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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가 세 번째 부동산 정책(10·15 대책)을 내놨다.

  • 서울 전역 및 경기 일부 지역을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일괄 지정했다. 허가 없이 주택 거래가 불가하다. 규제 지역에 주택을 사면 2년 동안 반드시 살아야 한다.
  • 규제 지역은 주택 담보 대출 LTV(담보인정비율)가 70%에서 40%로 낮아졌다. 6억 원 이상 담보 대출을 제한하되, 15억~25억 원 사이 집은 4억 원으로, 25억 원이 넘는 집은 2억 원으로 줄였다.
  • 스트레스 DSR(총부채 원리금 상환 비율) 금리도 높이고 전세 대출에도 DSR을 적용한다. 갭 투자가 더 어려워졌다.

부동산 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을 투기 수요로 봤다면, 이재명 정부는 ‘갭 투자’를 집값 상승 요인으로 보고 있다.
  • 서울에 집 사고 싶으면 빚 내지 말고 자기 돈으로 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은 “서울 추방령”, “부동산 계엄령”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언론을 포함해 ‘서울 주택 공급 확대’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크다.
  • KBS 기자 출신 경제칼럼니스트 김원장(54)은 “주택 공급이 필요하지만 서울·수도권 등 사람들이 원하는 지역의 공급은 굉장히 어렵다”고 밝혔다. 재건축을 통한 주택 공급은 “서울 시민의 1% 미만에게 어마어마하게 혜택을 주는 정책이고, 집값만 높이는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강남, 목동, 잠실 등 ‘한강 벨트’ 재건축을 촉진하기 위해 막대한 혜택을 주면서 1년 새 이들 지역 집값이 10억 원 가까이 상승한 것을 우려했다.
  • “대출 규제만으로 수요를 억제할 수 없다”는 게 김원장 생각이다. 핵심은 세제 개편을 통한 ‘보유세 강화’다. 하지만 보수 언론이 견인하는 ‘징벌적 과세’ 프레임은 강고하고, 부동산 시장 여론은 ‘주택 공급’ 말고는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서울 일부만 뜨겁고, 나머지는 차갑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 “부동산 시장은 공급론과 이를 맹신하는 공급주의자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고약한 상황이다.”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김원장을 만났다.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경제칼럼니스트 김원장을 만났다. 사진=김도연 기자.
— 이재명 정부의 세 번째 부동산 정책 10·15 대책, 어떻게 보나?

“‘서울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 않다, 더 센 정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많았다. 이를 반영해 세게, 과하게 나온 것 같다. 서울 강북 13개 구 집값은 사실 오른 게 없다. 노원, 도봉에 사는 분은 황당할 것이다. 앞으로 집 사려면 실거주해야 한다. 대출도 안 나온다. 있던 집을 팔아야 한다. 내 집은 떨어졌는데 거래는 더 어려워졌다. 당장의 거래를 기술적으로 묶는 방식을 택했고, 급한 불을 끄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집값을 환자에 비유하면, 환자가 미쳐 날뛸까 잠깐 마취시킨 것이다. 단기적으로 매우 센 정책이 나왔고 정부는 효과가 없으면 세금을 건들 것이다. 오늘(15일)만 봐도 조선일보는 ‘보유세 카드로 절대 집값 잡을 수 없다, 공급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수요 억제’와 ‘공급’을 적절하게 조합해야 한다. 하지만 공급론자 목소리가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 서울·수도권 여당 의원들도 10·15 대책에 반발하고 있다.”

— ‘공급론’에 비판적이다.

“‘집이 많이 부족하니까 빨리 지으세요.’ 이 말이 완전 틀렸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했다. 조금 멀리 떨어져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우리가 소득 수준을 견줄 수 있는 나라를 보자. 이들 나라의 어떤 언론도 ‘정부가 빨리 집을 지어야 한다’고 압박하지 않는다. 정부가 매년 수도권에 27만 가구를 공급(이재명 정부의 두 번째 정책인 9·7 대책)한다 하니 더 지어야 한다고 채근하고, 더 지을 땅이 없다 하면, 용적률을 더 올려 달라 한다. 이러는 나라가 어디 있나?”

“공급론자 목소리가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

—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 국민은 집을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매우 강한 것 같다. 집이 대표적 자산 증식 수단이기도 하다.

