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은 2014년 12월 10일 성 소수자 시민단체 활동가와 비공개 회동 직후 페이스북에 한 게시물을 올렸다. 인권헌장 논란에 관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식 입장이라고 봐도 무방한 게시물이다.
시민여러분들과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시민위원님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 박원순 시장의 페북 게시물 중
이것은 사과인가?
사과가 아니다. 인권헌장을 둘러싼 서울시민과 서울시 사이의 주요 사실은 지극히 단순하다.
- 서울시민(시민위원회)은 인권헌장을 정당한 절차에 의해 채택했다.
- 서울시는 서울시민이 정당하게 채택한 헌장을 선포하지 않았다.
엄격하게 말하면, 그 외의 논란은 부차적이다. 그 서울시의 책임에 대해 많은 시민이 서울시 수장 박원순에게 항의하고, 박원순을 비판했다. 박원순이라는 개인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하나씩 살펴보자.
1. 삶의 부정 vs. 존재의 부정
이번 일로 인해
제가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상황은
힘들고 모진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박원순 시장의 페북 게시물 중
이번 인권헌장 사태로 동성애자는 ‘그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 나는 남자 이성애자다. 하지만 내가 동성애자로 태어났다고 가정해본다. 그저 희망 고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에 존재를 올려놓고, 결국 존재를 부정했다. 이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박원순은 “살아온 삶”이 부정당하는 괴로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동성애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는 ‘인권의 명단’에 올라갈 자격이 없다고 통보받았다. 그것도 인권변호사 출신의 서울시장에 의해 언론에 자극적으로 떠벌려지며 존재 자체를 공식적으로 부정당했다.
2. 합의 과정이 중요하다?
‘서울시민인권헌장’은 법률과는 달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사회적 협약이자 약속이니만큼
서로 간의 합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페북 게시물 중
4개월 동안 시민들이 모여 그 ‘합의 과정’을 충실하게 절차적으로 수행했다. 그 합의과정을 부인하고, 폐기한 건 서울시와 박원순이다.
서울시는 시민의 자율성을 부인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리고 ‘전원합의’를 종용했다(6차 회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신라의 화백 제도라도 하자는 말인가? 인권헌장 채택을 부인해야 할 절차적 흠결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채택의 정당성을 부인해야 할 이유를 하나라도 알고 있는 분이 있다면, 제발 부탁이다, 알려주시라.
서울시민은 충실한 합의 과정을 거쳐서 인권헌장을 채택했다. 이를 서울시는 ‘전원합의’라는 핑계로 거부했다. 누가 누구에게 합의 과정을 찾나.
3. 더 깊은 사회적 토론… 책임을 묵묵히
엄혹하게 존재하는 현실의 갈등 앞에서
더 많은 시간과
더 깊은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선택에 따르는 모든 책임을 묵묵히 지고 가겠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페북 게시물 중
나는 박원순의 이 목소리가 인권헌장 논란을 대충 뭉개고 가겠다는 확실한 의사표시로 들린다. 그리고 이 진술은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수사다.
보수 기독교계와 가부장 사회의 동성애 거부 정서에 편승해 급진적인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탈색하고, 자신에 대한 (소위 진보 진영의) 비판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망각 시스템에 맡기겠다는 언명으로 나는 읽었다.
“선택에 따른 모든 책임을 묵묵히 지고 가겠다”는 고백에 담긴 고뇌까지 거짓이라거나 정치적인 장난질, 수사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덧없고, 덧없다. 그리고 무서울 만큼 계산적이다.
4.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앞으로 더 어렵고,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상호신뢰의 원칙을 가지고 논의와 소통의 장을 계속 열고
서울시가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가려고 합니다.– 박원순 시장의 페북 게시물 중
이쯤 되면 절망적이다. 앞 문단에서 “선택과 책임”을 이야기한 박원순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이라고 발을 뺀다. 이것은 진정한 고뇌인가, 아니면 고뇌하는 제스처인가. 여기에 책임은 없고, 언젠가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무의미한 제스처만 있다.
인권헌장 논란에 ‘책임’을 지는 길은 동성애에 대한 의견을, 무슨 전두환 뽑는 장충체육관 대선 투표처럼, 하나로 모으는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그 갈등의 완전한 해소는 박원순 살아생전에는 불가능하다.
