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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의 색다른 진보 9.] 권리는 의무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엔 그 전제가 없다. 기본소득에 바탕한 다양한 도전? 기본소득 실험과 연구 보고서의 결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기본소득은 최선의 재정 사용 방식으로 보기 어렵다. 기본소득은 다른 복지 정책에 비해 단점이 너무 많다. (⏰17분)

진영 논리가 판치는 시대, ‘논쟁’이 어렵다. 말, 글로 논하여 다투기보다 SNS에 서로 조롱하고 비아냥대기 바쁘다. 이미 각 부족 입맛에 맞게 답을 정해 놓은 좌우파 지식인은 한 치 이견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토론은 물러나면 죽는 전장일 뿐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 차분한 논쟁이 필요하다. 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에 의해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어떤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토론 테이블에 꺼내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성역화도, 언더도그마도 타파 대상이다.

색다른 관점을 가진 철학자를 소개한다. 독립 연구자 이완(31)이다. 그의 철학과 생각이 정치·사회 논쟁에 작은 불쏘시개가 되길 바란다. 이번에 그와 나눈 인터뷰 주제는 ‘정치철학으로 기본소득 톺아보기’다.

농어촌 기본소득으로 인구 증가? 그게 허상인 이유.

— 지난 10일 이재명 대통령은 X(트위터)에 ‘농어촌 기본소득’이 지역 인구를 늘렸다는 점을 강조하며 농어촌 기본소득을 완전히 정착시키자고 제안했다. 정말 농어촌 기본소득이 지역 소멸을 막을 대안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농어촌 기본소득의 금액과 시행 지역을 함께 늘리자고 했다.🔖⒈ 그렇게 하면 농어촌도 살고, 귀농·귀어도 늘고, 지역 소멸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무슨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월 15만 원씩 지급하는 농어촌 기본소득을 실험한 뒤로, 충청북도 옥천군 인구가 1000여명 정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⒉ 하지만 순전히 기본소득 덕분에 인구가 늘었는지는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이 사건 뒤에 저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이 사건을 저 사건의 원인으로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선후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이는 과학적 사고 방식의 기본이다.

정말 농어촌 기본소득 덕분에 인구가 늘었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대규모 이민이라도 받지 않는 한, 앞으로 몇십 년 동안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줄어들 것이다.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데 한 지역의 인구가 늘어났다면, 이 지역 사람들이 저 지역으로 이사했다는 이야기 밖에 안 된다. 즉 우리나라에서 지역 인구 증가는 제로섬 게임이다.

이번에 옥천군에 새로 이주한 사람 대부분은 서울이나 경기도가 아니라 충청도에서 왔다. 대전에서 온 사람이 44%이고, 보령에서 온 사람이 10%다.🔖⒊ 두 도시도 지역 소멸 위기를 겪는 곳이다. 따라서 농어촌 기본소득이 옥천군 인구를 늘렸다고 해서 지역 소멸을 막을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전의 소멸을 앞당기는 대가로 옥천군 소멸을 조금 늦출 뿐이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인 덕에 내년 세수가 기존 예상보다 20조 원에서 50조 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추가 세수를 어떻게 쓸 것인가 논의하는 과정에 보편적 기본소득이 다시 등장했다. 보편적 기본소득을 어떻게 생각하나?

보편적 기본소득은 중앙 또는 지방 정부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똑같은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⒋ 여기서 모두에게, 조건을 따지지 않고 주는 것이 핵심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일을 하든 말든, 재산이 많든 적든 상관 없이 사회 안에 있는 모든 개인에게 현금을 지급한다. 생존하기 위한 현금을 받을 기본적 권리가 있다는 의미에서 기본소득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초과 세수를 전 국민에게 나눠주는 정책은 보편적 기본소득이 아니다. 한 번 발생한 초과 세수를 평생 나눠줄 수는 없으니까. 대신 공공이 소유한 자원이나 기금에서 수익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제도, 즉 ‘사회배당’에 가깝다.