“질문하고 싶다. 우리는 능력이 안 돼도 악착같이 집을 사려는 국민인가. 아니면 일본처럼 집을 살 수 있어도 굳이 집을 가져야 할까 반문하는 국민인가. (기자: 당연히 전자다.) 그러면 전자를 해소하려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그렇게 수요가 높은, 다시 말해 가수요나 투기 수요가 존재한다면 이를 낮추는 정책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기자: 어떻게?) 집을 소유함으로써 얻는 사회·경제적 이익을 줄여줘야 한다. 집을 보유함으로써 지게 되는 부담을 더 높여야 한다. ‘집값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우리 삼촌 보니까 세금으로 많이도 털리더라.’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문제가 없다. 소득이 부족하지만, 월세를 살면서 열심히 저축하며 사는 사람도 ‘목동 큰아빠 집은 10억이 또 올랐대’ 소리를 들으면 박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도 집을 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수요를 정부가 계속 만들고 있다. 은행 대출 금리가 3.5%라면, 정부는 신혼부부 대상으로 1% 저리로 돈을 빌려주도록 한다. 2.5%P 금리 차는 국가가 보전하는데, 연간 1조 원 세금이 들어간다. 재정을 자꾸 집을 사는 쪽으로 투입한다. 멀쩡한 사람도 결국 ‘내가 그때 안 사서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게 된다.”

— ‘공급 확대론’이 과장됐다고 보는 건가? 서울에 아파트가 부족한 것은 사실 아닌가?

“서울은 연간 4만 호가 꾸준히 공급됐다. 5만 호 정도 공급되면 좋을 것이다. 올해 신규 입주가 4만 5000~5만 호 정도인데 결코 부족하지 않은 숫자다. 공급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집값은 오른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8년부터 2014년 8월까지 집값은 떨어지거나 보합 상태였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현 부동산 규제는 한여름 옷을 한겨울에 입고 있는 격’이라며 대출 규제를 풀었다. 택지개발촉진법을 폐지하고 공공택지를 더는 공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집은 이미 충분하다는 선언이었다. 이미 2011년에 하우스푸어가 사회적 문제였다. 집 주인 10명 중 4명 이상이 ‘집을 괜히 샀다. 후회한다’고 응답했다. 그 이후 서울과 수도권에 인구가 크게 늘었나? 결코 그렇지 않다.”

오세훈(서울시장)이 지난달 24일 오후 연세대학교에서 ‘AI 격변의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승부할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잠실 아파트 주민에게 3억 원씩 나눠준다고 생각해 보자.

— 공급론자들은 서울 수도권에 공급이 부족하니 구축 아파트를 재건축해서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재건축을 위해선 조합원에게 많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아파트를 더 높이, 많이 짓게 하고, 공공기여·기부채납을 줄여 이른바 수익성을 개선해준다. 여기에 가수요, 투기 수요까지 붙으면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급등하게 된다. 재건축 대상 단지인 잠실주공5단지, 여의도 시범아파트, 목동 1·2단지,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어떻게 됐나? 지난 1년 동안 32평 기준 10억 원 이상 올랐다. 공급이 늘면 집값이 안정된다면서? 은마아파트는 용적률 특례(200.5%에서 331%로 상향)를 제공했다. 잠실주공5단지는 2종 주거에서 3종 주거·준주거지역(용적률 138%에서 400%로 상향)으로 2단계 종 상향을 해줬다. 재건축으로 32평을 받는 조합원은 현금 몇 억 원을 추가로 받는다. 재건축을 빨리해서 아파트 공급을 늘린다는 명분으로 특정 조합, 특정 시민에게 사회적으로 엄청난 특혜를 주고 있다. 가락시영 아파트를 재건축한 송파 헬리오시티도 서울시가 2종에서 3종으로 종 상향을 승인해줬다. 2018년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용적률 상향으로 시세 총액이 2011년 4조에서 2018년 13조로 9조 원 상승했다고 밝힌 적 있다.”

— 잠실주공5단지는 3930세대 규모다. 가구당 최소 3억을 가져간다고 계산해도 1조 2000억 원이다.