박원순이 서울시장으로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책임은 정당하게 채택한 헌장을 서울시가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그뿐이다. 시민을 헌장의 제정자로서 모셔온 서울시가 그 권한을 자유롭고, 또 민주적으로 행사하고, 헌장을 채택한 시민의 당연한 신뢰를 폐기했다. 이런 기만과 배반을 바탕으로 소통이 가능할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5. 갈등을 조정할 것인가 vs. 갈등을 핑계로 숨을 것인가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정치인으로서 박원순은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회피했다. 인권헌장 사태는 동성애에 관한 두 세력의 “갈등을 조정”하는 과제를 박원순에게 부여한 것이 전혀 아니다.
박원순은 이렇게 말했다.
“시민운동가, 인권변호사 경력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것과
현직 서울시장이라는 엄중한 현실,
갈등의 조정자로서 사명감 사이에서
밤잠을 설쳤고, 한동안 말을 잃고 지냈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페북 게시물 중
지금 박원순이 해야 하는 일은 동성애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는 당연한 인권을 확인해 준 시민위원회의 결정, 정당한 절차와 합의 과정을 거쳐 채택한 ‘인권헌장’을 서울시의 수장으로서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선포하는 일이다. 단순하다. 거듭 말하거니와, 무슨 대단히 복잡한 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후에야 그 헌장을 ‘둘러싼’ 갈등에 관한 조정자 역할이 생겨날 수 있다. 생겨나지도 않은 갈등에 관한 조정자로서 자신을 치장하며, 과도한 수사를 남발하며 정치적인 액세서리처럼 고민과 고뇌를 몸에 둘러봤자 한발도 전진할 수 없다.
세상은 여전히 동성애자는 인간이 아니며, 아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적어도 서울시의 공식 입장은 그렇다고 한다. 인간의 존엄에 관한 공동체의 확인이라는 경건한 축제를 잔인한 서커스로 만든 자는 동성애자도 아니고 서울시민도 아니다.
결국, 박원순은 성 소수자 그룹의 비공개 회동과 그 직후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것을 확인해 준 셈이다.
서울시 인권헌장 선포 거부 사건
이제 서울시민 인권헌장 선포 논란 혹은 이 사태의 의미는 명확해졌다. 우리는 마땅히 이 논란, 사태를 서울시 인권헌장 선포 거부 사건이라고 명명해야 한다. 이 사건이 함축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우리 사회의 동성애 혐오는 서울시가 추진한 공적 업무를 무력화할 만큼 조직적이고 강력하다. (동시에 이는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 지자체의 공적 업무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서울시는 적극적으로 협력, 방조했고, 시민사회와 언론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 박원순이라는 정치인은 정치적 이익과 “살아온 삶”의 원칙 사이에서 (잠재적) 정치적 이익을 선택했다. 그 평가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만, 박원순이라는 정치인의 진면목을 확인했다는 점에선 같다.
나는 내 판단을 이야기하겠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인은 말과 행동을 달리 해왔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대한 계산은 밝았지만,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일에는 게을렀다. 결단하고, 행동하며 갈등을 조정하기보다는 이미 있는 갈등을 핑계로 그 결단과 선택을 미루고, 결국 그 사회적 의제를 망각 속에서 사라지게 했고, 그 정치인 역시 그랬다. 나는 서울시 인권헌장 선포 거부 사건을 통해 익숙한 대한민국 표준 정치인의 초상을 떠올린다.
박원순, 그 역시 익숙하게 봐왔던 또 한 명의 정치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전 박시장의 시장으로서 현실적인 고민을 이해합니다.
진보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작가님처럼 하나의 사실이 마음에 안든다고, 가장 진보적 가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힘이 있는 사람을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내치고 비난하고 분열하고…마치 자신의 순수성이 회손된 것 마냥…절대 소위 진보인사라는 사람들이 힘을 가지지 못하고 옆에서 칭얼거리기만 하는 원인이죠. 자기들이 너무 잘나서 말이죠. 죽이 됬던 똥이 되었던 뭉치는 반대편에 비해.
현실적인 고민이야 이해하는데, 전혀 손해보려는 생각이 전혀 없는 안전지향의 이런 성향이 장점으로 부각될지는 의문입니다.