같은 맥락에서 민생지원금이나 고유가 피해지원금처럼 소득과 재산 수준에 따라 선별적으로 현금을 나누는 제도 역시 엄밀하게 말하면 보편적 기본소득이 아니다. 특정 지역 주민에게 용도가 제한된 화폐를 지급하는 농어촌 기본소득도 마찬가지다. 물론 한국식 기본소득을 새롭게 제안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지 모르겠다.

이재명(당시 경기지사)가 2019년 3월28일 청년기본소득 락(樂) 페스티벌에서 김제영 청년기본소득 청춘크리에이터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기념촬영하는 모습. 사진 경기도.

어느 쪽이든, 기본소득은 정부 재정을 쓰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하기 어렵다. 다른 복지 제도에 비해 단점이 너무 많다.

복지 제도의 대명사는 ‘사회보험’이다. 사회보험은 국민연금이나 국민건강보험처럼 정부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보험을 가리킨다. 그 기본 원리도 민간 보험과 비슷하다. 가입자는 정기적으로 보험료를 납부하고, 보험사는 그 보험료를 투자해서 수익을 창출한다. 이렇게 축적한 적립금으로 예측할 수 있는 위험을 겪는 사람에게 보험금을 지급한다. 예를 들어 퇴직 연금은 은퇴라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해 적립금을 쌓고 은퇴한 사람에 한해 연금을 지급한다.

사회보험은 모두에게 평생 현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약속된 보험금을 지급한다. 아직 여유 있는 사람의 돈을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옮겨서 그 피해를 분산한다. 서로가 자기 몫을 다해서 서로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회 연대의 대명사다.

물론 사회보험에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사회보험이 지켜주기로 한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아무리 어려워도 도움 받을 수 없다. 지금 월급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힘든 사람에게 국민연금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비급여로 치료받는 사람에게 건강보험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까다로운 산업 재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사람에게 산재보험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보험은 특정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서, 그 위험 외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사회보험 위주의 복지 국가에는 넓은 사각지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본소득처럼 모두에게 현금을 주는 제도로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모두에게 나눠준다는 점 때문에 기본소득은 더 넓고 불공정한 사각지대를 만들게 된다. 예를 들자면 은퇴해서 월 100만 원이 필요한 사람과 아직 일하느라 월 20만 원만 필요한 사람에게 똑같이 50만 원을 준다. 누군가는 과하게 혜택 받고, 누군가는 부족한 혜택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보편주의적 복지 국가는 위험에 대해 보편적인 보장을 하는 국가이지, 아무 때나 아무 이유 없이 동일한 급여를 나눠 주는 국가가 아니다. (…) 사고가 나든 말든 모든 자동차 운전자에게 보상금을 매월 정기적으로 나눠줘버린다면, 실제 사고가 났을 때 필요한 보상금은 어디서 어떻게 마련하나?”

– 양재진 교수, 복지의 원리🔖⒌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는 또 다른 사회보험을 설치하거나, 정말 위급한 사람에게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선별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든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것도 제도를 설계하기 나름이다. 이미 다 조사된 세금 자료를 활용하는 근로장려금이나 안심소득제는 특별히 많은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절대선으로 여겨야 할 이유가 없다.

게티이미지.

‘호텔 경제학’ 환상에서 벗어나야.

— 세금을 더 거둬서 기존 사회보험을 유지하며 보편적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무리한 주장이다. OECD 재정 통계를 기준으로 했을 때 2022년 우리나라 일반 정부 수입은 860조 원, GDP의 37% 정도였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비영리 공공기관 수입을 합친 값이다.🔖⒍ 5,000만 국민에게 매달 60만 원씩 주려면 360조 원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기존 제도를 유지하면서 증세로 월 60만 원 기본소득 예산을 마련하려면, 일반 정부 수입을 1,220조 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는 2022년 우리나라 GDP의 52%에 달하는 돈이다.

