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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201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움은 그저 시간이 흘러가고, 숫자가 바뀐다고 생겨나지 않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지난 과거를 응시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성찰과 돌아봄의 연속선 위에서만 새로운 출발은 가능합니다.

슬로우뉴스가 바라본 2014년을 ‘미디어, 정치, 사회, 테크(IT), 경제/노동, 문화, 사람’으로 나눠 돌아봅니다. 각 영역을 상징하는 키워드와 편집팀이 선정한 10대 뉴스를 정리하는 ‘돌아봄’으로 2015년 새해를 맞이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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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 나라는 지금 가뜩이나 얕은 뿌리마저 말라가는 건 아닌지 불안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죽음과 불임의 정치 

OECD 국가 중 9년째 자살률 1위, 출산율은 세계 꼴등 수준인 이유는 무척 간단하다. ‘희망’은 잘 보이지 않는데 손잡아주는 ‘이웃’, 국민을 책임져 줄, 최소한 책임지려는 자세를 가진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 책임을 고민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게 정치라면, 2014년 정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Jenavieve, "The joke is on me", CC BY SA https://flic.kr/p/88PSfA
Jenavieve, “The joke is on me”, CC BY SA

여당의 정치는 청와대 눈치 보기와 방패막이 노릇에 그쳤고, 온갖 억지와 망언만 난무했다. 야당의 정치는 창조경제만큼이나 모호한 ‘새정치’라는 폭탄 속으로 자폭했고, 온갖 과목에 다 집착하다 정착 한 과목도 제대로 성적을 내지 못한 나쁜 학생 코스프레였다. 그렇다면 청와대의 정치는? 구중궁궐의 암투가 있었을 뿐이다. 그 암투를 정치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퇴행[退行]: 발달이나 진화의 단계에서 어떤 장애를 만나 현재 이전의 상태나 시기로 되돌아감. 또는 그런 일.

그래서 2014년 대한민국 정치를 상징하는 단어는 “퇴행”이다.

유턴 표지판 퇴행

노무현 정부는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했고, 이명박 정부는 우측 깜빡이 켜고 역주행을 했다. 이번 정부는 그냥 빠른 속도로 후진을 할 뿐이다. 말로는 창조니 3.0이니 미래니 하며 엑셀레이터를 밟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냥 뒤로 간다. 퇴행도 이런 퇴행이 없다. 신386, 공안정국, 정당해산, 서북청년단 재건, 사제폭탄 테러… 우리는 어떤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로 뒷걸음질 치는 한국 정치를 볼 수 있다.

뿌리 얕은 나라를 사는 국민들은 피곤하다. 그러다 보니 자꾸 신기루를 찾아 나선다. 지난번 신기루는 안 씨 성을 가진 진인(眞人)이었고, 다음번 신기루는 반 씨 성을 가졌다는 소문이 들린다.

“어리석은 짓은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고 몇 번이고 또 그 일을 되풀이하고 그러면서 다른 기대를 소망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2015년은 우리의 부모 세대가 그토록 뼈 빠지게 일했는데 왜 현실은 이렇게 돼 버렸는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다시 생각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해답은 ‘정치’에 있으므로.

슬로우뉴스 편집팀이 뽑은 2014년 10대 정치 사건은 다음과 같다 (득표순).

1. 원세훈 선거법 위반 무죄 판결

국정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해 선거운동을 했다는 혐의를 받은 원세훈에 대해 판사는 ‘정치개입은 했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무죄를 선고했다. 국가정보기관이 국내 정치에 개입했다는 점에서 선거결과에 의문을 품게 했고, 이후 벌어진 조직적인 수사방해와 증거인멸 논란은 정권의 정당성까지 심각하게 훼손했다.

아울러, 국정원 엘리트 직원들이 작성했다는 트윗 글이 초등학생 수준만도 못하다는 게 드러나면서 한국 교육이 얼마나 심각하게 병들어있는지 잘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YouTube 동영상

2. 박원순 인권헌장 거부

인권헌장 거부 자체보다도 그 과정에서 박원순이 보여준 태도가 박원순에게 큰 기대를 했던 많은 시민들에게 적잖은 실망을 안겼다.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는 발언은 인권변호사라는 도덕적 정당성에도 상처를 입혔다.

동성애자들은 한 번도 박원순에게 ‘동성애를 지지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인권헌장을 극렬히 반대했던 이들이 박원순을 좀 더 지지하게 됐다는 증거 역시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서울시 홈페이지 '함께서울') http://mayor.seoul.go.kr/page01_01http://mayor.seoul.go.kr/?swptouch_view=normal
박원순 서울시장 (출처: 서울시 홈페이지 ‘함께서울’)

3. 군 사이버 여론조작 확인

국정원 선거개입 논란 와중에 군까지 조직적으로 국정원과 함께 사이버 여론조작을 통해 선거개입을 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하지만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과 마찬가지로 흐지부지 시간만 끌다 종결되는 분위기다. 하다못해 재발방지대책조차 없다.