어느 날 아침 잠실새내역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잠실5단지 조합원 4000세대에 3억 원씩 지급하는 전달식을 개최한다고 생각해보자. 국민이 이 사실을 알면 뒤집어질 것이다. 재건축을 위해 퍼줬더니 집값이 치솟는다. 왜 이런 혜택을 1% 미만의 서울 시민에게만 주나? 최근 목동 1단지 앞을 지나가 보면 ‘오세훈 시장님 고맙습니다’, ‘기부채납 없는 종 상향 경축’이라는 현수막이 엄청 걸렸다. 영등포구 5층짜리 연립주택을 갖고 있는 임대인이 ‘내 건물도 30년 됐다. 공급을 더 늘리게 7층으로 짓고 싶다’ 하면 허가해줄까? ‘종 상향도 필요 없다. 일반주거에서 근린상업으로 용도를 변경해달라’고 하면 해주나? 안 해준다. 그런데 은마, 잠실, 여의도, 목동 아파트 단지는 왜 주나? 재건축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공급론이 지나치게 과하다는 뜻이다. 지난달 정부가 빡빡 긁어모아 9·7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자 아니나 다를까 공급주의자들은 ‘내 이럴 줄 알았어. 아이고, 집값 엄청나게 오를 거야’ 나팔을 불었다. 전문가라는 자들이 나팔을 불어대면 언론이 귀신 같이 받아쓴다.”

— 이른바 ‘토건족’이 문제인가? 왜 부동산 전문가와 언론 대다수는 토건족을 대변할까?

“‘토건족’이라고 싸잡아 악마화하고 프레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그 실체를 비교적 체감하는 편이다. 규모가 100명인지, 1000명인지 알 순 없지만 조금 과장하면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쪽 편을 들면 사는 게 편해진다.(웃음) 건설사 회장을 만나 세미나하고 조찬하고…. 어중이떠중이 전문가부터 학계에서 권위 있는 분들까지 ‘공급론’에 포획됐다고 할까. 그 세력에 올라타면 많은 것이 편해진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건설사 광고가 크기 때문에 대변하지 않을 수 없다. ‘집값 안정’보다는 ‘주택 공급’이 중요한 것이고, 주택 공급을 위해서는 집값이 올라야 한다.”

‘토건족’에 업혀가면 삶이 편해진다.

— 대표적 수요 억제 수단이 과세다.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25%가 안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3%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도입한 노무현 대통령이 1년에 0.1%P씩 높여 10년 뒤 실효세율을 ‘1%’로 높이려 했다. 1% 세율이면, 40억짜리 강남 아파트 소유자는 1년에 종부세로 4000만 원을 내야 한다. 은퇴한 사람이 살면 안 되는 거다. 실제 미 고연봉자들은 보유세 1억 원 이상을 감당하며 500만 불짜리 으리으리한 저택에 산다. 그러다가 퇴직하면 세금을 감당할 수 없어 신규 부자들에게 집을 판다. 아파트를 새로 짓는 게 공급이 아니다. 집을 내놓는 것이 공급이다. 한국은 보유세가 낮아 은퇴 후 비싼 집에서 나가지 않아도 되니까 공급 물량이 생기지 않는다. 옳다구나 언론은 ‘열심히 사신 어르신이 투기 세력도 아닌데 좌파 세력이 징벌적 과세로 대치 선경아파트에서 쫓아내려고 한다’고 비난한다. 어떤 언론은 강남에 집 한 채를 갖고 있지만 소득이 없어 생활비가 부족한 사람을 지원해 주자고 보도한다. 우리 사회가 20~30억짜리 아파트를 갖고 있는 이들을 소득이 없다고 지원하는 게 타당한가? 우리 언론은 ‘종부세 폭탄으로 은퇴 1주택자가 눈물 흘린다’ 이런 기사 참 좋아한다. 40억짜리 강남 아파트가 2016년엔 10억 원이었다. 올해 종부세가 1000여만 원 나올 텐데 경제신문은 그때 또 난리칠 것이다.”

—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주식 양도세 강화 철회 등 과세 정책은 여론에 밀려 줄줄이 폐지되거나 후퇴하고 있다. 부동산 보유세도 내년 지방 선거를 고려하면 쉽게 올리기 어려울 것 같다.

“이데올로기가 됐다. 집을 보유한 데 대한 부담은 높이지 못한다. 보수·중산층이 극도로 싫어하니 진보 진영이 집권해도 부담을 올리는 게 금기시됐다. 이를 기획재정부 실국장이 왜 모르겠나. 알면서도 당정대(민주당·정부·대통령실)에선 입 밖으로 못 꺼낸다. 기재부 차관이 세제 개편을 갖고 올라가면 진짜 속 없고 눈치 없는 놈이 된다. 세금을 빼면 대책이 뭐가 남나? 또 대출 규제하고 공급 밖에 없다.”