2022년 OECD에서 GDP 대비 일반 정부 수입이 52% 이상인 나라는 핀란드, 프랑스, 노르웨이뿐이었다. 같은 해 독일과 이탈리아의 일반 정부 수입은 GDP의 47%였고, 영국과 스페인 등은 42% 수준이었다. 옆 나라 일본은 39%였다. 전 국민에게 월 60만 원을 주려면, 세금을 OECD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세 수입 자료를 봐도 360조 원은 어마어마한 돈이다. 2025년 우리나라 국세 수입이 373조 원이었다.🔖⒎ 60만 원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면 국세를 두 배로 늘려야 한다. 역대급 반도체 호황 덕에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초과 세수가 60조 원 수준이라는데🔖⒏, 대체 어디에서 360조 원을 더 거둘 수 있을까. 그렇게 많은 세금을 거둬도 우리나라 경제가 버틸 수 있을까.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설명하고 증명해야 한다.

— 평소 적자 재정을 적극 옹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본소득을 위해 적자 재정을 꾸리는 것에는 반대하는 건가?

물론 나는 상황에 따라 정부가 더 많은 적자를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나라 정부는 상황과 상관 없이 재정을 아껴 왔다. 많은 사람이 정부 부채를 두고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할 빚으로 묘사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민간 은행이나 사채업자에게 대출을 받지 않는다. 과거에는 국채를 팔 만큼 신뢰받지 못해서 외국 정부나 국제기구로부터 차관을 받아야 했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그런 입장이 아니다. 이름과 달리 정부 부채는 흔한 빚과 다르다.

주요국 정부는 적자 재정을 꾸릴 때 국채를 발행한다. 누군가가 국채를 사면, 정부는 그 돈으로 부족한 재정을 충당한다. 국채는 구매한 사람에게 이자를 지급하고 원금을 돌려줘야 하는 빚이다. 하지만 정부가 매번 세금으로 원금을 돌려주지는 않는다. 국채 만기가 다가오면, 정부는 새 국채를 팔아서 옛 국채 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 이를 ‘차환 발행’이라고 부른다.🔖⒐ 정부는 국채 이자를 꾸준히 지급하며 신뢰를 지키면 된다. 그러면 증세 없이 국채로 국채를 갚을 수 있다.

여기서 새 국채 이자율이 옛 국채 이자율보다 낮아진다면, 더 많은 국채를 발행하고도 이자는 늘지 않을 수 있다. 이자율 낮은 대출 상품으로 갈아타는 것(대환 대출)과 비슷한 원리다. 또한 국채 이자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다면, 추가 세수로 새 국채 이자를 감당할 수 있다. 조건에 따라서 국채 발행은 이자 외 어떤 비용도 들지 않는다. 이는 현대화폐이론 같은 비주류 경제학의 가설이 아니다. IMF 수석 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 등 주류 경제학자들의 이론이다.🔖⒑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국채를 무한정 발행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과도한 부채는 국채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으리라는 신뢰를 무너뜨려서 차환 발행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스 등 재정 위기를 겪은 나라들이 국채조차 팔지 못할 정도로 신뢰를 잃어서 무너진 사례였다. 정부가 국채를 계속 발행하려면, 사람들에게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신뢰, 이자를 지급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 수입이 탄탄하거나 경제성장률이 이자율보다 높아야 한다.

정부는 민간 기업과 매우 다르지만, 기업과 비슷한 잣대로 본다고 해도 우리나라는 아직 여유로운 편이다. 보통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따질 때 ‘자기자본 대비 부채 비율’을 본다. 여기서 자기자본은 기업이 소유한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이다.

2022년 상위 30대 대기업 집단의 평균 부채 비율은 161% 정도였다.🔖⒒ 이 중에서 현대자동차 부채 비율이 181%였고🔖⒓, 삼성전자는 26%였다🔖⒔ 같은 해 우리나라 일반 정부의 순자산은 3,430조 원이었다. 부채는 1,159조 원이었다.🔖⒕ 이 숫자를 기업의 부채 비율처럼 계산하면 34% 정도다. 우리나라 정부는 어지간한 대기업보다 건전한 부채 비율을 자랑하는 셈이다. 정부 부채를 민간 부채와 동일시하려면, 그 계산 잣대도 통일해야 하지 않을까. 잣대를 통일할 수 없다면, 정부 부채는 민간 부채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논리가 일관된다.