뭐… 진영논리와 방법론은 둘째치고, 박원순이 우리편이라고 생각하는 게 착각일지도 모르지요. 우리 지지하는 후보 망가질까봐 금이야 옥이야 하고 키우는 심정이야 모르는 건 아닙니다만 요즈음 들어 비판적 지지라는게 어떤 뜻인지 종종 헛갈립니다. 그런 게 종종 아주 중요한 시점에서 독으로 돌아오곤 했다는 걸 기억해 보면 쉽게 생각할 거리는 아닌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하시는 것은 상관 없어요. 죽이 되시건 똥이 되시건 마음대로 하세요. 다만 전 똥 되기 싫어서 빠지렵니다.
설득을 통해 전원합의를 이루어내려는 노력은 폄하하고 인원수로 밀어 붙여서 통과했으니 채택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수당의 날치기 법안통과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동안 박원순에게 기대를 해온 것은 무엇인가?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설득과 합의를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설사 그 작은소리가 억지라고 하더라도.) 인권헌장 선포는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선포를 통해 생기는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크다면, 일단 물려놓고 사회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게 우선일 것이다. 오히려 시장의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그런 환경을 다지는 것이 더 유효한 일이 아닐까? 머릿수로 통과시켜 놓고도 사회적 반발이 심하다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겠는지부터 생각해보자. 아무리 옳다고 여겨지는 가치와 신념도 그것을 개개인의 삶에 접목시키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음이다. 서울시가 선포한다고 서울시민이 얼마나 긍정할 수 있을것인지? 이 일을 정치인의 자기처신쯤으로 생각하는 자들은 얼마나 편협한가?
“민주주의의 두 가지 핵심은, 다수결의 원칙과 소수자 보호입니다.”
박원순이 자신의 책에서 한 말입니다.
만약 우리 시장께서 다른 모든 사안에서도 만장일치를 주장하며, 만장일치가 아니라면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며 모든 사안을 백지로 돌린다면, 어떻게 느껴질지 생각해 봅시다. 만장일치로 설득될 사안이나 있을까 싶은데 말입니다. 왜 이번 사안만이 유독 마지막 순간에서야 갑자기 만장일치를 주문받았을까요? 설득과 소수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현재의 이 기준은 적당했다고 할 수 있을런지요? 심지어 헌법재판소에서도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하물며 이번 건은 실정법에 대한 결정도 아닙니다.
작은 소리를 존중하는 것과, 합의로 결과를 도출하고자 함은 무조건적으로 대치되는 것이 아닌 줄로 압니다. 날치기라는 것이, 만장일치가 아닌 모든 표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의 의사결정을 이야기하는 것일진대 이번에 행해진 수많은 회의들은 다소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을지언정 상대를 배제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 같이 토론하고 합의에 이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죠. 단어를 명확하게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말씀대로라면 모든 표결은 인원수로 밀어붙이는 것에 불과하니 날치기가 되어 버립니다.
이번 사안에 있어 양측의 마무리 단계에서 잡음이 있었고, 이 결과의 책임에서 양측 모두 결국에는 자유로울 수 없을진대 시장에게만 먼저 면죄부를 주는 것도 과한 일로 보입니다. 또한, 이번 헌장 제정이 사회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으셨는지요. 어떤 과정이든 간에 반대 단체는 반드시 등장하는 법인데, 그 때마다 우리는 100%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노라고 하면서 결과의 성과와는 상관없이 그것을 완전히 백지로 돌린다면 그 또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박원순에 대한 인상평가는 뒤로 미루려고 합니다만, 박원순이 자기처신과 언론플레이에 민감하다는 세간의 평도 나름의 근거는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수결의 원칙이 이해관계에서의 불만을 최소화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반목과 갈등과 적개심까지 해결할 수 는 없습니다. 그런 적개심을 가진 사람들을 다수결로 누르고 서울시 인권헌장의 선포가 이루어진다 한들 선포 자체가 대상자들에 대한 위로는 될지언정, 정작 차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전환에 까지 큰 영향을 끼칠것인가? 오히려 반발을 더 가져오지는 않겠는가? 에 대한 부분은 간과하고 있는것 같군요. 박원순 시장의 처신이나 언론대응은 분명 민감하지만 그것이 오로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움직인다고 단언하는 것에는 어떤 근거가 있습니까?
