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인터뷰]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대표, “크레딧 확대, 정부 재정으로 책임져야.” (⌚8분)

내년 1월부터 국민연금은 더 내고 더 받는다. 국회가 천신만고 끝에 모수 개혁에 합의한 결과다. 모수 개혁은 연금에 적용하는 숫자를 조정하는 일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내는 돈)을 9%에서 13%로 인상했고, 소득대체율(받는 돈)은 40%에서 43%로 높였다.

2007년 이후 18년 만에 성사된 국민연금 개혁 합의였지만 세대 갈등과 이견이 크다. “청년 세대 독박”이라는 반대 여론을 등에 업은 3040 여·야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졌다. 개혁신당 의원 이준석은 국민연금을 “폰지 사기”라고 맹비난했다.

“청년 세대에 독박을 씌웠다”는 비판은 정당한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대표 오건호는 “기성세대가 연금을 더 많이 받게 됐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오건호는 노무현 정부 연금 개혁 때부터 의견을 개진해 온 사회학자다.

무엇이 바뀌나.

  • 현행 9%인 연금 보험료율이 내년부터 0.5%포인트씩 단계적으로 인상해 2033년 13%까지 올라간다.
  • 명목 소득대체율을 기존 40%에서 43%로 인상했다. 2028년까지 40%로 조정한다는 계획이라 올해 41.5%에서 내년 41%로 낮아질 예정이었지만 내년부터 43%로 고정된다. 명목 소득대체율은 은퇴 전 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 국민연금 설명에 따르면, 보험료율·소득대체율을 조정하고 정부의 기금 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기금 소진 시점이 15년 연장된다.
  • 이 밖에도 연금 크레딧을 늘리고 저소득 지역 가입자의 보험료 지원도 확대했다. 연금 크레딧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추가 인정해 주는 제도다. 출산 크레딧과 군복무 크레딧, 실업 크레딧이 있다.

무엇이 더 바뀌어야 하나.

  • 22대 국회의 첫 연금개혁특위가 2일 출범했다. 연말까지 국민연금 구조 개혁을 논의한다.
  • 오건호는 네 가지 의제를 강조했다. 자동 조정 장치 도입 여부, 기초연금 개혁, 퇴직연금의 연금화, 특수 직역 연금 개혁이다. 자동 조정 장치는 인구 구조와 경제 상황에 따라 보험료율, 연금액, 수급 연령이 자동으로 바뀌는 제도다.
  • 자동 조정 장치 도입 여부를 지금 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게 오건호의 주장이다.
  • 65세 이상 노인 중 하위 70%에게 월 34만 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점진적으로 대상을 줄이면서 금액을 누진적으로 대폭 인상해야 한다.
  • 퇴직연금의 중간 해지를 엄격 규제해 실질 소득대체율 10% 수준의 연금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 공무원·사학·군인연금 등 특수 직역 연금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정비한 후 제도 단일화 방식으로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아래는 오건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27년 만의 보험료율 인상, 의미 있는 성과.

— 국민연금 모수 개혁안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총평한다면?

“이번 개혁은 국민 눈높이에 따라 부족할 수 있지만 ‘개선’인 건 분명하다. 재정 안정화 핵심 수단인 보험료율 인상이 1998년 9% 이후 27년 만에 이뤄졌다. 의미 있는 성과다.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건 연금 개혁안의 일면만 봐서다. 종합 평가가 필요하다.”

— 많이 제기되는 반박이 “많이 내는 건 청년인데, 많이 받아가는 건 기성세대”라는 주장이다.

“이번 개혁안으로 기성세대가 연금을 더 많이 받게 됐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일례로 50대는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0년 남았다. 그 남은 10년에만 소득대체율 43%가 적용된다. 그보다 아래 연령대는 더 오랫동안 43%의 소득대체율을 적용 받는다. 소득대체율 인상 효과는 젊은 세대일수록 크다. 다만 기성세대가 처음 가입했을 때의 혜택까지 다 합친, 국민연금 역사 전체를 평가한다면 ‘기성세대가 더 많이 받고 젊은 세대는 덜 받는다’는 평가는 가능하다.”

— 소득대체율 인상 폭이 쟁점이었지만 ‘가입 기간’을 강조한다. 어떤 의미인가.

“국민연금 가입자가 은퇴 후 받는 실질 급여액은 명목 소득대체율에 자신의 가입 기간을 곱해 산정한다. 즉, 국민연금 보장성을 높이는 경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명목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것. 또 하나는 가입 기간을 늘리는 거다. 그런데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은 동일하게 보험료율 인상을 수반한다.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보장성을 강화하는 건 현재 국민연금 재정 구조에선 어렵다. 소득대체율 인상은 중상위층에는 보장성 강화 효과가 있지만 하위 계층한텐 큰 효과가 없다. 노후 소득 보장에 가장 절박한 계층이 하위 계층 노인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소득 대체율 인상은 보험료 인상만 초래하는 하책이다. 개인적으로 소득 대체율을 40%로 유지하되 다양한 경로로 가입 기간을 확대할 것을 주장했다.”

