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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첫 학교, 태기분교 이야기

  1. 세월은 추억을 남기고, 학교는 사랑을 남기다
  2. 추억은 따뜻하고, 기억은 촉촉하다
  3. “태기산에 가면 밥도 공짜, 집도 공짜”
  4. 태기산 화전 마을의 창세기
  5. 태기리 화전마을의 주택 변천사
  6. 천 년 원시림을 불태우는 거대 화전(火田)의 불길
  7. 낯설고 신기한 강원도의 ‘제5 계절’
  8. 궁즉통의 묘수, ‘덤벙짠지’를 아시나요?
  9. 태기산 ‘약초 한우’ 목장의 추억
  10. ‘하늘 아래 첫 학교’ 꿈은 이루어진다
  11. ‘처녀 선생님’은 길 잃은 선녀가 아니었어요
  12. 학교의 힘, 정식 학교의 힘
  13. ‘시작이 반’이라는 만고의 진실
  14. 학교는 추억의 보물창고
  15. 태기리 1966, 그해 겨울은 따뜻하였네
  16. ‘하늘 아래 첫 학교’ 서울까지 대서특필
  17. 희미한 ‘옛 학교’의 그림자
  18. 삶의 고통을 어루만진 세월의 선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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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정 응원해주던 아카시아 향기

아카시아 꽃향기가 진동을 하던 늦은 5월, 우리의 잔 다르크 선생님은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로 합니다. 물 설고 길 어두운 천리타향 서울로, 그것도 백인·흑인 키다리 미군들이 와글거린다는 이태원으로 스물다섯 꽃처녀가 혈혈단신 대장정에 나서는 것입니다.

만나야 할 대상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처녀 선생님이 의지해야 하는 ‘믿음의 지팡이’는 오로지 박경원 도지사님이 ‘서울 이태원에 있는 미국 구호단체 케어(CARE)[footnote]세계빈곤퇴치 국제원조구호기구 CARE: Cooperative for Assistance and Relief Everywhere.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교전국의 국민을 구제하기 위해 설립된 미국의 비영리 민간구호단체. 뉴욕에 본부가 있다.[/footnote]를 찾아가라’, ‘산골학교 이야기가 대서특필된 신문을 가지고 가라’는 제안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도지사를 만나고 온 것이 1월 중순이었는데, 처녀 선생님은 왜 이제서야 길을 나서려 결심을 한 걸까요.

세계빈곤퇴치기구 케어
세계빈곤퇴치 국제원조구호기구 ‘케어’

영어 공부를 했지. 고등학교 때도 영어는 다 백점이었어. 근데 안 하니까 자꾸 까먹어. 그래서 화동리 아버지 집에 가서 옛날 영어교과서를 가져다가 단어랑 숙어들을 다시 찾아봤어요. 이태원 가서 할 말을 영작으로 써놓고 그걸 딸딸 외운 거야. 그것도 찾아보면 어디 있을 텐데…….”

‘대장정’이란 표현에 조금도 꿀리지 않을, 처녀 선생님의 엄청난 ‘뚜벅이’가 또 시작됩니다. 먼동이 틀 무렵 단단히 배를 채우고 태기산 등성이를 따라 서너 시간쯤 걸어서 횡성읍에 도착합니다. 버스에 올라 원주 터미널로 이동, 다시 시간에 맞춰 서울 청량리행 고속버스에 오릅니다.

“지금도 아련하게 그 때 모습이 다 떠올라. 분홍과 하늘색이 섞인 체크무늬 치마에 칼라가 오뚝한 흰색 셔츠를 입었지. 겉에 걸친 자켓[footnote]표준어 표기는 ‘재킷’.[/footnote]은 일종의 바바리 스타일인데, 조금 짧았어. 횡성에서 원주 가는 버스의 열린 창틈으로 아카시아 향기는 어찌나 달콤하던지…….”

청량리에서 친척이 사는 미아리를 향해 길을 물어물어 다시 걷습니다. 밤 9~10시 무렵이 되어서 친척과 오랜만의 해후를 하고 늦은 저녁을 먹습니다. 이튿날 아침 친척들에게 ‘이태원의 정체’에 관해 수소문을 해봅니다. 당시 미아리에서 이태원까지는 한번에 가는 버스가 없었습니다. 친척들이 추천한 코스는 신설동에서 갈아타기입니다. ‘뚜벅이 선생님’은 신설동에서 이태원까지 또 걸어갑니다.

“걸으면 마음이 편해져. 가서 할 말을 정리해보고. 영어 작문도 한 번 더 외워보고.”

■ “오케이? 오케이?”

이태원에서 물어물어 케어 본부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 2시경.

