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국정의 나침반이 AI와 주가일 수는 없다. 주식투자자 이해에 끌려다니면 민주주의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 (김병권/녹색전환연구소 소장) (⌚7분)
인수위원회도 없이 시작한 이재명 정부는 집권 첫날부터 숨 가쁘게 움직여왔다. 내란 특검 설치부터 부동산 시장 안정, 소비 쿠폰 공급과 관세 협상까지, 취임 후 가장 중요한 시간을 보냈다. 100일이 지난 지금 숨 고르기 하며 5년 국정의 큰 방향을 세워가고 있다. 대통령은 지난 100일을 ‘회복과 정상화를 위한 시간’으로 평가한 후 ‘도약과 성장의 시간’이 왔다고 자신 있게 선언했다.
이제 국민들도 비상 대응 단계를 지나 정상화 국면에 들어선 이재명 정부의 국정 방향과 특징을 차분히 짚어볼 때다. 특히 불과 두 달 만에 방대한 인적·지적 자원을 총동원해 완성한‘123개 5년 국정과제’는 국정의 나침반이 될 것이기에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보면, 지금까지 온건 개혁적 기조하에 전 분야에 걸쳐 정책의 뼈대와 주요 추진과제를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정부들과 달리 이번 국정 과제에는 독특하면서도 상당한 리스크를 지닌 두 개의 키워드가 숨어 있다. 바로 ‘AI’와 ‘주가’인데, 잘 추진된다면 이재명 정부를 성공으로 이끌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보자.

‘진짜 성장’을 ‘가짜’로 만들 수도 있는 ‘AI’
이전 정부들과 차별화되는 이재명표 국정과제의 가장 큰 특징은 ‘강력한 성장정책과 이를 보증할 AI 정책’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AI는 경제‧사회는 물론 외교‧안보 전반에 대변혁을 일으키는 범용 기술이자 국가 전략 자산으로, 범국가적 역량을 총결집하여 독자적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국가 AI 대전환을 추진”하겠다며 단호한 의지를 표명했다. ‘AI 고속도로’, ‘세계 1위 AI 정부’, ‘AI 기본사회’, ‘K-AI 시티’, ‘AI 디지털 시대 미래인재’ 등은 정부 혁신과 경제 성장, 도시, 복지, 교육 전반에서 AI를 만능키로 삼겠다는 청사진이다.
문제는 여전히 비관적인 경제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을 0.9%, 내년 1.6% 수준으로 전망할 만큼 경제 상황은 어둡다. 글로벌 무역 질서의 붕괴, 석유화학을 비롯한 전통 산업의 약화, 중국 제조업의 거센 위협과 같은 상황 속에서, 과연 AI가 ‘마법’ 같은 생산성 혁신을 통해 5년 안에 성장률을 3%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까? 그 결과, 이명박 정부 이후 가장 강력한 성장 기조를 내세운 이재명 정부의 기대가 현실로 이어질 수 있을까?
증가하는 이민과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를 통해 일부 보완할 수 있다고 해도, 인구와 노동의 절대 규모가 줄어드는 악조건 속에서 AI가 과연 ‘성장 둔화를 반전시킬 유일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상당히 무모한 발상이다. 정부는 한국은행이 지난 2월 발간한 ‘AI와 한국경제’ 이슈 노트에 근거해 AI 확산의 성장 효과를 낙관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 내용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종합한 낙관적 추정치에 불과하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 대런 아제모을루는 한국은행 예측과 달리 AI가 훨씬 더 적은 생산성 효과밖에 가져오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향후 10년 동안 AI로 인한 총요소 생산성(TFP, Total Factor Productivity, 노동, 자본 등 눈에 보이는 생산요소의 투입 증가 외 기술개발, 제도, 인적자본 등 보이지 않는 요인이 얼마나 많은 산출을 만드는지를 나타내는 생산 효율성 지표)은 0.53%, GDP 성장률은 총 0.93%~1.16%가 될 것이라고 아제모을루는 전망했다. 영국의 대표적 경제학자 다이엔 코일(Dian Coyle) 역시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AI의 경제적 성과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AI에 의한 경제 성장을 아주 보수적으로 예측한다.
1980년대에 엄청난 PC 보급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을 꼬집었던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의 ‘솔로 패러독스’(198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Robert Solow)가 지적한 현상으로, 혁신적인 기술 투자는 대중적으로 확산해도 실제로는 경제성장률이나 생산성 지표의 개선으로 즉각 연결되지 않는다는 역설적 상황을 설명하는 개념)를 상기해 보면 이런 비관적 전망이 납득이 간다.
📌 솔로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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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몰고 올 고용 충격과 거품의 위험
성장률 전망은 불확실하지만, AI로 인한 고용 충격 등 사회적 부작용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실제 한국은행 보고서도 전체 근로자 중 27%가 AI로 대체되거나 소득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아제모을루 역시 AI 도입은 자본 소득과 노동 소득 간 격차를 더욱 벌려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최근 AI 투자를 주도하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인력을 빠르게 감축하는 현실을 볼 때, 이는 결코 기우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문제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산업적·사회적 차원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성 향상 도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러나 AI 기술이 기대만큼 생산성 향상을 이루지 못하거나 적용 속도가 예상보다 더딘 경우, 혹은 시장에서 거품이 꺼지는 상황이 발생할 때, 그 여파가 국정 운영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이다.
