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최강욱(전 민주당 의원)과 남영희(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암컷” 발언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이다. 잘못됐다고 지적받아도 발언 당사자들은 정말로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기도 한다.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말을 해줘야 하나, 자괴감을 느낄 수 있고, 그 감정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눈 떠보니 선진국” 대한민국은 아직도 ‘이런 것까지 지적해야 하는’ 나라다.

여성을 비하한 게 아니라고?


우선 제일 큰 문제는 특정인, 즉 김건희를 비판한 것이지 여성을 비하한 게 아니라는 변명이다. 요컨대 발언 의도와 취지를 ‘오해’했다는 것이다.

자, 곧바로 예시 들어간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흑인이 설친다’고 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실제로 오바마 집권 당시 그렇게 얘기한 자들이 많았다. 이 발언이 오바마의 정치 행위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나 풍자로 수용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발언 장소에 따라서는 (헬스클럽에서) ‘3대 1000을 치는’ 흑인 남성에게 발화자의 뚝배기가 깨질 수도 있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숱한 진보 인사들이 저지른 오류도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박근혜의 생물학적 성을 풍자와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어떤 자칭타칭 ‘민중화가’는 박근혜를 풍자한답시고 임산부와 어머니를 모욕하는 그림을 그려 공적으로 전시했다. 딴엔 박근혜 풍자나 비판이라 여겼겠지만, 단지 창작자의 후진 미감과 경악스러운 지성을 폭로했을 뿐이다.

참고로 나는 수시로 A를 까는데, 언제나 A라는 실명을 언급하지 ‘수컷’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김건희를 까고 싶으면 김건희를 까면 된다. 대통령 부인의 부도덕이나 월권이 있다면 비판해야 한다. ‘여사’라고 안 불러도 되고, 신랄하게 풍자해도 된다. 민주주의 사회니까 공인의 문제를 공적 비판의 장에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공인의 우연적 속성(성별이나 인종, 나이, 장애 등)을 그 공인의 행위와 연결하는 것은 대부분 혐오 표현이거나 차별 선동이 된다. 당신이 셰익스피어든 도스토옙스키든 상관없다. 비유를 든답시고 혹은 개그를 친답시고 타인의 정체성을 풍자하려 들지 마라.

비유도 개그도 아니다.


“암컷” 발언 등이 한 번씩 터질 때마다 그에 대한 반박으로, 또는 보충 발언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꼭 있다. ‘모든 여성이 김건희 같지는 않다.’거나 ‘모든 OO이 XXX 같지는 않다’에서 OO의 용례는 무한하다. 유태인, 호남인, 일본인, 중국인… 하지만 이런 반응은 늘 부적절하다. 그렇게 말하면 어쨌든 OO과 XXX의 관련성을 인정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 어법은 정상과 예외를 구분하는 척하며 틀린 일반론을 은밀히 용인한다.

따라서 이런 경우 적절한 반응은 다음과 같다. ‘김건희(혹은 박근혜의)의 잘못과 여성성은 무관하다.’

누구나 몰라서 실언과 망언을 할 수 있다. 물론 말하기 전에 생각이란 걸 하는 게 제일 좋지만 바쁘고 바쁜 현대사회를 살다 보면 못 그럴 때도 있다. 그런데 최강욱과 민주당 몇몇 부류들은 그게 아니다. 계속 비슷한 망언을 한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고, 망언이 반복되면 망상이다. 저런 발언을 해도 지지자들이 칭찬해주니 반복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 자리에 있던 철학 교수 박구용이나 정치인 김용민, 민형배 그리고 청중은 “암컷” 발언에 박장대소하며 환호했다.

저런 발언을 누구보다 먼저 비판하고 제지해야 할 민주당 여성 당직자인 남영희는 누구보다 빠르게 옹호하고 나섰고,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민주당 원내대표 홍익표에 따르면,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대신 “참으로 현명하게도 조용히 당 지도부에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들은 곧, 최강욱에 대한 6개월 당원 정치 징계가 그저 면피성 조치일 뿐 아니라 여성 혐오가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니라 일종의 당내 문화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최강욱 망언과 그에 대한 대응은 최근 민주당 ‘청년 비하’ 현수막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현수막이 논란이 되자 민주당은 “당이 아닌 업체가 내놓은 문구”라고 책임을 회피한 바 있다. 2023.11. 민주당 제공.

관련 글

첫 댓글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