국방부 임무와 비전 (출처: 국방부)  http://www.mnd.go.kr/mbshome/mbs/mnd/subview.jsp?id=mnd_040201010000&titleId=mnd_040201000000
국방부 임무와 비전 (출처: 국방부)

4. 세월호 특별법 과정의 정치적 파산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탑승인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은 지금도 실종상태다. 고등학생이 대부분인 세월호 탑승객들이 배에 갇혀 죽는 걸 생중계로 지켜봐야 했던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대통령 박근혜는 생중계를 못 봤는지 당일 오후 중대본을 찾아 관계자들에게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물었다. 1974년 8.15 행사장에서 박근혜 생모인 육영수가 암살당하는데 영향을 미쳤던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가 40년 만에 되풀이됐다.

가족대책위 세월호 특별법안 7

정부의 세월호 사고 대처

세월호 사건 후속 조치 현재 상황
세월호 사건 후속 조치 상황 (2014년 8월 25일 기준)

5. 안대희 문창극 등 연이은 총리후보자 낙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홍원이 국무총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사표를 냈다. 박근혜는 대선캠프에서 활약했지만 입바른 소리를 한 뒤 부름을 받지 못하던 안대희를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안대희는 전관예우 논란이 일자 스스로 물러났다.

곧이어 후보자가 된 문창극은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둥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악행으로 자질 시비 끝에 결국 물러났다. 쓸만한 사람이 없는 것인지 쓸만한 사람을 피하는 것인지 결국 정홍원이 다시 총리 일을 하게 됐다. 정홍원 역시 ‘알 수 없는’ 역사의식을 피력한 바 있다.

잊소리 정홍원

문창극식으로 표현하면 ‘문창극이 총리가 되지 못하고 정홍원이 계속 총리로 일하는 것도 다 국민들을 단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제주도에서 4.3 폭동 사태라는 게 있어 가지고 공산주의자들이 거기서 반란을 일으켰어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하나님이) 남북분단을 만들게 해 주셨어. 그것도 저는 지금 와서 보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책임총리 그런 것은 지금 처음 들어보는 얘기"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무슨 게이 퍼레이드를 한다고 신촌 도로를 왔다갔다 하느냐. 나라가 망하려고 그러는 거다."

6. 7.30 재보선 야당 참패

6.4지방선거 직후 치른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은 11곳에서 승리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4곳에서만 승리했다. 한마디로 여당 압승이었다. 특히 전남에서 여당 소속 이정현이 당선된 것은 새청치연합 공동대표였던 김한길과 안철수가 동반 퇴진하는 데 결정타가 됐다.

서울 동작을 공천 파동 등 상습적인 헛발질 끝에 나온 패배라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안철수의 새정치는 냉정한 심판을 받았고 그에게 열광했던 유권자들은 새로운 유행을 찾는 중이다.

7.30 재보궐 선거 결과
7.30 재보궐 선거 결과 검색 화면 (출처: 구글, 2014년 7월 31일)

7. 헌재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에 대해 정당해산이라는 ‘역사적’ 판결을 남겼다. 거기에 더해 통진당 소속 의원들에게 의원직 상실이라는 결정까지 내렸다. 헌재가 너무 서둘렀다는 문제 제기에 더해 김이수 재판관 한 명을 빼고는 재판관 8명이 해산에 동조했다는 점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이로써 ‘반체제 용공’ 세력이라 공격받던 이들이 주도한 6월항쟁의 결과로 생긴 헌재가 ‘반체제 종북’ 세력을 단죄함으로써 ‘이념’을 무기로 한 정치공격의 한 축으로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했다.

헌재 통합진보당

8. 담뱃값 인상 논란

줄곧 ‘증세 없는 복지’를 강조했던 박근혜 정부가 정작 ‘복지 없는 증세’를 한다는 비판을 듣게 만든 계기가 담뱃값 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노무현 정부가 담뱃값을 500원 인상할 때 야당 당 대표로서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고 했던 박근혜는 2015년 1월 1일부터 담뱃값을 2,000원 올렸다.

전체적인 조세 형평성 개선과 세출 측면에서의 소득재분배가 안 되는 상황인지라 ‘그럼에도 보편증세 차원에서라도 담뱃값 인상을 찬성한다’는 의견은 설 자리가 좁다.

멍충이, "슈퍼담배", CC BY  https://flic.kr/p/6Q2VHS
멍충이, “슈퍼담배”, CC BY

9. 6.4 지방선거와 “대통령을 지켜주세요!”  