주위를 조금이라도 둘러봐도 동성애에 대해 극도로 혐오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고 또 이 인권헌장이 통과되면 불러올 파장이 엄청 날텐데 흔히 진보언론라는 매체들과 진보인사들은 원칙만 앞세운 채 현실을 부정할건가요?
저는 과연 이 선언문이 진정 모든 서울시민의 공감을 얻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또 이걸로 박원순시장이 지지자들을 잃는다면 그가 해왔고 앞으로 할 일들에 대한 추진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전 박원순시장의 개인적 입장에서 보면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모든 결정은, 반목과 갈등과 적개심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오히려 지나치게 이상론적이고, 물렁한 태도를 변명하는 전가의 보도로 쓰일 가능성도 있죠. 애초에 만인에 의한 직접정치를 하고 있지 않은 만큼 이는 기본적으로 다수결의 정치입니다.
그러니 만장일치가 가장 좋기야 하겠지만,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시는 이미 위에 제시했듯, 헌장보다 더욱 영향력이 큰 실정법조차도 만장일치를 주문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제정위원회가 모든 항목에서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이상론적 한계이듯, 박원순이 만장일치를 주문한 것 역시 이상론적 한계입니다(그런 의미로 주문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좋게 해석한다면).
부정적 반발에 대한 생각은, 애초에 그런 완벽한 합의를 위해서는 서울시 전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겠죠. 어차피 시민위원회를 구성해서 이를 결정하겠다는 것 자체가 반목의 일부 불가피함을 감내하겠다는 전제를 깔고 가는 것이고, 그것이 서울시의 처음 결정이었습니다. 또한, 모두의 완벽한 합의 없이는 어떤 결정도 부정적인 반발을 초래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기득권의 손쉬운 변명 논리이기도 합니다. 그 사이에 누군가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라면, 적어도 그들의 지도자가 할 말은 아니죠(물론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박원순에 대한 의심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과 언론플레이 사이의 갭이 상당해 보이기 때문이죠. 3조 운운하는 것으로 서울시 재정 개선이 엄청나 보이지만 실제로는 용어의 차이일 뿐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으며, 이번 건만 보더라도, 박원순은 중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만장일치라는 장벽 하나 세워 놓고 문제를 마무리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고뇌하는 고독한 결정자의 이미지를 피력하고 있죠(물론 저는 제정위원회의 마무리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보지만, 일단 박원순의 건만 이야기한다면).
이것이 자신의 영달만을 위한 것인지, 대의를 위해 대선주자로서의 위치를 보전하려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저는 잘 모릅니다. 그걸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좋게 봐서, 박원순이 고뇌하고 있다면, 그 고뇌를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분명 대선주자의 지지율 문제도 있겠습니다만, 더불어 박원순 개인의 정치방법론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겠죠. 속마음이야 제가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만.
그러나 적어도 편리하게 결론을 내리기엔 여러모로 불편한 지점들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만약 지지자라면, 비판점에 대해서 좀 더 귀를 기울여도 괜찮은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이렇게 현실 운운 하면서 세상이 이런데 어쩌니 저쩌니 하는 게 더 웃기네요.
뭐 현실부정이라는 말은 좀 과한 것 같고(뭐 인종차별 운동도 이런 식으로 해 왔으니까요. 오히려 이게 현실에 대응하는 방식 중 하나이기도 해서), 방법론의 차이라고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여기에 서울시가 함께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런 방법론에 동의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뭐, 이것이 결국 최종적인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지나가는 약간의 희생이라면, 그리고 만약 박원순이 최종적인 정치적 목적을 이루게 된다면, ‘그가 앞으로 할 일들’을 제대로 해서 지지자분들의 바람을 이루어주는 사람이길 바랄 뿐입니다.
덧, 그렇다고 해서 박원순이 영 나쁜 시장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큰 건은 몰라도 자잘한 것들은 잘 처리하는 것 같으니… 다만 이번 건에서 완전한 의견합치를 주문했듯, 경전철 건에서도 완벽한 의견합치를 보여주길 바랍니다.