— 다수의 유권자, 특히 부동산 소유 국민은 대부분 세금의 시옷 자도 싫어한다. 특히 부동산 세금엔 ‘징벌적 과세’라는 프레임이 강력하게 작동한다.

“영국 사례를 보자. 영국 정부가 시행하는 다주택자 취득세의 구간별 최고세율은 17%다. 50억 원짜리 아파트를 구매하면, 7억 원 이상을 내야 한다. ‘넌 집이 있는데 이 집을 왜 또 사니? 가수요, 투기 수요잖아? 그러면 더 많이 세금내라’는 취지다. 우리 언론은 ‘공산주의 정책’이라고 낙인 찍겠지만 선진국은 부동산을 강도 높게 규제한다. 프랑스에는 ‘겨울의 휴전’(겨울철 동안 세입자를 강제로 퇴거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법적 조치)이라는 제도가 있다. 세입자가 월세를 내지 않아도 이 기간에는 내보낼 수 없다. 스페인은 불법 점거자가 빈집에 들어가 48시간 이상 거주하면 주인이 즉시 퇴거시킬 수 없다. 법원 퇴거 명령이 있어야 하는데 수개월이 걸린다. 스페인 청년들은 불법 점거를 하자마자 앱으로 피자를 시킨다. 그래야 점유 시간이 디지털에 남기 때문이다. 외지인이 스페인 집을 너무 사들여 집값이 상승했고,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자국민의 피해가 속출하니 이런 황당한 제도가 자리잡게 됐다. 인간은 만들지 못하는 게 없지만 토지는 못 만든다. 그런 토지에 소유권이 부여됐다. 이를 소유한 사람은 어마어마한 지대를 챙긴다. 수천 년 동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엄청난 부동산 규제가 존재했던 이유다. 규제를 안 하면 후진국이다. 중국, 베트남, 태국 등이 대표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동산 규제는 엄격하다.

— 서울·수도권에 더 지을 땅이 있나?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민간 건설사나 시행사에 매각(공급)한 공공택지가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수요가 많고 주택이 부족하다면서? 그러면 LH가 땅을 내놓자마자 팔려야 하는데 팔리지 않는다. 팔릴 땅은 다 팔렸다. 집 지을 곳도 더는 없다는 뜻이다. LH가 신도시를 만들겠다고 해서, 지구 지정을 하고 땅을 개간해 팔려 해도 안 팔리는 거다. 그래도 건설업자는 이거라도 개발해 팔아야 하니 서울 집값에 펌프질을 해댄다. ‘서울 또 올랐잖아. 아이고 또 올랐네. 거봐 안 된다고 그랬잖아.’ 수도권 인근에라도 아파트를 팔아야 하는데 지을 돈이 없고, 지어봤자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시흥 배곧, 파주, 김포, 평택 등은 고가 대비해 30~40% 떨어졌다. 12억 원 했던 아파트들이 7억~8억 원이 됐다. 언론과 학자라면 정확히 말해야 한다. ‘서울은 수요가 여전히 뜨겁지만 이제 주택을 공급할 곳이 별로 없다. 수도권은 국민들이 다 샀고, 이미 산 사람들은 가격이 떨어져 엄청 힘들어하고 있다. 지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말하면 아파트가 팔리지 않는다. ‘거봐. 공급 부족하다고 했는데, 공급 안 하니까 집값이 난리났잖아’ 집값 상승을 펌프질한다. 이를 테면 평택에 있는 7억짜리 아파트를 분양 받은 사람이 LTV 30% 적용을 받아 2억을 대출 받고, 내 돈 5억으로 집을 마련했다 해보자. 4~5년 뒤 시세를 보니 집값이 2억 떨어져 5억이다. 대출금은 그대로 아닌가. 평생 모은 돈의 40%가 날라갔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 ‘강동구 일주일 만에 0.47% 상승, 연율 환산하면 20% 급등 추세’ 이런 기사만 보도한다. 왜? 이런 이야기가 번져야 평택에 또 아파트 팔아먹을 수 있으니까. 공급론과 이를 맹신하는 공급주의자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고약한 상황이다.”

—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이 없어 보인다.

