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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년 11월 런던 인디카 갤러리에서는 ‘미완성 회화와 사물들’ 사전 전시가 준비중이었다.

이래저래 비틀즈와 관련이 깊었던 곳, 당시 이 건물의 1층에 인디카 서점이 들어섰고 지하에 갤러리가 있었다. (위키미디어 공용)

오노 요코와 존 레논의 만남

정식 전시회를 앞두고 몇 지인과 셀럽들이 초대된 그 날 자리는 오노 요코라는 예술가가 자신이 추구하던 다양한 개념 미술 작품들로 구성됐는데, 여러 작품 중에서도 천장 회화 “Yes Painting”은 그 당시 초대받았던 존 레논에게 깊은 인상과 호감을 남겼고 그만큼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기기도 했다.

오노 요코에게 존 레논이 그 회화를 두고서 던진 질문과 해석은 매우 뜻 깊은 철학으로 다가왔지만, 정작 오노를 당혹스럽게 만들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감정을 생생하게 만든 것은 다른 작품과 존 레논의 행동이었다. 그 작품은 다름 아닌 ‘사과’.

투명한 아크릴 유리로 세워진 받침대에 ‘사과’ 라고 적힌  황동판, 그 위에  이름 그대로 초록색 사과 한 개가 덩그러니 놓여진 모습은 관람객들의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다.

오노 요코의 ‘사과’ (apple, 1966)

문제는 존 레논이 그 사과를 가져가 한입 베어 먹은 것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소개된 오노 요코의 회고에 의하면 (2015년 뉴욕 현대미술관, 오노 요코의 ‘원 우먼 쇼우’ 전시회 당시 소개로는)  당시 너무나 화가 나 “이봐요!” 라고 항의처럼 말하고는 다음 말을 잇기 어려워했고, 그 화내는 모습에 존 레논도 정중하게 미안함을 표하고선 다시 사과를 있던 자리에 돌려놓았다고 한다.

그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자 첫 대화였다.

오노 요코의 작품 ‘사과’는 이름이 적힌 황동판의 반영속성과 달리 실물인 사과가 점점 시들어가는 것, 그렇게 실존의 가치가 시간에 스러짐과는 달리 이름과 이름이 새겨진 위상은 시간에 반하는 아이러니를 공간에 구현함으로써 관객에게 그 사유의 갈래를 만드는 의의가 있었다.

그런데 어떤 철없는 사람이 바로 그 사과를 깨물어 버릴 줄은 예상도 못 했던 것.

개념미술과 설치미술의 흐름

오노 요코의 ‘사과’는 실존주의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개념 미술(컨셉 아트)’1960년대 헨리 플린트가 논리적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과 역설로서 제시한 예술 용어의 갈래에 속하기도 하고, 그보다 앞선 다다이즘의 영향이 느껴지게도 하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작품이 놓여진 공간에서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지 그 예측하기 어려운 관객의 행동까지 염두에 뒀다면 ‘설치미술’의 시점으로 색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설치미술이 학문적인 분류로는 개념미술의 한 갈래지만, 관객의 참여를 염두에 두지 않았던 개념미술과 달리 1970년대 이후부터 작품과 관객의 만남 그리고 그 사이에 놓여진 공간의 역할까지 염두에 두는 설치미술의 관점에서는 존 레논의 행동도 사과를 보고 반응한 일종의 예술 행위로 바라볼 수 있다.

물론 1966년 당시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사이에 놓인 사과는 개념미술에 머무르고 있어서 그랬는지, 작품을 기획 전시한 작가에게는 자신의 작품과 의도를 훼손하려든 ‘관객 크리’(관객+크리티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행히 존 레논은 자신의 반성을 성실하게 표현하고 싶었기에 그 자리를 피하지 않은채 자신이 훼손한(?) 작품을 구매했다. 사과의 당시 가격은 200파운드였다. 1966년 당시의 영국 화폐 파운드의 가치를 2021년 현재로 환산한다면 최소 3,677 파운드가 되며 지금의 한국돈으로는 600만원이 넘었으니 상당한 가격을 치른 셈이다.