(편집자 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24년 3월 기준 국민연금 전체 신규 수급자 가운데 평균 가입기간은 237개월로 20년이 채 안 된다. 소득 대체율이 43%라는 건 480개월을 납부해야 40년 평균 소득의 43%를 받는다는 의미다. 가입 기간이 20년 안팎이면 실제 생애 소득 대비 대체율은 20% 초반이 된다. )

— 가입 기간을 늘릴 방안이라는 게 있나?

“첫 번째 방법은 연금 취약 집단의 가입 기간을 늘려주는 크레딧 제도다. 이번 개혁안은 첫째 자녀부터 ‘12개월’을 가입 기간으로 적용했다. 지금은 둘째부터 ‘12개월’을 출산 크레딧으로 제공한다. 군복무 크레딧도 ‘6개월’에서 ‘12개월’로 늘렸는데 출산과 군복무 크레딧 모두 아쉽다. 출산도 2년 주고, 군 복무도 18개월 줬어야 했다. 크레딧 제도 외에도 만 59세인 국민연금 의무 가입 연령을 64세로 올리면 보험료 인상을 수반하지 않으면서도 명목 소득대체율을 5%포인트 높이는 효과를 낸다. 앞으로 연금 보장성을 종합 설계해야 하는데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보다는 가입 기간을 늘려주는 대책이 훨씬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다.”

— 출산 크레딧의 ‘국가 재정 책임’이 요구된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출산 크레딧 재원은 현재 국가가 3, 국민연금 기금이 7을 낸다. 유럽에서는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진다. 국민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발생한 가입 단절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가 전액 책임을 지는 것이다. 당장 100%는 어렵대도 지금보다 국가 책임 몫을 늘리는 제도가 필요했다. 크레딧 지급을 위한 국고 투입 시점도 발생 시점, 즉 아이를 출산한 시점이 아니라 65세 수급 시점에 맞춰져 있다. 현재 세대가 아닌 미래 세대에 책임을 전가하는 건데 이번 개혁안은 이 부분에서 달라진 게 없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대표.

소득대체율 인상보다 가입 기간을 늘려라.

— 자동 조정 장치는 여야가 합의 보지 못해 개혁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 국민연금은 상당한 수지 불균형 상태다. 여기서 자동 조정 장치를 도입하면 급격한 보험료율 인상이나 급여 하락을 빚을 수 있다. 진짜 불가피하면 자동 조정 장치 도입을 논의할 수 있으나 지금은 시기상조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자동 조정 장치 적용은 10년~20년 후 일이다. 이번 모수 개혁 후 여러 변수 상황을 살핀 뒤 나중에 도입 여부를 판단해도 늦지 않다. 추가 보험료율 인상, 기금 수익 제고, 국고 지원, 수급 개시 연령 상향 등 4가지 재정 안정화 수단이 존재한다. 2033년 제7차 국민연금재정계산에서 논의하면 될 것이다.”

— ‘연금 삼총사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민연금만으로 충분한 보장성을 구현하기 어렵다. 법정 의무 연금인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조합해 계층별 적정 급여 수준을 구현하는 ‘연금 삼총사 전략’이 필요하다. 노인의 소득 계층화를 감안해 연금 삼총사를 재배치해야 한다. 하위 계층 노인은 국민연금을 못 받거나 국민연금액이 얼마 안 된다. 퇴직연금을 연금화한대도 저소득 노인이 혜택을 보긴 어려울 거다. 이들의 노후 소득 보장은 기초연금이 절대적이다. 지급 대상을 줄이되 지급액을 누진적으로 대폭 높인 ‘최저보장소득’으로 전환하여 노인 빈곤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 퇴직연금의 연금화란 무엇인가?

“퇴직연금의 연금화는 중간층에 해당하는 의제다. 지금은 직장을 옮길 때 퇴직연금을 임의로 해지하는 걸 허용한다. 이를 엄격히 규제하여 개인별로 퇴직연금 적립금을 쌓도록 해야 한다. 중간 해지 없이 적립금을 쌓아 은퇴 시 연금 형태로 수령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각 연금의 계층별 특성에 맞춰 연금으로서 제 기능할 수 있도록 삼총사를 재편해야 한다. 연금개혁특위는 연금 삼총사 재설계를 논의해야 한다.”

