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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대리점에 제로 마진 압박, 가격 상한 지속되면 공급 대란 올 수도… 불투명한 유통 구조, 정상 가격 모르는데 손실 보상 가능할까.

13일 첫 시행한 석유 최고가격제가 27일 조정된다. 정부가 최고가격제를 2주 단위로 운영키로 해서다.

최고가격제 시행 후 전국 평균 휘발유와 경유 평균 가격은 고점 대비 약 70~120원 내외로 하락하며 안정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일 만해도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이 1리터당 1950원을 찍었지만, 25일 오후 현재 1847원 수준이다.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주유소 및 대리점 등에 공급하는 가격에 상한을 둔 조치다. 1차 최고가격은 1리터당 휘발유 1724원, 자동차용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으로 설정됐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정유사가 석유를 싸게 공급하면 손실은 불가피하다. 정부는 정유사가 입게 될 손실은 보전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 이재명이 24일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게 왜 중요한가.

  • 최고가격제는 국가 비상 상황에서 소비자 후생 보호를 위한 단기·임시적 시장 안정 수단이다. 단기적으로는 가격 급등 속도를 억제하고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 그러나 공급 충격 장기화로 가격 상한이 지속되면, 공급 부족과 기름 대란이 빚어진다. 소규모·비수도권 한계 주유소의 퇴출 압력 확대 등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서울 지역에서만 주유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 유통업계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석유 대리점 업계는 유통망 붕괴를 우려하며 정부의 손실 보장을 바라고 있다.

석유는 어떻게 유통되는가.

  • 4대 정유사가 중동 등에서 싣고 온 원유(Crude Oil)는 거대한 해안가 공장(정제 시설)에서 끓는점에 따라 휘발유, 경유, 등유 등으로 분리된다.
  • 정유사는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전국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한다. 첫째, 직영 주유소 등에 직접 공급하는 것이다. 둘째, 대리점에 판매하고, 대리점이 자영 주유소(개인이 운영하는 주유소)에 재판매하는 방식이다. 전자 비중은 60%, 후자는 40% 수준이다.
  • 한국석유공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주유소 전체 판매량 3640만 ㎘ 가운데 57%(2080만 ㎘)를 정유4사가 공급했다. 나머지 43%(1550만 ㎘)는 석유 대리점 550여개소가 담당했다. 대리점 공급이 중단되면 직영 800개, 자영 3300개 등 전국 4100개 주유소가 물량 확보에 차질을 빚는다.
  • 즉, 현재 인프라로는 정유사가 1만 개 넘는 전국 주유소에 직접 기름을 공급할 수 없다. 일정 규모의 저장 시설과 탱크로리(Tank Lorry, 액체나 기체를 운반하기 위해 제작된 특장차)를 갖춘 대리점이 필요한 이유다.
  • 쉽게 말해 석유 대리점은 정유사에서 기름을 떼다가 주유소에 배달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최고가격제 고시 이후 휘발유를 1리터당 1724원에 받아서 1724원에 주유소에 공급하고 있다. 중간 마진 없이 운송비, 인건비, 관리비 등 1리터당 40~50원의 유통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 가격 상한 효과인데, 정유사 입장에서는 최고 가격보다 싸게 팔 유인이 없다.

석유대리점 아우성 “한 달도 버티기 힘들다.”

  • 박현동(석유유통협회 부회장)은 25일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 “비상한 상황인 만큼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큰 뜻에 동의하지만, 대리점들은 ‘한 달 버티기도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회복할 수 없는 적자 운영으로 대리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주유소에 휘발유와 경유를 공급하기 어려워진다.”
  • “정유사가 대리점에 공급하는 가격을 주유소 공급가보다 낮게 설정하고, 정부가 차액에 대해 사후 정산 시 정유사에 보전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협회의 요구다. 최고 가격을 설정하더라도 도매시장 고시가(정유사↔대리점)와 소매시장 고시가(정유사·대리점↔주유소)를 차등한 뒤 정부가 차등으로 인한 손실을 보전해 달라는 것이다.
  • 박현동은 “최고가격제에 관해 정부와 업계의 구체적 논의는 없었고, 우리도 어떤 내용이 어떻게 포함될지는 몰랐다. ‘주유소 공급가 1724원’만 정해 발표하다 보니 석유 시장 특유의 유통 시스템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단지 대리점 손실을 보상해 달라는 차원이 아니다. 자칫 물류 마비가 빚어져 시장에 혼선이 생기면 불편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탈탈 털리는 정유사 4사, ‘사면초가’에 빠지다.

  • 검찰은 ‘유가 담합’을 이유로 정유사 4곳을 상대로 사흘째 압수수색 중이다.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HD현대오일뱅크와 이들을 회원사로 둔 대한석유협회가 그 대상이다.
  •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25일 오전부터 공정거래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4개 정유사와 석유협회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 뉴스1에 따르면, 수사팀은 정유사들이 담합을 통해 국내에 유통하는 기름과 석유제품 가격을 임의로 설정한 정황과 함께 직영주유소와 자영주유소 사이 납품 가격에 차이를 둔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
  • 정유사 손실 보전 논의도 난관이 예상된다. 정유사가 손실액을 계산하면 정부가 이를 검증하여 보전 액수를 결정하는 구조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한쪽 팔이 꺾인 채로 협의에 임해야 한다. 이에 더해 여당이 석유 제품 공급 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주유소업계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정유사들은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 이재명(대통령)은 정유사들을 향해 “국민 고통을 악용한 부당한 돈벌이는 법과 원칙에 따라서 발본색원하고,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경고하면서도 “정유업계도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공적 책무를 깊이 인식하고, 국가적 위기 극복 노력에 함께 동참해 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구윤철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동 상황에 따른 고유가 대응 관계장관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재정경제부.

가격 인상 불가피, 정부의 추가 대응은?

  • 산업연구원은 “향후 정책 대응 방향은 유류세 인하, 직접 지원, 비축유 활용, 도입선 다변화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결합한 정책 패키지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평시 제도일 수 없고, 단기 시장 안정 수단인 만큼 제한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구윤철(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오는 27일 석유 제품 최고가격제를 조정해야 해서 가격 인상 요인이 있다. 유류세를 인하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면서 “전쟁 추경, 최고가격제 조정, 유류세 인하, 공급망 대응 등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 정부는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최고 컨트롤타워로 두고 국가 역량을 결집키로 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존의 경제부총리 주재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총리 주재의 비상경제본부로 격상시켰다.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여 범부처 원팀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비상경제상황실을 가동한다.
  • 김민석(국무총리)은 25일 “중동전쟁 충격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비상 경제 대응 체계를 빈틈없이 가동해 국가적 위기 상황을 반드시 극복해 낼 것”이라며 “중동전쟁 대응을 계기로 공급망 경쟁력 강화, 자본시장 체질 개선, 에너지 구조 전환 등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중장기 과제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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