정부는 통념보다 더 많은 적자를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조건이 갖춰졌을 때 이야기다. 그 조건의 핵심은 경제가 계속 무언가를 생산하고 세금을 내는 것, 국채에 대한 신뢰가 유지되는 것, 이자율이 너무 높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 재정을 기본소득처럼 비생산적 정책으로 지출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새 국채 360조 원을 발행해서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하자. 그러면 소비가 다소 늘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기까지다. 모두가 그 돈을 생산적 방향으로 쓴다는 법은 없다.

샘 올트먼. President of Y Combinator, Sam Altman speaks at TechCrunch Disrupt NY 2024. CC BY 4.0.

샘 올트먼이 세운 연구기관인 ‘오픈리서치’는 3년 동안 1,000명에게 매달 1,000달러씩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실험했다. 실험 결과 사람들은 여가 생활뿐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 데도 돈을 썼지만 결국 고용의 질을 유의미하게 개선하는 데는 실패했다.🔖⒖ 2020년 세계은행 보고서도 기본소득이 빈곤을 개선하는 데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분석했다.🔖⒗ 설령 모두가 기본소득으로 받은 돈을 그대로 교육비에 쓴다고 해도 문제다. 그만큼 교육비가 올라가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호텔 경제학’은 마치 정부가 돈을 뿌리기만 하면 고스란히 승수 효과가 일어날 것처럼 묘사하지만, 이는 잘못된 그림이다. 누군가는 급하게 임대료를 내야 할 수 있고, 대출을 갚아야 할 수 있다. 누군가는 가족 병원비를 대신 내줘야 하는데, 그 병원이 부채가 많은 곳이라 증가한 매출을 고스란히 은행에 넘겨야 할 수 있다. 이렇게 중간에 멈춰버리는 돈이 얼마가 될지 알 수 없다.

2017년 3월 19대 대선 당시 처음 알려진 이른바 ‘호텔 경제학’ 그림. 이재명 당시 후보가 2월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그림. 이재명 후보가 강연 중 기본소득을 쉽게 설명하려고 예시로 든 이야기를 지지자 정 아무개 씨가 손그림으로 보냈고, 이를 토대로 캠프 자원봉사자가 그래픽 작업한 것이다. (관련 참고 기사: 오마이뉴스)

실제로 코로나19 펜데믹 시기 미국은 상당한 재난지원금을 뿌렸는데, 많은 가구가 재난지원금의 60%를 저축과 대출 상환에 사용했다고 보고했다.🔖⒘ 우리나라는 지역 상품권으로 주니까 괜찮다고 할 수도 있지만, 지역 상품권으로 생활비를 쓰는 만큼 진짜 화폐를 다른 곳에 쓰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기본소득이 사람들의 노동 의욕을 꺾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노동 생산성을 개선하거나 투자와 혁신을 촉진할 것이라고 볼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생산적인 정책이 아니다.

설령 경제적 문제를 다 무시한다고 해도 결정적 문제가 남는다. 바로 기본소득이 매우 매우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이 지점 때문에 기본소득이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겼던 많은 사람이 직업을 통해 얻었던 자존감을 상실한 것이 부유한 나라가 처한 위기의 진정한 속성이라는 우리의 주장이 옳다면, 보편 기본소득은 여기에 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 아비지트 배너지 등,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⒙

‘무임승차’ 양산하는 기본소득, 매우 불공정하다.

— 기본소득이 불공정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모든 권리는 사회 구성원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일이다. 재산권을 보장한다는 말은 정부에는 각자의 재산을 기록하고 보호할 의무를, 개인에게는 타인의 재산에 손대지 않을 의무를 부과한다는 뜻이다. 복지권을 보장한다는 말은 사회 구성원에게 서로 위험을 나눌 의무를 부과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권리는 의무를 부과해서 실현된다. 권리에 상응하는 의무 없이는 권리도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권리와 의무는 한몸이고 동전의 양면이다.