“수위도 없었고, 현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면에 예쁘장한 미국 여자가 앉아 있어. 요즘 ‘안내’ 같은 자리였나봐.”

스물다섯 처녀 선생님이 심호흡을 하고 미국 여자를 향해 ‘돌진’을 합니다. 신문을 꺼내놓고 “아임 티처”라 소개를 하면서 ‘근자감[footnote]근자감(根自感): ‘근거 없는 자신감’을 줄여 이르는 속어.[/footnote] 콩글리시’로 외워온 영작문을 풀어놓습니다. 그러자 안내가 “저스트 미닛”하면서 전화를 걸자 어디선가 한국인이 걸어옵니다.

“신문을 보여주면서, 나는 이런 사람인데…, 도지사님 소개로 케어 단장님을 만나러 왔노라… 그랬지.”

그러자 거짓말같이 그 한국인이 선뜻 처녀 선생님을 케어 단장님에게 데리고 갑니다. 단장님은 “풍채 좋고 훤칠하며 인자해 보이는 미국인”이었습니다. 한국인 통역의 도움을 받아, 자초지종을 풀어놓습니다. 1,200m 산꼭대기에 대규모 화전마을이 있는데…, 박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국책사업인데…, 원조 받는 지역의 아이들 84명이 가건물에서 임시로 수업을…, 그러니 학교를 지어주십사…….

차츰 떨리는 가슴도 진정이 되고 혀도 풀려서 이제 좀 설명다운 설명을 하려는 찰나, 이번에는 난데없이 목이 메면서 울컥 눈물이 솟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면담을 마무리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만사형통이었습니다. 격앙된 분위기를 달래주면서 학교를 지어주겠노라고, 그 전에 현장도 살펴볼 겸 조만간 방문을 하겠노라고, 어서 돌아가서 주민들에게 희소식을 전해주라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처녀 선생님은 케어 단장님과 한국인 통역을 향해 번갈아가며 “오케이? 오케이?”를 반복하였다지요.

'케어' 50주년 기념우표
‘케어’ 50주년 기념우표

■ 물안개 너머로 울려퍼지는 아이들의 합창 메아리

마라톤 평원에서 10배가 넘는 페르시아 대군을 물리친 고대 그리스의 승전보를 아테네에 전했다는 전령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의 심정이 그러했을까요. 저 뿌듯한 소식을 한시라도 빨리 마을에 전하고 싶어 선생님은 귀가를 서두릅니다. 오후 늦은 시간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원주로, 아슬아슬하게 막차 버스를 타고 원주에서 횡성으로. 그리고 횡성읍 외삼촌댁에서 피곤한 몸을 눕힙니다. 한밤중에 외삼촌댁에서 떠들썩하게 터져 나온 박수와 환호성의 비밀을 옆집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튿날 횡성에서 태기리까지 80리 길을 또 걸어갑니다. 그날따라 비가 오려는지 한낮이 되어도 날씨가 꾸물꾸물, 햇님이 통 얼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산중턱을 오를 즈음에는 구름인지 물안개인지 자욱하게 끼어서 길을 가리려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선생님, 어디 계세요?” “선생님, 언제 오세요?” 희끄무레한 물안개 너머로 입을 맞춘 아이들의 함성이 메아리가 되어 무슨 돌림노래처럼 울렁울렁 울려 퍼지는 것이었습니다.

“태기산이 하도 가팔라서 평소 오르내릴 때도 숨이 찼었는데, 애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거라. 한참을 가만히 호흡을 고르고 나서야 겨우 숨 쉬는 게 편해져. 산에 올라온 사람들은 유난히 편부모 가정이 많았어요. 60%가량이 편부모였어. 그 바람에 사랑을 충분히 못 받고 자라서인지, 아이들이 눈치를 보고 수줍어하고 그랬어요. 아이고, 내 새끼들……. 마지막 고개를 올라서면서 ‘선생님 왔다!’ 하니까 애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매달려. 덩치 큰 녀석은 작은 애 손을 떼어내고 제 손으로 내 손을 잡는 거야. 그 모습에 그동안의 고생이 다 잊혀지고 피로가 다 풀렸어.”

안개 속의 메아리
안개 속의 메아리

저녁에 주민들에게 경과보고를 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또 잔치가 벌어집니다. 이럴 때면 흡사 잔치 하려고 산으로 모인 사람들 같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하려고 맘먹은 것은 다 하는 사람” “호랑이 선생님” “(하도 걸어다닌다고) 발발이 선생님” 등 별명도 잔뜩 얻었습니다.

■ ‘처녀 상록수 과로에 쓰러지다’

호사다마(好事多魔)[footnote]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생김.[/footnote]라 했던가요.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뚝심의 잔 다르크 선생님이 쓰러진 것입니다. 그렇게 억척같이 걷고, 도청·군청·교육청·방송국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며 상의하고 부탁하고, 직접 담임에 수업에 운동장 다지는 공사까지…….

