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인터뷰] 이동한 민생연대 정책위원, “종업원 기업인수, 명백한 경제적 유인 필요… 지속가능 지배구조 모델에 노조도 관심 가져야.”
“여타 이유로 회사가 사업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가 이를 인수해 사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이를 권장했으면 한다. 노동계도 노동자의 사업 인수를 논의해주면 어떨까 싶다.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생각이다.”
‘노동자의 회사 인수.’ 10일 민주노총 간담회에서 이재명(대통령)이 노동계에 던진 의제 가운데 하나다. 실제 상속세 폭탄, 후계자 부재, 가족 갈등, 승계 의지 부족 등 이유로 중소·중견기업이 고심 끝에 폐업 수순을 밟는 일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생활가전 렌탈업체 청호나이스가 글로벌 사모펀드(PEF, Private Equity Fund) 칼라일에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기업이 사업을 접으면 대량 실업과 지역 경제 위축 등 문제가 나타난다.

노동자가 회사를 인수한다면.
- 원래 정부의 기업 승계 지원은 두 가지 방향이었다.
- 첫째,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대폭 완화해 가업 승계 지원을 확대한다.
- 둘째, M&A(인수합병)를 통한 외부 매각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M&A 방식의 제3자 승계를 공식 수단으로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 이재명은 여기에 더해 ‘종업원의 기업 인수’를 새로운 인수 경로로 제시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대한민국은 창업 1세대 은퇴가 본격화하는 ‘실버 쓰나미’ 시대에 들어섰다. 고령 CEO 중소기업 승계 문제는 한국 경제 잠재 리스크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승계에 실패해 폐업하면 고용 충격, 지역 경제 위축 등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 2022년 기준 60세 이상 CEO 중소기업은 약 236만 개다. 이 가운데 28.6%인 67.5만 개가 후계자 부재로 지속 경영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용 효과가 큰 제조업으로 한정해서 보면, 약 5.6만 개의 후계자 부재가 추정된다.
- ‘종업원 소유’를 연구하는 이동한(민생연대 정책위원)은 16일 슬로우뉴스 인터뷰에서 “현재 정책의 무게 중심은 여전히 ‘가족에게 넘기거나 외부에 팔게 돕는 것’에 있다”면서 “한국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M&A를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기업 승계의 사회적 방향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가족 승계만 우대하거나 외부 매각만 촉진하는 현재 틀에 ‘종업원 소유’라는 제3의 경로를 넣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의 말과 글을 정리했다.
‘빨갱이 제도’ 아니다. 미국이 먼저 했다.
- 여기서 말하는 종업원 소유 회사는 협동조합과는 차이가 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자금을 출자해 공동 소유한다면, 종합원 소유 주식회사는 51% 이상의 지분을 노동자가 소유하는 형태를 말한다. 노동자가 다수 주주로서 실질적 지위를 행사한다.
- 이 제도는 자본주의 본산인 영국과 미국에서 발전했다. 미국은 1974년 ‘종업원 주식 소유 제도’ 가운데 하나인 ESOP(Employee Stock Ownership Plan)를 법제화했다. 회사가 돈을 빌려 종업원을 대신해 회사를 인수하고, 그 빚을 갚아가면서 소유권을 종업원에게 나눠주는 방식이다. 종업원 개인이 자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차입을 통해 인수를 추진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 영국은 2014년 주요 3당 합의로 EOT(Employee Ownership Trust)라는 ‘종업원 소유 신탁 제도’를 도입했다. ESOP이 개별 종업원 계좌에 주식을 배분하는 방식이면, EOT는 신탁이 기업 지분을 보유하고 모든 종업원을 대표한다.
- 보수·진보 양쪽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가 있다. 이동한은 “보수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의 주인 의식을 고취하고 노사를 협력 관계로 만들면서 성과를 증진할 수 있다. 금융을 활용하는 시장 친화적 대안이기도 하다”며 “진보적 관점에서도 자본주의적 지배 구조가 개선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노동자가 기업 소유주로서 실질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결정권을 가진다. 더 이상 자본에 수동적 존재가 아닌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평등 해소 위한 제도.
- 지금까지 불평등 해소 정책은 생산 이전이나 생산 이후 단계에 집중됐다. 물론, 교육을 확대(생산 단계 이전)하거나 세금(생산 단계 이후)을 통해 재분배를 강화하는 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불평등은 이미 생산 단계에서 구조적으로 고착화했다.
- 노동자 소유는 생산 단계 정책이다. 소득이 형성되는 과정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동한은 “기업은 부를 창출하는 가장 핵심적 공간이다. 여기서 누가 소유권을 갖느냐에 따라 부의 흐름이 결정된다”며 “종업원 소유는 바로 그 지점에 개입하여, 성장의 과실이 보다 넓게 공유되도록 만든다”고 밝혔다.
- 2021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발표된 더들리와 로웬의 연구가 특기할 만하다. 이들은 종업원 소유가 자산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연구는 미국에서 노동자가 전체 민간 기업 지분의 30%를 보유할 경우를 가정했다. 그 결과 현재 전체 자산의 1.4%에 불과한 하위 50%의 자산 비중이 6.4%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 4배 이상 증가했다.
- 뒷받침하는 제도만 있다면 종업원 소유는 성장할 수 있다. EOT 도입 10년이 지난 2023년 말 기준, 영국에서는 1418개 기업이 종업원 소유 기업으로 전환했다. 2024년 말에는 1922개에 달했다. 10년 동안 영국에서 이뤄진 전체 기업 승계 가운데 약 6%가 EOT를 통했다.

무엇이 필요한가.
- 이동한은 ‘종업원 소유’를 위해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봤다.