그뿐 아니라 존 레논은 사다리를 올라 망원경으로 작게 새겨진 글자를 봐야하는 천정회화 작품을 힘들게 감상하기도 했다. 그 후 오노 요코와 감상과 해설을 나누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급격하게 친해졌다. 개념미술에는 어긋나 있던 관객이 설치미술에 어울리는 진보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작가의 분노를 애정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렇듯 다른 어떤 미술작품들보다 개념미술 특히 설치미술 작품은 관람객을 시험에 빠트린다. 작품에 대한 호기심에 혹은 관람객 스스로의 존재감을 주체하기 힘들어 손을 뻗치는 행위는 여러 사건 사고를 낳기 마련인 것이다.

플라토 미술관의 사탕 도난 사건

2012년 서울 플라토 미술관지금은 폐관에 전시된 ‘사탕’도 그 시험대에 올랐다.

쿠바 태생의 예술가 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1957-1996)가 자신의 연인이었던 로스 레이콕의 사후 그를 기려 만든 작품 ‘사탕’(작가가 붙인 이름은  ‘무제- LA에서 로스의 초상화’)은  다양한 색의 포장지에 싸인 사탕들을 약 79킬로그램 정도의 사탕 더미로 쌓아 올린 것이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무제’ LA에서 로스의 초상, 1991. © The Felix Gonzalez-Torres Foundation.

토레스가 굳이 설명하지 않은 이 작품 전시는 작품을 마주한 관객들 누구나 그 사탕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고, 사탕이 어느 정도 줄어들면 다시 전시회 측이 사탕을 채워서 계속 줄어들고 다시 채워지는 사탕 더미의 모습에서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는 어떤 존재의 사라짐과 존속을 계속 일깨우는 설치예술 작품이다.

색색깔로 쌓인 사탕 더미를 조금씩 집어가는 관객들, 그 관객들에 의해 줄어드는 사탕더미, 그리고 다시 채워지는 공간을 여러번 바라보게 되는 감상은 누군가에게는 꺼져가는 죽음을,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나눔과 부활을 느끼게 하는 등 여러 모로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2012년 8월 당시 그 전시회를 찾았던 서울 모 대학의 모 학생은 그 전시회의 누구보다 그 사탕을 많이 가져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의 회고 인터뷰를 따르자면 이미 전시회장을 자주 찾았던 그가 마지막 기념으로 가져가려던 사탕을 ‘너무 많이 가져간다’며 관리 요원에게 제지를 받자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행위예술(퍼포먼스)’를 기획했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무제” (프라시보), 1991. © The Felix Gonzalez-Torres Foundation.

그는 당시 재학중이던 학교의 동문을 포함 45명을 모은 뒤, 여러 명이 사탕을 나눠서 가져오기로 한뒤 쓰레받기로 사탕을 쓸어담고, 가방과 차량을 동원해 비슷한 형식의 다른 작품에 쓰인 사탕들까지 담아 갖고 가는 행위로  여러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그 과정에서 ‘무제-LA에서 로스의 초상’의 사탕 뿐 아니라, ‘무제-플라시보’ 로 전시된 사탕도 모두 가져갔다.

결국, 플라토 미술관 측의 반환 요구와 작품 명세서상 사탕 개수가 정해져있었다는 사실이 공유되자 그들은 사탕을 모두 돌려주었고, 그의 퍼포먼스는 행위예술에 대한 평가보다 전시와 관람을 훼손한 행위일뿐이라는 비난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러나 2019년의 어떤 바나나는 달랐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를 먹었던 예술가

이탈리아 태생의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1990년대부터 독특한 설치미술 작품으로 미술계와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화제를 낳았던 것은 아트 바젤 페어(스위스 바젤에서 매년 개최하는 국제 예술 전시회, 2019년은 미국 마이애미에서도 열림) 에서 전시한 ‘코미디언’ 이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코미디언 (2019) 일명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 바나나 하나에 1억이 넘습니다?!

