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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경남 창원에는 주남저수지가 있습니다. 1980년대부터 일찍이 철새 도래지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사람들이 일부러 만든 저수지이지만 자연경관이 인공저수지답지 않게 빼어납니다. 왜 그럴까요? 주변에는 드넓은 평야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120년 전만 해도 흔적조차 없었다는 사실은 크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창원 주남저수지와 일대 평야가 어떻게 해서 들어서고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한 번 알아보았습니다. 모르고 보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반면 조금이라도 알고 보면 아 그렇구나 하면서 한 번 더 돌아보고 살펴보는 보람과 즐거움이 더해집니다.

2021년 12월 발행한 창원시의 비매품 책자 ‘주남저수지 이야기-주남저수지의 역사와 생태’에 담았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비매품은 제대로 유통이 되지 않아 사람들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고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 맞추어 일부 내용을 보완해서 열두 차례에 걸쳐 연재해 보려고 합니다.

수리 시스템의 구체적인 면모

주남저수지와 대산평야 일대에는 일제강점기 촌정농장과 동면수리조합·대산수리조합이 만들어낸 수리 시설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관개·배수·방수 등 10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근대농업의 수리 시스템입니다. 더이상 사용되지 않는 화석화된 유적이 아니고 지금도 생명력을 간직하고 요긴하게 쓰이는 유산이라 그 가치가 더욱 크다고 합니다.

주남저수지는 지금 생태자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높은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처럼 대산평야를 위하여 만들어진 농업자원이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보지 않고 하나만 본다면 반쪽밖에는 되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근대농업유산 하면 여태까지는 만경평야가 있는 전북 군산시나 옥구군 정도가 주목을 받았을 뿐 창원은 아무런 취급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사정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지 답사와 기록 검토를 통해 확인된 주남저수지와 대산평야 일대 근대농업유산을 한눈에 알기 쉽게 한 번 정리해 봤습니다. 실제 따지고 들면 이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만 우선 눈에 띄는 대로 주워섬겼습니다. 주남저수지를 찾는 여러분께 작으나마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포양수장 수문·수조

본포양수장(동읍 본포리 208 일대)은 대산수리조합이 대산평야의 1350정보 너른 들판에 물을 대는 계획에서 핵심이었습니다. 1927년 대산수리조합에서 낙동강변의 자연암반을 뚫어 수문을 내고 거기서 길어올린 물을 담아놓는 수조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낙동강에서 길어 올린 물을 담아두는 본포양수장 수조.

한국농어촌공사 창원지사는 지금도 해마다 4월에 본포양수장에서 통수식을 치릅니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낙동강에서 퍼올린 물을 수조에 담았다가 처음으로 들판에 내보내는 행사입니다.

수조는 본포양수장 마당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전체 모양은 사다리꼴에 가까운 팔각형입니다.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와 나가는 출수구 모두에 수문이 두 개씩 있는데 입수구는 둥근 철문이 달려 있고 출수구는 네모 구멍만 있습니다.

수문은 본포양수장 2층 높이 건물 뒤편에 있습니다. 옥상에서 보면 가로 25m 세로 6m 정도 되는 직사각형 물웅덩이가 사방 모두 우툴두툴한 천연암반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천연암반을 통째로 깎아낸 흔적이 뚜렷합니다.

낙동강 쪽으로는 수문이 두 개 마련되어 있는데 너비가 2m 남짓으로 짐작되고 사이에는 기둥도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두 수문과 가운데 기둥, 그리고 양쪽 벽면과 위쪽까지 모두 깎아낸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길고 네모난 석재로 꾸며져 있어서 단정하면서도 우람한 느낌을 줍니다.

위에서 내려다본 본포양수장의 수문. 다듬은 석재로 마감한 벽면도 있고 우툴두툴 굴착한 그대로인 벽면도 있습니다.

물이 들어오는 수문 입구는 바깥쪽 낙동강 위에 마련돼 있는 자전거길로 나가면 볼 수 있습니다. 천연암반을 뚫은 구멍이 나 있을 뿐 별다른 장식이나 마감은 없습니다. 아래쪽은 철망이 쳐져 있고 그 위로 취수시설이 너비 5m 높이 15m 정도로 놓여 있습니다. 건너다닐 수 있도록 다리가 놓여 있어 가까이 가서 우툴두툴 거친 질감이 그대로인 내부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본포양수장 수문 안쪽. 자연암반을 발파한 표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1·2호 터널

본포양수장에서 퍼올린 물은 낙동강이 흐르는 방향으로 양수로를 따라가면서 제1호 터널 (길이 26칸(間), 1칸=1.8m)과 제2호 터널(길이 20칸)을 차례로 지납니다. 둘 다 1927년 대산수리조합이 천연암반을 뚫고 만들었는데 제1호 터널은 옛날 모습 그대로이지만 제2호 터널은 최근 도로공사로 사라졌습니다.

제1호 터널은 양수장에서 900m 정도 떨어진 본포리 산 79-3 지점에 있습니다. 겉모양은 길게 네모난 석재로 마감했는데 높이는 3m 안팎, 너비는 5m 정도, 길이는 47m가량입니다. 내부는 앞쪽 입구의 경우 1m 남짓은 콘크리트가 발라져 있고 뒤쪽 출구도 콘크리트로 처리했는데 가운데는 자연 암반 그대로인 듯합니다.

제2호 터널은 제1호 터널에서 660m 남짓 아래인 동읍 노연리 726-2 일대 옥정교차로 부근에 있었으나 국가지원지방도 60호선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없어졌습니다. 제1호와 마찬가지로 겉면은 석재로 감쌌으며 안쪽은 부분적으로 콘크리트로 마감한 모양새였다고 합니다.

제1호 터널의 입구.

유등중앙배수문

유등중앙배수문은 대산면 유등리 183-2에 있으며 1927년 대산수리조합이 만들 당시에는 유등리 방수구라고 했습니다. 평소에는 대산평야에서 낙동강으로 물을 빼내는 역할을 하지만 홍수가 지면 낙동강에서 물이 안쪽으로 넘어들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합니다.

입구의 수문은 처음 설치한 것과 다르게 바뀌어 있지만 출구의 수문은 옛 모습 그대로 높이 3m, 너비 2.7m 정도 크기로 두 개가 마련돼 있습니다.

출구의 두 수문에는 제각각 철문이 두 짝씩 달려 있습니다. 두께는 20cm 정도 되는데 낙동강에서 물이 밀려들면 그 압력에 밀리면서 저절로 닫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철재 문짝이 달린 상하좌우를 보면 네모난 석재로 겉면이 모두 보기 좋게 마감되어 있습니다. 윗부분은 무지개처럼 둥글게 처리했고 양쪽 가장자리와 가운데 부분은 높이 3.5m 정도에 1m가량 튀어나온 우람한 원기둥 모양을 해놓았습니다. 또 철재 문짝과 부딪히는 석재에는 다시 철판을 붙여 쉽게 망가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입구에서 출구까지 내부 수로는 천연암반을 뚫어서 만든 터널입니다. 길이는 40m이고 너비는 10m 안팎인데 입구와 출구에서 가까운 1m 정도는 바닥·천정·벽면을 모두 콘크리트를 입혀 놓았고 가운데 30m가량은 옛날에 뚫은 천연암반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계속)

🏞️ 생태관광 1번지 창원 주남저수지의 모든 것(연재)
  1. 더 깊고 넓어진 여행, 창원 주남저수지를 아십니까?
  2. 세 군데 저수지의 저마다 다른 멋과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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