기본소득은 ‘사회와 생산에 기여하든 말든’ 사회 생산물을 가져갈 권리를 기본으로 보장하는 정책이다. 이는 사회 구성원에게 상대의 기여와 상관 없이 생산물을 넘겨줄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심지어 상대가 조주빈, 조두순처럼 사회에 해악을 끼친 존재라고 하더라도, 사회 구성원은 그 상대에게 노동의 결실을 넘겨야 한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수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인간 공동체를 지탱해 온 기본 윤리에 어긋난다. 그 기본 윤리란 각자 기여에 따라 보상하는 것, 즉 ‘공정성(Equity)’이다. 공정성이 무너지면, 사회는 평화롭게 공존하며 협력할 수 없다.

게티이미지.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에 따르면, 사람은 어릴 때부터 기여에 비례하는 공정한 보상을 선호한다.🔖⒚ 누군가를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처벌하려 한다. 그래서 직장에서 월급 도둑을 보면 분노하고, 가정에서 아픈 곳도 없는데 일하지 않거나 일도 안 다니면서 집안일도 안 해 놓는 사람을 보면 답답해 한다. 정말 극도로 사랑하는 상대가 아니라면, 사람은 타인을 일방적으로 부양해 주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부양하는 것은 노예의 일이다.

“직접 호혜성과 간접 호혜성 둘 다 서로를 이용해먹지 못하게 막기 때문에 작동한다. 우리는 배신하는 사람과는 상호 작용을 중단하거나 애초에 상호 작용을 시작하지 않을 수 있다.”

– 니컬러스 크리스타키스, 블루프린트🔖⒛

기여에 비례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인식에는 문화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14년 덴마크 오르후스 대학교의 한 연구진은 미국인과 북유럽인이 복지 국가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를 찾으려 했다.🔖 여기서 연구진은 미국인과 덴마크인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두 지역 사람 모두 상대에게 도움받을 만한 마땅한 자격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를 마땅함 휴리스틱(The Deservingness Heuristic)이라고 부른다. 두 지역 사람 차이점은 자격 있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원칙이 아니라 복지 수혜자를 보는 관점이었다. 즉, 미국인은 복지 수혜자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자격이 없다고 여겼고, 북유럽인은 운이 나빴기 때문에 도움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게티이미지.

2019년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연구자들이 미국인과 노르웨이인의 인식을 비교했다.🔖 미국은 대표적 작은 복지 국가이고, 노르웨이는 대표적 큰 복지 국가다. 그런데 두 나라 사람 모두 생산성에 따라 다르게 보상해야 한다는 능력주의 원칙을 공유했다. 대신, 미국인 상당수는 운 좋게 얻은 것 역시 정당한 보상으로 여겼고, 노르웨이인 상당수는 운 좋게 얻은 것을 불공정하게 여겼다. 다시 말해 두 나라 사람은 운 좋게 얻은 것을 재분배하는 데에 다른 인식을 갖고 있었지만, 두 나라 사람 다수는 기여에 비례하는 보상을 선호했다.

역사를 봐도 ‘생존권’이란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일할 기회를, 일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기본적 생계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했다. 1793년 자코뱅파가 주도해서 만든 프랑스 헌법 제21조는 이렇다. “공공 구제는 신성한 채무(debt)다. 사회는 불행한 시민을 위해 일자리를 마련해 주거나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생존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부양할 의무가 있다.”🔖㉓

소련의 1936년 헌법, 일명 ‘스탈린 헌법’ 제12조도 이렇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서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원칙에 따라, 노동은 근로 능력이 있는 모든 시민의 의무이자 명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 적용되는 사회주의 원칙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 것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것이다.”🔖㉔ 실제로 소련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대신 생산성 높은 노동자에게 성과급과 특별 수당을 지급했다.🔖㉕ 공산주의 독재 국가에서도 공정성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마땅한 이유가 없다면, 모든 사회 구성원은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기여할 의무가 있다. 사회는 거대한 분업 체계고, 분업 체계는 각자가 자기 역할을 다할 때 유지되기 때문이다. 일할 수 있는데 일하지 않는 것은 사회에 기생하는 것, 즉 무임승차하는 것이다. 물론 사회는 각자에게 일할 능력을 키울 수단을 보장해야 한다. 총도 주지 않고 징집병을 전쟁터에 내보내는 것은 학살에 불과하다. 개인이 사회에 생존을 요구한다면, 사회는 개인에게 노동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이 대원칙을 철저하게 무시한다.