몸이 견디다 못해 항명을 했나봅니다. 마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누군가 군청에 SOS를 쳤고, 군청에서 횡성보건소에 비상연락을 넣었습니다. 보건소에서 보낸 봉고 비슷하게 생긴 차가 도착했습니다. 병원 갈 엄두도 못 내던 시절, 앰뷸런스도 드물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보건소에 도착해서 약을 먹고 주사도 맞았습니다. 생전 처음 링거도 맞아보았습니다.

그렇게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어떻게 전해졌는지 ‘처녀 상록수 과로에 쓰러지다’라는 제목으로 여기저기 신문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스크랩북에는 1966년 9월 14일 자 ‘현대경제일보’의 기사가 박제되어 있습니다. 위문품 장부에는 10월 15일 자에 ‘현대경제일보 원주지사 의료·약품 8정’이라 적혀 있습니다. 참 고마운 신문사입니다. 그런데 기사 내용이 좀 ‘거시기’합니다.

‘30평 천막학교와 100평 운동장 손수 닦고, 벌거숭이 아이들 모아놓고 지도하다가 과로에 쓰러지다…’
‘주민 대표 정병춘 씨, 우리 주민 손으로 고쳐드릴 거예요…’
‘제자 고영환, 선생님 쓰러지면 우리는 어떡해요. 제발 구해주세요…’
‘이명순, 우리 학생들이 불쌍해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어요…, 산 속에서 인재를 키우겠어요….’

“아유, 참 이야기도 잘 만들어. 나랑 인터뷰도 안 해놓고 무슨 ’먹을 거 입을 것이 없다고…, 참 내.”

"꼬마들, 우리 선생님 병을 고쳐주셔요" 현대경제일보 1966년 9월 14일 자.
“꼬마들, 우리 선생님 병을 고쳐주셔요” 현대경제일보 1966년 9월 14일 자.

■ 눈치가 뭔 가요?

다행히도 보건소 해프닝이 별 탈 없이 지나갔습니다. 운동장 공사도 더 이상 무리를 하지 않기로 합니다. 때마침 본교에서 가을운동회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학생들도 더 늘어났습니다. 66년 9월 1일 현재 기준으로 105명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운동회에 참가할 수 있는지 가능 여부를 물어보니 절반이 채 못 되는 35명이 선발되었습니다. 태기리 대표선수 35명은 9월 30일 아침 일찍 학교에 모여 뜨겁게 참전의 의지를 다지고, 용감하게 운동회를 향해 출발을 합니다. 본 대회에 앞서 먼저 20km 행군부터 해야 하는 태기리 대표팀입니다.

본교에 도착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가까워 옵니다. 행군을 마친 뒤의 점심은 꿀맛입니다. 오후에는 종목별 달리기와 이인삼각(二人三脚), 줄다리기, 공차기, 바구니 터뜨리기 등의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눈치도 없는 태기리 대표선수들입니다. 지난 봄 소풍 때처럼 공책이며 연필과 크레용 등 상품을 바리바리 챙겨버린 것입니다.

“나이가 많고 덩치가 좋으니 운동회는 상대가 안 되었지. 그래도 좀 적당히 하지. 본교 선생님들 대하기가 아주 민망하더라고.”

운동회를 지나면서 산골에는 서서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겨울왕국’의 동장군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도 혹독한 겨울에 앞서 ‘단풍 전시회’라는 위문편지가 먼저 도착을 하지요. 66년 가을의 태기리에는 정말 멋진 선물이 도착을 하였습니다. 10월 6일 횡성군청 산림계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케어(CARE) 본부에서 지원 결정. 강원도청과 교육청에서 태기산학교 건축 계획 확정.’ 최고의 희소식입니다. 마을이 또 축제분위기가 됩니다. 정말 잔치 좋아하는 마을입니다.

11월 28일 서울에서 헬리콥터가 날아왔습니다. 케어 단장이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친히 방문을 한 것입니다. 재봉틀 10개와 구호품 상자 180박스(한 박스에 노트 19권, 연필 6자루, 색연필 1세트, 공작가위 4개, 고무·자·칼 각 하나씩)도 선물로 주었습니다. 온 마을 주민들이 공터에 모여서 환영식을 하였습니다. 12월 1일에는 강원도지사와 횡성군수가 태기리를 찾았습니다. 위문품 장부에는 각각 ‘장갑 30켤레, 양말 30켤레’라고 적혀 있습니다.

어쩐지 그해 겨울은 따뜻하였을 것만 같습니다.

미군지원단
미군지원단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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