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는 인간,
일부는 기계,
온몸은 경찰.
지금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가 된 [로보캅] (1987) 포스터엔 딱 이 문구만 있다.
슬로우뉴스에서 오랫동안 연재한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이하 ‘초상’)의 스토리 작가 염동규를 만났다. 이제 곧(오는 8월 20일) 군대에 간다는 그에게 대학원생의 사회적 정체성을 물었다.
일부는 학생,
일부는 노동자,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인터뷰는 그 ‘나머지’에 관한 이야기다.
- 인터뷰이: 염동규
- 인터뷰어: 민노씨
- 2018년 7월 30일
- 서울시청 근처 식당과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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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
‘초상’ 스토리 작가를 3년 동안 맡아온 염동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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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초상’을 만들게 되었나
= ‘초상’은 언제 어떻게 기획했나.
2015년 8월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고대원총'(고려대학교 대학원생 총학생회) 정책국장이었다. ‘인분 교수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시기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원생의 문제는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원생 문제를 공론화하자고 뜻을 모았고, 강태경 회장이 ‘웹툰’으로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던졌다. 그걸 받아서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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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에게 일상적으로 폭행을 가하고, 인분을 먹이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학대행위를 저지른 소위 ‘인분교수’는 ’16년 8월 30일 대법원에서 징역 8년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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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초기엔 어땠나.
제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야 할 웹툰인데 제보가 없었다. 제보받는다고 알릴 길도 없었다. 그림작가랑 나만 덩그러니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소문으로 돌던 이야기에 살을 붙여서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그렇게 2, 3달 연재했다. 처음 기대했던 퀄리티보다는 좋은 퀄리티로 그림이 나왔다. 지금으로 보면 적은 수지만, 조회 수가 2,000 정도 나왔는데, 당시로서는 아주 큰 조회 수였다. 속으로, 잘하면 먹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씩 자심감을 붙여 나갔다.
= 실천적인 스타일인가.
사실 학생회도 장학금 때문에 들어갔다. 학부 때에도 힘들었다. 사람들 마음을 얻는 게 쉽지 않았다. 사회적인 활동, 정치적인 활동에 회의적이었다. 세월호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데, 해도 뭔가 바꾸긴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도 흐지부지한 느낌이고, 내가 열심히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런 마음이 한편에 있었다.
= 그런데?
강태경 회장이 ‘우리는 조회 수 1만을 노려보자’고 하더라. 그 자리에선 알겠다고 했지만, 속으론 ‘택도 없는 소리하고 있네’, 그렇게 생각했다. 백남기 농민께서 돌아가신 그 민중총궐기 때, 광화문 카페에서 사람 기다리는 와중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조회 수 2, 3천도 많다고 생각했고, 잘 해봐야 5천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저변을 넓혀야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했다.
= 그래서?
그래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오유에 올렸던 게 ‘베오베'(베스트 오브 베스트)에 올라서 4만인가 6만인가 찍혔다. 그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압도적인 체험이었다. 굉장히 고무됐고, 웹툰을 인터넷에 뿌렸다. 이게 될 거라는 기대도 없었는데, 인터넷 공간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어느 커뮤니티에선 어떤 방식으로 추천하고, 또 다른 커뮤니티에선 뭐가 중요하고, 그런 방식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그때 좀 더 웹툰 제작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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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 만드는 기쁨과 슬픔
= 그렇게 만든 웹툰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비교적 최근에 만든 [어째가 우리가]. 개인적으로 준비를 위해 공부와 취재를 열심히 한 작품이다.
그리고 시즌1에서 ‘구상권 소송 사건’. 특히 실제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 웹툰이라고 더 각별하다. 묻힐 뻔했던 의제를 수면 위로 올려서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여론을 자극하면 이만한 힘을 가지는 구나. 특히 10억이 넘는 돈이 걸린 문제니까.
= 사건은 어떻게 해결됐나.
약학대학 동문이 나서서 중재했다. 그래서 결국 대학 당국이 학생들에게는 구상권 청구를 철회했다. 검사도 대학원생들이 자발적으로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사건이다. 충북대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교수는 파산신청해서 다시 잘먹고 잘 사는….
= ‘구상권 소송 사건’을 보면, 대학원생들은 교수들의 이익을 위해 일종의 ‘도구’처럼 활용되는 것 같다. 다양한 제보들이 있을 텐데, 일정하게 나타나는 경향성이랄까. 그런 게 있나.