6월 4일 지방선거에선 여당인 새누리당이 선거 막판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주세요”라는 뜬금없는 구호를 들고 나와 많은 이들을 의아하게 했다. 더 황당한 것은 ‘지방선거에 웬 대통령 타령이냐’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구호가 적잖은 효과를 봤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주세요
2014년 6월 4일 지방선거에 등장한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주세요”라는 플래카드. 여당의 지방선거 전략은 정책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박근혜 지키기”로 올인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게 먹혔다.

6.4 선거에서는 이른바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돼 눈길을 끌었다. 현재 정부에서는 교육감 직선제 개정을 논의 중이다.

2014년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당선자의 득표율을 그린 지도.
2014년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당선자의 득표율을 그린 지도.

10. 정윤회 십상시

세계일보 특종 보도를 통해 오랫동안 대통령 박근혜 주변을 떠돌던 ‘문고리 권력’이 대중 앞에 민낯을 드러냈다. 청와대는 ‘찌라시’라며 관련 내용을 일축했지만, 정작 검찰은 문건유출 용의자로 박관천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대통령기록물법 위반을 적용했다. 검찰이 또 다른 용의자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전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 조응천에 대해 법원은 12월 31일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윤회-십상시 논란의 와중에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는 '개' 드립을 쳤다. 사진은 청와대 진돗개 (출처: 청와대 뉴스) http://www1.president.go.kr/news/newsList.php?srh[view_mode]=detail&srh[seq]=127
박근혜 대통령은 정윤회-십상시 논란의 와중에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고 ‘개’ 드립을 쳤다. 사진은 박 대통령이 삼성동 사저를 떠날 때 주민들이 선물한 진돗개와 이를 소재로 한 청와대 카카오스토리 런칭 기념 퀴즈 (출처: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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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댓글

  1. 기사의 내용과는 상관 없이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려 합니다. 일단 논리적으로 물리적으로 말이 안되지요. 뿌리가 어떠하든 가지나 잎은 바람에 흔들리게 마련이니까요. 제 짧은 견문으로는 이 문장이 용비어천가의 인용인 것으로 압니다. 원문은 ‘뿌리 깊은 나무 가뭄에 시들지 않는다’라지요. 어쩌다 가뭄이 바람으로 둔갑했는지 모르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쓰곤 합니다. 슬로우뉴스에서까지 이런 표현을 접하는 건 슬픈 일이군요.

  2.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들을 역차별 해도 좋다는 말인가? 궂이 기독교적 논리가 아니여도 동성애는 반대 하는게 맞다. 솔직히 동성끼리 사귀는 행동이 차별받을 행동이 아니면 뭐냐? 차별 당할 짓을 하니깐 차별 당하는 거다

  3. 마루 님 취지는 잘 알겠지만, 용비어천가에 등장하는 표현이라고 해서 쓰지 않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 없군요? 뿌리 깊은 나무를 금기 표현으로 만들까요? 용비어천가가 뿌리 깊은 나무라는 표현을 발명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4. 이런 표현을 쓰면 안되는 이유가 물리적으로 말이 안되기 때문이라는 게 신선하네요. 그런데, 용비어천가 다시 확인해보세요. 조금 창피해지실수도………

  5.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새 곶됴코 여름 하나니.. 고등학교 때 안 배우셨나 봐요..

  6. 제가 배울 때랑 용비어천가 내용이 달라진 거라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 기억으로는 ‘불휘 기픈 남간 가말에 아니 뮐새’입니다만. 아래아를 쓸 수 없으니 아주 정확히는 아니겠군요. ‘가말’이 가뭄의 옛말이지요.

  7. 댓글을 써놓고 말씀대로 다시 원문을 찾아봤습니다. 제가 지금껏 착각하고 있었군요. 좀 부끄럽네요. 뒤에 따라 나오는 문장이랑 기억 속에서 뒤섞였었나 봅니다. 이 나이 먹고도 이런 실수를 합니다.

  8. 가능하면 앞에 쓴 댓글을 지우고 싶은데 비회원으로 작성해서 그런 건지 제가 방법을 모르는 건지 지울 수가 없군요. 제가 잘 몰라 그런 거니 이해해주세요.

  9. 다른 댓글에서도 썼지만 애초에 잘못된 문제제기였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오해가 있는 듯하여 덧붙이자면 표현 자체를 문제삼은 게 아니라 인용을 정확히 하자는 거였는데 제가 틀린 거였으니 할 말 없게 된 거죠, 쩝.

  10. 그러게요. 많이 창피합니다. 그게 상징적인 의미였음을 알겠습니다. 부끄럽긴 하지만 계속 잘못 알고 있었던 걸 이번 기회에 바로잡을 수 있었음이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11. 동성애를 반대해야 할 이유 단 하나, 그 중에서도 논리도 아닌 영역을 끌어다 놓고 차별해야 한다는 걸 정당화 하는 건 니가 지금 똥같은 글을 싸질렀으니까. 널 대놓고 똥취급해도 된다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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