- 첫째, 기업주가 종업원에게 매각할 때 세제 혜택을 대폭 제공해야 한다.
- 둘째, 종업원이 자기 돈이 아니라 회사의 미래 수익으로 인수 대금을 장기 상환할 수 있도록 차입형 ESOP과 유사한 금융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 셋째, 거래 이후에도 지분이 외부로 흩어지지 않고 신탁이나 조합을 통해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제도를 갖춰야 한다.
- 넷째, 정부가 M&A 플랫폼과 중개기관 등록제를 만들겠다고 하는 만큼, 플랫폼 대상과 설계 안에 종업원 인수와 종업원 소유 전환을 명시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도덕적 호소만으로는 어렵다.
-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기업주가 종업원에 회사를 매각할 유인이 있어야 한다.
- 기업주는 가장 비싸게 사겠다는 인수자를 찾기 마련이다. 자본력과 전문성을 갖춘 외부 투자자, 즉 사모펀드나 전략적 인수자가 M&A에 유리하다. 이들에게 매각할 경우 높은 가격과 즉각적 현금 회수가 가능하다. 종업원에 매각은 구조가 복잡하고 금융 조달도 용이하지 않다. 경제적 혜택이 필요하다.
- 미국에서는 일정 비율 이상을 ESOP에 매각할 경우 소유주가 양도소득세 유예 같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영국도 기존 소유주가 종업원에게 지분을 매각할 때 자본이득세를 감면해준다. 전폭적 세제 지원은 기업 매각의 방향 자체를 바꿀 수 있다.
- 지난해 한정애(민주당 의원)는 대주주가 보유 지분을 우리사주조합에 매각할 때 소득세와 법인세를 감면하는 내용의 소득세법·법인세법 개정안을 내놨다. 이동한은 “종업원 소유는 도덕적 호소만으로는 확산하지 않는다. 명확한 경제적 유인이 뒷받침할 때 비로소 현실적 선택지가 된다”고 했다.
핵심은 세제 혜택과 금융 개편.
- ESOP 핵심은 ‘차입을 활용한 인수 구조’에 있다. 그럴 때만이 종업원 개인이 직접 자금을 부담하지 않고도 기업 소유권을 이전받을 수 있다. 기업이 인수 자금을 장기·저리로 조달할 수 있도록 금융 지원 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생산적 금융’과도 맥이 닿아 있다.
- 이동한은 이렇게 말한다. “은행 등 금융기관에 ‘고금리로 돈을 많이 벌었으니 수익 일부를 토해내라’고 말하는데, 은행도 엄연한 주식회사고 주주들이 있다 보니 그런 요구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금융은 국가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제조업과 상생해야 하고 기업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제도를 지원할 책무가 있다. 금융의 공적 역할에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종업원 소유 전환을 위한 사모펀드.
- 사모펀드 투자는 자본의 수익 회수가 핵심이다. 모든 사모펀드가 같지는 않지만, 회사 인수 이후 장기 산업 육성보다는 재무 효율, 자산 매각, 수익성 개선에 집중한다. 반면 종업원 인수는 장기적으로 회사 성장과 고용 안정성을 촉진하고,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사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 물론 사모펀드와 종업원 인수를 이분법적으로, 도덕적으로 나눌 수는 없다. 미국에는 팀셰어즈(Teamshares Inc.) 등 회사를 종업원 소유로 전환하는 사모펀드가 있다. 장기적으로 지분의 약 80%를 종업원이 소유하는 것이 목표다. 리버티랩스 같은 한국계 스타트업은 승계 문제에 부닥친 중소기업을 인수해 직원 소유 기업으로의 전환을 돕는다.
- 이동한은 “사모펀드가 종업원 소유 전환에 나설 정도면, 분명한 흐름이 있다는 것”이라며 “사모펀드 역시 과거처럼 쥐어짜기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 회사 지분을 노동자들에게 나눠주고 경영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회사 성과를 키운 뒤 다시 매각하는 것이다. 시장도 종업원 소유로 제2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노동계 참여·관심 필요하다.
- 양대 노총은 종업원 소유에 적극적이지 않다. 이재명이 “노동계도 노동자의 사업 인수를 논의해달라”고 말한 배경이다.
- 이동한은 “어떤 기업이 매물로 나오면, 노동계도 합리적 인수 방안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회사 구성원으로서 기업 운영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노조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 노동계로서는 자본과 대립하는 노조의 역할이 핵심인데, 종업원이 과반 지분을 가진 기업에서는 노사가 보다 협력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이재명 정부 들어 상법은 소수 주주를 보호하는 쪽으로 개선되고 있다. 이동한은 “소액 주주 보호는 필연적 과정”이라면서도 “이제는 거기에 머물지 말고, 기업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이익을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 주식회사 주인이 누구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내가 삼성전자 주식을 1000만 원어치 갖고 있더라도, 삼성전자를 방문해 주인 행세를 할 수 없다. 주식 투자자 초점은 장기 성장보다는 단기 주가 상승에 찍혀 있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기업 운영이 단기 성과 위주로 작동한다. 소액 주주를 보호한다고 해서 이런 경향이 바뀌지는 않는다. 창업주는 여태 회사를 끌고 왔다는 점에서 그 기여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렇게 만든 자산 일부를 자식에게 상속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물리적 시간이 흐르면 소유주는 결국 바뀔 수밖에 없다. 솔로몬의 지혜처럼, 기업이 정말 위기에 몰릴 때 회사에 끝까지 몸담고 버티는 사람을 진정한 소유주라고 본다면, 난 그게 노동자일 거라 생각한다.”
- 종업원 기업 인수와 종업원 소유 확대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전환이 ‘코스피 주도 성장’을 기치로 건 이재명 정부에서 싹을 틔울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