교수는 절대갑이고, 대학원생은 노예처럼 복종하고. 그런 정형화랄까, 사회적인 인식이 있긴 한데, 실제로도 그런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다양한 제보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건 대학원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게 교수들이고, 그런 조건에 매여있다는 점이다. 논문을 심사할 수 있는 사람도 적고, 내 논문, 내 진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그런 부당한 권력 구조 속에서 부당한 일이 벌어져도 학생들은 뭔가 할 수 없는 구조인 건 확실하다. 잘 알려지지도 않지만, 알려진다고 해서, 학생들이 저항하거나 대학 당국이 교수를 파면한다거나 하진 않는다. 교수가 징계를 당해봤자 ‘정직 3개월’ 정도다. 그저 휴가 정도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렇게 ‘휴가’가 끝나면 다시 복귀하고…
어차피 나이 많은 교수들은 안 바뀐다거나 우리들이 뭔가 실천한다고 바뀔 것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본다.
= 작업하면서 힘들었을 때는.
‘내가 잘못 만들었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령, ‘육아’에 관한 에피소드가 시즌 1과 시즌 2, 각각 한 편식, 모두 두 편 나갔다. 두 작품 모두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에서 논란이 됐다. 나는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대학원생의 고통을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내 기획 의도와는 상관 없이 독자들은 남녀갈등으로 환원해서 해석하더라. 거기에 이런 댓글이었다:
‘이게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인가’
내 마음이 그랬다. 시즌 1의 실패를 교훈 삼아서 시즌2의 육아 이야기에선 남자를 (육아에) 아주 협조적인 인물로 그렸다. 다만, 여성이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현실을 이야기 속 인물의 독백에 담았는데, 여전히 댓글에선 “꼴페미 웹툰이냐”고 공격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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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보다는 ‘개연성’
= 제보는 팩트체크하나.
제보자를 만나서 인터뷰한다. 그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렇다:
‘나 자신이 설득되는가’
정서적인 설득보다는 논리적으로 설득이 되는지가 중요하다.
= 초기 작업시에는 풍문에 살을 붙여서 작업하기도 했다고 했는데.
사실이다. 그에 따른 책임은 내가 져야겠지만.
팩트체크는 한계가 있긴 하다. 왜냐하면 피해자 보호가 아주 긴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령, 담당 지도교수에게 교차 확인을 한다든지 하는 적극적인 취재는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그 대신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간접적으로 확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팩트체크라기보다는 ‘개연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 웹툰은 서두에 이 모든 이야기가 ‘픽션’임을 알리는 문구를 포함한다. 그렇게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픽션(개연성의 세계)임을 강조해도, 또 독자들은 어쩔 수 없이 픽션이라고 강조한 이 이야기도 사실에 바탕하겠거니 기대한다. 이 둘 사이의 긴장이랄까, 갈등이랄까, 이 둘을 모두 만족하는 건 쉽지 않은 작업 같다.
완전히 팩트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야기를 과장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과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뭘 과장했느냐고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그건 잘 모르겠다. 가령, 등장인물인 교수의 대사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혹자는 “교수가 정말 그런 말을 한다고?” 그렇게 묻는다. 풍문으로 떠돌던 이야기들,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 완전히 팩트로 확인하지 않은 이야기. 그런 아슬아슬한 경계가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이야기를 과장하는 제보자도 없진 않다.
다만, 무엇보다 개연성의 차원에서 엄밀하려고 노력했다.
=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위험성은 걱정하지 않았나.
자문 변호사가 있었다. 학교나 교수가 명예훼손 고소할 수 있는지 확인하면서 작업했고, 사전에 최대한 위험을 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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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은 무엇으로 사는가
= 대학원생은 기득권이 될 가능성이 높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상대적 약자이며, 때론 절대적인 약자이기도 하다. 다중적인 사회적 정체성을 가진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각 분야마다 다른 것 같다. 프로젝트 위주로 하는 분야에선 월급도 넉넉하게 받고, 여유 있게 공부하는 학생도 있는 것 같다. 그런 대학원생은 기득권의 일부 아니냐는 사회적 시각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속한 인문계에 국한하면, 일반화는 어렵겠지만, 교수될 가능성은 진작에 포기했고, 시간강사도 힘들지 않나 하는 의식이 팽배하다.