보통 당하는 사람의 현실은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이런 논쟁과 논리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을 잃었습니다. 진보도 보수도 모두 조롱한 대통령이 바로 노무현이죠. 실낱같은 민주주의의 끈을 티끌이라도 모으고 가야합니다. 나만이 우리만이 절대 옳다는 생각이 연대와 사회의 민주주의를 죽입니다. 성소수자의 인권 당연히 소중하지만 이해 못하는 다수의 시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일부 기독교 단체의 극렬 반대는 틀린 것이니 들을 가치도 없고 무시해야한다면 저쪽에서 보면 똑같이 생각하겠죠. 저들은 적입니까 아니면 같은 시민사회의 일원입니까. 나는 우리는 절대선입니까?
그런데 애초에 이 헌장을 제정을 추진한 건 서울시였기도 해서 일종의 말바꾸기라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라… 감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줘야 하지 않을지. 슬로우뉴스에 올라오는 글들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어서 좀 뜨악하긴 한데 박원순이 이번 건을 처리하는 태도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뭐 확실히 그런 점은 박원순이 비판받아야 할 점이긴 하죠. 좀 더 세련되게 처리할 수도 있었지 않나 싶긴 해요. 혹은 새민련 내부의 권력 투쟁 같은게 관련되었을수도 있고 말이죠.
말씀하신 내용은 오히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해당되는 내용인 것 같은데… 제 착각이려나요.
어차피 좀 과할지언정, 한 줌도 안되는 성소수자들의 말들인데 이것조차도 국론분열자들이라며 박해하는 것도 과해 보입니다. 이번 건에서 박원순이 과오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물론 다른 글에서 제가 댓글로도 지적했듯, 소위 진보적 스탠스를 가지고 있다 자부하시는 분들 중에는 도덕적 우월감 혹은 허영심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보통 표현에서도 드러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받을 내용을 말하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양측 입장에다가 왔다갔다 하면서 댓글을 달다 보니 오지랖 넓은 박쥐처럼 보일 것 같긴 한데, 그만큼 양측 입장 모두 성급한 면이 있어 보입니다. 요즈음의 슬로우 뉴스는 전혀 슬로우하지 않군요.
세련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상황이 바뀌니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는 모습을 내비쳤다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생업이 걸린 상당수의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서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그걸 깡그리 무시한 꼴이 됐구요. 이건 신뢰성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점점 이런 이슈가 많아질 겁니다.
다른 쪽으로도 보면, 박원순의 시민참여형 프로젝트가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다는 기존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겁니다. 오히려 시민위원회 결정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확실하지는 않군요. 암튼 이건 슬로우뉴스쪽에서 좀 다루어줬으면 하는 것도 있는 주제인데 어찌될런지 모르겠네요.
새민련 권력투쟁 건에 대한 것은, 제가 부족해서 어떤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어디가 되었든 깊이있게 다뤄줬으면 하네요. 새민련 권력투쟁 쪽은 새민련 내의 정파 싸움 같은게 있어서 박원순에게 자제를 요청했다든가 하는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죠.
소위 진보라는 인사들이 힘을 가지려면 어찌할까요? 보수 가치도 받아들이고, 중도를 지켜야하나요? 가장 진보적인 가치가 무엇인가요? 아마도 가장 진보적인 가치는 가장 보수적인 가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박시장이 가장 진보적인 가치로 인한 갈등에 어떻게 행동할 지는 이미 보여준거나 다름없겠죠. 존재하는 갈등에 신념과 원칙을 꺽는 다는 건 결국 더 힘있는 논리에 동의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박시장은 이 사태, 이 갈등에서 소극적이던 방관적이든 한쪽 손을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승리인 자들을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신념이 아닌 셈법으로 결정한것이죠
우리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숨죽여살고 있는 성소수자들이 많은데 이번 인권헌장 사태로 불러올 그들의 좌절과 고통의 연장이 엄청날텐데 흔히 현실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전혀 현실을 직시하지 않죠.
이 선언문 불채택에 진정 공감할 시민들이 얼만큼이든 그들은 박원순 시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이고 그가 해왔고 앞으로 하려는 일들은 어떤 바탕에서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전 개인적으로 박원순시장의 개인적 입장으로 시를 운영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