카텔란의 작품은 신선한 바나나 하나를 벽에다 덕트 테이프로 붙여놓은 것으로,  그 작품을 마주하는 관객에게 작품 자체가 주는 당혹감과 더불어 그 작품이 높은 가격 – 전시 기간중 3개가 벽에 붙여졌고 둘은 12만달러에 하나는 15만달러에 매각됐다 -에 팔렸다는 사실과 작품 제목이 ‘코미디언’ 이라는 점을 관객에게 일깨우며 다양한 반응을 일으켰켰다.

그런데 그 작품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순간은 벽에 붙은  바나나를 보고서 어떤 관객이 서슴지 않고 바나나를 먹은 뒤 빈 껍질만을 붙인 사건이었다.

YouTube 동영상

당시 전시장을 찾았던 동유럽 조지아 태생의 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1974-2022)는 자신이 바나나를 먹는 행위를 영상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게시하며 자신은 ‘행위예술’을 했으며 작품명은 ‘배고픈 예술가’라고 소개했다. 당시 다투나는 퍼포먼스를 미리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아침을 안 먹어 배고프기도 한 참에 작품을 보자마자 즉석에서 자신의 행위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아트 바젤 측은 바나나를 교체하고 다투나에게 전시장을 나가달라고 했지만 그 외에 별다른 요구나 항의는 하지 않았고, 다투나가 바나나를 먹은 그 사건은 카텔란의 ‘바나나’와 다투나의 ‘배고픈 예술가’를 상호간 화제를 빚어내며 , 어쩌면 카텔란이 ‘코미디언’이라고 명명한 작품의 의의를 누구보다도 제대로 퍼뜨리는데 다투나가 일조한 셈이 된 것이다.

데이비드 다투나의 행위가 다시 한번 조명을 받은 것은 그의 사후 1년이 지나 서울 리움 미술관에서 개최된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 의 전시장이었다.

어느 한국 학생의 행위예술 재연(再演)

2023년 4월 모 대학에 재학중이던 모 학생이 자신의 학교와 소속을 밝히며 바나나를 먹고 다시 벽에 껍질만 붙이는 행위를 영상으로 촬영해 때 아닌 소동을 일으켰다. 그는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아침을 안먹어 배가 고파 먹었다’ 며 그 이유를 설명하고는 ‘현대미술작품에 대한 훼손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폈고, ‘껍질을 다시 붙인 것은 자신의 장난기’ 라고 덧붙이는 등 여러 모로 언론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모 학생의 바나나 시식 소동은 예술행위로서의 해석이나 진지한 고찰과 평가를 찾아보기 어려운 맹비난을 접해야 했다. 왜 그는 몇년전 다투나가 했던 행위와 같은 일을 반복했음에도 비난과 욕설에 휩싸였을까? 어쩌면 그 원인은 그 학생의 행위 자체가 아닌 그의 해설 방식에 있을 수 있다. 

데이비드 다투나의 행위가 창의적(?)이기도 했지만, 그의 행위는 의외로 일반 대중들에게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았기에,  몇 년 전 그의 예술을 모방이 아닌 성실한 재연으로서 추구했다면, 아마 그 학생은 자신의 행위가 누구의 어떤 예술에 대한 재현(再現)인지를 알리고, 그 퍼포먼스 동기와 해설 그리고 자신의 재연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호기심 어린 언론과 대중들에게 가르쳐줄 수 도 있었을 게다.

그러나 그가 한 행위는 다투나의 크레디트를 감추고 그의 모든 것을 그대로 따라했을 뿐이라, 그를 취재한 언론 보도 역시 그다지 풍부하게 다뤄지지 못했다. 화제가 되기 전 자신의 행위 영상을 직접 언론계 미술 기자들에게 메일로 보내기까지 했음에도 말이다.