= 하지만 그럼에도 대학원을 택했다. 대학생원으로서의 삶은 만족스러운가.
훌륭한 동료가 많고, 배울 게 많다. 공부하는 것 자체가 즐겁고, 하고 싶다는 동기도 강하다.
= 그렇지만?
교육에 관한 관심이 적은 것 같다. 연구 자체로 성장할 수도 있고, 교육을 통해서도 성장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발제에 의존하는 수업 시스템이 아쉽다. 열심히 ‘강의'(교육)하는 교수님도 있지만, 대부분 학생 발제에 의존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학원생 공부는 혼자 하는 거라고들 이야기한다. 동료는 물론이고, 교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신다. 하지만 나로선 ‘교육’에 무심해서 아쉽다. 때론 분노를 느끼기도한다. 항상 공부는 혼자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뭘 몰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게 마치 내가 자기노력하지 않고, 타율적인 학생인양 취급받을 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 “교육”이라고 했는데, 일반적으로 강의와 연구를 나눌 때, 그중에서 ‘강의’를 가리키는 표현인가.
강의가 중심이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폭이 넓은 표현이다. 가령, 연구를 하려고 해도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지, 그런 가이드라인이랄까, 그런 게 너무 없다. 어디에 물어야할지도 모르겠고, 이런 것들에 관한 선행 교육이 있어야 하는 데 그런 게 너무 없다.
한편으로는 학생을 가려받는 것도 ‘교육’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냥 어느 정도 조건만 되면 무조건 받아주는 시스템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연구가 뭔지도 모르는 채로 학부 때 생각만 하고 들어와서 떨어져나간다. 다양한 학생들이 한 공간에 모여서 한 공간에 모일 때 시너지가 된다기보다는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경험이 많았다.
= 한국 대학원의 가장 큰 문제는 뭔가. 키워드로 뽑는다면.
무책임. 책임을 안 진다. 이 구조에서 교수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 교수의 가해자성이 드러나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되는데, 교수의 피해자성이 두드러지는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성과주의의 압박. 좋은 연구를 하는 긍정적인 자극제가 아니라 그저 부담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행정적인 잡무도 많다. 대부분 원생들이 피해를 보지만,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 ‘무책임’에 관해 좀 더 상술하면.
스스로 저항하고, 그 저항을 조직하지 않는다. 그냥 ‘칼럼’으로만 비판한다. 안전한 저항이다. 시스템을 바꾸자는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고, 상식적인 결론을 내지만, 직접 실천하지 않는다.
선생이 실천하지 않고, 부조리에 저항해 싸우지 않으니 학생이 부당함에 저항하는 방법을 배울 리 없다. 그게 한국 대학원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조직해서 행동하지 않는다. 현실은 복잡하다고만 얘기한다. 복잡한 거 알지만,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복잡하다고만 한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만 하는 그런 하나마나한 결론만 이야기한다.
= 대학원생의 사회적 지위랄까. 자기정체성이랄까.
노동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조교 활동도 하고,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참여하니까. 노동자이기도 하다. 노동자이기도 하고, 학생이기도 하고, 학생 노동자이기도 하다. 노동자성을 긍정하는 학생이 절반은 되는 것 같다.
=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생의 사회적 지위는.
(연구) 노동하는 백수.
= 월 수입.
연구해서 버는 수입은 0원이다. 과외로 버는 것과 가끔 들어오는 원고료를 합치면, 평균 60만 원쯤 되는 것 같다.
= 월 지출.
50만 원. 밥 먹고 취미생활 모두 포함해서. 잠자리는 공짜(집에서 기본 제공)다.
=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여기에 집값 부담이 클 것 같다.
당연히.
= 미래에 대한 기대는.
실패한 인생을 살 거라는 좌절감을 벌써부터 느끼진 않지만, 학교와 관련해서 가령, 교수나 시간강사로서 안정적인 삶을 누릴 거라는 기대는 전혀 없다. 치킨집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벌써 있고, 사교육 쪽으로 가게 되는 경우도 많다. 참 (연구, 공부) 잘했는데 소리 없이 사라지는 선배들도 있고….
= 소위 잘풀리면?
교수. (비율로 따지면?) 극소수. 정확히 확률을 따질 수는 없지만, 극소수로 단정해도 무리 없을 것 같다.
= 교수가 되고 싶나.
아니다. 계속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싶긴 한데.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고 할 만큼 약하달까.