의무 없는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기본소득이 불공정하다는 주장에 어떻게 반박하고 있나?

여기서 기본소득 지지자는 국가의 중립성을 반박 근거로 꺼내든다.🔖㉖ 국가의 중립성이란 이런 의미다.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지 결정할 권한은 오롯이 개인에게 있다. 국가는 여러 선호들 사이에서 심판처럼 중립을 지켜야 한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일하며 사는 것 역시 하나의 선호일 뿐이니 국가가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노동 선호자를 우대하고 여가 선호자를 차별하는 태도라는 이야기다.

이런 중립성 원칙에 기반한 기본소득 옹호는 심각한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 우선 기본소득도 또 다른 삶의 방식을 강제하는 정책이다. ‘기본소득 있는 삶’이란 그 자체로 여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권리는 사회 구성원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일이다. 기본소득은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 없이 상대에게 생산물을 내어줄 의무를 부과한다. 즉, 기본소득은 공정성 감각을 스스로 억제하며 일하지 않는 사람을 부양하는 삶의 방식을 강제한다. 왜 그건 중립적이라고 여기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중립성은 국가가 따라야 할 유일한 가치가 아니다. 세계인권선언은 공공질서와 공공복지를 위해 적절하게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는 소중하지만 유일하게 소중한 것은 아니다. 국가의 중립성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 국가는 개인의 온전한 발달을 위해 담배나 술 이용 연령을 제한하고, 마약을 금지한다. 최근에는 청소년이 SNS나 AI를 이용하지 못하게 막는 곳도 늘고 있다. 이는 분명 국가가 더 나은 삶의 방식을 규정하고 강제하는 일이지만, 그 자체로 부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중립성이 가장 우선시된다면, 우리는 아동이 대마초를 피우는 것도 막을 수 없다. 중립성을 강조한 학자들이 그런 것까지 옹호하지는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중립성은 기본소득의 공정성을 반박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외에도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이 가사 노동에 참여하는 등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기여하기 때문에 무임승차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지만, 이는 막연한 기대일 뿐 아니라 소수의 무임승차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박하지는 못한다.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아무런 의무도 부과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임승차가 선택지로 남는다. 이 사실 자체가 문제다.

— 그렇다면 기본소득 외에 어떤 정책이 시급하다고 보나?

청년의 직업 훈련과 중년의 재취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 시급하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새로운 곳에 입사하는 순간 처음부터 일을 배워야 한다. 이 수습 기간 동안 기업은 계속 월급을 줘야 하는데, 문제는 그렇게 교육해 놓은 직원이 계속 일해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신입사원 채용은 돈만 잃을 수 있는 리스크이고, 그래서 모두가 경력직만 찾는다. 이미 노동소득분배율이 80%에 달하는 중소기업은 높은 임금으로 경력자를 채용하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시장은 이 간극을 메워줄 수 없다. 그러니 정부가 직원 교육을 전제하는 고용 보조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한다. 2025년에 정부는 민생지원금을 흩뿌리는 데 13조 원을 썼다. 그 돈이면 한 사람 당 월 200만 원씩, 54만 명 분의 고용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 물론 기업 간 격차가 너무 큰 상황이라, 고용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해도 중소기업은 노동자에게 적절한 임금을 주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최저임금을 올리기보다 근로장려금을 곁들일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더해, 중소기업이 부담하는 4대 보험료를 폐지하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이 모든 일을 다 한다고 해도 월 60만 원 기본소득보다 적은 예산이 들 것이다. 동시에 그 효과는 훨씬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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