사건이 벌어진 며칠동안 포탈과 유명 일간지를 통해 쏟아진 관련 보도의 대부분은 모 학생의 사고(!)에 대해 그의 주장만을 소개할 뿐 어떤 해석이나 의의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반나절 혹은 하루가 지나 그의 행위가 다투나의 행위 재연이라는 것이 뒤늦게 알려지자 대부분 기사들이 그 내용을 보강해 수정 편집했다. 당시 언론 보도도 학생의 ‘크레디트가 사라진 퍼포먼스’와 같았달까. 그래서 더 많은 비난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따라쟁이? JD Hancock, CC BY

한국 학생의 모방 행위, 외국 한국 언론의 합동 코미디

전시 작품 이름(‘코미디언’) 에 어울리듯 관련 언론 취재들은 이후 더 갈팡질팡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는데,  뒤늦게 바나나 시식 사건이 퍼진 와중 해외 언론에서도 다투나의 앞선 퍼포먼스에 관해 제대로 자료 취재를 못한 언론들이 오히려 ’한국 모 학생의 행위가 매우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행위’라 소개하게 되고, 다시 그 해외 언론 소식들이 국내에 거꾸로 소개되면서 ‘해외에서는 인정받은 한국 학생의 예술 행위’로 둔갑되는 ‘코미디’도 보여줬기 때문이다.

관객의 참여와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을 부르고 급기야 그 행동을 예술의 단계로 해석하게 만드는 설치미술과 행위예술들은 예술 문외한인 나같은 보통 대중이 쉽게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을 구상하고 전시한 작가, 그리고 그 전시장을 같이 찾았던 다른 관객들이 그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면서 2019년에 다투나가 바나나를 먹으며 게시했던 페이스북의 영상 기록과 그의 인스타그램 이미지 속 작품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과 대화를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바나나 시식과 그 파장들을 재미있게 느끼며 환영했는지를 새삼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현대 미술 관람 전시에 있어서 관객의 참여예술 성공 여부는 그의 행위가  또 다른 관객의 호응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가 그 열쇠 아닐까?

데이비드 타투나,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코미디언”)를 맛있게 먹으며 그 행위를 예술로 승화(“배고픈 아티스트”)하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코미디언’)를 먹는 다투나의 행위예술 ‘배고픈 아티스트’를 다소 놀랍지만, 즐겁게 바라보는 관객들의 모습. (출처: 다투나의 페이스북)

사족:

1966년 오노 요코와 만나게 된 존 레논은 그 뒤 비틀즈의 동료들과 음반 제작과 여러 활동을 위한 회사를 설립하면서 이름을 ‘애플’로 지었고,  오노 요코와 결혼했다.  존 레논이 사과를 깨문 덕분에 생겨난 ‘애플’과 ‘애플 레코드’를 통해  비틀즈의 많은 아름다운 곡들이 나왔는데 그 첫 음반은 ‘Hey Jude’ 로 800만장이 넘게 팔렸다고 한다. 어떤 관객의 참여예술이 낳은 결과인 셈이다.

헤이 주드 앨범의 디스크판 모습.

인물 정보

  • 오노 요코(小野洋子, 1933~ ): 일본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 중인 다중매체 예술가. 1969년 영국 음악밴드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과 결혼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의 예술 분야는 개념미술 전시와 아방가르드 음악 활동 등 다양한 범위의 현대예술이다.
  • 존 레논(John Winston Lennon, 1940~1980): 영국 태생의 음악가로 음악밴드 비틀즈의 활동으로 잘 알려져있다. 비틀즈는 공인된 음반 판매량만 2억6천만장이 넘는 음악 활동으로 세계 대중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Félix González-Torres, 1957~1996): 쿠바 태생의 예술가. 주로 설치 미술을 통한 시각 예술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독특한 미니멀리즘 경향과 공간 미술을 표방한 그의 작품들은 모든 이름이 ‘무제’(Untitled)로 지어진 특징도 있다. 
  •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1960~ ): 이탈리아 태생의 예술가로 주로 설치미술을 통한 시각 예술 분야의 작품 활동으로 잘 알려져있다. 도발적이면서도 독특한 공간 구성과 작품 배치로 전시회마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 데이비드 다투나(1974~2022): 조지아 태생의 예술가로 2010년대부터의 회화와 조각품으로 인지도를 넓히던 중, 마이애미 바젤 아트 페어에서 카텔란의 바나나를 먹고 그 행위를 작품으로 규정하며 소셜미디어에 퍼뜨리는 활동 등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의 인스타그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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