=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대학원 분위기는 어떤가. 낭만이랄까, 그런 게 있나.
나에겐 그런 거 없다.
= 낭만은 비싼 건가. 아니면 공짜인가.
비싼 거 같다. 꽤 나가는 것 같다.
= 꼰대 같은 소리지만, 우리 때는 공짜였던 것 같은데.
어떻게 공짜일 수 있나.
= 좀 순진하고, 멍청한 소리 같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꼰대 같은 소리지만, 우리 때는 새우깡에 소주 마시면서 잔디밭에서 ‘오바이트’해도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랬다. “우리는 2,000원(= 새우깡+깡소주)에도 행복했어!”라고 강변한다면? 이런 가난한 행복은 지금은 대학에선 아예 없는 건가.
있긴 하지만, 대학생활의 일부, 그것도 아주 사소한 일부다. 그럴 시간이 별로 없다. 학부 때부터 중간고사, 기말고사,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과제가 있고. 그렇게 학부 때부터 생활했다.
= 요즘 학생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 것 같나.
취업, 안정적인 삶.
낙오하지 말자.
= 그런 분위기가 강한가.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런 것 같다. 공부만으로 즐거울 수는 없고, 뭔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달까. 뭔가 되야 한다는 압박이 강하다.
= 뭔가는 뭔가.
직업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다들 뭔가 됐는데 나만 뭔가 안 된 것 같은 느낌…. 취업한 동기들도 있고, 그런 동기들 보면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지’ 그런 압박이 있다. 낭만으로 대학생활을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 기회비용의 차원에서, 그러니까 다른 ‘생산적인 활동(미래를 준비하는?)’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낭만은 공짜가 아니라 아주 비싼 것이 되었다는 소린가.
그렇다. 적잖이 비싼 것이 되었다.
= ‘뻘짓’도 잠재력의 일부일텐데.
뻘짓도 제도화했달까. 공식적인 뻘짓 대회들(가령, 기업에서 주관하는 국토대장정, 봉사활동… )에 참여해서 그것도 스펙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낙오하지 말자…. 아주 공감한다. 그리고 서글프다.
우리 세대의 과제인 것 같다.
= 그럼에도 당신의 사회적 상징 자본(‘인서울’ 게다가 ‘SKY’)은 상대적으로 아주 괜찮지 않나. 낙오하지 말자는 좀 과장 같기도 하다.
X되면 안 돼. 어느 정도가 X되는 거냐. 그런 기준은 좀 차이가 있겠지만, 그런 불안은 확실히 존재한다. (인서울, 스카이면 그래도 안도감이 있지 않나) 잠깐이다. 어느 정도는 했다는 일시적인 안도감은 있다. 고딩 때부터 10분더 공부하면 미래가 바뀐다, 그런 식의 강요가 익숙했다.
소위 명문대에 입학하니 당연히 안도감이 있었지만, 잠깐이다. SKY 내부에서도 계층 의식이 있다. 서울대면 안심할 수 있겠지만, 고려대나 연세대는 손해보지 않는 정도라는 인식이랄까, 그런 게 있다. ‘OO 선배는 몇 년째 취업준비 중이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 한 시간 한 시간을 버릴 수 없다. 이 시간을 헛되이 버리면 안 되고…. 그런 불안이 있다. 여전히 낙오에 대한 공포감이 있다.
= 너무 우울하다. 대학사회의 희망이랄까. 뭐라고 생각하나. 키워드랄까.
재능. 웹툰을 만들면서 느낀 게 많다. 재능이 많다. 할 수 있는 게 많다. 성과주의적인 풍토로 창출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서 압도적으로 재능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조직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다. 대학원생들의 공론화에 조금이나마 공론화한 이 웹툰도… 앞으로도 시도할 필요가 있따고 생각한다.
= 후원은 얼마나 모였나.
독자 후원은 200만 원이 안 된다. 학교 단위에서는 120만 원 정도. 그리고 책 만들 때 펀딩한 거 300여 만 원.
= 인건비도 안 되는 수준이네.
그래도 후회는 없다.
= 자부심은?
있다. 자부심 있다. 잘 한 건 같다. 꽤 한 거 같다.
= 끝으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
저항하면 바뀐다. (정말?) 느리고, 때론 감지되지 않지만, 긴 시간이 지난 뒤에 돌아보면 분명히 바뀌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