“과거 출입 기자를 처음할 땐 ‘버블 세븐’이라고 해서 강남이 오르면 점진적으로 집값 상승이 전국으로 번졌다. 올해 부동산 시장이 뜨거운 것은 사실이다. 분당·판교까지 들썩였다. 그런데 더 이상 퍼지지는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올 상반기 서울 한강 이북 13개구는 집값이 마이너스였다. 무슨 말이냐면 차별화가 심해졌다. 옛날엔 서울이 오르면 결국 다 올랐다. 강남과 5대 도시 집값이 동조했다. 3~4년 전부터 그렇지 않다. 강남 집값이 번지지 않는다면, 90억하던 래미안 원베일리(서울 서초구 반포동)가 110억이 되는 게 무슨 문제일까? 원베일리 거주자가 벤틀리를 타든, 소나타를 타든 우리 경제에 별 의미 없다. 부산 해운대, 대전 도룡, 대구 범어, 광주 봉선 등 지방 도시의 핵심 주택 단지 가격도 고점 대비 30% 가량 떨어진 뒤 별다른 움직임 없이 고정되고 있다. 올해 강남 집값 상승에 이런 곳이 약간은 움직였다. 전고점을 뚫을지 지켜봐야 한다. 난 못 뚫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차별화가 5년 계속 간다면 앞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뭘까? ‘쟤가 왜 제네시스 G90을 타다가 벤틀리를 타느냐’고 할 게 아니다. 이제는 차 없는 사람을 위해 대중교통을 확충해야 한다. 서민 주거 안정을 살펴야 한다. 정부는 원래 이것만 하면 된다. 트럼프나 바이든이 ‘뉴욕 맨해튼 집값을 잡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맨해튼 집값은 뉴욕의 또 다른 지역인 뉴저지나 브루클린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정당한 과세’가 안 되니 집 가지면 나쁜 놈 만든다.

— 문재인 정부는 왜 부동산 정책에 실패했을까? 이재명 정부는 무엇을 반면교사 삼아야 하나?

“문재인 정부는 ‘이념 전쟁’을 하고 있었다. 정책을 감정적으로 접근한 면이 있다. 비싼 집을 가진 사람을 도덕적으로 평가했다. ‘당신이 비싼 집을 보유하고 있는 건 문제 없다. 우린 정당하게 보유세만 매길 것이다.’ 이런 태도였어야 했다. 집이 두 채라서 장관이 그만두는 일도 어이없다. 세금만 잘 내면 되는 것이지. 다주택자는 주택 공급자다. 영국 버밍엄 임대 주택을 취재했다. 영국에선 임대인이 주택을 수백 채 갖고 있어도 부동산 투기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당한 임대 소득세와 보유세를 부담하고 있어서다. 핵심은 정당한 과세다. 우린 정당한 과세가 안 되니까 집을 많이 갖고 있는 게 나쁜 놈이 된다. 장관이 집을 세 채 갖고 있으면 안 되나?”

— 정부가 결국은 보유세 카드를 낼 것으로 보인다. 국민 저항을 줄일 방법이 있을까?

“정부가 종부세든, 재산세든, 공정시장가액비율이든, 공시지가 현실화든, 보유 부담을 올릴 땐 10군데 정도를 지정해 지난 몇 년 집값이 몇 퍼센트 올랐고 그래서 집주인 자산이 얼만큼 증가했는지 보도 자료에 기재했으면 좋겠다. 국민이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압구정 현대3차 아파트 32평이 2014년 10억이었다. 지금은 63억~64억 원 정도 한다. 이 사람이 10년 전에는 보유세 270만 원을 냈는데 작년에는 1500만 원, 올해는 2100만 원을 낸다, 평가 차익은 53억 원이다 등의 내용도 포함해서. 예시를 보여주면 언론이 장난을 못 친다. 그동안 집값이 30억 올랐으니까 이 사람에게는 1년에 2000만 원 부담하게 하자고 국민에게 직접 설명해 보자. 그래야 집주인이 집을 팔 것 아닌가. 집이라는 재화가 사기만 하는 게 아니라 팔 수도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언제부턴가 서울 중심지 주택을 보유하면 무조건 유리한 사회가 됐다. ‘서울 아파트’가 희망인 사회가 됐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출발한다. 집 소유 혜택을 줄이면서 가수요를 줄여 나가야 한다. 공급만 외치면 지난 10여년이 그랬던 것처럼 정책은 효과 없이 깃발만 나부낄 것이다. 집값이 오르면 정당하게 사회적 부담을 짊어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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