대외 무역 환경 악화와 제조 경쟁 격화 등 현 상황을 감안하면, 성장률만을 목표로 삼기보다 ‘경제 체질 개선’과 ‘복지의 질적 내실화’에 더욱 집중하는 국정 조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AI 진흥에 몰입해, 고용이나 기후 등 파생 위험 관리가 소홀해진다면 ‘진짜 성장’이 아닌 ‘진짜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주식소유자 사회를 꿈꾸나?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선 운동 기간에 ETF(상장지수펀드) 증권 상품에 총 4,400만 원을 투자한 후, 불과 넉 달 만에 약 1,160만원, 26.4%의 수익을 올렸다고 공개했다. 종합주가가 사상 최고가인 3,400선을 뚫고 올라간 상황에서, 공약사항인 주가 5천에 접근해 가고 있음을 홍보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확실히 이재명 정부는 주가 동향을 경제 정책의 지표로 삼고 주식 수익을 국민 소득 개선의 주요 수단으로 지지한다는 점에서 역대 정부와 다르다. 심지어 주식 투자자의 여론을 정치의 중대 변수로 고려하는 ‘주식소유자 사회’를 꿈꾸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시작부터 ‘일자리’를 경제성적의 기준 지표로 삼고, 노동 소득 개선을 불평등 완화의 중심 수단으로 표방했던 것과도 명확히 비교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아 소감을 밝히면서 “제가 코스피 지수가 얼마나 됐나 체크해 봤는데 3,000선을 넘어서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주식시장을 포함한 자본주의의 핵심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금융시장도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라고 밝힐 정도로 주가지수를 중시하고 있다.

하지만 주가로 경제 성과를 판단하는 게 적절할까? 흔히 주가를 실물경제의 선행지수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자본시장이 고도화되고 금융상품이 다양화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주가는 실물경제와 별개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실물경제가 극도의 부진에 빠졌던 2020년 코로나19 시기다.
2020년 한국경제는 –0.7%라는 최악의 역성장을 기록했지만, 주가는 2020년 3월, 최저점을 기록한 후 실물경제와 상관없이 급상승해 2021년 6월까지 거의 두 배에 이르도록 폭등했다. 명백한 거품이었다. 반대 경우로서 고용지표 호조라는 실물경제 성과가 금리 인하 기대를 꺾어 주식시장 악재로 작용하는 사례도 세계 곳곳에서 자주 일어난다. 주가를 보고 실물경제가 좋다 나쁘다 평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부동산 투자보다 주식 투자가 선하다?
또한 우리 사회와 정치권에서는 ‘부동산 투자는 비생산적이지만 주식 투자는 생산적이므로 장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증권 투자 자금이 발행시장이 아니라 유통시장에서만 맴도는 한, 실물경제로 투입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최근에는 ‘자사주 매입’과 같은 방식으로 실물시장에서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빠져나가는 현상도 자주 목격된다.
부동산 자산보다 금융 자산의 불평등이 훨씬 심각하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증권 투자자가 1,400만 명, 가상자산 투자자가 1,000만 명에 이른다지만, 투자 금액 대부분은 극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주가가 급등해 지수가 5,000에 근접하더라도 1,400만 명의 주식 보유자 모두가 고루 소득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산 격차만 더 커지게 된다. 금융 자산이 없는 다수의 시민은 아예 그 혜택에서 배제되어 있다.
실제로 과거를 돌이켜보면, 소득분배는 문재인 정부 시절 다소 개선되었다가 윤석열 정부에서는 정체되었지만, 자산분배는 두 정부 모두에서 악화되어 지난해 순자산 지니계수가 0.612까지 치솟았다(지니계수가 높을수록 불평등이 커진다). 이는 1950년대 토지개혁 이래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물론 부동산과 금융 자산 중 어느 요인이 불평등에 더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따져봐야겠지만, 금융 자산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주식투자자에 기댄 국정운영이 위험한 이유
더욱이 정치가 주가에 집중할 경우, 국민 전체나 노동자의 목소리보다 주식 투자자의 이해에 편중될 위험이 있다. 실물경제와 증권시장이 따로 움직이는 현실뿐 아니라, 주식은 본질적으로 위험자산이기 때문에 변동성이 매우 크다. 또한 가상자산은 도박에 가까울 만큼 매우 불안정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가 자산의 변동에 휘둘린다면, 이는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이재명 정부는 임기 초반, 노동자 산재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호평을 받았지만,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상당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역대 정부 임기 첫해 수치로는 가장 낮은 2.9% 인상률로 합의해, 주가 관리에 신경 쓰는 모습과 대조를 이뤘다. 앞으로도 노동 소득보다는 자산 소득 중심으로 정책이 편향된다면, 불평등 해소나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분명 이재명 정부는 숨 가쁜 100일을 기대 이상으로 넘겼고, 이제 광범위한 개혁 과제를 신속하게 추진하며 ‘도약과 성장의 시간’에 들어섰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AI’와 ‘주가’는 서로 상충할 가능성이 큰 지표로, 앞으로 국정 운영의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과도한 AI 기술 의존을 적절히 조정해야 한다. 또한 주식시장과 주식소유자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노동시장과 노동 소득에도 충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국가 정책의 균형이 무너지면 위험은 커지고, 형평성도 위협받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