— 연금 개혁을 이야기하면, 공무원연금을 포함한 특수직역 연금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뒤따른다. 공무원연금 개혁 방향은 어떠해야 하나?

“공무원연금 급여액은 국민연금보다 4배 많다. 공무원연금도 3~4차례 개혁을 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더 내고 덜 받는 안’이 통과된 뒤 수지 구조는 국민연금과 비슷해졌다. 왜 공무원연금 급여가 4배 많은가? 공무원 평균 보수가 국민연금 가입자의 2배이고, 가입 기간이 2배라서다. 2 곱하기 2를 하니 당연히 4가 나온다. 제도 차이가 아니고 노동 시장 지위 격차 탓이다. 당장 공무원연금 모수에 손댈 건 없다. 다만 2015년 공무원·사학연금은 개혁했지만 군인연금은 다루지 않았다. 군인연금도 개혁해야 한다.”

— 결국 국민연금과 동일한 체계로 제도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것 아닌가?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국민연금 체계를 바로잡은 뒤, 다층 연금 체계를 단일화하면 공무원도, 선생님도, 군인도 상위 소득자로서 국민연금에 가입하면 된다. 형평성 논란이 더는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 민주당 의원 이소영 등은 당장 내년부터 약 7800억 원의 연금소득세를 국민연금에 투입하자고 제안한다. 국민연금에 국고를 투입하자는 제안은 어떻게 평가하나?

“서구를 보면 국고 투입은 보험료 적자를 메우는 용도가 아니라 연금 크레딧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유럽은 연금 크레딧이 엄청 발달했다. 현재의 부족한 보험료를 국고 투입으로 메우는 것에 반대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가입자들이 보험료 인상에 점차 소극적일 것이다. 과거 적자의 책임은 지금 가입자나 청년에 있지 않다. 그렇다고 과거 적자를 내버려두면 부담은 미래 세대 몫이 된다. 은퇴한 연금 수급자들의 과세 재원을 국민연금 기금에 집어넣는 건 은퇴자들이 초래한 누적 적자를 사후적으로라도 메우는 노력이기 때문에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나라 곳간 텅텅, 증세 없는 복지 없다.

— 젊은 세대 다수는 국민연금을 불신한다. 내가 은퇴할 때 제대로 급여를 받을 수 있느냐는 불만이다. 인구 절벽 구조에서 국민연금이 지속 가능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어떻게 답할 건가?

“초고령사회로 인해 국민연금이 지속 가능하지 않을 거라 얘기하는데, 국민연금 재정이 부과 방식(은퇴 세대 급여 지급에 필요한 재원을 근로 세대 보험료로 조달하는 방식)일 때는 그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는 부과 방식이 아니라 거의 적립 방식(급여 지급액을 미리 보험료로 적립하고, 적립된 기금과 기금 운용 수익을 연금 재정으로 운영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기 때문에 초고령사회에 대응하는 데 유리하다. 초고령사회에서는 가입자의 수지 균형 원리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자기가 받을 연금 만큼만 보험료를 적립하면 재정에 문제가 안 생긴다. 기금을 계속 유지하면서 적절한 운영을 한다면 지속 가능할 수 있다.”

— 연금 구조 개혁이 시급하지만 보험료율 인상 자체가 무려 27년 만이다. 국회 논의는 너무 더디다.

“정치권이 매우 무책임했다. 연금 개혁을 다루면 보험료 인상이 필연적이니 표가 두려워 합의를 뒤로 미뤄온 것이다. 정작 시민은 국민연금 지속 가능성을 고민했고, 미래 세대를 위해 보험료율을 13%까지 올리는 데 동의했다. 정치권이 시민들보다 책임 의식이 없었던 거다. 앞으로는 개혁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연금 개혁 정치’가 필요하다. 연금개혁특위가 연말까지 구조 개혁을 논의한다. 과감하고 치열하게 보장성과 지속 가능성을 논의했으면 한다.”

—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다. 여·야 모두 감세 정책을 앞세운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필요한 정책은 결국 증세 아닌가?

“윤석열 정부 부자 감세 정책으로 나라 곳간이 무척 부실해졌다. 탄핵 이후 집권이 예상되는 민주당조차 감세 경쟁에 뛰어들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현재 재정 상태로는 민생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기 어려울 거다. 증세 여론이 필요한데 특히 민생과 결합한 증세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테면, 종부세나 상속·증여세를 강화하여 청년의 공정한 출발을 보장하는 사회적 상속제를 도입하거나 소득·법인세를 높여 저출산 고령 복지세에 투입할 수도 있다. 새 정부에서는 민생과 결부한 목적 과세를 통해 적극적 증세가 실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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