 상태지만 언론이 제 역할을 하면 국민들이 지지할 것이라고 믿는다.


편집자 주.

오마이뉴스의 추석 특집 기획으로 기고 요청을 받아 쓴 글입니다. 오마이뉴스와 공동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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